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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로즈마리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1층을 지나 2층에 도착하자 이쪽을 힐끔 돌아본 로즈마리가 입을 열었다.

       

       “1층이 상층 모험가들을 위해 가성비 좋은 물건을 진열해 둔 곳이라면, 2층은 중층 모험가들을 노리고 보다 전문적인 장비를 판매하는 곳이다.”

       

       “헤에. 확실히 더 고급져 보이네요. 물건도 사람도 말이에요. 하지만 손님이 확 줄었는데 원래 이런 거예요?”

       

       분명 1층은 손님으로 가득 차 상당히 시끌시끌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곳 2층은 기껏해야 스무 명 남짓이려나?

       

       손님이 스무 명이라고 하면 많아 보이지만, 상회 건물이 워낙 커서 이 정도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지구 기준으로 말하자면……대형 백화점에 갔고, 심지어 수요가 꾸준한 물건을 파는 층인데도 손님이 스무 명 안팎인 꼴.

       

       사실상 손님보다 안내 직원이 더 많은 모습에 얘네 사실 적자인가 싶었지만.

       

       “크레이들 상회의 물건은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정해진 가격이 있다. 가격표를 살펴봐라.”

       

       “오.”

       

       판 그레이브의 가게 대부분은 손님이 만만해 보이면 바로 뒤통수칠 생각부터 하는 낭만 넘치는 도시다.

       

       그도 그럴 것이 결국 돈 많이 쓰는 손님은 모험가고, 모험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놈들 아닌가.

       

       죽은 이는 말이 없다. 사기당한 걸 알아도 미궁에서 죽어버리면 항의할 수조차 없을 터.

       

       하지만 오래 살고, 오래 장사하는 엘프에겐 한두 명 등쳐먹는 것보다 오랜 기간 착실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편이 이득이란 거겠지.

       

       크레이들 상회뿐만 아니라, 지금껏 봐온 엘프 상인들은 이러한 신의를 꽤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더라.

       

       “흠흠. 어디 보자. 축성 받은 은을 재료 삼아 5종의 강화 마법과 턴 언데드 마법을 새긴 대對 언데드 무구 ‘심판’? 어휴. 설명만 들어도 비싸 보이네요.”

       

       4층은 죽음의 신이 묻힌 곳이라 언데드 몬스터가 주로 나오니, 그곳에서 사냥하는 모험가들을 위한 무기겠지.

       

       은색으로 반짝이는 장검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장식품 같았으나, 군데군데 보이는 디테일은 이 검이 실전을 위해 만들어졌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격이……80실버?”

       

       “80골드다.”

       

       “에이.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4층에서 쓰는 무기가 80골드라고요?”

       

       “은으로 만든 무기는 아무리 강화 마법을 걸어도 내구도가 떨어지지. 하지만, 이 장검은 반년에 한해 수리와 정비를 무료로 제공한다. 물론 의도적으로 부순 경우는 인정해 주지 않지만.”

       

       “아니, 반년이나요?”

       

       “반년도 못가 부서지는 무기는 무기로서의 의미가 없지. 적어도 크레이들 상회라는 이름에는 걸맞지 않아.”

       

       “으음. 그래도 80골드는 좀…….”

       

       “80골드가 정가긴 하지만, 반드시 그 가격에 파는 것은 아니지. 전속 계약을 맺은 모험가에겐 그 등급에 따라 최대 30%의 할인을, 단골손님에겐 그 기간과 거래 규모에 따라 최대 20%의 할인을,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할인 해주고 있다.”

       

       “그 정도라면 확실히 할만하네요. …근데 실질적인 할인율은 어떻게 되죠? 무조건 그만큼 깎아준다는 게 아니라 최대가 그렇다는 거잖아요.”

       

       “예리하군. 아마 요나 네가 최대한 땡겨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전부 합쳐도 10% 정도겠지.”

       

       “에이….”

       

       “돈이 부족하다면 빌리면 된다. 크레이들 상회는 사채업에도 발을 넓히고 있다. 크레이들 상회의 물건을 사기 위해, 크레이들 상회의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린다면 이자를 절반으로 깎아주니 알아두도록.”

       

       “빚까지 질 생각은 없는데 말이죠.”

       

       “흠…내 권한으로 조금 더 깎아서 60골드에 팔아줄 수 있다. 어떤가? 이번에 미노타우로스의 소재를 독식했으니, 불가능한 금액은 아닐 터인데….”

       

       “어쩌다 보니 저한테 영업하고 있는 것 같아 말씀드리는데…로즈마리. 우리 지금 연회장 가는 중이거든요? 전 산다는 말 한 번도 안 했어요.”

       

       “……읏.”

       

       엄격 근엄 진지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며 비굴한 표정으로 변하는 로즈마리.

       

       아마 나름의 현실도피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제 3층에 올라갈 저한테 벌써부터 4층용 무기가 필요하겠어요? 설령 필요하다 하더라도….”

       

       피식 웃으며 유니콘 단검을 꺼냈다. 오늘도 내 손이 닿자 쓸데없이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녀석.

       

       “이것보다는 못할 것 같은데. 아닌가요?”

       

       “크윽!”

       

       굴욕스럽다는 듯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로즈마리.

       

       대체 어디서 어떻게 긁혔는지 모르겠으나, 쓸데없이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다.

       

       로즈마리의 등을 콕콕 검지로 찌르며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저희가 할 일을 생각하면…처신, 잘해야겠죠?”

       

       내 나름의 진실된 조언이다. 바실리우스를 선보이면 내 여론이 엘프들 사이에서 확 뒤집힐 텐데 미리미리 친분을 과시해 두는 게 서로 좋지 않겠나.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진심이란 쉽게 통하지 않는 법.

       

       로즈마리는 죄책감과 무력감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끄덕였다.

       

       “…그럼 바로 3층으로 향하지.”

       

       시무룩해진 로즈마리를 따라 올라간 3층. 이곳은 특이하게도 계단에 문을 하나 세워 뒀더라.

       

       그 문지기가 로즈마리를 가로막는 일은 없었지만……3층에 올라가 보니 왜 막는지 알겠더라고.

       

       3층은 일종의 명품관이었다. 척 봐도 비싸 보이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그 앞에는 멋들어진 필체의 품질 보증서가 놓여있었으며, 구경 중인 손님은 아예 없었다.

       

       대신 잔뜩 흥분한 리디아가 있었다.

       

       “후으…하아…여긴 언제 와도 좋아. 저거 보여 요나? 보른의 대지 분쇄자야. 6층의 계층 수호자인 드래곤의 척추뼈를 뼈대 삼아 7층에서 구할 수 있는 영웅들의 무구 조각을 녹여 만든 망치인데, 타격 무기는 쓰는 사람이 없어서 아직 안 팔렸을 뿐, 위력 하나는 전성기 엘리 선배의 전력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예상되는…….”

       

       “쓰읍! 리디아 님도 베니처럼 눈을 감던가 저만 보던가 하세요!”

       

       “……응.”

       

       확 들떴던 리디아가 그대로 추욱 늘어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 와중에도 내 정수리에 시선을 고정한 것이 포인트.

       

       그나저나 이름만 들어도 깜짝 놀랄만한 재료인데, 그런 걸 아낌없이 쓰고, 무기에 이름을 수식어처럼 붙이는 장인이 두드려 만든 무기가 엘리의 진심 펀치랑 비슷한 수준이라니.

       

       새삼 엘리가 말도 안 되게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곧 가게 될 3층에서 엘리의 팔을 구해줄 생각이긴 한데…정말 괜찮은 거 맞나?

       

       일단 몸에 딱 맞아서 진짜 팔이나 다름없다는 설정이 있긴 한데, 어쨌든 의수 아닌가.

       

       엘리의 스펙을 따라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계속해서 걷자, 이번에는 조금 전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화려한 문이 계단을 가로막고 있었다.

       

       “저기가 4층…그러니까 연회장으로 향하는 길이다. 제발 부탁하건대 적당히……음?”

       

       말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로즈마리. 뭔가 싶어 그 시선을 뒤따라가자 바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되어, 마력광을 발하는 특수한 문. 그 앞에는 상당히 강해 보이는 엘프 남녀가 문지기로 서 있었고…….

       

       바닥에는 익숙한 두 엘프가 팔다리를 휘적이고 있었다.

       

       “우리 두목을 내놓을 때까진 여기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일 검다!”

       “레몬은 한다면 하는 여자임다! 하지만 줄여 말하면 안 되는 검다!

       

       “아까도 말했듯, 이곳에는 안 계신다!”

       

       “썩 꺼지지 못해?! 귀빈분들께 벌써 몇 번이나 추태를 보였는지….”

       

       “그럼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검다!”

       “이 안에 들어가 크레이들 상회주를 만나게 해주는 검다! 관련이 없을 경우 전부 레몬이 책임지는 검다!”

       

       “이 모지리들이…….”

       

       말도 안 되는 생떼에 이를 가는 여자 문지기. 그 말대로다. 대체 왜 저 모지리 둘이 여기에 있단 말인가.

       

       로즈마리도 이런 진상은 예상치 못했는지 멈칫한 상황. 아마 이 자리에서 저 둘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수 있는 건 나뿐이겠지.

       

       한숨을 푸욱 내쉬며 말했다.

       

       “레몬, 애플.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요나넴?”

       “요나넴임다! 우릴 도와주러 온 게 분명함다!”

       

       팔다리를 한층 더 격하게 휘적이며 바닥을 나뒹구는 레몬과 애플. 그 와중에도 한점 흐트러짐 없는 흉부가 안쓰럽기 그지없다.

       

       “베니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

       

       “뭐?! 요나 너 방금 뭐라고 했어!”

       

       가슴이 민감함…아니, 가슴에 민감한 베니가 아르릉 대며 이쪽을 위협했지만, 난 반창고 사이즈의 말은 듣지 않는다.

       

       대충 베니의 발악을 흘려넘기고는 레몬과 애플에게로 향하자 눈을 반짝이는 둘.

       

       이내 엉덩이를 곰실대며 옆으로 비켜나가더니, 둘 사이에 한 사람 누울 공간을 만들어 낸다.

       

       “요나넴! 여기 눕는 검다!”

       “같이 투쟁하는 검다!”

       

       “싫은데? 기껏 빌린 옷이 더러워지잖아.”

       

       “앗! 그러고 보니 오늘 옷이 멋있는 검다.”

       “레몬이 플러팅하는 검다. 저도 질 수 없슴다.”

       

       레로레로 소리를 내며 혓바닥을 꿈틀거리는 레몬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여긴 왜 온 거야? 이브 씨가 여기 갇혀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모르는 검다.”

       “두목이 저희를 제외하면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게 크레이들 상회주임다.”

       

       “그리 말하면 수상해 보이긴 하는데…크레이들 상회주 정도면 이브 씨의 정체를 알고 있지 않아?”

       

       이브의 가출 혹은 잠적을 도울 수는 있겠지.

       

       실제로 로즈마리의 말에 따르면 고위층 엘프 중에는 이브의 행방을 아는 이가 몇몇 있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이브를 납치해 가둬둔다는 뜻은 아니리라.

       

       어찌 됐든 이브는 여전히 엘프들의 존경을 받는 여왕이니까.

       

       ……다만, 레몬과 애플의 생각은 좀 다른가 보다.

       

       “다른 엘프들이라면 요나넴 말이 맞을 검다! 하지만 크레이들 상회주는 아님다!”

       “그거 순 나쁜 새끼임다! 가정교육을 홀수로 받은 게 분명한 검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그리 삐뚤어질 수 없슴다!”

       

       “뭣……!”

       

       관대하게 기다려 주다가 난데없이 어머니의 패드립을 들은 로즈마리가 눈을 부릅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졸립고 피곤한 거시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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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EP.139





       로즈마리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1층을 지나 2층에 도착하자 이쪽을 힐끔 돌아본 로즈마리가 입을 열었다.


       


       “1층이 상층 모험가들을 위해 가성비 좋은 물건을 진열해 둔 곳이라면, 2층은 중층 모험가들을 노리고 보다 전문적인 장비를 판매하는 곳이다.”


       


       “헤에. 확실히 더 고급져 보이네요. 물건도 사람도 말이에요. 하지만 손님이 확 줄었는데 원래 이런 거예요?”


       


       분명 1층은 손님으로 가득 차 상당히 시끌시끌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곳 2층은 기껏해야 스무 명 남짓이려나?


       


       손님이 스무 명이라고 하면 많아 보이지만, 상회 건물이 워낙 커서 이 정도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지구 기준으로 말하자면……대형 백화점에 갔고, 심지어 수요가 꾸준한 물건을 파는 층인데도 손님이 스무 명 안팎인 꼴.


       


       사실상 손님보다 안내 직원이 더 많은 모습에 얘네 사실 적자인가 싶었지만.


       


       “크레이들 상회의 물건은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정해진 가격이 있다. 가격표를 살펴봐라.”


       


       “오.”


       


       판 그레이브의 가게 대부분은 손님이 만만해 보이면 바로 뒤통수칠 생각부터 하는 낭만 넘치는 도시다.


       


       그도 그럴 것이 결국 돈 많이 쓰는 손님은 모험가고, 모험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놈들 아닌가.


       


       죽은 이는 말이 없다. 사기당한 걸 알아도 미궁에서 죽어버리면 항의할 수조차 없을 터.


       


       하지만 오래 살고, 오래 장사하는 엘프에겐 한두 명 등쳐먹는 것보다 오랜 기간 착실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편이 이득이란 거겠지.


       


       크레이들 상회뿐만 아니라, 지금껏 봐온 엘프 상인들은 이러한 신의를 꽤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더라.


       


       “흠흠. 어디 보자. 축성 받은 은을 재료 삼아 5종의 강화 마법과 턴 언데드 마법을 새긴 대對 언데드 무구 ‘심판’? 어휴. 설명만 들어도 비싸 보이네요.”


       


       4층은 죽음의 신이 묻힌 곳이라 언데드 몬스터가 주로 나오니, 그곳에서 사냥하는 모험가들을 위한 무기겠지.


       


       은색으로 반짝이는 장검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장식품 같았으나, 군데군데 보이는 디테일은 이 검이 실전을 위해 만들어졌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격이……80실버?”


       


       “80골드다.”


       


       “에이.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4층에서 쓰는 무기가 80골드라고요?”


       


       “은으로 만든 무기는 아무리 강화 마법을 걸어도 내구도가 떨어지지. 하지만, 이 장검은 반년에 한해 수리와 정비를 무료로 제공한다. 물론 의도적으로 부순 경우는 인정해 주지 않지만.”


       


       “아니, 반년이나요?”


       


       “반년도 못가 부서지는 무기는 무기로서의 의미가 없지. 적어도 크레이들 상회라는 이름에는 걸맞지 않아.”


       


       “으음. 그래도 80골드는 좀…….”


       


       “80골드가 정가긴 하지만, 반드시 그 가격에 파는 것은 아니지. 전속 계약을 맺은 모험가에겐 그 등급에 따라 최대 30%의 할인을, 단골손님에겐 그 기간과 거래 규모에 따라 최대 20%의 할인을,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할인 해주고 있다.”


       


       “그 정도라면 확실히 할만하네요. …근데 실질적인 할인율은 어떻게 되죠? 무조건 그만큼 깎아준다는 게 아니라 최대가 그렇다는 거잖아요.”


       


       “예리하군. 아마 요나 네가 최대한 땡겨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전부 합쳐도 10% 정도겠지.”


       


       “에이….”


       


       “돈이 부족하다면 빌리면 된다. 크레이들 상회는 사채업에도 발을 넓히고 있다. 크레이들 상회의 물건을 사기 위해, 크레이들 상회의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린다면 이자를 절반으로 깎아주니 알아두도록.”


       


       “빚까지 질 생각은 없는데 말이죠.”


       


       “흠…내 권한으로 조금 더 깎아서 60골드에 팔아줄 수 있다. 어떤가? 이번에 미노타우로스의 소재를 독식했으니, 불가능한 금액은 아닐 터인데….”


       


       “어쩌다 보니 저한테 영업하고 있는 것 같아 말씀드리는데…로즈마리. 우리 지금 연회장 가는 중이거든요? 전 산다는 말 한 번도 안 했어요.”


       


       “……읏.”


       


       엄격 근엄 진지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며 비굴한 표정으로 변하는 로즈마리.


       


       아마 나름의 현실도피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제 3층에 올라갈 저한테 벌써부터 4층용 무기가 필요하겠어요? 설령 필요하다 하더라도….”


       


       피식 웃으며 유니콘 단검을 꺼냈다. 오늘도 내 손이 닿자 쓸데없이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녀석.


       


       “이것보다는 못할 것 같은데. 아닌가요?”


       


       “크윽!”


       


       굴욕스럽다는 듯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로즈마리.


       


       대체 어디서 어떻게 긁혔는지 모르겠으나, 쓸데없이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다.


       


       로즈마리의 등을 콕콕 검지로 찌르며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저희가 할 일을 생각하면…처신, 잘해야겠죠?”


       


       내 나름의 진실된 조언이다. 바실리우스를 선보이면 내 여론이 엘프들 사이에서 확 뒤집힐 텐데 미리미리 친분을 과시해 두는 게 서로 좋지 않겠나.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진심이란 쉽게 통하지 않는 법.


       


       로즈마리는 죄책감과 무력감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끄덕였다.


       


       “…그럼 바로 3층으로 향하지.”


       


       시무룩해진 로즈마리를 따라 올라간 3층. 이곳은 특이하게도 계단에 문을 하나 세워 뒀더라.


       


       그 문지기가 로즈마리를 가로막는 일은 없었지만……3층에 올라가 보니 왜 막는지 알겠더라고.


       


       3층은 일종의 명품관이었다. 척 봐도 비싸 보이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그 앞에는 멋들어진 필체의 품질 보증서가 놓여있었으며, 구경 중인 손님은 아예 없었다.


       


       대신 잔뜩 흥분한 리디아가 있었다.


       


       “후으…하아…여긴 언제 와도 좋아. 저거 보여 요나? 보른의 대지 분쇄자야. 6층의 계층 수호자인 드래곤의 척추뼈를 뼈대 삼아 7층에서 구할 수 있는 영웅들의 무구 조각을 녹여 만든 망치인데, 타격 무기는 쓰는 사람이 없어서 아직 안 팔렸을 뿐, 위력 하나는 전성기 엘리 선배의 전력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예상되는…….”


       


       “쓰읍! 리디아 님도 베니처럼 눈을 감던가 저만 보던가 하세요!”


       


       “……응.”


       


       확 들떴던 리디아가 그대로 추욱 늘어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 와중에도 내 정수리에 시선을 고정한 것이 포인트.


       


       그나저나 이름만 들어도 깜짝 놀랄만한 재료인데, 그런 걸 아낌없이 쓰고, 무기에 이름을 수식어처럼 붙이는 장인이 두드려 만든 무기가 엘리의 진심 펀치랑 비슷한 수준이라니.


       


       새삼 엘리가 말도 안 되게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곧 가게 될 3층에서 엘리의 팔을 구해줄 생각이긴 한데…정말 괜찮은 거 맞나?


       


       일단 몸에 딱 맞아서 진짜 팔이나 다름없다는 설정이 있긴 한데, 어쨌든 의수 아닌가.


       


       엘리의 스펙을 따라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계속해서 걷자, 이번에는 조금 전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화려한 문이 계단을 가로막고 있었다.


       


       “저기가 4층…그러니까 연회장으로 향하는 길이다. 제발 부탁하건대 적당히……음?”


       


       말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로즈마리. 뭔가 싶어 그 시선을 뒤따라가자 바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되어, 마력광을 발하는 특수한 문. 그 앞에는 상당히 강해 보이는 엘프 남녀가 문지기로 서 있었고…….


       


       바닥에는 익숙한 두 엘프가 팔다리를 휘적이고 있었다.


       


       “우리 두목을 내놓을 때까진 여기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일 검다!”


       “레몬은 한다면 하는 여자임다! 하지만 줄여 말하면 안 되는 검다!


       


       “아까도 말했듯, 이곳에는 안 계신다!”


       


       “썩 꺼지지 못해?! 귀빈분들께 벌써 몇 번이나 추태를 보였는지….”


       


       “그럼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검다!”


       “이 안에 들어가 크레이들 상회주를 만나게 해주는 검다! 관련이 없을 경우 전부 레몬이 책임지는 검다!”


       


       “이 모지리들이…….”


       


       말도 안 되는 생떼에 이를 가는 여자 문지기. 그 말대로다. 대체 왜 저 모지리 둘이 여기에 있단 말인가.


       


       로즈마리도 이런 진상은 예상치 못했는지 멈칫한 상황. 아마 이 자리에서 저 둘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수 있는 건 나뿐이겠지.


       


       한숨을 푸욱 내쉬며 말했다.


       


       “레몬, 애플.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요나넴?”


       “요나넴임다! 우릴 도와주러 온 게 분명함다!”


       


       팔다리를 한층 더 격하게 휘적이며 바닥을 나뒹구는 레몬과 애플. 그 와중에도 한점 흐트러짐 없는 흉부가 안쓰럽기 그지없다.


       


       “베니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


       


       “뭐?! 요나 너 방금 뭐라고 했어!”


       


       가슴이 민감함…아니, 가슴에 민감한 베니가 아르릉 대며 이쪽을 위협했지만, 난 반창고 사이즈의 말은 듣지 않는다.


       


       대충 베니의 발악을 흘려넘기고는 레몬과 애플에게로 향하자 눈을 반짝이는 둘.


       


       이내 엉덩이를 곰실대며 옆으로 비켜나가더니, 둘 사이에 한 사람 누울 공간을 만들어 낸다.


       


       “요나넴! 여기 눕는 검다!”


       “같이 투쟁하는 검다!”


       


       “싫은데? 기껏 빌린 옷이 더러워지잖아.”


       


       “앗! 그러고 보니 오늘 옷이 멋있는 검다.”


       “레몬이 플러팅하는 검다. 저도 질 수 없슴다.”


       


       레로레로 소리를 내며 혓바닥을 꿈틀거리는 레몬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여긴 왜 온 거야? 이브 씨가 여기 갇혀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모르는 검다.”


       “두목이 저희를 제외하면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게 크레이들 상회주임다.”


       


       “그리 말하면 수상해 보이긴 하는데…크레이들 상회주 정도면 이브 씨의 정체를 알고 있지 않아?”


       


       이브의 가출 혹은 잠적을 도울 수는 있겠지.


       


       실제로 로즈마리의 말에 따르면 고위층 엘프 중에는 이브의 행방을 아는 이가 몇몇 있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이브를 납치해 가둬둔다는 뜻은 아니리라.


       


       어찌 됐든 이브는 여전히 엘프들의 존경을 받는 여왕이니까.


       


       ……다만, 레몬과 애플의 생각은 좀 다른가 보다.


       


       “다른 엘프들이라면 요나넴 말이 맞을 검다! 하지만 크레이들 상회주는 아님다!”


       “그거 순 나쁜 새끼임다! 가정교육을 홀수로 받은 게 분명한 검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그리 삐뚤어질 수 없슴다!”


       


       “뭣……!”


       


       관대하게 기다려 주다가 난데없이 어머니의 패드립을 들은 로즈마리가 눈을 부릅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졸립고 피곤한 거시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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