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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입학시험을 치르는 400여 명이 준비된 과제들을 모두 치르기 위해서는 산술적으로 6시간 이상이 필요했다. 몇몇 기구는 한 번 시험을 치르고 나면 다시 준비하는 데도 제법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험은 시작된 지 2시간을 넘겼을 즈음에 마무리로 치닫고 있었다.

       현재 줄을 서 있는 100여 명의 학생이 각자에게 남은 과제 한두 가지만 마무리한다면 시험은 종료됐다.

         

       애초에 6시간 이상 걸린다는 예측은 400여 명이 과제를 모두 치를 능력이나 될 때의 얘기였다.

         

       “이보게! 여기 봉합사 좀 건네주게!”

       “붕대 더 없나!”

       “자, 여기 보게나. 셋 센 다음 뼈 맞출 것이네. 하나……흡!”

       “끄아악!”

         

       강당 한구석에 마련된 공간에서 신음과 비명이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왔다.

       그것은 시험이 시작된 직후부터 계속되던 것이었다.

         

       의사 1명과 간호사 2명이 침상에 드러누운 환자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다.

       그들의 처치는 신속하고 정확했다.

       발목을 삐는 것 같은 간단한 부상을 입은 환자라면 금방 자리를 털고 나갔다.

         

       그러나 그들에게 쉴 틈은 없었다.

       감독 학생들이 1분에 몇 명꼴로 계속 부상자들을 싣고 왔기 때문이다.

         

       학교 병동의 책임자인 나히모프 박사는 새로 도착한 환자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어떻게 해야 이렇게 되는 거야?”

         

       실려 온 수험생은 한쪽 눈알이 대롱대롱 튀어나와 있었다.

       말 뒷발질에 두개골이 깨진 수험생과 장대 뛰기에서 가랑이가 찔려 불알이 터진 학생을 제외하면, 오늘 본 환자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꼴이었다.

         

       다행히 그를 데려온 학생이 손을 내저었다.

         

       “눈알은 수험생이 준비한 소품입니다! 이걸로 눈알 튀어나오는 리액션을 하면 재밌겠다 싶었다나…….”

         

       나히모프 박사는 이 수험생이 시험에서 합격하지 못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4월 1일, 그러니까 키르쿠스의 날마다 자신을 속여먹기 위해 사지가 절단됐다거나 저주 역병에 걸린 분장을 하고 자신을 찾는 악동들은 이제 충분했기 때문이다.

         

       레카체프는 세계에서 병결 비율이 가장 높은 학교였다.

       이곳 교수들이 학생의 꾀병과 가짜 진단서에 잘 속아 넘어가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만큼 레카체프에서 받는 훈련의 강도가 높다는 뜻이었다.

       수업 중 긁히는 것은 예사였고, 날마다 몸 어딘가가 꺾이고, 부러지고, 깨지곤 했다. 종종 화상을 입거나 짐승에게 물어뜯기는 일도 일어났다.

         

       나히모프 박사가 황실 학회의 회원이 될 수 있었던 계기인 ‘외상 환자에 대한 긴급 처치와 차후 치료 방안에 관한 논문’은 그가 이곳에서 20년 넘게 일한 덕분에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따라 더 야단이군.”

         

       그는 가짜 눈알을 뽑고 그 아래 부러진 코와 시퍼렇게 멍이 든 눈 주위를 발견하고 치료에 들어갔다.

         

       레카체프의 입학시험도 그 수업만큼이나 악명 높았다.

       항상 대량의 부상자를 내기로 유명했다.

       

       25가지 시험을 일단 다 치르기만 해도 합격이라는 말은 과장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입학식은 이전보다 유난히 부상자가 많았다.

         

       서커스 그랑프리 출전권에 눈이 먼 학생들이 좀 무리하게 달려든 탓도 있었지만, 두 천재가 학생들을 자극한 탓도 있었다.

         

       엘라가 하던 기상천외한 묘기를 따라 하려다가 손가락이나 팔이 부러지는 학생들이 속출했고, 레이나처럼 타고난 균형감각 없이 그녀의 방식을 시도했다가 허리나 다리를 다쳐서 기어 나오는 학생들도 많았다.

         

       덕분에 원인을 제공한 두 사람이 마지막 과제를 앞뒀을 때, 정상적으로 시험을 치르고 있는 사람은 100명도 채 되지 않았다.

         

       각자 맡은 일로 바빴던 교수들도 이제는 단상에 앉아 느긋하게 시험을 지켜보았다.

         

       엘라와 레이나.

       현재까지 둘의 성적은 12승 12패로 같았다.

         

       우월한 체격과 절대적인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레이나는 ‘힘자랑’과 ‘줄타기’에 우세를 보였고, 엘라는 놀라운 지각력 타고난 친화력으로 ‘쏴’와 ‘길들이기’에서 우세를 보였다. ‘땅재주’에서는 단단함이 필요한 곳은 레이나가 유연함이 필요한 곳은 엘라가 앞섰다.

         

       두 사람 다 뛰어난 재주를 보여주었지만, 교수들이 가장 놀란 것은 엘라의 ‘길들이기’ 실력이었다.

         

       “꾸에엑! 꾸엑!”

       “어? 하하하! 뭐야? 응원하러 온 거야?”

         

       독수리의 머리에 사자의 몸을 가진 황소만 한 생물이 날개를 접고 그녀의 가슴에 머리를 비벼대며 애교를 부렸다.

         

       주로 키예프 제국에서 길들이는 야수, 그리폰이었다.

       녀석은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해서 아기 때부터 조련사 한 명과 철저한 유대 관계를 쌓지 않는다면, 길들이기 거의 불가능한 동물로 알려져 있었다.

         

       레카체프가 보유한 이 녀석은 그나마 온순한 편이긴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강아지처럼 구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녀석은 절대 아니었다.

         

       이번 입학시험에 이 그리폰은 과제 중 하나로 나왔다.

       먹이 주기, 쓰다듬기, 올라타기 등

       이렇게 몇 가지 가제를 완수하면 최고점을 받을 수 있었다.

         

       학생 중에도 아직 녀석의 등에 올라탄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가장 친한 학생이 무리하게 타려고 했다가 녀석의 발톱에 맞고 팔이 부러지기도 했다.

         

       ‘찰리 정도가 졸업하기 1년 전에 해냈지.’

         

       그런데 엘라는 오늘 처음 보는 자리에서 그리폰의 등에 올라탄다는 믿기지 않는 일을 달성했다.

         

       그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살쾡이 통역가’에서는 살쾡이가 내는 모든 종류의 음성과 몸짓 언어를 해석했고, ‘마상 장애물 경주’에서는 처음 몰아보는 말을 마치 제 몸처럼 움직이며 모든 장애물을 통과하더니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길들이기에 대한 그녀의 재능은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교수들은 누가 그녀를 키웠을까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그녀의 자세나 동작은 ‘레카체프 식’이 분명했다.

         

       학생들이 입학해서 제일 먼저 받는 훈련은 자세 교정이었다.

       인사, 착지, 도약, 손놀림, 발놀림 모든 부분을 ‘레카체프 식’이라는 형태로 교정받았다.

         

       그들은 어떤 곡예를 펼치든 그 특유의 형식이 동작에서 독특하게 묻어 나왔다.

       덕분에 그들은 사회에 나와서도 서로의 손동작이나 발끝을 보고 같은 교우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엘라라는 아이는 완벽한 레카체프 식을 구사하고 있었다.

         

       “뭐지. 저 아이는?”

       “방계 쪽에서 키운 아이일까요?”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가 설립된 지도 28년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학교 출신 학생 중에서도 외부에서 선생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거기서 길러낸 학생 중에 저렇게 완벽하게 레카체프 식을 구사하는 아이는 없었다.

       레카체프의 방식은 레카체프의 경쟁적이고 가혹한 환경 덕에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며 몇 년 동안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것이었다.

         

       그냥 가르친다고 해서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르죠. 찰리처럼 며칠 이곳을 견학하다가 자연스럽게 익힌 걸지도.”

       “믿기지 않는군요. 그런 천재는 한 시대에 한 명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나중에 만나면 자세히 물어봅시다.”

         

       그리폰은 다른 길들이기 전공 학생들에게 붙들려 겨우 끌려나갔다.

       엘라가 몸부림치는 그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손짓하자 녀석은 저항을 멈추고 순순히 장내에서 퇴장했다.

         

       25번째 과제는 특별했다.

       그것은 계속 닫혀 있다가 24개의 과제를 완료한 사람들이 모두 모이면 개방되었다.

         

       그 시험에 도전하기 위해 100여 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이번 시험에서 드래프트로 뽑히는 사람은 40명이었다.

       그리고 레카체프의 입학 인원은 매해 다르지만 60명 정도가 보통이었다.

         

       즉, 이곳에 선 것만으로 이들의 합격은 어느 정도 보장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학생들을 피 말리게 하기로 유명해서 ‘흡혈귀’라는 별명이 붙은 르고 교수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코를 덮을 정도로 높게 세운 옷깃 너머로 눈을 빛냈다.

         

       “우리의 입학시험은 매해 졸업생들이 합심해 다음 입학생들을 위해 머리를 짜내 만든 과제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반영해서인지 보통 4년을 주기로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지요.”

         

       그의 설명에 객석에 있던 원더스타인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 시험에 그가 TT2에서 봤던 장비들이 많았던 것이었다.

       양치기 소녀를 비롯한 최고학년 학생들이 지금 입학해서 졸업할 때쯤 만든 것이 게임상에서 본 도구들일 테니까.

         

       “25번째 기구는 이번 서커스 그랑프리에서 우리 학교가 내건 ‘시험’의 모티브가 된 것입니다. 26기 수석 졸업 예정자가 작년에 제출한 졸업 과제의 기획서를 보고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아이디어가 한낱 입학시험에 쓰기에는 너무 매력적이어서 말이죠. 한창 서커스 그랑프리에 내걸 시험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우리는 그 아이디어를 채택해서 그랑프리의 시험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럼 소개하겠습니다. 우리에게 그 영감을 준 작품을! 26기 수석 졸업생이 설계한 ‘출발! 드림 레이스’!”

         

       강당 뒤편을 막고 있던 막이 걷혔다.

       그러자 그 너머에 있는 거대한 철골 구조물의 존재가 드러났다.

         

       그것은 강당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건물의 뼈대만 세워둔 것 같은 빽빽한 철골들 사이로는 다양한 장애물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출발선에서 뻗어 나온 총 10개의 트랙이 그사이를 가로질렀다.

         

       그것을 본 순간 대회 참가팀 사이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저건!”

       “아하, 그래서 그랬던 거였군?”

       “저걸 학생이 구상했다고?”

         

       이미 한 번 시험을 치렀던 사람은 그 익숙함에 놀랐고, 잡지를 통해 정보를 들었던 사람도 저게 그거구나 하면서 놀랐다.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가 내건 시험의 주제는 ‘기술’이었다.

       그들은 서커스에 가장 중요한 것을 곡예 그 자체로 보았다.

         

       처음에 학교 측은 입학시험 비슷한 방식을 구상했다.

       수십 가지 기구들을 두고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었다.

         

       축제치고 어딘가 심심한 느낌이 아쉬웠으나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때, 찰리의 졸업 과제가 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지금 보는 것처럼 입학시험에서 보였던 장비들을 종합적으로 구성해 일종의 장애물 경주를 만들었다.

         

       “‘출발! 드림레이스’의 규칙은 간단합니다. 10명의 주자가 각각의 트랙에 서서 장애물을 돌파해 결승선까지 완주하면 되는 겁니다.”

         

       레카체프의 그랑프리 시험은 한 달에 한 번 치러졌다.

       그들의 시험은 지금 보이는 25번째 과제랑 형식이 비슷했다.

         

       10곳의 서커스단이 레이스를 벌여 3개의 별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다만, 그 규모는 이것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바로 기적궁 혹은 요술궁이라 불리는 학교 건물 전체가 그 무대가 되었다.

         

       ‘이게 바로 찰리가 만든 거라고?’

         

       엘라는 철골 구조물을 구석구석을 훑어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녀석 대단한데? 교수들 말이 사실이라면, 그랑프리의 예선전 하나를 그 녀석이 만든 셈이잖아?’

         

       엘라는 그가 이곳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걔는 뭐하러 고향에 내려간 거지?

       레카체프 25라면 엄청난 엘리트 서커스단이잖아.

       거기 입단 제의까지 거절하고…….

         

       고향에 가봤자 별거 없는…….

       별거…….

       어……?

         

       갑자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고향 알라모의 풍경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방으로 뻗은 사막과 서쪽에 있는 시에라마드레 산맥의 장엄한 벽이 떠올랐다.

       사부님과 친구들, 친절한 마을 사람들.

       그리고……

       괴물.

         

       모두를 죽인…….

         

       엘라는 쑤셔오는 머리를 감쌌다.

         

       망할 그 영감탱이의 연기가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방금 그녀는 헷갈릴 뻔했다.

       저주 역병으로 모두가 죽은 곳은 드발체프였지 고향이 아니었다.

       괴물이 나타난 것도 거기였고.

         

       엉뚱한 기억의 혼동을 겪었다.

       엘라는 돌아가면 가스통을 약올릴 거리를 더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하며 출발선에 섰다.

       옆에는 이번 시험에서 그녀의 라이벌인 레이나가 있었다.

         

       “마지막이네. 누가 이길 거 같니?”

       “나.”

       “흠, 그래?”

         

       엘라는 이빨을 드러내고 씩 웃었다.

       좋다고. 이런 긴장감.

         

       땅 하는 소리와 함께 10명의 도전자가 각자의 트랙을 따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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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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