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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네가 생각하는 설마가 맞을 거다.”

       

       이드밀라도 상황을 파악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쀼우? 무슨 일이에여…?”

       

       아르는 그새 쓰다듬어 달라며 나에게 꼭 붙어서 내 허리에 뺨을 댄 채 꼬리로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아르는 작게 뀨우 소리를 내며 내 허벅지를 안았다.

       

       이드밀라는 아르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르야, 지금 이 근처에서 아주 작은 검은 알갱이들이 땅 속으로 흡수되어 들어가는 것이 보이니?”

       “쀼우! 넹, 보여여!”

       

       아르는 보이는구나.

       

       내 눈에는 전혀 안 보이는데….

       

       “지금 이 쓰렉…아니, 우리를 방해하는 쓸모없는 녀석들이 죽을 때, 가지고 있던 힘의 일부가 저 검은 알갱이로 바뀌어서 들어가고 있는 거란다. 즉….”

       

       이드밀라는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지금 아래에서 이 힘을 이용해 뭔가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소리야. 예를 들면…. 마왕의 부활 의식이라든지.”

       “쀼욱?!”

       

       마왕의 부활이라는 말에 아르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아르는 내 허벅지를 더 꽉 끌어안은 채 나를 올려다 보며 물었다. 

       

       “레온, 우리 마왕 부하들 잡으러 온 거 아니어써? 왜 갑짜기 마왕 부활하는 고야?”

       

       아무래도 마왕의 산하 세력을 잡을 생각만 하다가 갑자기 직접 마왕이 부활한다고 하니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모양.

       

       나는 아르를 번쩍 안아 들어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2.5 성장 단계쯤 되는 덩치였지만, 아르를 안아 들어 달래 주기 위해서 지금껏 단련한 힘 스탯으로 받쳐 안았다.

       

       “아직 부활하는 게 확실한 건 아니야. 다만 녀석들이 우리에게 한 대처나, 주변 상황으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내가 엉덩이를 토닥여 주자 아르는 조금 진정한 듯 뀨우 소리를 냈다. 

       

       ‘사실 가능성이 높은 정도가 아니긴 하지만….’

       

       처음 결계를 가르고 들어왔을 때, 놈들은 마치 우리가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기습을 했다. 

       

       ‘우리가 찾아올 걸 알고 있었다는 건, 다른 지부가 싹 쓸렸다는 것도 알고 있다는 소리겠지. 어쩌면 대륙에 산개해 있던 산하 세력까지 전부 털렸다는 것도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즉, 놈들은 자신들이 이제 궁지에 몰려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최후의 수단으로 마왕을 부활시키려고 하는 거겠지.

       

       밖에서 우리와 전투를 하던 놈들은 그저 시간 끌기용 체스말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지부와 달리 이곳에는 붙잡혀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안 보였어.”

       “쀼우! 마자. 사람들 구해야 대는데 아무도 안 보여써! 어디 가찌?”

       “아마 그건….”

       

       내가 말을 얼버무리자, 이드밀라가 대신 대답했다. 

       

       “마왕의 부활을 위한 제물로 쓰인 거겠지. 기척도 아예 안 느껴지는 걸 보면 이미 제물이 되어 사라졌거나, 아니면 지하 아주 깊숙한 곳에서 바쳐지기 직전일 거다.”

       “쀼…! 졔물….”

       

       아르의 눈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지굼까지 구한 사람들, 아르한테 다들 고맙다구 인사해써. 조은 사람들이어써. 이번에도 구하고 시펐는데….”

       

       아르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케 많은 사람들을 히생시키다니, 못대써. 마왕 용서 모태.”

       

       아르가 내 품에 안긴 채 눈에 힘을 잔뜩 주며 주먹을 꼬옥 쥐었다. 

       

       “레온! 아르 이제 마왕 안 무셔! 아래루 내려가쟈!”

       

       이드밀라는 그런 아르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아르야. 마왕은 강하단다. 아무리 준비가 덜 됐다고 해도, 아직 아르가 마왕을 이기기는 무리일 거야.”

       

       그 말에 아르가 주먹에 힘을 풀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히잉…. 구러면 어떠케여?”

       

       이드밀라는 이쪽으로 다가와 아르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어떡하긴. 이 이모가 있잖니. 아르 대신 이모가 아주 마왕을 혼쭐 내 줄게.”

       

       이드밀라는 미소를 지으며 아르의 말랑한 뺨을 엄지와 검지로 잡고 조물조물 만졌다. 

       

       “헤카르테는 천 년 전에도 이모한테 져서 봉인 당한 녀석이야. 이번에도 절대 안 질 거니까 걱정하지 말렴.”

       “이모오…! 쀼! 걱정 안 하께여!”

       “그래, 그래.”

       “히히, 역씨 이모 짱 세!”

       

       아르는 이드밀라의 말에 안심이 된 듯 활짝 웃으며 꼬리를 위아래로 꼼지락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드밀라 님이 있으니 괜찮겠지.’

       

       사실 우리의 목적은 헤카르테 지부를 부수고 교단원들을 처리함으로써 헤카르테의 세력 확장을 막고 부활을 저지하는 것까지였다. 

       

       ‘이드밀라 님의 말대로 아직 우리는 마왕을 직접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까.’

       

       심지어 시기 상으론 아직 용사 레키온조차도 마왕과 일대일을 하기에 무리가 있다.

       

       만약 이드밀라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우리는 마왕이 지부 아래에서 부활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는 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일단 후퇴해서 레벨업부터 더 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으니까.’

       

       그대로 두면 부활한 마왕이 대륙 남부의 도시들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다니겠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눈 딱 감고 도망치며 아르의 목숨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마왕이 부활해 난동을 부린다는 소식이 제국에 퍼지면 황실에서 고서클의 대마법사와 황실 직속 기사를 파견해 줄 거고, 용사 레키온도 합세를 할 거다.

       

       ‘그렇게 전부 합세하면 온전한 힘으로 부활하지 못한 마왕 정도는 어찌 잡을 수 있겠지.’

       

       피해는 크겠지만, 더 멀리 보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이드밀라 님이 있다면.’

       

       심지어 헤카르테를 이긴 전적이 있는 이드밀라라면 마왕을 혼자 상대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여기서 이드밀라가 헤카르테를 다시 봉인해 버리기만 하면 대륙에도 피해가 전혀 없을 거고, 우리의 계획은 더욱 일사천리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해볼 만해.’

       

       나는 이드밀라를 바라보았다. 

       

       “그럼, 그럼. 엄청 세지. 이 이모 뒤에만 있으렴. 이모가 바로 브레스로 그냥 마왕을 화아악!”

       

       이드밀라는 입에서 불을 뿜는 시늉을 하며 아르에게 웃어 보였다. 

       

       “쀼우! 이모 채고!”

       

       아르는 이제 긴장이 다 풀린 듯 내 품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 있는 눈빛으로 땅에 내려섰다. 

       

       “레온, 어서 가쟈! 이모가 마왕 혼내 준대써!”

       “하하, 그래. 어서 가자.”

       “쀼, 그런데 어떠케 내려가지?”

       

       아르가 애꿎은 땅을 내려다 보자, 이드밀라는 우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자, 그럼. 아래로 내려갈 테니 잠시 가만히 있도록.”

       

       솨아아악!

       

       곧 시야가 흔들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우리는 웬 계단 앞에 있었다. 

       

       “여기는…?”

       

       이드밀라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쉬더니 계단 아래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여기까지가 안전하게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범위다. 이 아래로 한 번에 가려고 하면 너희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어.”

       

       이드밀라는 먼저 계단 아래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파악!

       

       말하기가 무섭게 아래쪽에서 날카로운 창이 튀어나와 이드밀라를 꿰뚫으려 했다. 

       

       “어딜.”

       

       콰직.

       

       하지만, 어느새 신체 강화 마법을 두른 이드밀라는 단단한 쇠창을 종이로 만든 창처럼 밟아 우그러뜨렸다. 

       

       이어서 이드밀라가 가볍게 손짓하자 죽순처럼 올라온 창들은 압축된 마나로 만들어진 바람 칼날에 전부 동강이 났다. 

       

       “앞장설 테니 따라와라.”

       

       이드밀라의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에, 우리는 침을 꿀꺽 삼킨 뒤 그녀를 따라갔다. 

       

       그 뒤로도 우리는 깊숙이 내려갈 때마다 더 많고 악랄한 함정들을 마주했다. 

       

       물론 이드밀라가 앞장서며 함정들을 전부 파훼하긴 했지만….

       

       ‘어차피 이것도 처음부터 시간끌기용일 뿐이었겠지.’

       

       순간이동으로 단숨에 내려오지 못하도록 층층이 어둠의 마나로 차단 결계를 심어 둔 것도, 파훼한 다음에도 경계하면서 나아가야 하도록 겹겹이 적당한 함정을 쌓아 둔 것도.

       

       전부 마왕의 부활 의식을 위한 시간 벌이용.

       

       그걸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더 이상의 대화 없이, 부지런히 함정을 돌파하며 아래로, 더 아래로 통로를 따라 내려갔다. 

       

       “곧 도착이군.”

       

       이드밀라가 그렇게 말하고 3분 정도가 지났을까. 

       굳게 닫힌 커다란 문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끼이이이이익.

       

       이드밀라가 손을 뻗자 거대한 문이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드밀라는 거침 없이 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고.

       따라 걸어 들어가던 우리는, 안쪽의 광장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깨닫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렇게 큰 곳이 지하에 있었다고?’

       

       어림잡아도 대형 축구 경기장 몇 개는 이어 붙인 것 같은 크기의 광장.

       도대체 어떤 대단한 기술력이 있기에 이런 걸 이 시대에 만들 수 있었는지 상상이 잘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저, 저길 보세요!”

       

       실비아의 외침에 나와 아르는 광장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

       “쀼우! 사, 사람들이 이써!”

       

       아르가 밝아진 표정으로 외쳤다. 

       

       그곳에는 족히 백 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묶인 채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아직 히생 안 당해써! 구해야 대!”

       

       아르는 자기도 모르게 달려 나가려 했다. 

       

       턱.

       

       “이, 이모?”

       

       아르의 어깨를 잡은 건 이드밀라였다.

       

       “아르야, 뒤로 물러서.”

       “그, 그치만!”

       

       이드밀라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었어. 저 앞을 보렴.”

       

       사람들 너머, 광장 끝에는 커다랗고 시커먼 수정 구슬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간부급으로 보이는 헤카르테 교단원들이 손을 모은 채 서 있었다. 

       아마 우리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는 순간, 놈들이 손가락 하나를 까딱하는 걸로 저들의 목숨은 끝장날 터였다.

       

       【크흐흐흐…. 왔구나, 이드밀라여.】

       

       더없이 거칠고 음산한 목소리가 수정 구슬에서 흘러 나왔다. 

       

       【거기에 아직 덜 여문 은룡까지…. 크흐…. 천 년 전 나의 복수뿐 아니라 라데스 님의 복수까지 할 수 있겠어.】

       

       이드밀라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흥. 아직 제대로 부활할 준비도 안 된 주제에 폼은 있는 대로 잡는군. 그 상태로 부활해 봤자 한 브레스거리도 안 된다는 걸 모를 정도로 대가리가 퇴화했나?”

       

       【크큭…. 크크큭….】

       

       “뭐가 그렇게 웃기지?”

       

       【글쎄. 예전의 네 녀석 같으면 대화하기도 전에 브레스부터 뿜었을 텐데, 웬일로 혓바닥이 길다 싶어서 말이야.】

       

       “원한다면 지금 당장 그렇게 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드밀라의 표정은 다음으로 흘러 나온 헤카르테의 음성에 굳었다. 

       

       【이드밀라, 너도 역시 아직 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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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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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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