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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크라슈가 여자 기숙사 앞에서 하링을 기다리는 사이.

   여학생들이 크라슈에게 자꾸만 눈길을 주고 갔다.

     

   그야, 크라슈가 워낙 화제의 인물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선뜻 다가오는 인물은 없었다.

     

   발하임이라는 이름 앞에 겁 없이 말 걸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크라슈?”

     

   단, 같은 발하임이라면 예외다.

   크라슈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누님.”

     

   그러자 거기에는 자신과 같은 색의 머리칼을 지닌 여성이 있었다.

     

   검성, 샬롯 발하임.

     

   아무래도 방금전에 돌아온 듯 그녀의 몸은 땀에 살짝 젖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봄임에도 불구하고, 살짝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사자단이 복귀한 것이다.

     

   “크라슈 님!”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옆에는 왜인지 카란디스가 있었다.

     

   포세우스 왕국의 9공주.

   카란디스 포세우스.

     

   샬롯과 마찬가지로 땀에 옷이 젖어 있는 그녀는 건강한 색이 눈에 띄는 피부색 때문인지 색기가 흘렀다.

     

   그런 그녀는 크라슈를 보자마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둘이 왜 함께 있답니까?”

     

   뜻밖의 인원이라 크라슈가 의아함을 보이자 샬롯이 뒤를 힐끗 보았다.

     

   “복귀하면서 따라 오던데.”

     

   크라슈는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자신과 결혼을 원하는 카란디스다.

     

   이번에 임무에서 샬롯이 단장인 사자단에 속했었으니.

   당연히 옳다구나 하고 그녀를 졸졸 따라다닌 거겠지.

   가족부터 꼬셔 내겠다는 작정이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그 가족이 샬롯이라는 점이지만 말이다.

   샬롯은 카란디스가 옆에 있던 말던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히히, 같이 임무를 한 사이인걸요!”

     

   카란디스는 언제든 괜찮다며 사람 좋게 웃었다.

   대단한 멘탈이었다.

     

   그러는 사이, 샬롯은 늘 그렇듯 생기 없는 눈으로 크라슈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크라슈는 왜 여깄어?”

   “사람 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샬롯의 눈이 여자 기숙사로 향했다.

   어쩐지 묘한 눈으로 크라슈를 보던 그녀는 입을 열었다.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은 잊으면 여러모로 피곤해져. 약혼자랑 사이가 안 좋아도 화해하는 게 좋아.”

   “크, 크라슈 님, 약혼자랑 사이 안 좋아요? 그럼 새로운 약혼을 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야기를 들은 카란디스가 살짝 기대하는 눈초리를 지으며 양 검지를 자기한테 가리킨 채 어필을 해왔다.

   그리고 크라슈는 무시했다.

     

   “오해입니다. 비앙카랑은 잘 지냅니다.”

   “그럼 상관없지만.”

     

   그래도 마침 잘됐다.

   어차피 이 뒤에 샬롯을 만날 생각이었으니까.

     

   “누님, 학생단 건으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크라슈는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샬롯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그녀와 그녀의 단의 도움이 필요했다.

     

   “날 만나러 왔던 거야?”

     

   샬롯은 살짝 눈을 크게 뜨곤 곧 자신의 전매특허 웃음인 입꼬리만을 슥 올렸다.

     

   “잘 생각했어. 역시 내 동생이네. 기다리고 있어.”

     

   샬롯은 평소보다 기분 좋은 듯 그리 말하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보아하니 씻고 의복을 갈아입은 뒤 나올 예정인 듯싶었다.

     

   “무슨 일 있는 건가요?”

     

   샬롯이 들어가자 카란디스는 따라가지 않고, 크라슈에게 물었다.

   그런 카란디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크라슈는 악의적인 웃음을 지었다.

     

   “제국과 스타론 왕국 사이에 알력 다툼으로 번져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데. 끼고 싶습니까?”

   “안녕히 계세요! 오늘 얼굴 봐서 너무 좋았어요. 다음에도 또 얼굴 봬요!”

     

   카란디스는 냉큼 도망쳤다.

   아무리 그녀가 시집가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해도 이 정도 스케일에 끼이면 치여 죽는다.

     

   거기다 크라슈가 끼어들지 말라는 뉘앙스를 풍겼으니 눈치채고 바로 발을 빼준 것이다.

     

   ‘눈치 빠른 여자네.’

     

   천재적인 두뇌인 시즐리만큼은 아니어도 능글맞은 카란디스도 보통 녀석은 아니었다.

   과연, 왕족이 잔뜩 있는 포세우스에서 9공주의 신분으로도 살아남을 만하다.

     

   어쨌든 일이 잘 풀렸다.

   이야기를 좀 빨리 끝낼 수 있을 듯하니까.

     

   크라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 때마침 여자 기숙사 쪽에서 아스트리아와 함께 한 인물이 나타났다.

     

   검은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특이한 머리색의 소녀.

   하링 라그렌.

     

   “……크라슈.”

     

   이전에 봤을 때와 달리 굉장히 얼굴이 어두운 그녀가 나타났다.

     

   “괜찮냐.”

     

   하링을 본 크라슈가 물었다.

   그녀의 얼굴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당연하지만 그녀는 아버지가 크게 다치었단 소리를 듣고, 지금 당장 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는 아무런 짐도 없다.

   텅 빈 얼굴로 그녀는 지금 상황을 어쩔 줄 몰라 한 채 멍하니 있었다.

     

   그걸 본 크라슈는 대충 무슨 상황인지 눈치챘다.

     

   ‘라그렌 가문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대기하라 전했겠지.’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제국 입장에서는 극비 상황이니 말이다.

     

   라그렌 가문도 입을 다물어야만 했겠지.

     

   “……응, 괜찮아.”

     

   하링이 멍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녀의 넋은 완전히 나가 있었다.

     

   대화에 전혀 집중 못 하는 모습이었다.

     

   비 오는 날 버려진 고양이도 이런 꼴은 아닐 거다.

     

   크라슈는 아스트리아 쪽을 힐끗 보았다.

     

   그러자 아스트리아는 자기도 무조건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라는 양.

   팔짱 낀 자세로 고개를 젖혀 들고 있었다.

     

   하긴, 아스트리아가 들어도 딱히 상관없는 이야기이니.

   크라슈는 그냥 말하기로 했다.

     

   “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하려고 왔다.”

     

   그리고 하링의 어깨가 처음으로 움찔거렸다.

     

   “난 독왕을 습격한 세계 침식자를 쫓아 하덴하르츠로 갈 생각이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하링이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녀는 눈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신.”

     

   아스트리아도 살짝 찡그린 눈으로 크라슈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무모한 짓이 아니냐는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반면에 하링은 왜 크라슈가 그러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독왕을 중상을 입힌 세계 침식자는 현재 하덴하르츠에 숨어 들어 있다.

     

   당연하지만 이 정도 스케일의 일은 제국과 스타론이 직접 움직일 일이지 가문에서 아무런 직급도 받지 못한 학생들이 움직일만한 일이 아니다.

     

   후기지수가 가봤자 뭐 하러 왔냐며 핍박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하물며, 자신의 아버지가 직접 연관이 된 하링마저 가문에서 직접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건 하링에게는 가장 괴로운 것이었다.

     

   세계 침식자 탓에 오빠를 잃은 그녀는 다시금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평생토록 훈련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가족이 죽을 위기에 처했음에도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이 하링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그녀는 무기력함이 가장 싫고, 괴로웠으니까.

     

   하지만 지금 크라슈는 그런 그녀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세계 침식자를 쫓아 하덴하르츠에 가겠다고.

     

   그 말을 다시금 되새긴 하링의 얼굴이 서서히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 안 돼. 크라슈.”

     

   하링이 비틀거리며 크라슈에게 다가왔다.

   그의 옷깃을 무심코 잡은 하링이 어린애처럼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녀는 크라슈의 이야기를 듣고 무척이나 정신이 없어 보였다.

     

   하링은 나름대로 냉철을 유지하고, 훈련을 반복하며 오늘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진작부터 썩어 있었다.

     

   자신 때문에 오빠가 죽었다.

   그 사실은 평생토록 그녀를 괴롭게 만들었다.

     

   독방 안에서 홀로 숫자를 세던 기억은 그녀의 마음속에 흉터처럼 남아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버지인 독왕이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그 흉터에 또다시 칼자국이 새겨졌다.

   덧난 상처에서 자꾸만 핏물과 고름이 올라왔다.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문은 또다시 자신에게 가만히 있으라 지시했다.

   무기력함이 그녀를 또다시 그때로 끌어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는 마당에 세계 침식자에게 가겠다는 크라슈의 발언을 들은 순간 그녀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링은 임무 이후 크라슈에게 오빠의 모습을 종종 비춰 보았다.

     

   그는 또래보다 어른스러웠고, 종종 무심코 하링에게 연상으로서의 모습을 비추곤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자꾸만 하링에게 오빠를 더더욱 연상케 했다.

     

   가뜩이나 아버지의 건으로 혼란스러운 그녀다.

     

   그래서인지 지금 눈앞에 보이는 크라슈가 오빠인지 아닌지 혼동이 올 만큼 그녀의 혼은 나가 있었다.

     

   “……싫어. 또 그렇게 잃기 싫으니까.”

     

   횡설수설하듯 말한 그녀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자신이 갈 수 없으니까 크라슈가 대신 가는.

   그런 상황이 그때 오빠가 독방에 자신을 혼자 가둔 것과 너무나 똑같이 느껴졌다.

     

   그러는 순간 크라슈의 옷깃을 붙잡고 있던 그녀의 손에 차가운 게 닿은 느낌이 들었다.

     

   그건 다름 아닌 크라슈의 손이었다.

   그 손은 천천히 열기를 머금어 가며 따스함으로 번져 갔다.

     

   “하링.”

     

   크라슈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링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와 마주했다.

     

   하늘 위에 떠 오른 태양을 등진 크라슈의 얼굴은 조금 음영이 져 있었다.

     

   “이번 일로 인해 제국과 스타론의 사이는 그야말로 최악으로 치닫게 될 거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하링에게 크라슈는 천천히 자신이 가야 하는 이유를 말하였다.

     

   “나는 그걸 막을 작정이다. 세계 침식이 각지에서 터지는 마당에 두 나라가 싸워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니까.”

     

   크라슈의 눈은 어느 때 보다 진지했다.

   그는 정말로 이번 일을 직접 막을 속셈이었다.

     

   세계 침식.

   오빠를 세계 침식자가 벌인 세계 침식 속에서 잃은 하링에게 있어서는 가장 막고 싶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막는 데, 네 힘이 필요하다.”

     

   하링의 두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라헬른 아카데미는 표면적으로 화합의 장이다.

     

   제국과 4대 왕국 그리고 소규모의 집단들이 세계 침식만을 위해 싸우겠다는 표명 의지.

     

   그것이 라헬른 아카데미가 설립된 이유였다.

     

   그리고 그런 라헬른 아카데미에는 단이라는 구조가 있다.

   지금은 파벌 싸움으로 쓰이고 있지만, 원래 단의 뜻은 어느 출신인지 관계없이 단장을 믿는 이들이 모여 단을 꾸리는 게 신조다.

     

   말 그대로 화합의 장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려야 하는 게 단이라는 구성이었다.

     

   이런 단에 발하임 직계와 천하십강 중 한 명인 독왕의 딸이 소속된다.

   그리고 그런 독왕의 딸을 위해 독왕의 복수를 돕고자 하덴하르츠에 함께 간다.

     

   세계에 보여줄 화합의 그림으로서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이것만으로 제국 쪽에서 하덴하르츠에 막무가내로 들어오려는 행동을 주춤거리게 할 수 있다.’

     

   제국은 독왕의 복수라는 명분을 앞세워 하덴하르츠로 들이닥치려 하고 있지만.

   그 명분을 가장 강하게 지닌 건 딸인 하링이다.

     

   그녀가 제국의 대표로서 움직이는 시점에서 명분을 빼앗긴 제국도 별다른 수를 낼 수 없다.

   거기에 스타론도 발하임의 직계까지 지원한 만큼 제국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표명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 당장 급한 불을 어떻게든 끌 수 있어.’

     

   외교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명분이다.

     

   그러니 지금 크라슈에게 필요한 건 하링이었다.

   그녀는 현재 사건에서 제국이 지닌 명분의 상징이니까.

     

   “그건…….”

     

   하링의 눈이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하링은 크라슈의 이야기를 일부 이해했다.

     

   그녀는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니니까.

     

   그래서인지 하링은 더더욱 당황했다.

   크라슈가 같이 가자는 발언을 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기 때문이었다.

     

   당혹감에 빠진 그녀가 입을 열었다.

     

   “……가문에서 말했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역시나 크라슈가 예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니 하링은 더더욱 초조했을 것이다.

   가문에서 가만히 있으라 하니 미칠 노릇이었겠지.

     

   하링의 손을 감싼 크라슈의 손에 좀 더 힘이 들어갔다.

   그것만으로 하링은 왜인지 크라슈의 열기가 자신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넌 지금 제국 소속이기 이전에 라헬른 아카데미 학생이야.”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은 가문에서 벗어나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다.

     

   “가문이고 뭐고, 학생이라면 학생 신분답게 행동하면 그만이다. 막무가내로 움직여도 젊음의 치기 취급당할 수 있으니까.”

     

   소속된 단이 다 같이 하덴하르츠로 지원을 간다고 한다.

   그러니 대기를 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같이 갔다.

     

   그렇게 말해 버리면 가문에서 당장 제지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이 세상은 생각보다 막무가내로 우기면 약하거든.”

     

   크라슈는 그렇게 말하고 한차례 세상을 향해 비웃음을 흘려 줬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싫지.”

     

   그리고 하링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마주친 크라슈의 눈은 어느 때 보다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도 아무것도 못 하는 무기력함이 제일 싫다.”

     

   자신은 평생토록 그렇게 살아와야 했으니까.

   이 세상은 무기력하게 사는 이에게 가장 엿 같은 결과를 선사해주니까.

     

   그러니 크라슈는 오늘까지 끝없이 발버둥 치고, 또 발버둥 쳤다.

   그리고 이번에도 발버둥 칠 생각이었다.

     

   아서가 막지 못한 전쟁을 자신은 바닥을 굴러서라도 막을 거다.

     

   “그러니까 죽어라 발버둥 칠 거다.”

     

   하링이 멍하니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너도 발버둥 쳐. 가문이 뭐라든 주변이 뭐라든 세상이 뭐라든.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해.”

     

   그리고 그 말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던 말만 들어오던 하링에게.

   처음으로 무엇이든 하라는 말이었다.

     

   하링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무기력함 대신 새로운 감정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새하얗게 질려 있기만 했던 그녀의 얼굴에 조금씩 혈색이 돌아왔다.

   힘이 빠져 있던 그녀의 몸에 힘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저번 임무에서 빚진 거, 그거 갚으러 간다고 우겨 버려. 라그렌 가문은 빚은 두 배로 갚는다며.”

     

   소년과 같은 장난스러운 웃음이 크라슈의 입가에 걸렸다.

     

   “…….”

     

   그 웃음을 하링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기를 한참.

     

   “하, 후흐흐.”

     

   어째선가 그녀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방금까지 괴롭던 얼굴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비앙카만큼이나 표정이 없던 그녀가 웃어서일까.

   크라슈도 의외라는 눈으로 하링을 바라보았다.

     

   하긴, 이쪽은 눈인형 탓에 감정이 억눌린 건 아니었지.

   웃는 거야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나 말이야. 세계 침식자가 일으킨 세계 침식에서 친오빠를 잃었어.”

     

   돌아온 말을 듣고 크라슈는 잠시 침묵했다.

     

   크라슈는 독봉인 하링에 관해 그렇게 깊게 알지 못했다.

   그저 어렴풋이 그녀가 과거에 무언가를 잃었고, 거기에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뿐.

   그 실상까지는 알 수 없었다.

     

   덕분에 크라슈는 하링이 왜 그토록 백귀를 향한 복수에 미쳐 있었는지 눈치챘다.

   자신의 가문을 다 던지는 한이 있더라도 원한을 쏟아낸 이유를 말이다.

     

   ‘그야, 눈이 돌아갔겠지.’

     

   비앙카가 백귀가 될 수 있었던 것 또한 세계 침식자의 종이 되었던 덕분이었다.

   그러니 그녀는 가족을 두 번이나 세계 침식자가 원인을 제공한 탓에 잃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버지가 그런 세계 침식자에게 당했다고 하니까. 견딜 수 없었어. 그런데도 또 가만히만 있으라고 하니까. 나 자신이 너무 무기력하게 느껴졌어. 노력한 것도 전부 다 의미 없는 것 같았으니까.”

     

   가만히 있으란 말.

   그 말은 하링에게 있어 가장 끔찍하고, 무기력한 말이었다.

     

   결국 가만히 있던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친오빠의 죽음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 크라슈는 말한 것이다.

   가만히 있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니 빚이야.”

     

   겨우 실소를 거둔 그녀가 크라슈에게서 몇 걸음 멀어졌다.

   대신 은은한 웃음기는 여전히 그녀의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것도 빚, 그러니까 갚아 나갈게.”

     

   본인이 그렇게 느꼈다면야.

     

   “그래, 마음대로 해라.”

     

   크라슈도 의지를 존중해줄 뿐이다.

     

   [ 왜 넌 여자애들을 가만두지 못해서 안달이냐? ]

     

   그리고 왜인지 또 욕먹었다.

   오죽하면 아스트리아까지 살짝 언짢은 눈으로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크라슈로는 참 억울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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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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