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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그 이후로 한동안 나는 시우와 전혀 만나지 못했다.

       

       우리가 하는 말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놀라운 집중력으로 응급처치를 하던 의사 선생님의 지시가 원인이었다.

       

       그녀가 누른 비상벨은 병동에 대기하던 의료진들을 순식간에 불러 모았고, 나와 시우는 순식간에 격리당해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우와 더 함께 있지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평생 침대에서 살아야 할 거라는 말에 얌전히 포기했다.

       

       우리를 떨어트리려는 속셈이 뻔히 보이는 말이기는 했지만 말이야.

       

       시우가 그런 걸 생각하지 못할 리도 없었고, 계산 하에 한 행동이라고 했으니까.

       

       시우의 몸을 생각해서 한 이야기였기에 나는 구태여 반발하지 않았다.

       

       작가님도 없고, 시우도 없는 지금.

       

       처음에는 심심함에 몸부림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생겨버렸다고 해야 할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나는 심심하기는커녕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미안.”

       

       “괜찮아요. 차근차근 알아가면 괜찮으니까.”

       

       

       도로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나를 격려했다.

       

       배려해주는 걸까, 아니면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걸까.

       

       한숨을 내쉬며 방금 채점이 끝난 종이를 바라보았다.

       

       새빨간 비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음,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충격적이네요. 계획을 좀 바꿔야겠어요.”

       

       “···.”

       

       

       도로시가 곤란하다는 듯 목소리를 흐렸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쭈그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심하기는 했으니까.

       

       

       “지금까지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예요?”

       

       

       도로시가 내 손에 들린 종이를 가져가 살랑살랑 흔들자 나는 다급히 손을 뻗었다.

       

       이 시험지를 누가 보면 어떡하나 싶어서.

       

       그러나 도로시는 가볍게 내 손을 피하고 다시 시험지를 흔들어댔다.

       

       마치 이게 네 상황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그에 부끄러움이 몰려와 얼굴을 손으로 덮어버렸다.

       

       ···변명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작게 변명했다.

       

       

       “그, 그치만···. 대부분 작가님이 알아서 해결해줬고···. 필요할 때마다 알려줬고···.”

       

       

       그래.

       

       나는 지금 이 세상의 상식을 하나씩 배워가고 있었다.

       

       이 세상에 떨어진 지 일 년 남짓한 시간이 흐르기는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솔직히 말하자면 최근 일 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이 워낙 많았던 탓에 조금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고 생각해.

       

       ···응, 그래. 틀림없어.

       

       

       “하아···. 그 작가님이라는 놈은 도대체가···.”

       

       “···.”

       

       

       도로시는 작가님의 존재와 나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는 생각보다 덤덤하게 넘어갔다.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넘겨버린 걸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도로시는 더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작가님 대신 내게 관심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사회로 나갔다가는···에휴.”

       

       

       나도 멍청이는 아닌데.

       

       조금 울컥해서 도로시에게 나도 이렇게까지 걱정받을 입장은 아니라고 말하려던 찰나.

       

       그녀의 손에 들린 새빨간 비가 내리는 종이를 바라보고 입을 다물었다.

       

       ···도로시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바로 이것.

       

       상식 공부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 지금까지 아카데미 수업은 어떻게 들은 거예요?”

       

       “잤는데.”

       

       “···.”

       

       

       실눈이라 그런가 자고 있는지 아닌지 눈치를 못 채더라고.

       

       

       “후우···.”

       

       

       앞날이 막막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도로시의 모습에 억울함이 밀려왔다.

       

       난 억울해.

       

       아니, 내가 뭐 마력이 있는 세상에서 왔으면 모를까.

       

       마나 같은 건 상상 속의 산물인 세상에서, 마나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는 세상에 갑작스럽게 떨어졌잖아.

       

       심지어 사람들이 그걸 사용해서 초능력을 사용하는 세상이라고.

       

       그걸 사용하는 건 가능하다고 해도, 이론적인 걸 들어봤을 리가 없잖아.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이론이라고 해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야.

       

       ···하지만 도로시에게는 어처구니없는 소리겠지.

       

       하긴. 그녀의 입장에서는 제 또래의 친구가 구구단도 외우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은 것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가끔 선생님이 물어볼 때는 대답 잘 하지 않았던가요?”

       

       “···작가님이 알려줬어.”

       

       “···.”

       

       

       결국 이런 질문은 아무 의미 없다고 판단한 걸까.

       

       도로시는 화제를 바꾸었다.

       

       

       “···음, 그래요. 모를 수 있다고 쳐요.”

       

       “응.”

       

       “그래도 이걸 모르는 건 조금 심하지 않나요?!”

       

       

       도로시가 새로 꺼내든 종이에는 마찬가지로 새빨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종이의 내용을 확인한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버렸다.

       

       내가 생각해도 저건 조금 그랬으니까.

       

       

       “도대체 생리주기는 왜 모르는 건데요!”

       

       

       잔뜩 흥분한 도로시의 목소리가 커졌다.

       

       낯 뜨거운 이야기를 혹여나 누가 들었을까 주위를 황급히 둘러보며 도로시의 입을 막으려고 애써봤지만, 나는 그녀의 입을 막을 수 없었다.

       

       

       “그, 그게···.”

       

       

       생리주기를 모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관심 밖이었다.

       

       이 세상에 오기 전에는 그런 건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이곳으로 넘어오고 나서는 하루하루 터지는 사건들 탓에 생각하지 못했다.

       

       ···작가님이 만든 몸이다 보니, 생리하지 않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르기는 해.

       

       내가 생리주기를 모른다는 사실에 경악한 도로시가 나를 의사에게 데려갔지만 딱히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는 대답만 들었고.

       

       결국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도로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간단한 화장품 사용 방법도 아예 모르고···.”

       

       “그, 그런 건 필요 없지 않나? 이 정도면 충분히 예쁜데.”

       

       “아뇨?! 문제 많거든요?!”

       

       

       도로시가 나를 붙잡더니 크게 소리쳤다.

       

       여태까지 이런 격한 반응을 보인 적이 없어 크게 당황하고 있자니, 도로시가 내 볼을 쭈욱 잡아당겼다.

       

       

       “으에, 머 하는···.”

       

       “분명 지금도 충분히 예쁘지만···. 화장하면 더 예뻐질 수 있어요.”

       

       “그런 거 피료 업서···.”

       

       “시우가 좋아할 텐데요?”

       

       “···.”

       

       

       움찔.

       

       굳이 화장 같은 걸 배울 필요가 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우의 이야기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반응했다.

       

       

       “평소에는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지만, 가끔 한번 해주면 남자들은 뻑 가거든요.”

       

       “···그래?”

       

       “아르테는 그런 거 안 해도 예쁘니까 굳이 필요하겠냐고 생각하는 거죠? 그것도 맞긴 해요.”

       

       

       도로시가 그렇게 말하며 내 볼을 잡아당기던 손을 놓았다.

       

       

       “하지만, 원래 안 하던 사람이 하면 또 느낌이 색다르거든요.”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기는 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연애를 해 봤어야 알지.

       

       여태껏 연애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기에, 도로시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판단할 방법이 없었다.

       

       화장, 화장이라.

       

       

       “정말 시우가 좋아할까?”

       

       “그럼요. 안 그래도 예쁜 아르테가 치장까지 하면 누구나 반할 거예요.”

       

       “···필요 없어.”

       

       “네?”

       

       

       도로시의 말에 단호히 부정하자, 도로시의 의문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우만 좋아하면 괜찮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더라도 상관없어.”

       

       “···.”

       

       

       내가 말하고도 낯 뜨거운 발언이라 순식간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시우만 좋아하면 괜찮다니.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말을 주워 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

       

       

       “···오늘이 아르테가 퇴원하는 날이었던가요?”

       

       “응? ···응, 맞아.”

       

       

       갑작스럽게 퇴원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걸까.

       

       며칠 전부터 이야기가 나왔으니 헷갈릴 일은 없었을 텐데.

       

       도로시가 오늘따라 묵직해 보이는 가방을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화장품?”

       

       “네, 화장품이에요.”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화장품을 꺼내 들다니.

       

       아멜리아라면 모를까, 도로시의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 잠깐 당황하고 있던 찰나.

       

       그녀가 내게 제안했다.

       

       

       “화장, 배우실 생각은 있으신 거죠?”

       

       “···응.”

       

       

       이 세상에 처음 떨어졌을 당시의 나라면 격렬하게 거부했을 이야기다.

       

       화장 같은 걸 왜 하냐면서 화를 냈겠지.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렵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달라졌으니까.

       

       

       “그러면 오늘은 제가 한번 해 드릴 테니, 느낌이라도 한 번 보시는 건 어떨까요?”

       

       

       도로시의 제안에 잠깐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궁금하기는 했다.

       

       딱히 꾸미지 않아도 예쁜 몸이기는 하지만···.

       

       도로시가 이렇게까지 권유하는 걸 보면 무언가 색다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도로시가 한참을 내 얼굴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발라대기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났다고 느껴질 무렵.

       

       내 인내심이 바닥나기 직전에, 그녀가 내게 거울을 들이밀었다.

       

       

       “자, 끝났어요.”

       

       “···와아.”

       

       

       거울을 바라보자, 도로시가 어째서 화장을 하라며 성화였는지 알 수 있었다.

       

       음, 내가 말하니까 조금 자랑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정말 예뻤으니까.

       

       

       “예쁘죠?”

       

       “응. 예쁘네···.”

       

       

       진짜 신기하다.

       

       얼굴에 이상한 걸 이리저리 바르더니, 얼굴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화장을 받아보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습을 보면 시우도 좋아하지 않을까.

       

       

       “···흠, 흠.”

       

       “아, 미안.”

       

       

       한참을 거울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일까.

       

       도로시가 내게 눈치를 주었다. 거울을 달라는 걸까?

       

       미안함에 다급히 거울을 건네자, 도로시가 그게 아니라는 듯 손사래 쳤다.

       

       

       “아,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라···.”

       

       “응?”

       

       “열심히 화장했는데 지우는 것도 조금 아깝고···. 오늘 하루만 이대로 지내보시는 건 어떨까요?”

       

       

       하루만 이대로 지내보자고?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도로시가 한참 동안 열심히 한 건데.

       

       나야 지겨웠던 걸로 끝이지만, 도로시는 직접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좋아.”

       

       “그러면···. 시간도 꽤 지났네요. 먼저 수속을 밟고 계실래요? 저는 이걸 좀 정리해야 해서.”

       

       “알았어. 빨리 와.”

       

       

       

       ***

       

       

       

       아르테가 옷을 갈아입고 병실을 나서자, 도로시가 식은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안 들켰지···?”

       

       

       도로시는 다급히 아멜리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르테, 지금 올라가고 있음···. 좋아.”

       

       

       열심히 아르테를 꾸며준 보람이 있다면 좋을 텐데.

       

       도로시는 시우의 깜짝 놀란 얼굴을 바라보기 위해 화장품을 정리하고 다급히 방문을 나섰다.

       

       오늘은 커다란 이벤트가 있는 날이었으니까.

       

       일생일대의 이벤트를 놓칠 수는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 화, 140화로 완결입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네요!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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