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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케에에엥….”

       

       우리에게 맹렬하게 달려들던 늑대는 잠시 후 온몸에 불화살이 박힌 채 털썩 쓰러졌다. 

       

       쓰러진 늑대의 몸 곳곳에서 작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늑대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지고 나서야 몸에 박혀 선명히 타오르던 파이어 애로우가 공중에 흩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작게 박수를 치며 혼잣말을 했다. 

       

       “이야, 역시 천재라니까.”

       

       단순히 마법을 빠르게 캐스팅한 것뿐 아니라, 다수를 캐스팅한 다음 그걸 하나 하나 정확하게 컨트롤해서 움직이는 표적에 전부 적중시켰다. 

       익힌 지 몇 시간도 안 된 마법을 컨트롤한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정확성이었다.

       

       “재능이 부럽구나, 부러워.”

       

       나도 저 재능의 반만, 아니 반의 반만….

       아니, 반의 반의 반의 반만 있었으면.

       

       [Lv.1 레온]

       힘 : 6 민첩 : 7 체력 : 5 마력 : 3

       고유 특성 : 잠김

       스킬 : 없음

       

       몸뚱이를 직접 움직여 나무 막대를 휘두르는 것 말고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새삼 씁쓸했다. 

       

       ‘나중에 돈 좀 벌면 마법서라도 사든가 해야지.’

       

       「레키온 사가」에서 가장 간편하게 스킬을 배울 수 있는 방법.

       

       마법서, 혹은 검술 비급서를 구입해서 익혀 ‘스킬’란에 등록시키는 것. 

       

       ‘캐릭터의 잠재력이나 특성, 현재 스탯에 따라서 습득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몇 번 실패하면 책이 내구도가 다 돼서 사라지긴 하지만….’

       

       다른 건 현실적으로 만들어 놨으면서 책이 내구도가 다해 사라진다는 게 처음엔 이해가 안 됐었는데, 그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마법서나 비급서를 만들 때 종이에 마나를 담아 만들기 때문에 손을 대고 읽는 것만으로 쉽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지만, 그 마나가 다 되면 종이가 바스러져 책이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나.’

       

       그게 싫으면 진짜 이론이 빽빽하게 적혀 있는 두꺼운 기초 서적을 한 문장씩 읽으면서 이해하고 연습하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방법도 있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이 평범한 시골 청년의 잠재력으로 마법 하나를 익히는 데에만 한세월이 걸릴 것이다. 

       

       실제로 게임에서도 ‘이론 서적 읽기’로 이해도를 0.1%씩 올려 가면서 노가다로 저렴하게 스킬을 익히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까놓고 말해 아무도 안 쓰는 방법이었다. 

       

       나도 딱 한 번 해 보고 그다음부턴 그냥 돈 벌어서 마법서 사 익혔고. 

       

       ‘그러니 이 몸으로 마법을 쓰려면 마법서가 필수라고 봐야겠지.’

       

       물론 그렇게 편리하게 마법을 익힐 수 있는 물건인 만큼 가격은 상당한 편.

       

       ‘그래도 나중을 위해서라도 사긴 해야 돼.’

       

       아무리 내가 추후에 길고 가늘게 조용히 유유자적 살고 싶다지만, 해츨링이 자립하고 나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내 몸 하나 지킬 힘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재능이 없어서 마법서 습득에 실패하면…. 될 때까지 사서 어거지로라도 스킬란에 등록해야지 뭐.’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돈이 부족한 건 아닌지 점검해 보라고 했던가.

       

       마법서마다 다르긴 하지만, 레키온 사가에는 습득에 실패해도 몇 번 동종의 마법서를 사용하다 보면 확정적으로 스킬 습득에 성공하는 일종의 천장 시스템이 존재한다.

       

       ‘습득에 실패했다고 해서 한 번 흡수된 지식이 완전히 날아가는 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하여간 이 게임은 쓸데없이 설정이 디테일하다니까.’

       

       그냥 ‘천장 시스템이 있습니다’ 하면 그만인데 꼭 찾아 보면 이유가 있다.

       

       사실 이 게임의 매력 중 하나가 그거기도 하지만.

       

       여튼, 미래를 위해서는 저 비어 있는 스킬란을 채우긴 해야 한다. 

       

       ‘되도록이면 마법으로. 솔직히 게임 안에서면 몰라도 검술을 직접 배워 쓰는 건 좀 무섭거든.’

       

       겉보기엔 꽤나 건장한 청년이지만, 이 몸 안에 들어 있는 건 21세기 첨단 IT 시대에 살던 온실 속의 현대인이다. 

       

       슬리퍼 신고 뛰다가 넘어져서 무릎만 까져도 아파서 며칠 동안 고생하는 현대인 말이다.

       

       ‘혹시라도 산적을 만나 싸우다가 상대의 검에 베이기라도 하면….’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러니 이왕 무력으로 일을 해결해야 한다면, 멀리서 직접 손을 안 대고 해결이 가능한 마법을 익히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게다가 잠겨 있다는 고유 특성은 뭐 언제 어떻게 열리는 건지도 모르겠으니….’

       

       일단은 없는 셈치고 마법서 살 돈이나 천천히 모아야 할 것 같았다.

       

       “쀼우?”

       

       마법 천재인 우리 해츨링을 부러워하며 심각하게 내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자, 무슨 생각을 하냐는 듯 해츨링이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아무것도 아냐. 그냥 네 마법 재능이 부럽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쀼우우?”

       

       이게 부러울 정도인가, 하는 얼굴로 해츨링이 고개를 갸웃했다. 

       

       만약에 사람이 이랬으면 기만자라면서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반응이었지만, 해츨링의 순수한 얼굴을 보면 정말 자신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는 인간이라서, 드래곤이랑 달리 마법을 그렇게 빨리 익힐 수가 없거든. 그래서 네가 부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란다.”

       “쀼우!”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해츨링의 눈이 커졌다. 

       

       “뀨우….”

       

       해츨링은 내 고민을 듣고, 뭔가를 깊이 생각하듯 작은 손을 자신의 턱에 가져다 댄 뒤 손톱으로 턱끝을 톡톡 두드렸다. 

       하지만 별로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듯, 곧 양쪽 관자놀이에 손을 얹고 감은 눈에 힘을 주었다.

       

       “…혹시 나한테 마법을 가르쳐 줄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거니?”

       “쀼!”

       

       해츨링의 대답에 내가 피식 웃었다. 

       

       “아냐, 아냐. 괜찮아. 나는 나중에 마법서라는 걸 사서 따로 익힐 생각이라, 지금 당장은 안 배워도 괜찮단다.”

       “쀼우?”

       “그럼. 정말이고말고.”

       

       그리고 어차피 네가 가르쳐 줘도 아마 난 못 알아들을 거야….

       모르긴 몰라도 아마 뉴턴한테 물리학 강의 듣는 기분일걸.

       

       “지금 당장 마법을 못 써도, 네가 있으면 든든하니까 정말로 걱정 안 해도 돼.”

       

       나는 여전히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해츨링을 안심시켰다. 

       

       “쀼? 쀼우!”

       

       다행히 ‘네가 있으면 든든하니까’라는 말에 귀가 쫑긋 서며 표정이 밝아진 해츨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에게 맡기라는 듯 배를 쭉 내밀어 보였다.

       

       그리고 내친 김에 숙련도를 올리려는 듯, 허공에 화염 마법을 하나씩 시전하는 연습을 했다.

       

       나는 마법에 잔뜩 집중한 해츨링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열심히 하는 모습도 귀엽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나기 위해 해츨링의 연습을 멈추게 하려는 순간. 

       

       ‘어? 저건.’

       

       문득 전방의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새 하나를 발견한 나는, 재빨리 그 새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야, 저거! 저거 파이어 애로우로 맞힐 수 있겠어?”

       “쀼우? 쁏!”

       

       쐐애애애액!

       

       해츨링은 목표를 포착하자마자 불화살을 날렸고.

       

       “꽤액!”

       

       불화살을 정통으로 맞은 새가 나무에서 툭, 떨어졌다.

       

       나는 새가 떨어진 곳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내 눈이 맞았음을 확인하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얘야, 잘했어! 오늘 점심은 치킨이닭!”

       

       ***

       

       화르륵!

       

       나무 꼬챙이에 꿴 ‘도도’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며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고기가 골고루 익도록 조금씩 꼬챙이를 돌렸다.

       

       ‘이젠 불도 해츨링이 피워 주니 진짜 편하네.’

       

       이젠 힘들게 손을 비빌 필요 없이, 주변에서 땔감만 구해서 대충 모아 놓으면 해츨링이 화염 마법으로 간단하게 불을 지필 수 있었다. 

       

       “이제 된 거 같은데.”

       “쀼우!”

       

       곧 골고루 익은 고기를 빼서 조금 식힌 뒤, 다리를 하나 뜯어 해츨링에게 주고 나도 하나 집어들었다. 

       

       그리고, 우리 둘 모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기를 덥썩 물었다. 

       

       “오오!”

       “뀨우우!”

       

       속까지 잘 훈제되어 익은 부드러운 다리살이, 이로 물자마자 아주 유연하게 뜯겨 나왔다.

       

       적당한 크기로 입에 들어온 고기를 씹자, 내가 아는 닭고기의 맛에 약간의 풍미를 더한 감칠맛이 입 안에 가득 퍼져 나갔다. 

       

       ‘입에서 살살 녹는데…? 시중에 파는 통닭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

       

       이 새의 이름은 도도.

       지구에서 멸종된 새로 유명한 ‘도도새’와 이름은 같지만 생김새나 특징은 조금 다르다. 

       

       ‘레키온 사가의 도도는 닭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의 몸집에, 꽤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고기가 맛이 없다고 알려진 ‘도도새’와 달리 진짜 치킨인 닭고기보다도 고기의 질이 좋고 맛있다.

       

       ‘…라고 게임 설명에 쓰여 있어서 맛이 궁금했었는데. 이게 진짜였네.’

       

       심지어 지금 먹고 있는 도도의 고기는 그 어떤 양념이나 소금 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

       그럼에도 그냥 구워 먹는 것만으로도 맛이 일품이었다. 

       

       굳이 따지면 튀기고 양념까지 바른 치킨보다는 좀 덜 맛있지만 일반 통닭과 비교하면 확실히 맛있는 정도.

       

       ‘근데 그게 어디냐!’

       

       이 판타지 세계에서 치킨과 유사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운 일이었다.

       

       ‘마침 늑대라도 구워서 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는데, 도도가 나타나 주다니.’

       

       늑대야 아무리 잡아 봤자 당장 그 질긴 가죽을 가를 칼도 없고 고기를 손질하기도 힘들지만, 도도는 살 자체가 부드럽고 뼈도 잘 분리되는 편이라 바로 구워서 뜯어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뀨우, 뀨우우!”

       “맛있어?”

       “뀨우우!”

       

       해츨링 역시 꼬리로 연신 땅을 톡톡 두드려 가며 도도 다리 하나를 뚝딱 해치웠다. 

       

       놀랍게도 도도의 고기는 날개도, 가슴살도 굉장히 부드러웠고, 우리는 배가 부를 때까지 정신없이 고기를 뜯어먹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이것까지 먹으면….”

       

       나는 주머니에서 주먹만 한 옐로베리를 두 개 꺼냈다.

       

       아까 땔감을 주우러 다니다가 운 좋게 발견한 옐로베리 나무에서 몇 개를 따 온 것이었다.

       

       촤압.

       

       “와…. 진짜 맛있네, 이거.”

       “쀼우웃!”

       

       해츨링과 하나씩 잡고 베어 문 옐로베리의 과즙이, 고기만 먹어 살짝 느끼하고 텁텁했던 목구멍을 한 번에 상큼하게 물들여 주었다.

       

       망고와 딸기를 섞은 맛이라더니, 정말 두 과일의 맛있는 포인트만 쏙 빼서 섞은 새콤달콤한 맛이었다.

       

       ‘이거 한국에 수입하면 딸기망고스무디 좋아하는 사람들은 환장하고 사 먹겠는데. 물론 나를 포함해서.’

       

       잠깐, 스무디?

       

       만약 해츨링이 빙결 마법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작은 얼음 알갱이들과 섞어 옐로베리 스무디를 만들어 볼 수 있을지도…?

       

       아직 치아가 조그만 해츨링도 먹기가 편한, 아주 맛있는 간식이 될 것 같은데.

       

       ‘기회가 되면 얼음도 한 번 보여줘 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옐로베리 하나를 다 해치운 나는 해츨링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곧 웃음을 터뜨렸다.

       

       “뀨우웅…!”

       “푸흐흣.”

       

       촤압, 촵.

       

       옐로베리 과육에 입을 파묻고 먹은 해츨링의 입가에 노란색 즙이 엉망으로 묻어 있었다.

       

       “맛있게 먹었나 보네.”

       “쀼우웃!”

       “그래도 입가는 닦아야지.”

       “쀽, 쁏?”

       

       나는 깨끗한 나뭇잎으로 해츨링의 입가를 꼼꼼히 닦아 주었다. 

       

       “자, 됐다.”

       “쀼웃…!”

       

       해츨링은 부끄러웠는지 이미 깨끗해진 자신의 입가를 쪼그만 손으로 한 번 더 더듬으며 문질렀다.

       

       여튼, 그렇게 도도와 옐로베리 덕분에 식량 문제를 생각보다 간단히 해결한 우리는 여전히 마법을 무기로 거침없이 직선 거리 행군을 해 나갔고.

       

       그 결과, 다음날 해가 지기 전에 그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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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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