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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

        

        

       -피이이잉—!! 파앙—!!

        

        

        또 다른 신호탄이 터졌다. 하늘이 붉게 번졌다. 유진과 이반은 숲을 내달리며 주위를 살폈다.

        

        숲은 거대한 도살장이 되어 있었다.

        

        

       -으아아아악—!!

       -막아!! 막아아아악!!

       -필립! 주여!! 필립, 숨을 쉬어!!

        

        

        날카로운 청각에 온갖 소음이 포집되고 있었다. 비명, 고함, 격돌음, 파열음, 단말마, 용이 내지르는 괴성과 화염이 숲을 불태우며 타닥이는 소리, 그리고.

        

        산 사람이 소사(燒死)하는 특유의 소음까지.

        

        어떤 친숙함마저 느껴지는 소음들의 집합이었다. 전장의 소음이다. 거기에 더해 조금의 감흥을 추가하자면, 이건 패전의 소음이다.

        

        

        “형님!! 저기!!”

        

        

        유진이 소리쳤다. 이반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자세를 바꿨다.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저 앞, 일행이 있었다.

        

        당황한 일행들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산을 타고 있었다. 질 베르의 군영을 향하는 길이다.

        

        

        “아저씨!! 이게 다 무슨… 무슨 일이에요?!”

        “말할 시간이 없—.”

        

        

       -피잉.

        

        반사적으로 이반은 신경에 마력을 둘렀다. 이자벨의 입이 열리는 시간마저 느릿하게 흘러가는 이 감각 속에서, 그는 재빨리 허리에 손을 뻗어 도끼를 뽑아 올렸다.

        

        사선 감지가 맹렬하게 깜빡였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사선이 아니다.

        

        겪어본 적 있기에 구분할 수 있었다. 이것은 용의 숨결이다.

        

        

       -으득!!

        

        

        순간 운용할 수 있는 모든 마력을 다해 뛰어 올랐다. 이반의 몸이 흐르는 것처럼 일행 사이를 파고들어, 반대편 숲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아아—!!

        

        

        그 경로에 있는 엘피헤라를 집어 던지고 그 자리에서 도끼를 휘둘렀다. 다행히 시간을 맞췄다. 이반은 용의 숨결을 도끼날로 후려친 뒤 재빨리 도끼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강철로 단조된 도끼가 자루까지 녹아내려 있었다. 용의 입김은 마력과 물리력의 혼합이다. 마력의 발화는 튕겨낼 수 있었지만 물리력은 그럴 수 없었다.

        

        뒤로 몸을 튕겨 여력을 흘린 뒤에, 이반은 정면을 바라보며 권총을 뽑아 들었다.

        

        

        “먼저 가라.”

        “사, 삼촌! 저희도—!”

        “말 들어.”

        

        

        불덩이가 날아온 방향에선 샛노란 동공이 공중에 떠 있었다. 강렬한 살기에 신체가 저도 모르게 굳어버리는 느낌이다.

        

        이게 문제다. 용을 본뜬 모든 생물들은 기본적으로 하위 생물군을 석화시킨다. 석화라고 불릴 만큼 대단한 능력은 아니지만, 본능의 영역을 자극해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용의 존재감이라 불렀다. 바실리스크나 와이번조차도 가능한 기교였다. 그것이 원류인 용이라면야.

        

        마력을 둘러 저항할 수 있지만 그건 초인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이 숲의 모든 이들이 초인인 것은 아니다. 수도방위군은 대단히 잘 훈련된 병사들이었지만, 초인의 비중은 5%도 채 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도살장이다.

        

        

        ‘숲의 전력 중 30% 이상이 산화했겠군.’

        

        

        훈련된 군인 삼천여 명이 한 마리의 용을 사냥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정면에서 잘 짜여진 방진으로 대적했을 때에 가능한 가정이다.

        

        지금 이 순간, 숲에 흩어진 병사들은 100인 단위의 제대에서 기습을 받고 있다. 기습의 주체가 용인 이상 수도방위군은 사실상 전멸 판정을 받았다 보아도 무방했다.

        

        고전적인 군사학에서 한 개 군단의 전멸은 총 전력의 20% 이상이 손실되었을 상황을 의미한다. 이는 현대나 전근대나 크게 다를 바 없다. 20% 이상이 순간 소실된 상황에서, 남은 병력들은 전투 지속 능력을 상실하니까.

        

        동방기사단과 질 베르만으로 이 사태를 막아내야 한다.

        

        그리고 회고했듯이 질 베르가 이끄는 동방기사단의 한계 전력은 최대로 잡아도, ‘준비된 상황에서’ ‘정면으로 맞이했을 때’ 용을 최대 열댓 마리 정도 잡아낼 수 있다.

        

        지금 하늘에 튀어 오른 신호탄은 적어도 서른이 넘는다.

        

        

        “오라.”

        

        

        이반은 단검과 권총을 무장한 채, 숲의 어둠 속에서 쉭쉭 거리는 거대한 생물에게 중얼거렸다.

        

        용은 영리한 생물이었으므로,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너희의 신조차 나를 죽이지 못했다.”

        

        

        용은 인간과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 애초에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지적 생명체가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용은 결코 인간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음식과 대화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저 오만한 생물들은 그것을 격이 떨어지는 행위라고 여기는 까닭이다.

        

        따라서, 이반은 대답 없이 그를 응시하는 도마뱀을 향해 우묵하게 말했다.

        

        

        “시도해보라.”

        

        

       *

        

        

       -부우우우우우—!!

        

        

        뿔나팔 소리가 울렸다. 오스칼은 고개를 퍼뜩 치켜들며 소리쳤다.

        

        

        “아버지의 소집령입니다!! 멀지 않아요!”

        

        

        급습을 당한 시점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은 질 베르가 직접 방어하는 전선이다. 질 베르는 살아남은 병력을 추스르기 위해 뿔피리를 불고 있었다.

        

        용의 목표가 질 베르, 본인인 이상 그것은 곧 자신의 목숨을 건 행위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전투 중이 아닌 모든 용이 그를 향해 몰려갈 것이 뻔했으므로.

        

        오스칼은 이를 악물고 일행을 이끌었다. 숲이 점점 드물어진다. 너무도 급격한 화력에 노출된 숲은 타들어가기 전에 탄화해 바스라졌다.

        

        재가 흩날리고 있다. 베르니니 산맥이 토해낸 연기가 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달이 가리워진 어두운 하늘 아래에, 횃불을 치켜든 병사들이 도망치며 모여들었다.

        

        산의 정상을 향해서.

        

        

       -부우우우우—!!

        

        

        그들의 주인을 향해서.

        

        

       -부우우우우우—!!

        

        

        호국경, 철산의 기사, 이 나라의 방패를 향해서.

        

        

       *

        

        

        “얼마나 살았느냐!!”

        “입회기사 총 81인!! 수도방위군단 소속 제대는 총 21개 편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으드득, 질 베르는 어금니를 씹으며 한탄했다. 한 순간에 천 명이 넘는 병력이 돌아오지 못했다.

        

        

        “멍청한 것들….”

        

        

        차라리 하산해서 도주한 병력이 있다면야 생존자들이 더 남았다고 가정이라도 하겠건만. 그가 직접 육성한 병사들은 이를 악물고 그의 군영 아래에 집결하고 있었다.

        

        겁에 질리고 패색이 완연했지만 누구도 패닉에 빠져 산 아래로 도망치지 않았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은 모두 죽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이것이 용사 파티의 짐이다. 희망의 상징이 갖는 짐이라 하겠다. 만인의 희망이 된 존재가 평생에 걸쳐 느껴야 했던 부담감이다.

        

        전우들이 순식간에 불타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생의 희망을 찾아 도망치는 대신, 그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것을 택했다.

        

        

        “퇴각하셔야 합니다. 주군…. 저희가 길을 만들겠나이다.”

        “어디로?”

        “…예?”

        “어디로 간단 말이냐. 동부 전선으로? 아니면 상 마틸렌느로?”

        “그야 당연히….”

        “그렇다면 저들은 어찌하느냐.”

        

        

        질 베르는 병사들을 향해 턱짓했다.

        

        

        “틸레스가 가진 가장 강력한 군단이다. 저들을 제물로 바쳐 살아남는다면 다음이 있느냐?”

        “주군께선 이 나라에 남은 유일한 희망입니다!”

        “이 나라의 희망은 개인에게 귀속되어 있어선 안 된다!”

        

        

        호국경은 나라를 지킨다. 왕이 아니라, 수도가 아니라, 백성이 아니라. ‘국가’를 지킨다.

        

        국가의 시스템을 지킨다. 국가라는 개념을 지켜내야 한다. 만인이 신뢰할 수 있는, 국가라는 행정 체제를 지켜내야 한다.

        

        개인의 강함이 나라를 유지할 수는 없다. 공포는 군림할 뿐, 운영할 수 없다. 국가란 믿음의 집합이다.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믿음.

        

        그 믿음 아래에 백성들은 밭을 갈고, 양을 치고, 밀을 팔며 살아간다. 그 작은 단위 하나하나가 톱니바퀴처럼 모여 있을 때 그것을 국가라 부를 수 있다.

        

        그러니, 호국경은 결코 도주하지 않는다. 그것이 질 베르가 서원한 이 직책의 의미다.

        

        

        “저것들은 날 위해 준비된 함정이다. 내가 빠진다면 날 쫓아 따라오겠지. 내가 어디로 가든, 그 지역은 반드시 불타오를 것이다.”

        “주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저것들이 이 산맥에 그저 주둔한다 치더라도 무엇이 다르겠느냐? 동부전선은 고립되어 말라 죽어갈 것이다. 수도군단을 제외하면 어디에도 아군이 없어. 틸레스는 반으로 갈라져 사멸한다!”

        

        

        베르니니 산맥을 포함해 용의 비행 거리가 닿는 모든 지역을 상실한다면, 수많은 목초지와 경작지를 포함한 동북부 방면의 모든 영지를 상실한다.

        

        그런 일은 일어나선 안 된다. 마왕군과의 전쟁에서도 그런 피해를 입은 적은 없었다.

        

        국가의 절반을 빼앗긴 다음, 국가 성장동력의 절반을 상실한 이후, 국민의 절반을 용과 마족의 아가리 안에 던져준 이후에 미래가 있는가?

        

        없다. 틸레스는 끝이다. 그러니.

        

        

        “나는 여기에서 막아야겠다.”

        

        

        질 베르는 몰려드는 병사들을 내려보며 손을 뻗었다. 부관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투구를 건넸다. 그걸 받아 깊게 눌러 쓰고는, 다시 손을 저었다.

        

        군기가 나부낀다.

        

        

       -펄럭—!

        

        

        악마를 불태우는 태양, 초원 위에 떠오르는 여명. 동방기사단의 군기가.

        

        사슴뿔과 창, 그리고 방패가 교차된 에타크리히의 군기가.

        

        두 종류의 군기가 그의 등 뒤로 장벽처럼 너울졌다. 동방기사단은 각자 군기와 병장기를 움켜쥔 채 그의 등 뒤에 시립했다.

        

        

        “아버지!!”

        

        

        질 베르는 다가오는 아이들을 보며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군, 살아 있었구나.

        

        

        “아버지, 저도… 저희도 싸우겠습니다!”

        “전하! 저희도 거들게요!!”

        “하.”

        

        

        다가온 아이들의 행색을 보며 낮게 웃음을 흘렸다. 꼭 처음 여정을 떠났을 시점의 그들과 꼭 닮은 모습이어서.

        

        우리 때보다 조금 더 미숙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각자 이미 충분히 완숙한 이후에 출정했었으니. 곧바로 마왕을 암살하기 위해 조직된 암살단이었던 탓이다.

        

        그러나 이들은, 어쩌면 보다 더 ‘용사 파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희망과 대의를 품고 나아선, 제 나라와 제 가족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목숨을 걸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더 높은 경지까지 내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젊은이들이다.

        

        그래, 연합 왕국에 희망이 있다면 저런 젊은이들이 아직 더 남아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선배 된 입장에서 한마디 하자면.

        

        

       

        “이건 전대의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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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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