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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배고픈데. 할아범, 뭐 먹을 거 없어?”

         

       청이 눈을 뜨면서 한 소리였다.

       그리고 나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날이 밝아서 햇볕 잘 드는 침상 위였다.

       중원의 침상은 과학적 설계로 아침과 점심의 중간쯤부터 얼굴로 볕이 들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바깥에서는 뭔가 분주한 소리.

       쓱싹거리는 것은 톱질이고 뚝딱거리는 것은 망치질이며 걷고 질질 끌고……

         

       청이 대충 의관을 갖추고 머리를 묶으며 침소 밖으로 나섰다.

         

       마루에 앉아 바깥을 보던 최리옹이 자연스레 뒤로 따라붙기에, 청이 아침 인사를 건넸다.

         

       “할아범? 뭐 먹을 것 없어요? 나 배고. 앙.”

         

       먹을 것을 맡겨 놓기라도 한 아침 인사였으나 곧장 입 안으로 무언가 쏙 들어오니 청의 눈이 동그래졌다가 이내 예쁜 선으로 가늘어졌다.

         

       찐득하고, 오독한데 고소하고, 그리고 단 것.

       견과를 넣은 고의 종류인 것 같다.

         

       청이 빈속에 과자를 욱여넣으며 한참 공사로 분주한 당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최리옹이 흐뭇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고.

         

       “간밤에 무슨 일 있었어요?”

         

       “별일 없었다. 관군 놈들이 물러갔지.”

         

       “뭐야, 싱겁게. 쳐들어올 것처럼 하더니만.”

         

       실은 싱겁지는 않았다.

       금군은 몰살당했고 도어사와 동창 태감이 사로잡혔으며, 금의위는 저 중간쯤, 몰살과 생포 가운데쯤 반반으로 섞였다.

         

       “앗. 아가씨! 서문의 아가씨가 아니십니까요!”

         

       “오잉? 누구세요? 절 아세요?”

         

       “소인은 창난금호라 합니다요. 그냥 여우라고 불러주셔도 됩니다. 헤헤, 늦었지만 문안 인사 올리겠습니다요.”

         

       그리고는 땅바닥에 납죽 엎드려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 괜찮아요?”

         

       청이 여우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본래 얼굴은 모르겠지만 아마 두 배에서 세 배쯤 부풀어 오른 상태가 아닐까 싶었다.

       시퍼렇게 부은 멍과 혹으로 벌집이라도 건드린 모양새를 하고 있었으니까.

         

       “아이고, 이 금수를 걱정까지 해주시고. 어찌 마음씨도 이리 고우신지. 하지만 말씀은 낮춰 주십지요. 헤헤, 천한 것이 아가씨 앞에서 눈이 부시는데 말씀까지 높여주시면 콩알만 한 담이 감당이 안 됩니다요.”

         

       “어. 응, 그래…….”

         

       청이 순순히 말을 들었다.

       어디 당가 누구의 하인쯤 되나 보다 하고.

       청은 사양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야, 여우 놈아. 아침부터 어딜, 앗, 그분은! 아가씨, 아가씨이십니까? 이런 세상에, 곱기도 하셔라! 이런, 문안 인사 올리겠습니다.”

         

       또 다른 하인이 와서 냅다 무릎을 꿇었다.

         

       “뭐야, 왜들 그러고. 오옷!”

         

       “저분이시구나!”

         

       “굉장한 품격이 느껴진다!”

         

       그리고 나선 무슨 쫄따구들이 형님 맞아 인사 오지게 박듯이 하인들이 차례대로 나타나 문안을 올린답시고 무릎꿇고 대가리를 박고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었다.

         

       “진정 귀인이시로군. 본 도장의 영안으로 보아하니 혼백의 격이 드높으셔서 고아한 영압이 흐르는 분이시다.”

         

       “사이비, 그거 맞아? 수맥 하나 못 찾는 놈이 무슨 영안이야. 아무 데나 파도 물 솟구치는 사천 땅에서 일곱 번을 내리 실패한 놈이 뭔 도사라고.”

         

       그렇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앞마당에 공손하게 자리를 잡아 티격태격 투닥거리면서 하는 것이 누가누가 더 아부 잘하나 대회를 열었다.

         

       “간밤의 꿈에 길을 가다 옥을 보아 주워 들려 하니 갑자기 오색 광채와 함께 찬란한 주작이 날아오르니 이는 세상 가장 고귀하신 분을 만날 꿈이 아닙니까. 과연 아가씨께서 그러하신 분이심을 딱 보니 알겠습니다!”

         

       “이 새끼는 뭐만 하면 주작이 어쩌구야. 청룡 현무 백호는 어디다 팔아먹었냐?”

         

       “저기. 약소한 것입니다만……”

         

       머리카락으로 온통 얼굴을 감춘 하인이 슬쩍 다가와 작은 함을 내밀었다.

       열어보니 이건 또 무슨, 손가락 구멍보다 두께가 더 굵은 옥가락지가 떡하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선물도 선물 나름이지 청이 떫은 표정이 되어 슬그머니 다시 내밀었다.

         

       “되게 비싼 것 같은데.”

         

       “길가다 주운 것이니 신경 안 쓰셔도……”

         

       “아니, 어디에 이런 게 떨어져 있어요. 나도 좀 알게요. 가서 주워오게.”

         

       “각다귀 저 새끼 뇌물 바친다!”

         

       “우우! 치사한 새끼! 언제 준비했냐!”

         

       “흠. 어쩔 수 없지. 마님, 혹시 서화를 즐기십니까? 이 서필은 북산의 흰담비 꼬리털로 만든 것이온데, 역시 서필이라 하면 초미가 아니겠습니까. 한 번 쓴 것이지만 시필을 해 보았을 뿐이니 저보다는 귀한 분께 어울리는 것이…….”

         

       그리고 나선 앞다투어 청의 앞으로 다가와 저 아끼는 물건들을 공물을 바치듯 내려놓는데, 청이 거절할 새도 없이 최리옹이 척척 가로채 등 뒤에 쌓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아니, 이것들이 아침부터. 그리들 할 일이 없는 것이더냐! 없으면 공사라도 도울 것이지! 썩들 꺼지지 못해!”

         

       굉장히 깐깐한 인상의 노부인이 나타나 일갈하니 모두들 두려운 기색을 숨기지 않고 혼비백산 흩어져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어, 누구세요?”

         

       “흥. 나는 아직 인정한 적 없다. 다만 덕분에 사내가 큰 꿈을 품었으니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지.”

         

       노부인, 연 파가 속으로 혀를 찼다.

       조용히 살고자 하던 잠룡이 이제 와서 승천을 노리니 그 목적이 고작 계집 하나라면 천하가 비웃을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다.

         

       덕분에 해치운 금군이 무려 삼천이니 황제가 가진 가장 정예한 군사를 삼천이나 지웠다.

       거기에 더해 금의위 첨사와 무인 서른이다.

       감찰부의 수장인 도어사의 집안을 멸문으로 몰았으며 덤으로 동창 태감까지 제거했다.

         

       모두 황제가 직접적으로 휘두를 수 있는 칼날들이었으니, 이 정도면 사지 중 하나는 잘라낸 셈과 같았다.

       황제의 힘이 폭삭 주저앉은 것이다.

         

       이러면 충분히 대업을 노려볼 만한 것이라.

         

       “하나, 앉은 자리가 달라지면 눈의 높이도 달라지는 법. 잘 되면 돌아올 것이오, 안 되더라도 그 정도면 혹여 서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연 파가 쌀쌀맞게 무언가를 툭 내던졌다.

       제목이 없는 한 권의 서책이었는데, 청이 건드리니 곧장 무공창이 반짝이며 새 것의 등록을 알렸다.

       온전한 비급을 만졌다는 뜻이니 이 서책이 곧 무공 비급이라는 뜻이었다.

         

       “이건……?”

         

       “한 때 강호에 피바람이 불게 했던 물건이니 남들 모르게 간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연 파가 어쩐지 회한 섞인 눈빛으로 서책을 바라보았다.

       오래 묵은 한이, 그만큼의 슬픔과 자책이 담긴 시선이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흥, 하고 몸을 돌려 오연히 걸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대체 누구들이고 또 누구셨던……?

         

       어쨌거나 청이 무공창을 확인하니 새로 등록이 된, 세상에! 보라색, 왜 보라색이 갑자기?

       그것도 보라색 신법으로 그 이름이 능파미보!

         

       음, 처음 들어보는걸.

       청이 알기에는 너무 지식이 미천한 탓이었다.

         

       그리고 나선 임무창이 발광을 했다.

         

       뭔데 왜 차례대로 난리야?

         

       [황룡투쟁 제 초장. (알 수 없음) 번째 위기]

       [당신은 황가의 암투에 휘말렸습니다.]

       당신의 행보를 결정하십시오.

       [이 선택은 천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번엔 뭐 어찌하란 소리도 없이 세력을 결정하라는 한 마디 뿐이었다.

         

       대뜸 이러면 나더러 뭐 어쩌라고.

       청이 그냥 임무창을 치워버리고 머리속에서도 툭 밀어 지워버렸다.

         

         

       —-

         

         

       이후로는 당가에서 합동 장례가 치러졌다.

         

       무려 친왕이 직접 주관한 장례였다.

       당가가 친왕 수호를 위해 황군을 사칭한 반역도당에게 맞섰으며, 포격으로 스러진 마흔두 명의 당가 충의지사와 역적의 토벌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군사 일백열일곱 명의 충의지사를 기리는 합동 장례식이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당가의 정문 어귀에 거대한 비석을 세워 그 이름을 새겨놓았다.

         

       개중에 당난아가 아는 얼굴도 있었다며 이후 꽤나 울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이 안 되어 보이기는 했다.

       그래서 유달리 귀찮게 달라붙는 것도 그래라 아는 사람 죽었다는데 기분이 영 울적하겠지 하고 놔두었는데.

         

       “야.”

         

       당난아가 곧장 양 무릎 발등, 그리고 이마와 팔뚝 아래를 땅에 붙였다.

       언제 봐도 절도와 박력이 있는 큰절이었다.

         

       뒷통수를 내려다보는 청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니, 왜 남의 가슴을 쪼물락거리는데?”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었다.

       현행범으로 딱 걸린 당난아가 아닌 밤중에 사죄의 큰절을 올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아니, 나는 그냥, 그냥 말랑말랑하니 느낌이 좀 좋길래. 이 나이 먹고 엄마한테 그러기도 그렇잖아. 그리고 우리 엄마는 그렇게 크지두 않구……”

         

       당난아도 딱히 다른 뜻이 있지는 않았다.

       그냥 처음에는 어떻게 이만한 게 처지지도 않고 잘 붙어있지 와 완전 부드럽다 정도였는데 어째 자나깨나 그 질감이 떠나질 않았다.

         

       “아씨, 너도 달렸거든. 왜 자기 꺼 놔두고 내 걸 가지고 그러는데?”

         

       “하지만 느낌이 완전 다르단 말야. 좀 뭐랄까 푹 파묻히는 느낌두 없구. 그리구, 뭐, 닳는 것두 아닌데. 너무 야박하게 굴진 말구. 친구끼리 좀 만질 수도 있지.”

         

       당난아가 외려 당당하게 나섰다.

         

       청도 신녀문에서 본 것들이 있다.

       사실은 여인들 역시 사내 못지않게 큰 가슴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다.

         

       성 취향이 수상한 제자들이 외려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고, 멀쩡한 제자들이 훨씬 집요하게 남의 가슴에 욕심을 내더라.

       큰 것 달고 있는 제자들이 시달리다 못해 그만 좀 하라면서 역성을 내는 장면을 하루에 한 번은 빠짐없이 꼭 보게 되는 정도였다.

         

       심지어 겁도 없이 사문의 큰어른 가슴을 한 번만 만져봐도 되겠냐고 물어본 제자가 네 명쯤 되었으니.

       (물론 청이 외문제자에다 편안한 또래라 호칭 말고는 딱히 큰어른 대접을 받지는 않는다)

       청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다고 몰래 더듬으면 안 되지.”

         

       “윽. 하지만 물어보면 안 된다고 할 거구.”

         

       “안 되지. 얼마나 간지러운 줄 알아?”

         

       “힝.”

         

       “힝은 무슨 힝이야. 얘가 아주 큰 일 나겠네. 너 무릎 꿇고 손 들고 서 있어.”

         

       어쨌거나 찔리는 바가 있는 당난아가 순순히 그 말에 따랐다.

       무수한 경험으로 이럴 때는 얌전히 말을 듣는 게 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기도 했다.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

       당난아가 오래도록 저질러 온 만행과 그에 뒤따른 사죄로 터득한 악독한 마음씨였다.

         

         

         

       그렇게 청이 쪼개진 가슴 붙인다는 명목 아래 놀고먹는 나날이 한 달 정도 이어졌다.

         

       그리고 청에게 찾아온 여인이 있었으니.

         

       청이 오매불망 기다리지는 않고 심지어 딱히 떠올리지조차 못한 그 사저 호소인!

       은 아직 한참 대륙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마교는 너무 먼 곳이다.

       게다가 서두를 필요도 없는 여정이었다.

         

       그러니 신교에서 두둑하게 쥐여준 여비 펑펑 쓰면서, 옆에는 설가놈이라는 안내역까지 끼고 생애 첫 중원 나들이를 여유롭게 누리는 중이었다.

         

       청에게 찾아온 이는 다른 여인이었다.

         

       당가의 거대한 대문 옆 세워진 추모비를 보는 여인의 눈빛이 어쩐지 곱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정문을 지키던 당가 무사에게 하대하여 묻는 것이었다.

         

       “내 제자가 당가에 머무르고 있다 들었는데. 혹여 서문 씨를 하고 청이란 이름을 가진 년이 여기에 있지 않으냐?”

         

       그에 당가 무사가 바짝 얼어붙었다.

         

       “서문 소저께서는 여기 머무르고 계십니다만. 그 제자라 하시면, 부인께서 혹시……”

         

       “그래. 지금 당가주가 누구였지? 당투죽 그 입만 살은 아이였던가? 가서 서문수린 선배가 제자 찾으러 왔다 전하거라.”

         

       여중제일인, 집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못된 제자년 찾으러 직접 행차하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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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한글날이기에 특별히 한글만을 사용하여 연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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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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