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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0

     

     

     

    ***

     

     

     

    착.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그토록 작은 소리가 유난히 크게 공간을 울린 건, 같은 공간에 있던 다른 이들이 필시 숨을 죽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유화는 자신을 바라보는 세 여자를 바라보며, 오히려 여유를 보이려는 듯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의 고운 입꼬리가 말아 올라가며, 도도한 그녀의 눈빛 속에 일순 부드러움을 담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세린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분들이시니만큼 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해요.”

     

    그럼에도 유화의 음성을 듣는 세 사람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여태 그 누구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미지의 압박감’을 경험하고 있었다.

     

    겉으로 위협을 가한 것도.

    눈빛으로 적의를 표현한 것도.

    그렇다고 말에 가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유화의 가벼운 말은 단숨에 세 사람을 압도했다.

     

    마치 자신보다 위에 있는 존재를 마주한 듯한 압박감.

    그건 그 누구를 대함에도 긴장하지 않던 은하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예,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미미하게 답한 은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세린 씨와 동갑이라고 하셨죠? 정말…… 굉장히 성숙한 느낌을 주시네요.”

     

    직후 유정의 어색한 답이 뒤를 이었고, 끝으로 수아는 입술을 머뭇거리다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예.”

     

    지극히 짧은 답을 준 수아는 무심코 직감했다.

     

    ‘겉과 속이 달라.’

     

    일찍이 가면을 쓰듯 사람을 대해왔던 수아만이 유화의 특별함을 알아챘다. 아무리 겉으로 부드럽고, 태연함을 비추더라도 유화의 내면은 전혀 다를 거라고.

     

    그리고 그런 수아를 마찬가지로 눈여겨본 유화도 다시금 고개를 까딱였다.

     

    “저에 대해 궁금하신 게 있다면 뭐든 편히 물어보세요.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됐으니, 저도 가능한 한 서로에 대해 알아갔으면 해요.”

     

    여전히 부드럽게 이어진 말.

     

    허나, 세 사람 중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화의 곁에 자리한 세린만이 그 이유를 이해했다.

     

    ‘대체 유화 얘는…….’

     

    처음 세 사람과 인사하는 자리에서 무슨 짓을 하는 걸까. 유화를 조금 말려야 할까 싶으면서도 순간 조심하게 됐다.

     

    지금 유화가 발현하는 건 극도로 날카롭게 벼려진 ‘기세’였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야 평범하지만, 정작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내부를 단숨에 장악한다.

     

    ‘아무리 중원에서와 다르다고 해도.’

     

    유화가 작정하면 이 정도의 분위기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란 소리니까. 괜스레 나까지 숨이 막히는 압박감에 애써 입을 열었다.

     

    “…다들 유화에게 편히 물어보세요. 겉으로 보인 도도한 모습과 달리 나름 친절하니까요.”

     

    나라도 이 분위기를 환기해야 했다. 그렇게 유화를 순간 흘겨보자, 천연덕스레 내 시선을 흘려 넘긴 유화는 아무렇지 않게 눈을 깜빡거렸다.

     

    그게 참 묘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세 사람과 잘 지내길 바랐기에 이 자리를 만든 건데, 유화는 마치 서열이라도 나누려는 듯한 느낌이니까.

     

    “예. 세린 씨, 그렇게 할게요.”

     

    “……유화 씨라고 부르면 될까요? 첫 만남이지만 정말이지 굉장히 대단하신 분 같은 느낌이 들어요. 겉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만 해도 되게 다르시다는 게 느껴지네요.”

     

     

    …….

     

     

    이후 대화는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그럼에도 대화가 멈추진 않았다. 다들 유화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는지, 각자 궁금한 걸 물어보기 시작했고 유화는 담담히 그들의 질문에 답해갔다.

     

    “현재 잠시 일은 쉬고 있어요. 좋은 투자처를 찾는 대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겠지만, 당장은 여유가 좀 있으니까요.”

     

    직업에 관한 질문도 여유롭게 넘어갔고.

     

    “세린이야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죠. 재작년부터 세린이 곤란한 상황인 걸 알게 되자, 저도 남 일처럼 대할 수가 없었어요. 유독 힘든 시기엔 제가 더 세린이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니까요.”

     

    나와 관련한 인연에 대해 유화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세 사람과의 관계는 직접 세린이에게 말을 들었어요. 그리고 저도…… 생각할수록 제 마음을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몰라도 제 마음에도 세린이가 존재했으니까요. 지금의 관계에 저도 불만은 없어요.”

     

    세 사람과, 그리고 나와 얽힌 묘한 관계에 대한 자기의 견마저 차분히 표현한다.

     

    일련의 모든 행동이 태연하고 침착하다.

    오히려 계속해서 질문해가던 세 사람이 그런 유화를 보며 멈칫하게 될 정도였다.

     

    “……정말 뜻이 확고하시네요.”

     

    “아무튼, 유화 언니가 세린 언니 곁에 있으셨기에 전 지금의 세린 언니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관계에 작은 불만도 없어요. 앞으로 더 친해졌으면 해요.”

     

    크게 경계하던 수아마저 어느샌가 유화를 수긍하기 시작하는데, 네 사람의 대화를 마냥 지켜보던 나는 그런 과정이 신기하기만 했다.

     

    “…….”

     

    특히 유화에게 시선이 갔다.

     

    천마라는 자리가, 그저 힘만으로 주어진 게 아니라는 듯 그녀의 화술과 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선 관록마저 엿보였다.

     

    ‘살아온 경험이 달라서 그런 걸까.’

     

    유화는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한 이후 시종일관 자신감을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였던 기세를 통해 대화의 주도권을 쥐었고, 세 사람에게 질문받음에도 유화는 부드럽게 답하고 있었다.

     

    따지면 꽤 부담스러운 자리일 텐데.

     

    오히려 유화를 대하는 세 사람이 부담을 느낄 정도로 유화는 태연하게 이 시간을 보낸다.

     

    “제 의견을 좀 말하고 싶은데 괜찮나요?”

     

    유화가 돌연 태도를 바꾸자, 나는 무슨 질문을 할까 궁금했다.

     

    “그럼요.”

     

    “답해드릴 수 있는 거라면 저도 성실히 답해드릴게요.”

     

    “저도요!”

     

    세 사람의 각기 다른 대답이 울리던 차, 유화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건 너무나 아름답고 또 도발적인 미소임에도 나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대체 뭘 말하려고 저러는 거지?’

     

    묘한 불안감이 엄습하던 차.

     

    “먼저 저부터 허울이나 가식을 좀 내려놓을게요. 이런 건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어야 나중에 서로 간의 불화가 없을 테니까요.”

     

    툭 말을 이은 유화가 살며시 머리칼을 쓸어내리더니, 돌연 날 돌아보았다.

     

    갑자기 날 응시하는 시선에, 멍하니 눈을 깜박이던 차.

     

    “세린아.”

     

    “……어.”

     

    “넌 자신 있는 거지?”

     

    “자신이라니?”

     

    “날 포함해서 넌 네 사람이랑 관계를 맺고 있는 거잖아. 그럼 당연히 우릴 만족시킬 자신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묻는 거야.”

     

    은은한 음성.

    그리고 입가에 자리한 야릇한 미소에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자, 잠깐. 갑자기 그런 말을 물어오는 게 어딨어.”

     

    “이 질문에 그리 부끄러워할 필요가 있어? 당장 나야 그렇다 쳐도 너는 이미 세 사람과 관계를 맺은…….”

     

    말을 잇던 유화가 순간 내게 눈을 흘겼다.

     

    “혹시 ‘아직’이야?”

     

    그녀의 은은한 눈빛에,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불현듯 선명하게 들렸다.

    유화가 아닌 세 사람이 침을 삼키는 듯한 소리가…….

     

     

     

    ***

     

     

     

    첫인상은 굉장히 도도해 보였다.

     

    기가 세 보이고, 섣불리 말을 걸기도 다가가기도 굉장히 힘들 것 같은 인상.

     

    유정이 느낀 유화의 인상이란, 마치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톱스타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이게 어떻게 일반인이야.’

     

    외모도 외모인데, 그 분위기부터 심상찮았으니까.

     

    지금이야 일을 쉬고 있다고 하지만, 천류화란 여자가 평범한 일을 하고 살았을 느낌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후 오간 대화 사이.

     

    ……생각 외로 굉장히 겉모습과 성격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생각보다도 거침없다고 할까.

     

    남들은 쉽게 꺼내지 못 할 말을, 오히려 그녀가 먼저 꺼내 주제를 이끌곤 했다.

     

    그리고 지금.

     

    “”…….””

     

    내실엔 굉장히 묘한 분위기가 존재했다.

     

    세린 씨는 오늘 광고 방송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먼저 돌아간 상황이었고, 그로 인해 넷이서 우린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은하 씨, 수아, 그리고 유화 씨와 나를 포함해 총 넷.’

     

    세린 씨가 없이 이렇게 서로를 바라본다는 게 굉장히 이질적인 상황임에도 현재 가장 중요한 주제가 있었다.

     

    “다들 제 말이 불편해요?”

     

    그리고 다시금 유화 씨가 말하자, 나는 침을 삼키고 다른 두 사람을 바라봤다.

     

    “불편하기보단…… 너무 스스럼없는 것 같은데요.”

     

    “맞아요. 유화 언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말을 나누기엔…….”

     

    주저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나는 좀 반대였다.

     

    “전, 유화 씨말이 괜찮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제대로 말을 나눠야지, 이렇게 피한다고 답이 나오진 않잖아요.”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세린 씨와의 데이트 사이사이 생각은 할 것이다.

     

    언제 관계를 맺을 것인가.

    누가 먼저 관계를 맺을 것인가.

     

    알음알음 서로의 데이트에 대해 말을 나눈다지만, 정작 다들 관계에 대해서만큼은 묘한 마음을 받고 있었다.

     

    “유정 씨가 제 의견에 찬성하신다니까 전 더 과감하게 말을 나누고 싶어요. 저희는 언젠가는 세린과 관계를 맺을 거잖아요? 서로가 세린을 공유하는 관계를 모두가 인정했으니까…… 전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정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정말이지 말함에 있어 거침없다.

    자신감이 돋보이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멍하니 시선이 갔다.

     

    ‘힘들 때 세린 씨를 도와줬다기에…….’

     

    나는 성정이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의 사람이 아닐까 싶었는데, 실상은 압도적인 외모를 지닌 여자였다.

     

    “정한다니요. 혹시 순서라도 정하겠다는 거예요?”

     

    은하 씨가 멍하니 묻자, 유화 씨는 태연히 고갤 끄덕였다.

     

    “예. 누가 먼저 하고, 누가 나중에 하고 이건 어쩔 수 없을 텐데 제대로 의견을 통합해야 세린이도 고민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아는 세린이는 분명 우리 사이에서 고민할 테니까.”

     

    “……유화 씨말대로 저도 공감해요.”

     

    나는 다급히 고갤 끄덕였다.

     

    ‘기회야.’

     

    사실 이렇게 다 같이 모이기엔 서로가 너무 바쁘다.

     

    그리고 관계를 맺는 건 서로가 분명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다. 분위기를 타서 먼저 맺고, 뒤에 하는 사람이 나오면 서로가 서운함을 가질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유화 씨의 태도가 굉장히 시원스럽게 느껴졌다.

     

    “…유화 씨말대로 순서를 정한다고 해요. 그럼 순서를 대체 어떻게 정하실 생각이시죠?”

     

    “그야 여러 방법이 있겠죠. 간단하게는 게임이라던가, 공평한 확률에 기반해서 순서를 정한다든지 말이에요.”

     

    “아니, 은하 언니마저…….”

     

    수아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나는 바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 아예 공평하게 확률로 정할까요?”

     

    다른 걸로 순서를 정하면 무조건 말이 나올 것이다. 

     

    “저는 은하 씨와 수아 씨가 받아들인다면, 지금이라도 순서를 정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유화 씨의 차분한 음성이 종지부를 찍은 것과 같았다.

     

    꿀꺽.

     

    서로가 어느샌가 긴장된 시선을 주고받는다.

     

    세린 씨가 없는 지금.

    누가 가장 먼저 세린 씨와 관계를 맺을지…….

     

    내겐 너무나 큰 운명이 정해지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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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살육에 미친 스트리머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being trapped in the game world for several years, I was transported back to real world. However, my appearance was exactly like that of the character in the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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