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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 * *

         

         

         

       진성이 축지를 여러 차례 사용해 집으로 돌아오자 보인 것은 뒤집히고 있는 정원이었다.

       진성이 가기 전에는 엉망진창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규칙을 유지하고 있던 정원이, 이제는 땅거죽이 뒤집히고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

         

       하지만 엉망이 되었다고 해도 생명은 존재하는 법.

         

       개판이 되어버린 정원에는 꽃과 나무가 돌아다니며 아직 정원이 건재함을 알려주고 있었고, 꽃이 제 이파리를 이용해 작은 돌을 옮기고 나무가 커다란 돌을 가지로 옮김으로써 아직 이 땅에는 선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진성은 이 감동적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그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는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기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는 꽃이나 나무와 부딪치기 딱 좋았기 때문이었다.

       자갈을 옮기고 있던 꽃을 찰 뻔한 것은 셀 수도 없으며, 뾰족한 뿌리를 문어의 다리처럼 움직여서 돌을 나르는 나무와 부딪칠 뻔한 것이 세 번이었다. 게다가 부딪칠뻔하자 나무가 조심하라는 듯 가지를 흔들며 그에게 경고하기까지 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힘겹게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교통경찰처럼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이아린의 모습이었다.

         

       이아린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큼지막한 돌 위에 올라서서 까르르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래쪽에는 꽃들이 있었는데, 그 꽃들은 이아린의 움직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꽃은 뿌리를 다리처럼, 이파리와 줄기를 손처럼 움직이며 그녀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랐다.

       이아린이 어떤 장소를 가리키면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가 자갈을 쏟아내거나 자갈을 주워 담았고, 그녀가 손짓하면 정해진 길을 따라 일렬로 움직였다. 게다가 이아린이 장난스럽게 경례를 하면 그에 답하듯 줄기를 움직여서 꽃잎에 이파리를 가져가 경례를 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기묘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기묘한 모습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아린과 좀 떨어지는 곳에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모래더미가 가득 있었는데, 이세린은 거기서 모래찜질을 하고 있었다.

         

       능력을 사용한 것인지 따끈따끈하게 데워진 모래를 제 몸에 이불처럼 덮고, 마치 겨울철 전기장판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는 사람처럼 행복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양옆에는 자그마한 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나무들은 그녀가 안락하게 쉴 수 있도록 서로 몸을 기대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그녀가 입을 일정 시간 이상 벌리고 있으면 뿌리를 움직여 바구니에 들어있는 과일을 까서 그녀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그늘이 꽤 큰 것으로 보아 저기에는 악마가 있겠구나.’

         

       진성은 이세린에게 시선을 뗀 후 이아린을 향해 걸어갔다.

       꽃을 지휘하며 놀고 있던 이아린은 진성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어, 오라비. 어디 다녀오는 거야?”

       “잠깐 관광 좀 하고 왔느니라.”

         

       진성은 타박하듯 자신에게 묻는 그녀의 말에 가볍게 대꾸하고는 차렷 자세로 서 있는 꽃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것들은 무어냐?”

       “응? 꽃인데?”

       “그건 보면 아느니라.”

       “아, 왜 걸어 다니냐는 거지? 그 뭐냐. 위치크래프트? 그거 쓰면 이렇게 할 수 있대!”

       “그것 역시 알고 있느니라. 다만 내가 묻는 것은 이것이 어찌 가능한가 하는 것이 아닌, 어찌하여 정원이 이렇게 되었고 꽃이 왜 일을 하고 있냐는 것이니라.”

         

       그 질문을 들은 이아린은 눈을 빛냈다.

       그러더니 돌에서 폴짝 뛰어내려 바닥에 착지한 후 진성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이야, 오라비. 그게 말이지. 진짜 대단했다니까?”

         

       이아린은 마치 진성이 묻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을 쏟아내었다.

       수다쟁이가 입을 사흘간 꿰매고 있다가 풀려난 것 같았다.

         

       “대마녀 님이 그 뭐냐. 정원 보고 표정이 썩었잖아? 그리고 집안 장식물 보고도 불편한 표정 지었고. 그런데 오래비가 어디로 간 다음에 식사했는데 그걸 보고 폭발을 해버렸지 뭐야. 이딴 국적 없는 식사는 도저히 못 참겠다고, 코스모폴리탄이라고 봐주기도 힘든 이딴 키메라 같은 집구석을 내가 다 뜯어 고쳐주겠다면서….”

         

       진성은 그 말의 홍수 속에서 자신이 듣고 싶은 정보를 능숙하게 찾아내었다.

         

       ‘끌끌. 제 성질머리를 이기지 못했구나.’

         

       진성은 대마녀가 화내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성질머리 나쁘기로는 위에서부터 세어야 할 인간이다.

       그나마 정원과 예술품을 보았을 때는 진성이 있었기에 아슬아슬 통제가 가능했지만, 진성이 사라진 데다가 근본 없는 식사에 쓸데없이 화려하기만 한 식사를 보고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인내심에도 한계가 찾아왔으리라.

         

       ‘회귀 전에는 그 성질머리가 어마어마해서 용병들 모두가 기피했거늘. 이번에는 어땠을는지 모르겠구나.’

         

       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아린의 말을 계속 들었다.

         

       “우리 꼰대가 그렇게 당황하는 건 처음 봤다니까? 이야, 진짜 원조 꼰대는 다르긴 다르더라. 엘라한테 하던 것 봐서 알았는데 그 뭐지.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시어머니 따위는 아주 비교도 안 돼. 진짜…. 흠.”

         

       이아린은 말을 하다 말고 슬쩍 눈치를 보았다.

       그러더니 어디선가 오딜리아가 들을까 봐 무서운지 그의 귓가에 입을 가져가서 소곤소곤 말했다.

         

       “그, 성격 파탄 난 건 엘라 괴롭힐 때부터 알아봤는데. 와. 감탄스러울 정도로 꼰대더라.”

         

       그녀는 그렇게 소곤소곤 말하면서 진성의 옆으로 달라붙었다가, 자신의 몸에 땀이 가득한 것을 눈치채고는 슬쩍 멀어졌다.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를 살짝 벌리곤 말을 이어갔다.

         

       “우리 꼰대가 별문제 없다고, 자기 나름대로 꾸민 건데 뭐가 문제냐고 막 그랬거든. 그리고 일본식 정원이 어쩌고 영국식 정원의 자유분방함 어쩌고 하면서 막 무슨 그. 예술? 그- 하, 그 뭐지. 어쨌든 학교에서 미술관에 갔을 때 예쁜 언니가 설명해주는 것처럼 엄청 어렵고 뭔가 있어 보이게 설명을 했단 말야. 응, 그랬더니….”

         

       이아린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더니 피식 웃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다시 웃음이 터져 나오는 모양이었다.

         

       “와, 진짜. 보통은 우리 꼰대가 욕을 봤으니까 나도 화가 나야 하는데. 하는 말이 너무 황당하고 웃겨서 화도 안나더라.”

       “흠.”

       “이렇게 말했거든? 오래비, 잠깐만 기다려봐.”

         

       이아린은 몇 번 피식 웃고는 표정을 싹 고치더니, 마치 대마녀의 흉내를 내려는 것처럼 근엄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얼굴을 와락 찌푸리더니 살짝 톤을 올려 대마녀의 성대모사를 했다.

         

       “어디서 어른이 말하는데 따박따박 말대꾸야! 너 몇 살이야-!”

       “허.”

       “어디서 두 눈 똑바로 뜨고! 어른이 말씀하시는 거라면 좋은 말이구나, 옳은 말이구나 하고 경청을 하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야지 어디서 그렇게 버르장머리 없이 말대꾸해! 내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도 해주고 정리도 해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이아린은 흉내를 끝내고는 뭐가 그리 웃긴지 피식피식 웃었다.

         

       “와, 진짜. 겉으로 보기에는 언니나 다름없는 사람이 그러니까 어이가 없더라. 근데 우리 꼰대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맞기도 하고…. 참….”

       “흠. 그래도 무례한 건 맞기는 하구나.”

         

       진성이 그렇게 말하자 이아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찮아. 뭐 무례한 건 맞는데, 기분 나쁘기보다는 황당했거든. 게다가 말을 내뱉고 나서는 제정신이 들었는지 존댓말로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고. 그리고 사과의 뜻으로 직접 정원과 실내장식을 다 바꿔주겠다고 했거든. 전부 자기 부담으로. 게다가 광양 그룹이 독일에 진출할 때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말도 했으니 이 정도면 남는 장사 아니겠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비밀이라는 듯 입가를 슬쩍 가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나도 인테리어랑 식사 같은 거 좀 바꿨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으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이아린은 그렇게 말하곤 다시 돌 위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손짓을 해서 다시 꽃들을 불러모으곤, 아까 하던 것처럼 꽃에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진성은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방으로 가는 길, 대마녀와 마주치게 되었고.

         

       “힉.”

         

       대마녀는 뭐가 그리 찔리는지 진성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오딜리아는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놀라더니 슬쩍 진성에게서 한 발자국 멀어졌다. 그리고는 살짝살짝 진성의 눈치를 보더니 헛기침을 작게 하고는 말했다.

         

       “그…. 오셨습니까?”

         

       눈동자를 한쪽으로 돌리는 모습이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강아지가 시선을 회피하는 것과 닮아있었다. 진성은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찌 그런 무례를 저질렀느냐?”

       “크흠. 흠.”

         

       그의 추궁에 대마녀는 작은 기침 몇 번을 하고는 진성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진성의 시선에 이기지 못하고 변명하듯 말을 쥐어짜 내었다.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마치 어린아이가 할 법한 변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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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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