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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황제의 시선이 도착한 곳엔 소녀가 있었다.

         

       작은 키. 금발벽안. 옷소매로 살짝 가린 입.

       몇 번 본적 없으나, 황제는 그녀를 알았다.

       르하임 공작의 막내딸이다.

         

       연회나 작은 모임에서 한두 번 봤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기억이 맞는 걸까.

         

       기억 속에 존재하는 마리아와 이 소녀와는 많이 달랐다.

         

       흐릿하고 수줍은 눈이 아니다.

       동공이 활짝 열리고 광기에 절어있었다.

         

       말하기 껄끄러워하던 기색이 없다.

       오히려 언제 말할 수 있을까. 기회를 엿보는 맹수였다.

         

       분위기가 확 달라진 소녀였으나, 황제는 직감했다.

       이쪽이 본체다. 연기를 한다고 하기엔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자신의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울린다.

         

       “아핫.”

         

       분위기가 180도 바뀌어버린 소녀와 시선을 교환했다.

       지금 이 공간의 온도가 내려간 착각마저 든다

       황제. 크리스는 긴장으로 손이 축축해짐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혹시 잘못들은 게 아닐까 하고.

         

       “뭐라고… 했지?”

       “잘 안 들렸나요? 폐하?”

         

       천연덕스럽게 답하는 마리아의 대답에. 황제가 확신했다.

       방금 전 들은 말은 환청이 아니다.

       그녀는 갤러리 분탕 모임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어떤 경로로…?

       황제의 머릿속에선 여러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고 이 소녀에게 알려줬나?

       황제인 자신의 약점을 잡으려고?

         

       아니면 이 소녀에게 엿보는 능력 같은 게 있나? 성녀의 예지능력처럼?

       그것도 아니라면 공작 쪽에서 보냈을까?

         

       갤러리 분탕 모임에 마리아가 참여하고 있는 건가?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와중에도 마리아는 싱글벙글 입 꼬리를 올렸다.

       그러한 모습의 황제를 구경하는 것처럼 히죽 히죽 웃었다.

         

       종잡을 수 없는 소녀다.

         

       황제의 인물 메모에서 르하임 공작의 막내 딸. 마리아에 대한 평가가 바뀌었다.

         

       소심하고 겁 많은 소녀에서.

       비밀이 많은 소녀로.

         

       그녀가 얼마나 많은 걸 알고 있을까.

       물어보려던 황제는 이 곳이 어디인지 의식했다.

         

       주변이 뻥 뚫려있는 복도다.

       인적이 드물긴 하나, 여기가 이야기에 어울리는 장소는 아니었다.

         

       이 공간에서 대화하기엔 눈치가 보인다.

       누군가가 들을 수 있으니까.

         

       “일단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지.”

       “조용한 곳… 단 둘이…?”

       “…가지.”

       “아핫. 방 안에 저희 단 둘이라니….”

         

       양손으로 볼을 부여잡으면서 좋아하는 소녀의 모습에.

       황제는 인물 메모를 또 한 번 정정했다.

         

       비밀이 많은 소녀에서.

       이상한 소녀로.

         

         

       ***

         

         

       “에르샤. 바깥에서 대기하도록.”

       “알겠습니다.”

         

       마법 처리까지 되어있는 조용한 방.

       황제와 마리아는 소파에 마주 앉았다.

       그 과정마저 좋다는 듯 마리아는 수줍게 쿡쿡 웃었다.

       한 편, 황제의 표정은 착잡했다.

         

       이 소녀는 뭔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인가?

       복잡했다.

         

       이 소녀는 많은 걸 알고 있는 눈치다.

       이대로 내버려두는 건… 리스크가 크다.

         

       그러니 사고로 위장해서 처리해?

       아니면… 다른 걸 마법을 이용해?

       이런 건 최후의 수단이었다.

       웬만해선 절대 선택하지 않는 선택지였다.

         

       만약, 소녀가 허수아비라도 문제다.

       공작이 직접 보냈다면 처리하면 안 된다.

       약점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니까.

         

       황제가 고민하는 동안, 마리아가 고개를 내밀었다.

         

       “표정에 살심이 드러나네요. 저를 죽이실건가요?”

       “….”

       “고민이 많으시네요. 폐하?”

         

       웃음 짓는 마리아는 황제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목으로 이끌었다.

       황제의 두 손을 가녀리고 하얀 목에 겹치도록 만들었다.

         

       “저를 죽이려면… 자아.”

         

       경동맥을 누르기 쉽도록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직접 목을 졸라서 죽여주세요.”

       “….”

         

       그게 마치 포상이라도 된다는 듯이.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리아였다.

         

       진짜로… 미쳐버린 소녀인가?

       죽여 달라고? 직접? 손으로? 아니 이 또한 함정인가? 아니면 진심인가?

       황제는 혼란한 속내를 숨기면서 손을 거두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폐하. 적잖이 당황스러운 모습이네요. 폐하의 숨겨진 표정도 저는 읽을 수 있답니다.”

       “….”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을 하고 계십니다.”

       “놀리는 듯한 존댓말은 집어 치워.”

       “아핫. 그럴까요…?”

         

       마리아가 고개를 숙이고 옷소매로 입을 수줍게 가렸다.

       여유로운 눈의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어렵게 운을 떼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지?”

       “꽤나 궁금하신 모양이에요. 폐하께서는.”

         

       음.

       잠시 고민하던 마리아는 눈동자를 굴렸다.

         

       “어디까지냐니. 어디까지 묻는 걸까요.”

       “말장난 따위를….”

       “말장난이 아니에요.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는 걸요.”

       “으음.”

         

       마리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갤러리 분탕 모임에 대해서? 아니면 거기서 활동하는 폐하까지? 그것도 아니면… ■■까지?”

       “….”

         

       마지막 문장에 노이즈가 꼈다.

       마치, 그 존재가 이 세상에 알려지길 거부하듯이.

       황제가 눈을 크게 뜨자, 마리아는 계속 그러했듯. 히힛 하고 웃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처음인가보네요. 입으로 직접 말하는 걸 듣는 건?”

       “도대체 그걸 왜….”

       “재밌으니까요 한 번도 입에 담아본 적 없어요? 재밌는데. ■■. ■■. 어때요 안 들리죠?”

         

       이걸 시험해본 적이 있다고?

       돌아버린 건가. 정말로 미친 것 아닌가.

       황제의 몸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아니, 이 소녀는 실제로 미쳐있다.

       항상 느슨한 분위기에서 느껴진다.

         

       진지함과 긴장감은 없고 즐거움만 가득한 이 소녀에게.

       정상적인 부분이라곤 찾아보기가 어렵다.

       황제는 눈을 찌푸렸다.

         

       이렇게 그 존재를 입에 담을 정도면 확정이다.

       마리아는… 갤러리 모임에 들어가 있다.

       여자들도 몇 명 있었으니 그 중 한 명일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내 존재를 눈치 챘지? 실루엣만 보일 텐데.”

       “얼굴 윤곽을 보고요?”

       “뭐?”

       “폐하의 멋진 얼굴은 한 번만 봐도 잊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윤곽만으로 알아봤다는 건가?”

       “그야 어떻게 못 알아보겠어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얼굴! 제대로 보이지 않아도 알아채는 게 당연한 걸요?”

         

       마리아의 목소리가 격해졌다.

       마리아는 두 손을 기도하듯이 모으고,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심심해서 참여한 분탕 모임에서 폐하를 만났을 때 저흰 운명임을 느꼈어요. 아아… 정말 폐하와 저는 서로 이끌리는 구나….”

       “이끌린다니….”

       “이건 가히 운명…!”

         

       자신의 몸을 양 팔로 껴안으면서, 그녀는 부르르 떨었다.

         

       “하으… 그렇게 저의 운명인 폐하를 만나게 되었답니다. 궁금증은 전부 해결되셨나요?”

       “아니. 전혀.”

       “너무 경계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녀는 아쉽다는 듯이. 팔걸이 위에 검지로 원을 그렸다.

         

       “….”

         

       황제는 이 순간에도 수많은 선택을 번복했다.

       마법을 이용해, 마리아에게 금제를 걸까.

       지금이라도 이 소녀를 이용해볼까.

       아니, 평생 잠을 자게 만들까.

       뇌물을 먹이거나 원하는 일을 들어주고 조용히 시킬까?

         

       수없이 떠오른 선택지를 전부 쳐냈다.

       입을 다물고 고민하는 황제를 보며, 마리아는 히죽 웃었다.

         

       “여전히 고민하고 계시네요… 흐음. 저를 어떻게 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제가 폐하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도움이 된다고.”

       “예!”

         

       황제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기 싫었다.

       이 소녀가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된다는 건지.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이번에 고민이 많으셨을 거예요. 갤러리를 공략하는 건 어려우니까.”

         

       덤덤하게 이어지는 미친 말에 황제가 침을 삼켰다.

         

       “하지만 고민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

       “제가 해결해드릴게요. 일단 갤러리의 주인을 죽이면 되는 일 아니겠어요?”

       “?”

       “한 번 죽여서 안 된다면 두 번. 두 번으로 안 되면 세 번. 죽이면 되는 일이죠. 실패해도 계속 시도하면 되고요.”

       “….”

         

       이 눈.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주딱을 죽인다면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는 눈이다.

         

       “폐하께서는 가만히 계셔도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아시겠죠?”

         

       마리아는 자신의 할 말을 끝내고 히죽 웃었다.

       얼마나 감격했으면 아무 말도 하지 못 하시는 건지.

       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황제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으니까.

         

       마리아는 슬쩍 시간을 확인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네요. 폐하. 다음에 또 이런 교류를 했으면 좋겠어요.”

       “….”

         

       그녀는 곤혹스런 표정의 황제를 보며, 웃었다.

       이렇게 자신을 위해 솔선수범으로 나서주는 여자라니.

       감동해서 아무 말도 못 하는 거겠지?

         

       마리아는 들뜬 발걸음으로 방을 빠져나왔다.

       바깥으로 나오면서, 문 앞을 지키던 에르샤와도 눈이 마주쳤다.

         

       “비켜줄래요? 아줌마.”

       “….”

         

       에르샤를 긁으면서 씨익 웃은 그녀가 여유로운 걸음으로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황제의 인물 메모가 또 바뀌었다.

       이상한 소녀에서.

       단단히 미친년으로.

         

       황제의 고민이 깊어졌다.

         

         

       ***

         

         

       연회장으로 돌아온 마리아는 가장 처음으로 한 사람을 찾았다.

       제국의 2인자인 자신의 아버지. 르하임 공작과 눈이 마주쳤다.

         

       “마리아. 어딜 다녀왔느냐.”

       “…잠깐 바람을 쐬러 다녀왔어요. 이 곳에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힘든 곳이긴 하지.”

       “하지만… 공부가 되었어요.”

       “그러느냐.”

         

       소심한 소녀가 바깥세상과 정치에 관심을 보인다.

       정치적으로 얽혀있는 르하임 공작에겐 이만큼 좋은 일이 없으리라.

       마리아의 완벽한 연기에 르하임 공작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표하고, 마리아는 뒤로 빠졌다.

       연회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마리아는 조용히 바깥으로 나왔다.

         

       그녀를 신경쓰는 사람은 없다.

       친한 사람은 없고. 르하임 공작 마저도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으니.

       마리아는 지나가던 시중에게 손짓했다.

         

       “네. 영애님.”

       “손님용 객실이… 있나요?”

       “네.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시종에게 방을 안내받았다.

       조용한 손님용 객실. 방 안에 혼자 남은 마리아는.

         

       하아.

       기분 좋은 한숨을 흘렸다.

         

       “운명이에요….”

         

       그녀는 과거를 떠올렸다.

       그녀는 사실 갤러리 분탕 모임이라는 곳에도 기대가 없었다.

       관심도 전혀 없었다. 흥미조차 가지지 않았다.

         

       갤러리란 곳이 재밌나?

       유치하고 쓰레기 같은 곳에 불과한데.

         

       부술 이유도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분탕 모임에 참여해서, 그 자리에 모인 멍청이들을 비웃어줄 생각이었다.

         

       얼마나 멍청하기에. 이딴 모임을 결성하는 걸까.

       대놓고 비웃고 씹어줄 생각이었으나….

         

       “….”

         

       폐하. 황제. 크리스 카를 테세우르

       갤러리 분탕 모임에서 그와 마주해버렸다.

       실루엣만 드러나도 황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포식자의 눈, 오뚝한 코, 날렵한 턱선.

       그 모든 요소 하나하나.

       어딜 봐도─ 완벽한 존재였다.

       신이 남자를 빚어낸다면 이런 사내일 것이다.

         

       그러한 존재에게 반하는 건 여자로서 당연한 일이며.

       그를 위해 모든 걸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연회에서 처음 황제와 마주하고 심장의 두근거림이 멎지 않았을 때처럼.

       갤러리 분탕 모임에서도 마리아의 심장이 요동쳤다.

         

       낮은 확률로 황제와 만났다.

       이 시간 동안, 황제와 같은 공간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운명이었다.

         

       “이게… 운명이 아닐 리가 없어요.”

         

       희박한 확률로 짝사랑이 이어질 길이 생겼는데.

       이게 어떻게 운명이 아닐까.

       그녀는 히죽 웃었다.

         

       “거기에 호감도 쌓았어요.”

         

       노력했다.

       갤러리와 대륙에 관심도 없지만, 어떻게 해야 갤러리를 부술 수 있을까.

       제국을 위협하는 갤러리를 처리할 수 있을까.

       여러 방면으로 공부하고 연구했다.

         

       황제 폐하께서도 갤러리가 껄끄러우니.

       갤러리 분탕 모임에 참석한 것 아닌가.

       갤러리란 오센 왕국을 도우며, 제국과 황제를 위협하는 요소 아닌가?

       처리해야 함이 옳다.

         

       그녀도 갤러리를 진심으로 부술 생각이었다.

       소극적인 방법에서.

       적극적인 방법까지.

       갤러리를 처리할 방법을 고민했다.

         

       폐하의 적. 갤러리를 부순다는 목표를 이루어준다면.

       황제는 자신을 더욱 좋아해주겠지.

         

       그녀는 이번의 일에서 한 치의 후회도 존재하지 않았다.

       공작가에서 생활하면서 받은 용돈과 몰래 마련한 비자금을 암살자를 고용하는 데에 사용했지만.

       이로 인해, 그가 가진 고민은 줄어들 테니까.

         

       “주딱? 죽여 버리면 그만이잖아요? 큭.”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두 번으로 안 되면 세 번.

       그래도 안 된다면 꾸준히.

         

       주딱을 죽이고 갤러리를 망가뜨릴 계획을 세웠다.

         

         

       ***

         

         

       오센 왕국의 수도 프리아.

       조용한 숲속에 닌자가 나타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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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oming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 Board

Becoming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 Board

I Became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ly Gallery 이세계 갤러리 주딱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minding the board 24/7 when I got dragged into anothe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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