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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쇠 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다.

       

        로즈마리는 지금이 동아리 부실에 합법적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했다. 아니, 지금 아니면 이곳에 영영 들어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틸레트의 모든 동아리방은 사적인 장소였다. 부원과 담당 교수가 아니라면 들어오기 어려운 곳. 

       

        물론 로즈마리는 능력을 사용하여 내부구조를 어렵지 않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방 전체를 고루고루 살펴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스코프 마법의 근원은 전자기파. 전기장과 자기장을 사방으로 쏘아 보내며 되돌아온 정보를 시각화하는 마법이다. 그리고 이런 전자기파는 도체를 뚫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전기장이 도체를 투과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다. 엄밀히 말하자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다만 침투할 수 있는 깊이가 매우 작았을 뿐. 

       

        이러한 도체로 둘러싸인 공간이 연성부 부실 내에 딱 한 공간 존재했다. 에테르와 버멜은 여름방학 동안에 이 공간을 애용했다는 것을 로즈마리는 알고 있었다.

       

        그 목적이 밀회인지 공모인지는 모른다. 내부구조를 본다고 해서 쓸만한 단서를 얻는다는 보장도 없다.

       

        다만 로즈마리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

       

        ‘엘프 이 녀석 여기 있나?’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그동안 어느 곳을 둘러보더라도 버멜 호르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원격 탐사가 불가능한 곳은 육안으로 직접 확인하면 된다. 로즈마리는 아예 마음을 먹은 채로 동아리 부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이, 이게 뭐야.”

       

        점잖은 공녀 컨셉을 유지하던 얼굴이 기대와 함께 어그러지는 데는 3초면 충분했다.

       

        캡슐처럼 생긴 방추형의 강철 구조물이 로즈마리의 눈앞에 우뚝 서 있었다. 어림잡아 4~5m 높이의 기다란 기둥 형상을 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구조물에서는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진짜 이게 뭘까.

       

        때마침 남쪽 창문으로 따스한 햇볕이 들어오며 로즈마리가 들어온 방향을 비추었다. 그 탓에 얼굴 위로 기둥형 그림자가 생겼다. 머릿속이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로즈마리는 다급함이 실린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언니…. 이게 대체 뭐예요?” 

       

        에테르는 ‘허어’, 하고 싶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한 탄식이었다. 하지만 로즈마리는 늘 무표정한 언니의 얼굴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이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것쯤은 알겠다.

       

        “뭐긴 뭐야! 폭탄이지!”

       

        궁금증을 해결해준 건 에테르가 아니었다. 구조물 뒤편에서 커다란 모자를 쓴 보라머리 꼬맹이가 불쑥 나타났다.

       

        여우처럼 앙칼진 눈매를 지닌 소녀였다. 그러나 얼굴은 잘 익은 찐빵처럼 말랑말랑해 보였다. 젖살이 덜 빠진 것이 볼을 쭉 잡아당기면 가래떡처럼 늘어날 것만 같았다.

       

        키는 로즈마리보다 조금 작은 정도였으나, 그 차이가 미묘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로즈마리가 막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탈바꿈하려는 요조숙녀의 모습이라면, 프레이는 단아함과는 거리가 먼 꼬맹이 그 자체였다. 

       

        ‘포, 폭탄이라고?’

       

        생각을 정리할 여유는 없었다.

       

        “야, 그런데 네가 왜 여기 들어와?”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로즈마리를 쪼는 프레이.

       

       외모도 어린데 말하는 꼬락서니도 어린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프레이를 로즈마리는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애 앞에서 허둥지둥거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 평정을 되찾은 로즈마리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에테르 언니가 들어와도 된다고 했어요.”

        “정말?”

        “못 믿으시겠으면 여기 언니에게 여쭤보든가요.” 

       

        프레이는 째진 눈으로 에테르와 로즈마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검은색 머리카락과 군청색 머리카락이 프레이의 시선에 번갈아 담겼다.

       

        검정. 파랑. 검정. 파랑.

       

        “흐음…. 뭐, 에테르가 데리고 온 거면 상관없어.”

       

        곧 프레이는 로즈마리를 신경 쓰지 않고 하던 일에 집중했다. 로즈마리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철광석을 집어 든 프레이는 연성진도 없이 마석에서 순물질을 분류해냈다. 선철을 뽑아내고, 다른 마석을 조합하여 단단한 철괴를 만들어냈다. 심지어 이것의 형태를 멋대로 바꿔가며 ‘폭탄’에 덧붙였다.

       

        꼭 어린아이가 지점토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폭탄의 외형을 만들고 있었다. 겉모습과는 달리 대마법사에 버금가는 지계마도 실력이었다. 로즈마리는 5분이 넘도록 그 모습을 보며 멍을 때렸다.

       

        “…이게 폭탄이라고요?”

        “그래! 문화제 때 출품할 예정이라구!”

        “문화제…?”

       

        로즈마리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뭐야, 내년 입학이 목표면서 틸레트 최대의 이벤트인 문화제를 모른단 말이야?”

        “누굴 바보로 아세요? 당연히 알죠!”  

       

        문화제는 틸레트에서 1년에 단 한 번, 1달에 걸쳐 열리는 대규모 가을 축제다.

       

        축제이면서도 대회나 전시회의 성격을 공유하고 있다 보니 문화제에서는 발명대회나 예술품 전시회와도 같은 이벤트가 열리곤 했다.

         

        “누가 폭탄을 발명대회나 전시회에 출품해요?”

        “우리가 할 건데? 예술대회에 출품할 거야!”

       

        어안이 벙벙해지는 발언이다. 로즈마리는 프레이의 말이 농담이길 빌며 에테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설명이 필요하다는 투로 바라보자 큰 언니가 다시 한번 숨을 내쉬었다.

       

        “프레이 말이 맞아.”

       

        아무래도 미쳤다.

       

        이것이 로즈마리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여기 부원들은 단체로 미쳤다.

       

        “뭐 어때서? 틀림없이 모두가 좋아할 거야!”

        “아뇨, 안 좋아하거든요?!”

        “그럼 너 빼고 다들 좋아할 거야!”

       

        답답함이 극에 달한 로즈마리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자신이 플레어 스크롤을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언니가 가만히 있었는지를.

       

        마왕군 시절, 에테르는 자신의 연구가 방해받는 걸 세상 그 누구보다도 싫어했다. 만약 플레어가 언니의 연구 주제에 필요한 것이었더라면 틀림없이 로즈마리를 쏘아붙였을 터.

       

        그러니 지금에 이르러서야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플레어는 미끼였던 거야.’

       

        진짜 연구는 이쪽이다.

       

        “언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술제 우승 상금이 높은 건 알지만 이걸 출품해봤자 예선에서 탈락할 게 뻔하다니까요?”

        “그냥 해 보는 거지 뭐.”

        “누가 폭탄을 미술품 반열에 올려요?”

        “찾아보니까 작년 대회에선 변기가 우승했던데.”

       

        공녀 신분을 연기하기 위해 현대미술사도 섭렵한 로즈마리였지만, 어디까지나 정보만 머릿속에 집어 넣었을 뿐. 시시각각 바뀌는 인간들의 미적 감각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로즈마리는 최후의 발악으로 계산기를 두들겼다. 더는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 저 방 너머만 보고 나가자.’

       

        나머지는 언니와 단둘이 있을 때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대화를 가지는 편이 낫겠지.

       

        “언니, 저 방에 들어가 봐도 돼요?”

        “마음대로 하던지.”

       

        의외로 즉답이었다.

       

        그럼 그렇지. 기억을 되찾은 언니가 엘프를 여기 숨겨줄 이유는 없다. 언니는 마왕군의 편이 아니라고 답했지만, 동시에 인류의 편도 아니라고 답했으니까.

       

        이런 거대 폭탄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건 나중이다. 로즈마리는 여태껏 궁금했던 방문을 열었다.

       

        “공녀님, 오셨어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로테였다.

       

        스크롤을 제작할 때 쓰는 식각용 펜을 사각거리던 로테가 로즈마리를 보자마자 보름달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인간 주제에 쓸데없이 선한 웃음이었다.

       

        “일어나지 못해서 죄송해요. 제가 지금 작업 중이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로테의 말을 귀담아들을 새는 없었다. 로즈마리는 방 내부를 재빠르게 훑었다.

       

        기껏해야 2~3평 되는 작은 크기의 방이다. 육면이 금속판으로 덧대어져 있는 구조였다. 역시, 스코프가 통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어쨌건 그렇게 됐어요. 원래는 저희끼리 비밀로 하려고 해서 안 되는데, 에테르가 허락했으니 공녀님은 들어오셔서 구경해도 괜찮아요.” 

        “아뇨…. 저는 됐으니까….”

       

        아무래도 좁고 어둑한 공간이다 보니 트라우마를 살살 건드리고 있다. 로즈마리는 도리질을 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몸은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 

       

        멍청한 소리가 입을 타고 새어 나오기 무섭게, 프레이가 뒤에서 자신을 밀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야, 여기까지 왔는데 이걸 안 보면 어떡하냐? 내 친구 스크롤 하나 잘 만들거든? 구경하고 가!”

       

        악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와 함께 로즈마리는 좁디좁은 방 내부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맞다! 이 스크롤은 가능한 깨끗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해야 하거든? 그러니까 계속 구경하고 싶으면 문 꼭 닫고 있어야 해. 알겠지?”

       

        -덜컥

       

        “아, 아, 아….”

        “공녀님, 왜 그러세요? 안색이 창백하신데….”

       

        로테가 무슨 스크롤을 만들고 있는지 확인할 깜냥도 안 된다. 

       

        철화(鐵化)의 저주를 받아 내연기관처럼 변한 심장이 콩닥거린다. 초점을 잃은 눈은 세차게 흔들렸고, 손발은 수전증이라도 온 것처럼 떨렸다.

       

        -쾅!

       

        그저께 밤의 기억이 서서히 떠오른다. 로즈마리는 풀려버리려는 다릿심을 겨우 유지하며 문을 부술 기세로 열어젖혔다.

       

        “공녀님?”

        “가, 갑자기 해야 할 일이 생각났어요…! 저 먼저 가 볼게요!!” 

       

        로즈마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프레이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쳐다본 뒤 재빨리 부실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어찌나 빨랐는지 풍압에 에테르의 머릿결이 휘날릴 정도였다.

       

        에테르는 세 번째 한숨을 쉬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도 잠깐 자리 좀 비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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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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