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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순식간에 파티의 가십거리는 프란체 데카르트로 고정되었다. 하긴, 방금까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파티장을 뛰쳐나가기까지 했는데,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입장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두 눈 똑바로 뜨세요. 고개는 뻣뻣이 들고 오만한 표정을 유지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앞으로의 작전에 필요한 겁니다.”

         

       프란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가면을 쓰는 건 익숙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요청한 것을 단번에 이행했다.

         

       “이러면 되니?”

       “충분합니다.”

         

       그렇게 둘이 나란히 파티장을 걷기 시작했다.

         

       “그래서, 작전은 뭔데?”

       “우선 춤을 춥시다.”

       “…뭐?”

       “이것도 작전에 필요한 일입니다.”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게 아니고?”

       “그럴 리가요. 저는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합니다.”

         

       프란체는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았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왕족이었어서 그런지 춤을 잘 추네.”

       “이 정도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사실 모른다. 그냥 진의 감각에 맡기고 몸이 가는 대로 움직일 뿐.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던 놈이 어떻게 춤을 춰? 클럽도 가본 적이 없는데.

         

       “이제는 작전이 뭔지 물어도 되겠니?”

       “그를 험담하는 겁니다. 악소문을 퍼트리기 위해서.”

       “뭐…?”

         

       프란체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제정신이야?”

       “물론, 제정신입니다.”

       “그래, 일단 들어나 보자. 무슨 소문을 퍼트릴 건데?”

       “소 공작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을 냅시다.”

       “…진짜 미쳤구나.”

         

       미쳤다고 해도 상관없다. 막무가내라고 해도 상관없다. 지금은 그녀가 받은 상처를 아물게 만드는 것이 먼저였으니.

         

       그녀와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는 프란체가 모두에게 핍박받고 누군가에게 버려질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프란체는 단순히 ‘로판소’에서 소모하기 위해 만들어낸 악역. 이야기를 진행 시키기 위해 제작사가 만들어낸 피해자일 뿐이니까.

         

       “그래서, 구체적인 계획이라는 게 소 공작이 동성애자라고 소문내는 것뿐이야?”

       “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그녀가 오묘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원래 사교계는 그런 법입니다. 이 계획만 성공하면 소 공작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퍼질 것이고, 주인님의 명예에 금이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 그리고 저는 그냥 호위기사라고 소개하셔도 좋습니다.”

         

       프란체가 눈을 얕게 떴다.

         

       “그래, 일단은 해볼게.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잘 생각하셨습니다.”

         

       나와 프란체는 음악에 맞춰 계속 춤을 췄다. 한 곡으로는 부족하니 다음 곡까지 진행했다. 그래야 오가는 이야기가 좀 더 가속화될 테니까.

         

       ‘…슬슬 소문이 들릴 때가 됐는데.’

         

       예민한 감각을 통해 음악 소리를 차단한다. 사방에 퍼진 귀족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내가 저번에 먹었던 여자가…….

       ―진짜? 어떻게 꼬셨대?

       ―간단하지. 얼굴이 되잖냐.

         

       ……이건 필요 없는 이야기니 넘어가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내가 원하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데카르트 공녀님이 다른 남성분과 춤을 추고 계신대요?

       ―정말 공녀님께서 다른 남자와 정분이 났던 걸까요? 그래서 소 공작님이 일방적인 파혼을 요구했던 거고…….

       ―저 데카르트 공녀님이라면 그럴 만도 하세요.

       ―쉿! 말조심합시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아마 다 공감하실 거예요.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듣고 있다, 개 같은 년들아. 공감은 무슨 공감이야?

       

       뭐, 그래도 1차 목적은 이뤘으니 이 문제는 넘기고. 나는 프란체에게 말했다.

         

       “저쪽에 보이는 영부인들 있죠? 음악이 끝나는 즉시 저기로 갑시다.”

       “저 부인들? 나와는 친분이 없는데. 무엇보다 영향력이 그다지 없는 것들이기도 하고.”

       “걱정하지 마세요. 원래 소문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법이니까.”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어울려 줄게.”

         

       그녀의 허락이 떨어졌다. 이것으로 첫 단추를 꿰맨다. 그리고 잠시 후. 음악이 끝나고, 나와 프란체는 아까 프란체로 대화를 하고 있던 영부인들이 앉아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어머, 데카르트 공녀님. 여기엔 무슨 일이신지요?”

       “제가 찾아오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만…….”

         

       조금 살살 말해. 가면을 써도 너무 두껍게 썼잖아. 나는 프란체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부터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그래.”

       “일단 자연스레 대화를 유도하세요. 소 공작님과 있었던 일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프란체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제가 찾아온 이유에 큰 뜻은 없어요.”

       “그러시다면…?”

       “페르시아 소 공작님과 있었던 일 때문에 왔습니다. 저와 관계있는 자들에게 말하긴 그러니 부인들에게만 이야기하는 거예요.”

         

       영부인들이 눈빛을 반짝거리며 호기심을 보였다. 그래, 궁금해 미치겠지? 프란체는 살포시 그녀들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어떻게 되신 건데요?”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프란체는 잠깐 뜸을 들이며, 영부인들에게 고개를 들이밀며 속삭였다.

         

       “소 공작님은 여성에게 관심이 없으신 분이랍니다.”

       “여성에게 관심이 없으시다고요?”

       “그래요. 그것도 단순히 일이나 단련에 미쳐서 여성에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랍니다?”

       “그럼 뭔가요?”

         

       주변에 누가 있을까 봐 프란체가 주변을 살폈다. 적당한 연출이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비밀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물론, 이야기를 듣는 영부인들은 떠들고 다니겠지만.

         

       “…소 공작님께서는 남성분을 좋아하십니다.”

         

       철렁! 마치 잔잔한 호수에 큰 바위를 던진 것처럼 영부인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눈은 휘둥그레지고 입은 떡 벌어진 것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 그게 사실인가요?”

       “그래요.”

       “하지만 남성분과 정분이 나기에는…….”

         

       난데없이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영부인들이 머뭇거렸다. 프란체가 말했다.

         

       “제가 소 공작님과 단순한 이유로 약혼이 깨질 리가 없지 않나요? 소 공작님은 그동안 참으려고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셨나 봐요. 이미 관계를 가지고 있는 남성분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 파혼을 요청하신 거고.”

         

       어, 그렇게까지 얘기하라곤 안 했는데. 그냥 동성애자 같다고 소문을 퍼트리라고 했지…….

         

       “…그, 그게 정말인가요?”

       “제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나요?”

         

       영애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치를 본다.

         

       “아까는 추한 모습을 보였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소 공작님의 취향이 그런 건데 어쩔 방도가 없죠. 그리고, 기껏 파티에 왔는데 파혼을 당했다는 이유로 즐기지 못하는 건 아깝지 않겠어요?”

         

       씨익. 프란체가 웃었다. 역시 가면을 쓰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라 그런지 완벽한 연기였다. 저 영애들이 홀딱 넘어갔으니.

         

       “아무튼. 이건 영부인들만 알고 계세요.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면 안 된답니다?”

       “예, 예! 물론이지요!”

       “데카르트 공녀님의 말씀은 따라야지요!”

         

       말은 저렇게 해놓고 여기저기에 떠들고 다니겠지. 그게 너희들이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재미 요소니까.

         

       “그런데 옆에 계신 남성분은 누구신가요?”

       “아, 그러고 보니 소개가 늦었군요. 그저 제 직속 호위기사일 뿐이랍니다.”

       

       괜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직속 호위기사라고 못까지 박았다.

         

       싱긋 웃어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프란체. 나는 다시 그녀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다른 쪽에도 소문을 퍼트리죠.”

       “그래.”

         

       이후, 나와 프란체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영부인, 영애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카서스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을 퍼트리고 다녔다.

         

       아마 영부인들이나 영애들은 속으로 찾아오는 프란체를 욕하고 있었을 거다. 그럴 것이, 다가갈 때부터 표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니.

         

       그렇다고 해서 그녀들이 말을 걸어오는 공녀를 무시할 순 없었다. 프란체가 집안에서 받는 취급이 좀 그래서 그렇지, 엄연히 공녀라는 위치가 있으니까. 이 사교계에서 데카르트 공작가의 막내딸이라는 위치는 견고한 법이다.

         

       “이 정도면 되겠네요.”

       “그런데 이래도 정말 괜찮은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으니 그 출처를 잡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말을 떠벌리고 다니는 거지?”

       “…….”

       “…….”

         

       카서스는 쉽게 출처를 찾았다. 이러면 뻔뻔하게 나갈 수밖에 없지. 나는 프란체에게 속삭였다.

         

       “뻔뻔하게 나가세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프란체는 내 말을 듣자마자 바로 반응해 카서스에게 말했다.

         

       “네? 저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요.”

       “지금 곳곳에 퍼지고 있는 소문, 내가 그 출처를 모를 것 같았나?”

       “제가 그런 소문을 퍼트릴 리 없잖아요? 데카르트의 공녀를 뭐로 보시는 건지.”

         

       카서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하, 내가 그대의 생각도 모를 것 같나? 일방적으로 파혼당한 것이 자존심 상해 나를 음해하고 다니는 거겠지.”

         

       반면 프란체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가면을 쓰는 건 그녀에게 그 어떤 일보다 익숙한 일이었으니.

         

       “그런 추론으로 지금 저에게 화를 내시는 건가요?”

       “추론? 이미 저쪽에 있는 영부인들에게 들었네. 공녀가 직접 말했다고 말이야.”

       “저는 저 영부인들과는 친분이 없는데요…? 그건 소 공작님께서 잘 아실 텐데요.”

         

       카서스는 이를 악물며 눈썹을 좁히곤 프란체를 노려봤다.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히 넘어갈 것 같나?”

       “저는 억울할 뿐이네요. 더이상 드릴 말씀은 없는 것 같습니다.”

         

       좋다. 잘하고 있어. 내 청각을 통해 새로운 가십거리가 들려오고 있으니까.

         

       ―소 공작님께서 공녀님에게 화를 내고 계신데요?

       ―무슨 일이시지? 설마 그 소문이 진짜였던 걸까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동성애자라는 소문의 출처가 공녀님이시니…….

       ―그런데 공녀님은 그걸 어찌 아셨을까요?

       ―약혼한 사이인 만큼 만남이 많았겠지요. 여자의 감은 무시할 수 없답니다.

         

       그래, 그렇게 계속 소문을 퍼트려. 아주 잘 하고 있다.

         

       “프란체 데카르트. 이 일은 절대 잊지 않을 거다”

         

       카서스가 오만상을 구기며 파티장을 나갔다. 쿵쿵. 발걸음을 어찌나 세게 밟는지, 구두 소리가 파티장 전역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버러지 새끼. 게임 할 때도 그렇고, 프란체에게 독설을 내뱉을 때도 그렇고. 저 새끼 때문에 열 한 번 제대로 받았는데 속이 다 시원하다.

         

       아마도 서브 남주인 만큼 곧 도착할 소미레를 보기 위해 억지로 파티에 참여했을 건데, 이런 일이 벌어지니 기분이 다 상해버렸겠지.

         

       ‘아까 그렇게 아가리를 털더니, 꼴 좋다. 씹새끼야.’

         

       이 세계에서 동성애는 죄악이다. 추문을 피할 순 없겠지. 앞으로 고생 좀 할 거라는 생각에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러나 프란체는 불안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이래도 괜찮았던 걸까?”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소문의 출처가 주인님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 않습니까? 다른 영부인이나 영애들이 그렇다고 하면 아까처럼 아니라고 잡아떼시면 됩니다.”

         

       프란체는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심란한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주제를 돌렸다.

         

       “일단 테라스로 나가볼까요? 바람이라도 쐬면 기분이 나아지실 겁니다.”

       “그래. 안 그래도 심란하니 조금은 마음을 식힐 필요가 있을 거 같아.”

         

       그렇게 우리는 테라스로 나왔다. 역시나. 무수히 많은 별빛이 반짝이는 이 세계의 밤하늘은 아름다웠다.

         

       “어떠세요? 기분은 좀 나아지셨습니까?”

       “그렇네. 아까까지만 해도 저 중의 하나가 되고 싶었는데.”

         

       프란체의 눈망울이 흔들렸다. 그걸 보고 있는 나마저 서글퍼지는 느낌이었다.

         

       “너와 만나서 다행이구나. 정말로.”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그래, 이거라고. 조금씩 다가가서 노예 각인을 풀어달라고 하자.

         

       “하아.”

         

       프란체가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냥. 내가 믿었던 유일한 탈출구가 사라졌으니까.”

       “…….”

         

       카서스는 탈출구가 아니다. 도피처일 뿐이지. 당장은 취급이 나아지더라도, 결과는 똑같았을 거다. 차라리 이게 나은 거야.

         

       그때. 프란체가 날 바라봤다. 소 공작에게 사소한 복수를 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좋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문득 프란체가 물었다.

         

       “…너는 절대 나를 떠나지 않을 거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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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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