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4

       예사라를 포함한 세 명의 히로인 중 하나인 ‘신소희’는 다른 캐릭터들과는 다소 동떨어진 설정을 가진 캐릭터였다.

       

       애초에 학교부터가 다르다. 돈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학교로 유명한 화영 고등학교에 다니는 다른 히로인들과는 달리, 신소희는 근방의 평범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갸루 캐릭터’라고는 하지만, 외모가 이럴수록 오히려 성격은 청순하다는 유행을 따라 만들어진 신소희는, 백합 루트의 윤다호 같은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러니까, 설정상 다른 학교에 다니기는 하지만 별다른 육성 없이도 쉽게 공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If you wish’는 이렇게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루트를 몇 번 깨다 보면 감을 잡고 다른 캐릭터를 공략하기 쉬워진다……라는 것이 제작자의 주장이었다.

       

       예를 들어 윤다호는 노멀 루트의 표준이다. 싸가지 없는 남자 캐릭터이자, 주인공의 육성에 따라 공략 대상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어떻게 육성하더라도 쉽게 공략에 들어갈 수 있고, ‘육성’이 앞으로 다른 캐릭터를 공략할 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대략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였다……라고 위키에 쓰여 있었다.

       

       신소희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였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달랐다.

       

       이쪽 세계에선 여자가 여자끼리 사귀는 것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평범한’ 일도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남자는 여자에게 반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반하는 것이 대체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내가 살던 보통 세계와 같았지만, 그렇다고 동성끼리 사귀는 것을 사회적으로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정도의 설정이었다.

       

       그렇기에, ‘if you wish’의 세계 또한 동성애에 대해 미약한 거부감, 혹은 다소 특이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유하늘이야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캐릭터이니 그런 성적 지향이나 캐릭터의 세세한 설정이 플레이어의 선택지에 따라 결정되게 된다. 그러니 그런 설정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공략 대상인 히로인들은 다르다.

       

       이수아도, 예사라도, 기본적으로 레즈비언인 것이 아니라 양성애자라는 설정이었으니까. 그리고 특별히 동성애를 접할 일이 없는 환경에서 자란 이상 자신도 남자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당연히, 이 두 명을 공략하기 위해서라면 ‘어, 나 얘 좋아하나? 같은 여자이면서?’라는 의문을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이 둘을 공략하기 위해선 ‘이성’이라는 특장점을 하나 챙기고 시작하는 남자 캐릭터 공략 루트보다 더 신중한 육성이 필요하다. 유하늘을 이 둘의 취향에 최대한 정확하게 맞추어야 할 필요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신소희에게는 그런 설정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얘는 애초부터 레즈비언으로 설정된 캐릭터니까.

       

       애초에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성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고, 성욕을 느낀다. 당연히 유하늘은 다른 남자 캐릭터들을 공략할 때처럼 ‘여성’이라는 특장점을 하나 가지고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냥 다른 남자 캐릭터들과 같아서는 백합 루트의 튜토리얼로써 별로 의미가 없다.

       

       그래서 신소희에겐 ‘성적인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라는, 다른 히로인들 보다는 다소 작은 장애물이 있었다.

       

       자신은 분명히 여성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에게 성적인 호기심이나 환상을 가지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고민. 하지만 자신과 ‘사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벗어던질 수 있는 고민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

       

       그래서 백합 루트의 튜토리얼 비슷한 취급을 받는 것이, 바로 신소희라는 캐릭터였다.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보지 않은 내가 어째서 이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세세하게 알고 있는가, 하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스트리머가 플레이한 백합 루트가 바로 신소희 루트였으니까. 신소희의 디자인도 스트리머의 취향에 직격이었고, 원래 백합 루트를 노리고 플레이하기 시작한 스트리머였으니 온갖 발암 전개가 가득했던 윤다호 루트보다 훨씬 호평했다.

       

       아마 위키에 있는 온갖 분석글은 이 게임을 플레이한 플레이어보다는 스트리머의 영상을 본 팬들이 더 열심히 옮겨적었을 것이다. 예사라나 이수아에 관한 내용은 그만큼 적혀있지 않았으니까.

       

       ……물론 유하늘과 신소희의 첫 만남이 지금같이 무지막지하게 자극적인 과정은 아니었지만.

       

       툭.

       

       신소희가 입에 물고 있던 빨간 막대사탕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소리가 났다. 순간 짧은 교복 치마를 하고도 자리에 쭈그려 앉아 있던 신소희의 다리에 눈이 갔다. 어떻게 보면 비쩍 말랐다고 할 수 있는 예사라의 허벅지와는 다르게 확실히 건강하고 튼실해 보이는 다리였다.

       

       몇 초 정도 멀거니 나를 올려다보던 신소희가 드디어 상황을 파악하고 귀에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냈다.

       

       “……뭐야?”

       

       신소희가 바로 도끼눈을 하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래, 아무리 레즈비언이라고 해도 눈앞에서 다짜고짜 치마를 들어 올려 보이면 바로 성추행으로 인식하겠지.

       

       ……아닌가?

       

       나는 길 가다가 예사라 같은 캐릭터가 나에게 치마를 슬쩍 들춰 보이는 상상을 해 보았다. 경찰 신고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는 하겠지만, 그걸 보고 내 기분이 나빠졌을지에 대한 것은 의문이다. 기분 나쁘다기보다는 엄청나게 걱정되었을 것 같은데. 정신적으로 문제 있다거나, 누구한테 협박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거고.

       

       게다가, 솔직히 내가 살아오면서 해 온 성적 망상 중에는 치녀……같은 것도 있으니까.

       

       내가 열심히 보던 동영상의 목록 중에 그런 것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순간 지독한 현자 타임을 느꼈다.

       

       내 성벽이 그렇게까지 뒤틀린 성벽이었나?

       

       눈앞에 서 쪼그리고 앉아 있던 신소희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지금 내 말을 씹는 거냐?”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게 아니면 뭔데? 엉?”

       

       신소희가 내 멱살을 잡았다.

       

       윽, 조금 전까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을 때만 하더라도 꽤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멱살을 잡히고 보니 조금 무서웠다. 중고등학생 때 일진들과 마주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좀 트라우마가 떠오르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확실하게 잘못한 게 맞았다.

       

       ……그런가?

       

       아니, 물론 내가 굳이 넘지 않아도 되는 담장을 넘은 것은 사실이다만. 누가 담장을 넘으면서 아래 있는 사람 머리통을 내 치마 밑에 넣게 될 거라는 상상을 했겠냐고.

       

       다시 생각해보니까 아래를 먼저 보긴 봤어야 겠구나, 응. 내가 잘못했네. 치마가 아니더라도 지나가던 사람과 부딪힐 수도 있는 거였으니까.

       

       “아, 흐, 엫.”

       

       당황에서 잠깐 말을 더듬었다가,

       

       “미, 미안.”

       

       겨우겨우 그렇게 사과했다.

       

       “미안하면 다냐고!”

       

       신소희가 그렇게 소리쳤다.

       

       아니, 뭐, 미안하면 다가 아니기는 한데.

       

       미안하다는 말로 끝내지 않으려면 대체 어떻게 하려고?

       

       하지만 정작 신소희도 화가 나서 그렇게 소리쳤을 뿐이지, 그 이후에 이어질 말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성추행으로 경찰에 신고해? 글쎄, 경찰에서 과연 진지하게 고민해줄 만한 사건일까, 이게?

       

       지붕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 있었더니 얘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치마 밑에 제 머리를 집어넣었어요, 라니. 말하는 사람도 부끄러워질 만한 이야기였다.

       

       나는 다시 한번, 신소희에게 공감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러니까, 단순히 미소녀-청년 간의 관계는 조금 이상한 것 같으니, 다시 동성 간의 관계로 돌아와서.

       

       갑자기 팬티만 입은 남자가 하늘에서 떨어지더니 내 얼굴 앞에 툭 튀어나온 그 부분을—

       

       까지만 생각하고, 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신소희의 성적 지향이 레즈비언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성적 지향을 고민하고 있는 단계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 얼굴 앞에 동성의 그……런 부분이 불쑥 들이밀어지면 기겁할만도 하지.

       

       “잠깐—!”

       

       누가 그렇게 당당하게 소리치더니, 담 너머로 탁 떨어졌다.

       

       “너, 뭔데 갑자기 사라 멱살을 잡고 난리야!?”

       

       “……?”

       

       신소희의 미간이 좁혀진다. 그리고 내 멱살을 그대로 잡은 채로, 아무것도 모르고 내 편을 들어주고 있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상대의 얼굴에서는 환한 빛이 나고 있었다.

       

       여주인공, 유하늘이 문자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다.

       

       뭐, 따지자면 담 너머겠지만. 아무튼 내 눈으로 보기엔 그랬다고.

       

       *

       

       십 대 시절의 고민이야 그 종류가 다양한 법이지만, 그 고민 중에서도 제일 답 없고 답답한 고민이 있다면 바로 ‘누군가를 좋아한다’라는 종류의 고민이었다.

       

       신소희가 딱히 누군가를 콕 집어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예컨대 ‘첫사랑’이라고 불릴 상대는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보다는, 신소희는 자기 친구 모두를 대부분 좋아했다. 어렸을 적부터 씩씩한 성격 덕분에 근처 여자아이들의 동경을 받아온 그녀는 자신과 함께 다니는 대부분의 아이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저 친구로서 좋아한다는 감정만 있었다면 고민이라고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우선, 신소희는 남자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잘생긴 남자를 보면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몸이 좋은 남자를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런 남자를 보면서 또래 여자아이들처럼 감탄하거나, 사귀어보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또래 아이들은 신소희의 그런 모습을 시원시원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하지만, 신소희가 진짜 곤란하게 느끼는 것은 그 부분도 아니었다. 남자와 사귀지 않는 거야, 뭐, 언젠가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든 될 거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신소희가 자라면서 성적으로 조숙해지는 사춘기에 들어오면서 생겼다.

       

       여자 건, 남자 건, 사람이라면 당연히 성적인 호기심이 왕성한 나이를 지나가게 되는 시점이 있다. 남자라면 예쁜 여자를 보면서, 여자라면 멋진 남자를 보면서 저 사람과 사귀면 어떨까, 결혼하면 어떨까 하는 망상을 하기도 한다.

       

       참 이상하게도, 신소희의 망상은 주로 자신의 주변 여자아이들에 대한 망상이었다.

       

       ……뭐, 결혼하고 싶다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입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든지, 얘한테 고백하면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고민해본다든지, 가끔 하게 되는 신체 접촉에 묘하게 설렌다든지.

       

       지금까지는 그냥 평범하게만 지내던 아이들을 보고 그런 감각을 느끼기 시작하니, 자괴감이 지독했다.

       

       어디 말하기도 조금 그렇고, 그렇다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더라도 원론적인 이야기뿐.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저 각자 타고난 개성일 뿐이다…… 하나같이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그저 뭉뚱그리고 있었다.

       

       “혼자 가려고? 진짜?”

       

       “응. 잠깐 어디 들를 곳이 있어서.”

       

       결국, 오늘은 그런 친구들과 갈라져 나와 혼자 걸었다. 사실 정말로 어디 갈만한 곳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혼자 걸으며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

       

       그렇게 걷고 걷다가, 다리가 아파져 잠깐 어느 담을 등지고 쪼그려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하얀 팬티가 쿵 떨어진 것이다.

       

       아니, 팬티뿐만이 아니었다. 그 팬티를 입고 있는 사람까지. 스타킹도 없는 맨다리였다. 조금 안쓰러울 정도로 마른 몸이었지만, 피부 하나만은 엄청 희고 고왔다.

       

       뭐지?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순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혹시 너무 내적인 상상을 많이 한 나머지 헛것을 보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뇌 한구석에서 망상증을 진지하게 검토했을 정도였다.

       

       잠시 뒤, 그 팬티가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스륵, 하면서 머리 위에 올려져 있던 천이 내려왔다. 신소희는 자기 머리 위에 그런 천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리고 그 천이 치마라는 것을, 그 팬티의 주인이 뒤로한 걸음 물러나고 나서야 알았다.

       

       처음 보는 교복의 치마는 아니었다. 이 근처에 콧대 높은 녀석들이 다닌다는 학교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화영 고등학교의 교복.

       

       그 교복을 입고 있는 상대는, 당연히 엄청나게 귀티 나게 생긴 ‘아가씨’였다.

       

       “……뭐야?”

       

       순간 성질이 뻗쳤다.

       

       화영고 다니는 연놈들이 싸가지 없다는 소리는 자주 들었다. 말을 걸어도 무시한다거나, 콧방귀를 뀐다거나 하는 소리는 종종 들었으니까. 하지만 굳이 이런 장난까지?

       

       안 그래도 심란해 죽겠는데?

       

       “지금 내 말을 씹는 거냐?”

       

       신소희는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대답 없는 상대에게 그렇게 물었다.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게 아니면 뭔데? 엉?”

       

       격분한 그녀는 그대로 눈앞에 있는 상대의 멱살을 그대로 잡아들었다.

       

       그리고 신소희는 일생일대의 심각한 난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하필이면 그 멱살을 잡아끌고 온 상대의 얼굴이—

       

       무지막지하게 예뻤던 것이다.

       

       “아, 흐, 엫.”

       

       게다가 당황해서 내는 소리는 귀엽기까지 했다.

       

       순간 신소희의 머릿속에, 방금 보았던 날씬한 하반신이 떠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