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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아무튼, 그래서.”

        

       손에 들고 있던 캔으로 목을 축인 남다운이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나를 부른 건데?”

        

       “그건…….”

        

       여기까지 와서야 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이 사람에게 그걸 물어보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물론 이 사람은 당사자인 만큼 잘 알고 있겠지만, 그 일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아니면 그 일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해줄 사람이 없는 것도 사실이니까.

        

       게다가, 이미 ‘그 사람’이 한 번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그,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을 물어보고 싶어서 그러는데요.”

        

       “아, 그거.”

        

       하지만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남다운은 내 말을 아주 가볍게 받아주었다.

        

       “지난번에 말했잖아. 헛소문이라고. 너는 신경 쓸 거 없어.”

        

       그래, 기억을 읽어서 알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남다운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이렇게 말할 사람이었다. 남들이 무서워하면서 피하던 나에게, 자신과 비슷한 느낌이 난다면서 말을 걸었던 사람이니까.

        

       “……진짜로요? 진짜로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렇게 사라져버렸다고요?”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이 사람은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

        

       나에게 작별 인사를 남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전에 언제 이사 간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아니다. 어느 한순간, 갑자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진짜 혼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원망했지만, 나중에 이 사람이 사라졌던 것이 나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종종 내가 지나갈 때마다 일부러 나 들으라는 듯 수군거리던 소리 안에서 들리던, 이 사람이 겪었을지도 모르는 끔찍한 소문들.

        

       아마 그때도 학교에서 인기 있던 이 사람과 친하게 지내던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겠지만, 나는 그 소문들을 그냥 듣고 흘려버릴 수가 없었다.

        

       “이것도 지난번에 말한 거지만,”

        

       남다운은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크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내가 진짜로 그런 일을 겪었으면, 이 학교에 다닐 생각을 했겠냐?”

        

       “…….”

        

       “아무리 나라도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그룹 회장님한테 찍히면 겁이 나거든? 너라면 안 그렇겠냐?”

        

       “…….”

        

       인간적으로, 두렵기는 할 거다.

        

       내 근처에 오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겠지.

        

       “그래도.”

        

       하지만, 나는 그래도 말했다.

        

       “그래도 듣고 싶어요.”

        

       “흠.”

        

       내가 애원하듯 말하자, 남다운은 잠시 무언가 가늠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여자가 또 움직였나 봐?”

        

       그렇게 물어보는 것이다.

        

       “……아마 그런 것 같아요.”

        

       나름대로 확신하긴 했지만, 어떻게, 어느 정도로 움직일지는 모른다. 만약 이 사람이 겪었던 일에 대한 소문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아마, 이번에는 정말로 참지 못하겠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나 때문에 파괴된다고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다.

        

       “뭐…… 사실 별로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도 아니기는 하지만.”

        

       내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정확하게 읽은 건지, 남다운은 턱을 괸 채로 말했다.

        

       몸짓은 내가 어릴 때 기억하던 남다운보다 다소 가벼워졌을지 몰라도,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저 눈은 그대로였다.

        

       “그래, 정 네가 알고 싶다면야.”

        

       결국, 남다운은 입을 열었다.

        

       *

        

       “……정말이에요?”

        

       “그래, 정말이라니까.”

        

       남다운은 비어있는 캔을 손으로 우그러뜨리며 말했다.

        

       “회사가 망한 것은 원청의 실책 때문이었어. 나는 아직도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아마 그게 그 회장 때문이라는 것은 맞을 거야.”

        

       “…….”

        

       “특허를 훔친 것도 맞고, 그 특허로 역으로 고소를 걸어서 우리 회사가 거액의 배상을 하게 된 것도 맞아. 그런데 그게 ‘너’나 ‘나’ 때문은 아니야. 지극히 우연히 겹친 일일 뿐이지.”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아냐고?”

        

       남다운은 자기 눈을 손으로 가리켰다.

        

       “내 눈은 꽤 정확하거든.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건 없어. 그때의 기억도 선명하고. 애초에 그런 짓은 유진 그룹이 자주 하는 일이거든. 본인들이 보기에 사소하지만, 쓸모 있는 것을 하도급이 만들어내면, 자신들이 먼저 만들었다고 우기는 거.”

        

       “…….”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는 오히려 그게 역풍이 되었나 봐. 그때 아버지 회사는 꽤 잘 나가는 중견기업이었거든. 재판에서 완승까지는 하지 못해도, 오랫동안 시간을 끌면서 열심히 버티고 있었어. 뭐,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내가 들은 것도 이야기 전부가 아니라 아버지를 통해 들은 이야기의 일부 뿐이기만 하지만.”

        

       남다운은 손에 들고 있는 찌그러진 캔을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거기에 냄새를 맡은 기자들도 몰려들고, 여론도 돌아가고 하니까, 유진 그룹 쪽에서는 나름대로 특단의 조치를 취한 거지.”

        

       “특단의 조치?”

        

       “공교롭게도, 우리 아버지 회사와 너희 그룹이 이용하는 은행이 같았거든.”

        

       “…….”

        

       “뭐, 유진 그룹 정도 되는 회사라면 회삿돈을 죄다 은행에만 넣어두지는 않겠지만 말야. 아래에 보험 회사도 있고, 증권 회사도 있고, 현금 자산도 만들고, 자사주 매입도 하고…… 하지만 그래도 그 ‘은행에 넣어 둔 돈’이 우리 회사보다 많았던 건 확실했던 모양이야.”

        

       “그러니까…….”

        

       “그때도 지금도, 유진 그룹은 참 큰 회사였잖아? 회사 자산이 웬만한 국내 은행 총자산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회사니까. ‘자금’이 가장 중요한 은행을 압박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는 말이지.”

        

       “하지만 그거……”

        

       불법이잖아요, 라는 말은 삼켰다. 내가 이 학교에서 한 일 중에도 불법적인 일은 넘친다. 나 뿐만이 아니라, 이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불법적인 일을 세기 시작하면 손가락과 발가락이 모자랄 지경이었으니까.

        

       “아무튼, 전방위로 압박이 들어왔다는 말이야. 고작 그 특허권 하나 때문에.”

        

       “대체 무슨 특허권이길래…….”

        

       “글쎄다, 무슨 핸드폰 액정에 관련된 거였던 것 같은데.”

        

       남다운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말했다.

        

       “아무튼, 그건 실책이었어. 은행 처지에서도 중요 고객을 다른 고객 때문에 내친 격이 되었고, 남아있는 자기 고객도 믿지 못하게 되고, 우리 회사가 도산하면서 특허권 재판을 이어 나가지 못한 덕분에 유진 그룹이 특허권을 가지게 되기는 했지만, 정작 그 이미지가 바깥으로 새어 나가는 바람에 이미지에도 굉장한 타격이 되었고.”

        

       “……그리고 거기에 얽혀서, 선배에 관한 소문도 퍼졌다고요?”

        

       “너에 관한 소문도 퍼졌지.”

        

       “…….”

        

       “왜, 납득이 안 가?”

        

       이야기를 다 들은 내 표정을 보고, 남다운이 물었다.

        

       “그럼 그,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는…….”

        

       “내 부모님 다 살아 계시는데. 멀쩡하게.”

        

       “진짜요?”

        

       “그렇다니까. 아니, 생각을 좀 해 봐.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그런 짓을 할까? 안 그래도 특허 소송으로 이미지가 확 나빠진 상황에서 그런 사건이 터지면, 진짜로 저질렀건 아니건 회사 생명이 끝장날 수도 있지 않겠어?”

        

       “…….”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고.

        

       기억 속의 그 은행원이 말했듯, 이 나라는 유진 그룹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작았으니까.

        

       “적어도 수사는 피할 수 없겠지. 그래, 아버지가 쓰러지셨던 건 사실이야. 혈압이 올라서 쓰러지셨어. 한동안 화병도 앓았고, 정신과도 다니셨지. 하지만 누가 두들겨 팬 건 아니야. 어머니는 이상한 일을 당한 적도 없고, 집에 불이 난 적도 없어. 그냥 형편이 어려워져서 팔아버리고 더 싼 곳으로 간 거지. 그 이후에 불이 났다고 하면 나는 모르는 이야기야.”

        

       “그럼 그 소문들은…….”

        

       “누가 지어낸 거겠지. 초등학생들은 별의 별걸로 아무 의미 없는 소문들을 만들어내는 법이니까. 그런 거 있잖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어떤 그림을 몇 번 보면 죽는다든지, 학교 어디에는 시체가 묻혀있다든지. 갑자기 사라진 나를 대상으로 온갖 이상한 소문이 돌았던 건 그런 이유 아니겠어?”

        

       그런데 누가 그렇게 열심히 믿었던 걸까?

        

       나의 인생을 망쳐버린 그 헛소문들을 믿은 것은 어린아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어른들이 믿지 않았다면, 나는 그런 과거를 겪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가끔은,”

        

       남다운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내쉬듯 말했다.

        

       “어른들도 애들이 하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믿어버리는 것 같더라고. 자신들에게 피해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누가’ 어린아이들의 소문을 어른들 사이로 옮겼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누가’ 부분을 유독 강조하듯 말하며, 남다운은 자신의 이야기를 끝냈다.

        

       “이 정도면 납득했어?”

        

       “…….”

        

       “완전히 믿지는 못하는 모양이네.”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나는 남다운에게 물었다.

        

       “뭘?”

        

       “이 학교에는 왜 돌아온 거에요?”

        

       “…….”

        

       내 질문에, 남다운은 잠시 입을 다물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있는 곳은, 저 멀리서 열심히 축구공으로 축구 연습하는 아이들이었다.

        

       ……뭐,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이쪽을 보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넘어가기로 하자.

        

       “이 학교가 어떤 곳인지는 대충 알고 있어. 그때도 이 눈으로 봤던 곳이니까.”

        

       남다운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생각해보면, 전부 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이더라고. 그래서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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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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