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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6

     

     

     

    ***

     

     

     

    과거라는 게 얼마나 삶에 영향을 미칠까.

     

    흔히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과거에 연연해선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앞을 바라보고,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나는 그 말은 옳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내 과거를 모르니까.”

     

    나는 한세린으로 존재하는데.

    정작 ‘한세린’의 과거를 모른다.

     

    모순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모순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

     

    미미하게 숨을 내쉬며, 멍하니 모니터에 시선이 갔다.

     

    오전에 데이트를 마치고, 여느 때처럼 방송 준비하는 지금 갑작스레 든 생각이었다.

     

    오늘 소통 시간에 말할 핫토픽으로 뭘 있을까 하다가 보게 된 하나의 기사.

     

    ㅡ인기 연예인 a양의 충격적인 과거!

     

    그걸 보자, 자연스레 내 과거에 대해서도 생각이 들었다.

     

    ‘서윤이에게 물어볼까.’

     

    자연스레 서윤이가 떠올랐다.

     

    나도 모르는 내 과거가 어땠는지에 대해 호기심이 들면, 그 답을 아는 아마 유일한 사람이 서윤일 테니까.

     

    비록 나는 떠올리지 못하더라도,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서윤이라면 알려줄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생각처럼 쉬운 주제는 아니었다.

     

    “……하.”

     

    한숨을 내쉬다 그만 실소가 새어 나왔다. 언니로서 역할을 다하고, 나는 서윤이를 꽤 오래전부터 크게 생각하게 됐다.

     

    내 세상이 크게 변해서, 이제 연인인 그들이 너무 중요하게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가치.

     

    중요한 사람이라 하면 단언컨대 서윤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묻지 못하는 건, 결국 하나구나.”

     

    서윤이에게 내 과거에 관해 묻고, 알면 더 자연스러워질 수 있는데 나는 이것만큼은 조금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모르는 과거를 알게 되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서윤이가 아는걸, 내가 모른다는 걸 보여주게 될 때 서윤이가 보일 반응이 두려워서.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도 화면에 나온 여러 기사가 내 마음을 자극하듯, 서윤이가 내 과거에 대해 언급하는 날도 올 거라고.

     

    그게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간에…….

     

    사르륵.

     

    거칠게 머리칼을 쓸어 올리면서도 마음이 좀 묘했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

     

    이번 주 방송 스케쥴 중에도 광고 방송이 하나 예정되어 있는데, 나는 괜히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중요한 건 지금이잖아.”

     

    단 한마디로, 내 마음을 바로잡는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과거도 그리고 미래도 아니다.

    분명 앞을 보고 나아가는 데는 과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더 좋은 삶을 생각하면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그리 생각하는데, 나는 이 현실에 중점을 맞췄다.

     

    떠올리지 못하는 미지의 과거에 집착하기도.

    더 좋은 삶을 생각하며 무리하지도 않는다.

     

    이 현실.

    지금의 상황 자체가 내겐 그저 만족스럽고, 행복하니까.

     

    “그래, 그런 거니까.”

     

     

    …….

     

     

    방송이 끝나 저녁 식사 자리.

     

    언제나 그렇듯, 나는 서윤이와 아리와 함께 테이블에 있었다.

     

    달그락달그락.

     

    서로의 식기가 오가는 소리가 작게 울렸고, 그사이 자연스레 대화도 이어졌다.

     

    “…맞다. 아리 언니.”

     

    “응, 왜?”

     

    “언니도 같이 가실래요?”

     

    “어딜?”

     

    “회식 자리요. 뭔가…… 분명 린튜브 편집자랑 우리 언니 모여서 회식하는 자리이긴 한데, 아리 언니만 홀로 두는 건 조금 그렇지 않나 싶어서요. 괜찮으면…….”

     

    “서윤아. 나 괜찮아. 린튜브 편집자들이랑 세린이 모이는 자리에, 내가 거길 왜 가.”

     

    “……그래도 조금 미안해서요. 언니 혼자 있는 거 좀 그렇지 않아요?”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그런 걸로 막 서운해하고 그러진 않아. 다음에 우리 채널 회식할 때 같이 모이면 되는 거지.”

     

    “예, 그럼…… 그렇게 해요.”

     

    서윤이와 아리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잠자코 듣던 난 조금 놀랐다.

     

    아리가 회식 자리에 같이하지 할 수 없다는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나는 왜 이렇게 생소하게 들리는 건지 몰랐다.

     

    “서윤아, 우리 회식 자리 있어?”

     

    나도 모르는 회식 자리.

     

    “응, 이번 주 토요일에 같이 모이려고 언니, 토요일엔 약속 없다고 했잖아.”

     

    “그거야 그렇지, 네가 토요일에 약속 잡지 말고 가족끼리 보내자고 했으니까.”

     

    서윤이가 모처럼 강경하게 말하길래, 나도 토요일엔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조금 묘하게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토요일은 아리 언니까지 단란하게 보내다가 저녁엔 회식 자리 가지려고, 언니 불만 없지?”

     

    싱긋 웃는 서윤이의 모습에, 순간 당한 기분이었다.

     

    “……없긴 하지.”

     

    “그럼 잘됐네, 나도 린튜브 편집자로 일한 지 이제 꽤 됐잖아, 그런데 우리 회식 자리 한번 없었잖아. 소율 언니랑 하윤 언니랑도 얼굴 봐야 하는데 우리 언니가 너무 바쁘니까.”

     

    “아니, 나야 그렇다 쳐도 너는 마음만 먹으면 두 사람이랑 볼 수 있던 거 아니야?”

     

    “그렇지, 그런데 난 처음 회식은 다 같이 보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단호한 서윤이의 말에 이해는 됐다.

     

    나도 모르는 회식 자리가 당혹스럽긴 해도 그 말 자체는 일리가 있다고.

     

    “그리고 있지. 나 밝힐 생각이야.”

     

    “밝히다니?”

     

    “내가 언니 동생이라는 거, 괜히 나중에 가서 두 사람이랑 얼굴 붉힐 일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이제 나도 제대로 편집자로서 제 몫을 하고, 두 언니도 날 인정해주니까 지금이 딱 적기라고 생각해.”

     

    강한 뜻을 담은 서윤이의 모습에, 나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굉장히.’

     

    생각이 깊다.

     

    전에도 서윤이를 보며 느낀 거지만, 설마 그런 생각도 하고 있을 줄 몰랐다.

     

    소위 자기가 낙하산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고 능력을 입증할 때까지, 일부러 내 동생이란 사실을 밝히지 않은 거였다.

     

    “두 사람 많이 놀라겠는데?”

     

    “그치? 나도 두 언니가 얼마나 놀랄지 지금 엄청 기대돼.”

     

    싱글벙글 웃는 서윤이를 보며 나도 덩달아 기대가 됐다.

     

    ‘과연.’

     

    두 사람은 서윤이를 보고 얼마나 놀랄지.

     

     

     

    ***

     

     

     

    2월 5일 토요일.

     

    스륵스륵!

     

    차가운 손을 비벼가면서도 하윤은 연신 새하얀 입김을 토해냈다.

     

    “진짜 날씨 미친 거 아니야?

     

    어느새 2월 초였다.

     

    이제 슬슬 겨울이 그 자리를 비켜줘야 함에도, 냉랭한 겨울은 도저히 그 분노를 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세상을 모두 얼려버릴 듯 연일 한파가 몰아치고 있었다.

     

    “하윤 언니~”

     

    몇 분쯤 더 기다렸을까, 불현들 들린 밝은 소리에 바로 고개가 돌아갔다.

     

    “소율아!”

     

    “오래 기다렸어요?”

     

    “아니, 나도 막 도착했어.”

     

    말하면서 마음엔 절로 안도가 됐다.

     

    “언니도 참, 왜 이렇게 춥게 밖에서 기다렸어요. 안에 있다가 톡으로 저 부르면 합류하면 되는 거잖아요.”

     

    밝게 웃는 소율이를 보며, 불현듯 시선이 갔다.

     

    “넌 춥지도 않아?”

     

    평소 패션을 중시하는 거야 알지만, 패딩도 아닌 짧은 코트를 입고 있다. 이 날씨에 스커트를 입어 새하얀 다리를 훤히 드러나 있는데 난 미친 짓만 같았다.

     

    “춥죠! 그런데 날이 날이잖아요! 다 같이 회식하는 자리 좀 더 예쁘게 꾸며야죠.”

     

    “……누가 보면 우리 중에 남자라도 있는 줄 알겠어.”

     

    완전 여초밭인데, 누구 보라고 자길 꾸민단 말인가.

     

    “쯧쯧! 이래서 언니가 안 된다니까요. 모처럼 세린 언니랑 신규 편집자도 다 같이 만나는 자리인데, 막 후줄근하게 만나요?”

     

    “아니, 후줄근하게까진 아니구,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괜히 내 패션에 시선이 갔다.

     

    당장 전신을 덮는 롱패딩에, 새하얀 털모자까지 쓴 영락없는 패션테러리스트. 그것도 소율이의 멋들어진 패션에 비해, 내가 더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일찍 오길 잘했어요. 안으로 들어가서 언니 메이크업이라도 좀 해요.”

     

    “……메이크업?”

     

    “저 언니 이렇게 올 거 같아서 일부러 일찍 만나자고 한 거예요. 제 백에 뷰티품들 좀 가져왔거든요. 자자, 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스륵!

     

    자연스레 내 팔을 이끄는 소율이를 따라가면서도 멈칫했다.

     

    ‘나, 최소한의 메이크업은 한 상태인데…….’

     

    소율이가 보기엔 난 메이크업도 형편없는 걸까.

     

    괜히 민망하면서도 어미 새를 따라가는 새끼 새처럼 소율이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

     

     

    이후 소율이에게 메이크업을 받고, 조금은 따스한 실내에서 롱패딩도 벗을 수 있을 수 있었다.

     

    철컥.

     

    그리고 약속 잡은 룸으로 들어선 순간, 나도 모르게 놀랐다.

     

    “…가게 외부부터 세련됐다 싶었는데.”

     

    “그러게요. 여기 되게 비싸 보이는데.”

     

    소율이마저 감탄하자, 나는 조심스레 드넓은 내부의 한편에 착석했다. 소율이도 근처에 자리하자, 나는 기대감과 설렘이 전신을 가득 채웠다.

     

    “서윤 씨는 어떤 분일까.”

     

    “그냥 귀엽지 않겠어요? 톡 말투라든가, 프로필만 봐도 너무 귀엽게 생겼던데.”

     

    “그러게, 아니 나 진짜 신기한 게 보통 편집자 하는 사람들이 다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사람이 많아?”

     

    “그럴 리가요.”

     

    “그런데 왜 난…… 소율이 너도 그렇고 서윤 씨도 다 예쁘고 귀여운 사람만 보게 되나 싶어서.”

     

    “그거야 경쟁률이 치열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경쟁률?”

     

    “린튜브 지금 300만 구독자 넘었잖아요. 이런 대형 뉴튜버 채널에 단순 일 잘하는 능력만으로 뽑히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요즘 시대엔 외모도 능력 중 하나잖아요.”

     

    싱긋 웃는 소율이를 보며, 나는 그 자신감이 부러웠다.

     

    ‘일도 잘하고… 예쁘기도 하고, 자기 관리도 철저하지.’

     

    나보다 어린데도, 가끔 보면 소율이가 언니처럼 느껴질 때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언니도 롱패딩 벗고 메이크업하니까, 나쁘진 않잖아요.”

     

    “그, 그런가?”

     

    “언니도 자신감 가져요!”

     

    소율이의 말에 괜히 기분이 들떴다.

     

    시간이 흘러 약속 시간이 다가오던 차.

     

    철컥.

     

    다시금 룸의 문이 열렸다.

     

    나와 소율이가 자연스레 문으로 시선을 둔 그때.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익숙한 세린 씨와 아마 서윤 씨로 보이는 작은 여성분이 들어오는데……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게 됐다.

     

    “어서 와요! 와, 서윤 씨 이렇게 예쁜 분이었어요?”

     

    밝게 답하는 소율이에 비해, 나는 순간 이질감을 느꼈다.

     

    ‘뭐지?’

     

    분명 너무 화사한 미모를 지닌 세린 씨도,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귀엽다고 느낄만한 서윤 씨의 외모는 대단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상반된 미모를 지닌 두 사람이 묘하게 내겐 비슷하게 느껴졌다.

     

    스륵.

     

    이내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내겐 서윤 씨가 더 가까이서 보였다.

     

    “하윤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살갑게 웃는 서윤 씨를 보며, 나는 멍하니 고갤 끄덕였다.

     

    “네, 네. 그럼요.”

     

    “에이, 하윤 언니. 톡으로 저희 이미 말 다 놨잖아요. 하윤 언니도 저 편하게 대하세요.”

     

    소율이와 다른 의미의 밝음에 멈칫하면서도 고갤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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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살육에 미친 스트리머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being trapped in the game world for several years, I was transported back to real world. However, my appearance was exactly like that of the character in the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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