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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얇은 봉합실의 양끝을 집게와 핀셋으로 잡았다.

     

    돼지 껍데기에서 콜라겐을 추출해 인체 성분과 가장 비슷하게 연금술로 합성한 봉합실이다.

     

    손끝은 밀리미터 단위로 미세하게 움직이며 봉합할 위치를 살핀다.

     

    일자로 움푹 들어간 배꼽 주변은 여분의 지방이 없어 매끄럽다.

     

    햇빛을 별로 받지 않아 새하얀 피부는 꼭 화선지 같아서, 절개 부위부터 물든 붉은 색이 애처로웠다.

     

    그 배꼽의 아래, 가로로 2센티, 중앙에서 아래로 다시 1센티.

     

    불과 10분 전 내가 그었던 부위에 봉합 바늘을 꽂아 넣었다.

     

    ―아셀, 아셀라아…!

     

    휴고에게 묶인 카밀라의 혼이 아셀라에게 달려들려 기를 썼다. 하지만 이미 통제권을 뺏겨 몸에는 힘이 없었다.

     

    아뮬렛이 영혼 융화 저주의 효과를 저지해간다.

     

    아셀라가 카밀라의 영향에서 해방된다.

     

    이제 해주만이 남았다.

     

    “흐음…!”

     

    휴고가 찰칵, 해주구를 돌려 맞추며 첫 번째 술식을 풀어냈다. 그러자 화악! 저주화한 카밀라의 악령이 한 겹 검은 껍질을 벗었다.

     

    악령의 새하얗던 눈에 눈동자가 돌아왔다.

     

    “두 번째는 다분결법형인가.”

     

    최상급답게 몇 중에 걸쳐 만들어진 복잡한 주문 술식이다. 휴고가 술식을 역산하며 해주를 이어간다.

     

    그와 동시에 나는 첫 번째 구멍의 봉합을 끝냈다. 사각, 하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봉합실이 톡 잘렸다.

     

    실은 추후 치유주문을 써도 반발 없이 피부에 녹아들게 된다.

     

    “다음.”

     

    가장 큰 하나를 메꿨다. 나머지는 반경 1센티 정도로 훨씬 작다.

     

    좌측 가슴 밑의 세 개. 내가 작업하던 구멍이다.

     

    단, 가운데는 조금 더 찢어져 있다. 실린더를 급하게 뽑았던 자리다. 간호사가 급히 지혈 중이었다.

     

    그 구멍부터 봉합에 들어간다. 찢어진 자국에 주의하며 일정한 간격으로 촘촘하게 꿰매간다.

     

    ―안 돼에에에!!

     

    카밀라는 기세가 약해졌지만 오히려 더욱 크게 절규했다.

     

    화악! 순간 진동이 울려 수술 장비가 덜컹거렸다.

     

    “후우.”

     

    내 손도 흔들릴 뻔했지만 확실하게 붙들고 잠시 숨을 고른다.

     

    이어서 작업한다.

    두 개째, 세 개째도 완료한다.

     

    마지막 구멍을 막으며 물었다.

     

    “휴고, 해주는?”

     

    “4중 술식 돌파했습니다. 둘 남았습니다.”

     

    머리 위에서 검은 부스러기가 떨어진다.

     

    카밀라의 혼이 산화하여 몸체부터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아셀, 아셀라…

     

    펄럭, 카밀라가 일으킨 풍압에 아셀라의 얼굴을 덮고 있던 천이 들썩여 얼굴이 드러났다.

     

    호흡기를 쓴 채 얌전히 눈을 감고 있는 그녀는 편안해 보였다.

     

    이미 상반신의 일부와 머리밖에 남지 않은 카밀라는 아셀라를 향해 조금씩 필사적으로 다가갔다.

     

    “두지 않겠다.”

     

    휴고가 한계까지 신성력을 불어넣어 카밀라를 저지한다. 해주구는 거의 해체가 완료되어 모든 조각이 공중에 둥실 떠 있었다.

     

    ―아셀…

     

    진즉 팔은 허공으로 사라졌지만, 카밀라는 누워있는 아셀라의 뺨을 쓰다듬기라도 하는 듯, 그저 한없이 바라본다.

     

     

    그러던 도중.

     

    잠꼬대라도 했던 걸까.

     

    “…엄마.”

     

    아무도 듣지 못할, 반쯤 숨이 섞인 작은 목소리로 아셀라가 속삭였다.

     

    당연하게도 팀원들 누구도 업무에 집중하느라 듣지 못했다. 나 역시 봉합에 한창이었기에 잘못 들은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카밀라는 설령 환청이어도 충분히 만족했다는 듯.

     

     

    ―아아…

     

    길었던 반항을 끝내고는 신성력에 몸을 맡겨 얼마 남지 않은 몸을 눕혔다.

     

    “돌파 완료. 해주 끝났습니다.”

     

    “봉합 종료. 체력 회복으로 들어간다.”

     

    간호사가 내 수첩을 넘겨주었다. 클로에에게는 그녀가 아끼는 고서다.

     

    고서를 받아든 클로에의 몸짓엔 힘이 넘쳤다. 큰 고비가 넘어가서 자신감이 들어찬 모양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팀원들 모두 상황은 비슷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거나 고개를 젓기도 하고, 이마에 손을 올리며 벽에 기대고 있었다.

     

    충분히 공감이 가서 나도 한 마디 꺼냈다.

     

    “진짜 너무 힘들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다들 같은 기분이었겠지.

     

    “전능하신 여신님, 진심으로 부탁드리니 굽어 살펴주십쇼.”

     

    기도를 읊는다.

    신성력이 터지며 치유주문이 시전됐다.

     

    저주가 해주됐으니 이제 아셀라도 치유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기도에 응답하며, 그녀의 몸이 하얀 빛으로 감싸였다.

     

    내가 생고생해 봉합한 상처의 실이 피부에 녹아들며 매끄럽게 아물어간다.

     

    “선생님.”

     

    클로에가 고개를 들고 천장 쪽을 쳐다봤다.

     

    카밀라의 혼이 우리를 지켜보며, 신성력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아니, 정확히는 나와 아셀라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뭐, 그녀의 시선을 정확하게 확인하지는 못했다.

     

    여태 난장판을 쳐놓은 주제에, 카밀라는 멋대로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는 소멸했다.

     

     

     

    ***

     

     

     

    그간 염려 많았던 아셀라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정말정말 유감스럽게도 내 일은 안 끝났다.

     

    황족의 주치의는 주군이 혼수상태, 또는 그에 준하는 부상을 입었을 때 비상근무 상태가 되며 수면과 휴식도 불사하고 그의 곁을 지켜야 한다.

     

    당연하지만, 바로 지금이다.

     

    기절했을 때야 뭐, 자고 있었다고 진단 내리면 그만이지만 지금은 마취한 진료기록이 있으니 도망칠 구석이 없다.

     

    황제를 수술했을 때 앰브로시아도 사흘 밤낮을 꼬박 샜다고 알고 있다.

     

    의사든 치유사든 잠이 부족한 직업이다.

     

     

    덕분에 나는 개인실로 옮긴 아셀라의 마취가 풀리고 정신을 차릴 때까지 곁에 앉아 자리를 지키게 됐다.

     

    몇 달이나 외지로 원정을 다녀온 데다 큰 수술로 정신도 없었으니 푹 쉬고 싶은데.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침대에 누운 아셀라는 새근새근 편하게 자고 있었다.

     

    팔에 꽂은 링거로는 수액과 함께 무통제가 들어가고 있다. 치유주문을 넣긴 했어도 상급은 아니다. 체력 회복이 될 정도로만 시전했다.

     

    행여 수술해 제거한 쓸개를 부상으로 인식해 장기를 통째로 재생하려 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치유주문도 핀포인트로 시전이 가능하면 지금보다 편리하게 쓸 수 있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간호사가 수액을 갈고 나가는 기척에 눈을 떴다. 잠깐 졸았던 모양이다.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고 있으니 옆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풋.”

     

    “어라, 일어나셨어요?”

     

    “방금. 공자, 근무시간에 잘도 졸았구나.”

     

    오랜만에 듣는 아셀라의 목소리였다.

    내가 아는 목소리보다는 쏘아붙이는 느낌이 줄어들었다고 할까.

     

    약간 유순해졌다.

     

    “에이, 뭐 얼마나 졸았다고 면박을 주고 그러세요.”

     

    “두 시간.”

     

    “두 시간이나 저를 지켜보고 계셨어요?”

     

    “응. 그리고 나 아파.”

     

    “아프시죠. 그래도 수술은 잘 됐어요. 담낭은 안전히 제거됐고 저주도 해주했습니다. 이제 간헐적 통증이 황녀님을 괴롭힐 일은 없을 거예요.”

     

    “그렇구나.”

     

    아셀라는 수술 결과에 덤덤한 반응이었다.

     

    “운이 좋으신 편이었습니다. 가끔 조직이 안에서 바스라지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지금도 배에 호스 꽂고 있을 수도 있어요.”

     

    “어마마마를 본 것 같아.”

     

    아셀라가 그리 말했다.

    나는 진실을 이야기해 줘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그런 나를 보더니 아셀라가 즐거워진 듯 생긋 웃었다.

     

    “후후.”

     

    “왜요?”

     

    “이제 공자의 생각도 어느 정도 알겠다 싶어서.”

     

    그건 좀 섬뜩한데.

     

    “황녀님께서 즐거우시다면야.”

     

    “어떨 것 같니?”

     

    글쎄, 어떨까.

    굳이 반문했다는 건 조금 다른 기분도 든단 의미일까.

     

    “맞춰봐.”

     

    벌써 30시간 넘게 식사도 못 하고 수술도 받아 기력도 없을 텐데, 아셀라는 나를 괴롭히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요염한 눈매를 지었다.

     

    “음… 화났다?”

     

    “틀렸어.”

     

    “매우 화났다?”

     

    “그럴 힘도 없거든.”

     

    아셀라는 코웃음을 치며 잠시 눈을 감아 휴식을 취했다.

     

    길지는 않았다. 금방 그 황금빛 눈동자로 내 얼굴을 바라보러 온다.

     

    그리고는 담백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뻐.”

     

    잠깐의 침묵.

     

    그동안 입술을 꼬물거린 아셀라가 천천히 덧붙였다.

     

    “…네가 돌아와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아는데 왜 그래.”

     

    “한 번에 맞추면 재미없잖아요.”

     

    “뭐야.”

     

    아셀라는 키득거리려다가 얼굴의 근육을 풀었다. 아직 꽤 아플 거다. 며칠은 안정하며 쉬어야 한다.

     

    “정말 나를 고쳤구나.”

     

    아셀라는 조금 현실감이 없는지 자기 배를 슬쩍 쓰다듬었다.

     

    벌써 피부 자체는 거의 다 아물어서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 미세한 수술 자국밖에 없다. 그것도 치유주문을 계속 쓸 테니 며칠이면 금방 없어진다.

     

    “라스.”

     

    “네.”

     

    아셀라는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 해도 좁은 침대에서 그녀의 움직임은 한정되어 있었기에 내게는 아셀라의 빨갛게 물든 귀가 적나라하게 다 보였다.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마워.”

     

    못 본 사이에 어째 아셀라가 약간 솔직해졌다.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을까.

     

    “별말씀을요. 저는.”

     

    “주치의니까. 그렇지?”

     

    어쩐지 고개 돌린 아셀라의 표정이 보이는 기분이다.

     

    그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지금은 알 것 같았다.

     

    “혼약자이기도 하고요.”

     

    그 단어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셀라는 어깨를 살짝 움츠리며 파르르 떨고는 이내 편하게 누웠다.

     

    잠들었나, 싶었는데 그녀가 팔을 이마에 올리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약간의 심려가 담겨있다고 알 수 있었다.

     

    “너는 나를 고쳐주었는데 나는 너에게 줄 게 없어져 버렸어. 황제가 되겠다고 그렇게 당당하게 선언했었는데.”

     

    조금 침울해진 아셀라였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승부의 결과를 아직 모르고 있었다.

     

    “승계권 말씀이시죠.”

     

    “응, 분하네.”

     

    아셀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네가 돌아오면 꼭 멋진 승리를 선물해주고 싶었거든. 이제 와 이런 말을 해도 소용없겠지만… 아니, 내가 왜 이리 말이 길담. 잊어줘.”

     

    아셀라가 헤이케에게 승부를 신청한 건 나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얼핏 보면 굉장히 이상한 이 인과관계는.

     

    역시 그런 건가.

     

    아셀라는 치부가 드러난 듯 불안해보이는 표정이었다. 무능함을 보인 주군은 신하의 신뢰를 잃게 되니까.

     

    조금은 애원하는 듯한 투로, 아셀라가 내게 조급하게 말했다.

     

    “그래도 월광궁은 남았어. 국서는 불가능해도 공자 널 황실의 주역으로 만들어줄 순 있어.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아직 황녀님의 승계권은 남아있어요.”

     

    내가 말을 끊자 아셀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시녀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헤이케가 승부를 무승부로 돌렸다는 소식이었다.

     

    아셀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며 눈을 감았다.

     

    “그 암여우, 맛있는 역할만 가져가는구나. 완전히 당했어.”

     

    눈을 뜨자마자 황실 생각에 바쁜 아셀라였다. 환자에게 스트레스는 금물이지.

    내가 그녀에게 조언했다.

     

    “일단 국정은 머리에서 지우시고 회복에 전념하세요. 그게 더 중요합니다.”

     

    “알았어. 어차피 열흘이면 신년이야. 폐하께서 올 연말 일주일은 축제 기간으로 지정하셨거든. 나도 올해는 더 움직일 생각도 없었어.”

     

    “축제, 그런 이벤트가 있었군요.”

     

    다르게 말하면 사흘 후면 크리스마스다.

    이 세상에서 크리스마스는 챙기지 않지만, 월광궁에서는 조금 특별한 날이다.

     

    아셀라의 생일이다.

     

    “공자.”

     

    “네.”

     

    “퇴원하면 같이 축제 보러 갈까.”

     

    “좋지요.”

     

    “둘이서만 가기로 했었잖아.”

     

    “아, 그랬죠. 사람이 많아 혼잡할 텐데 조금은 걱정이네요.”

     

    “다들 즐기기 바쁠 텐데 누가 우릴 신경이나 쓰겠니. 가자.”

     

    “물론 주군 가시는 길에는 주치의가 함께 따라야죠.”

     

    아셀라가 내 대답에 즐거워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뭔가요?”

     

    아셀라가 내게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샌드위치는 어떤 빵을 좋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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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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