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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엔리 옆에 떠 있는 창에서 글자가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저게 채팅창인가. 사람이 많은가보군.

       

       어지간한 이들은 보기만 해도 뇌가 굳을 만한 글자의 파도였으나 엔리는 그 속에서도 침착했다.

       

       이런 경험이 많은 모양이야. 숙련된 방송인이라는 것인가.

       

       시청자들과 함께 무어라무어라 떠들던 그녀는 내 쪽에 눈짓을 한 번 주고는 말을 이었다.

       

       “오늘 따라 시청자분들이 몰리시는 걸 보니 다들 공포게임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네요. 제가 비명 지르는 게 그렇게 기대 되나요?”

       

       엔리가 성을 내는 것을 보아 저 물음의 답은 긍정인 듯 했다.

       

       기이한 이들이구나. 남이 비명 지르는 것이 즐거운가? 나로서는 공감할 수 없는 취향이었다.

       

       “어쨌든! 제가 슈퍼 겁쟁이잖아요? 혼자 VR공포게임을 했다간 기절할 것 같아서 손님을 한 분 초대했습니다!”

       

       손짓하는 엔리의 곁으로 가자 그녀가 내 양 어깨를 잡으며 밝은 억양으로 말했다.

       

       “제 현실 친구에요. 여우 가면을 썼으니까 여우 씨에요.”

       “안녕하세요.”

       

       어눌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자 채팅창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내 눈은 그 모든 글자를 포착했지만 내용이 너무도 다양해 대응하기 어려웠다.

       

       당장 위에서 쓰인 글자와 아래에서 쓰인 글자가정 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으니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찌 이런 것을 보며 소통을 하고 있었을까. 엔리에 대한 존경심이 싹을 트는 느낌이었다.

       

       “어허. 채팅창여러분. 개소리 하지 마세요. 제 친구는 방송이고 인터넷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클린한 사람입니다.”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엔리의 친구가 클린?]

       

       “왜! 내 친구는 다 더러워야 해?!”

       

       엔리가 자신의 시청자들과 왈가왈부하는 걸 보고 있자니 그 사이에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애초에 저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도 알기 어려웠다.

       

       한참 동안 버럭거리던 엔리는 이내 지친 듯 축 처졌다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다.

       

       방송인도 쉽게 하는 것이 아니구만.

       

       “여우씨. 그냥 채팅창 보지 마요. 꼭 필요한 이야기는 제가 전달을 해 줄게요.”

       “네. 그럴게요.”

       

       솔직히 저들과 이야기를 나눌 자신이 없다. 내 많은 사람 앞에서 연설을 한 적은 있다만 다수와 한 번에 소통을 한 적은 없다.

       

       많아봐야 열 댓 명 정도 아닐까. 그것도 내가 분위기를 휘어잡은 이후에 이야기를 나눈 것이니 이처럼 자유분방한 분위기와는 결이 달랐다.

       

       “자. 이제 공겜을 시자아아악! 하겠습니다!”

       

       엔리가 허공에 뜬 창을 조작하자 방의 풍경이 사라지고 주변에 어둠이 자리 잡았다.

       

       이윽고 스산한 음악이 들려옴과 동시에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파리의 장난감 공장’

       

       “꺄악!”

       

       귀를 찌르는 비명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게임에서 난 소리는 아니었다.

       

       옆을 보니 엔리가 얼굴을 붉힌 채 고갤 숙이고 있었다.

       

       잔뜩 겁을 먹었나 보다. 글자가 떠오르는 것에 비명을 지를 정도라니.

       

       “게임 할 수 있겠어요?”

       “…저 겁 안 먹었어요!”

       

       최소한 떨리는 눈동자라도 붙잡아야 설득력이 있지 않겠나.

       

       말없이 눈으로 문책하자 엔리는 자신의 자신감을 보이고 싶었는지 척척 앞으로 나아가 시작하기를 선택했다.

       

       정확히는 선택하려고 했다.

       

       엔리의 손가락은 시작하기를 터치하기 일보 직전에 멈춘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겁 안 먹었다면서요?”

       “사실 겁먹은 것 같아요. 돌아가면 안 될까요?”

       

       태도를 바꾸는 것이 가면을 바꾸는 것처럼 빠르구나.

       

       자존심을 모두 다 내팽개친 것이 웃기고 불쌍하긴 했으나 그녀의 말에 동의해줄 수는 없었다.

       

       “저는 괜찮지만 시청자 분들은요?”

       

       수천명의 사람이 기대를 하고 있는데 도망쳐봐라. 어떤 꼴이 나겠는가.

       

       방송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지만 수천명의 분노를 산다는 게 가벼운 일이 아님은 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다는 말이야 말로 지금 엔리의 상황에 잘 어울리는 구절이었다.

       

       아무래도 엔리에게 누를 용기가 없는 듯 해 내가 대신해 시작하기를 눌렀다.

       

       “여우 씨! 그걸 왜 눌러요!”

       “어차피 해야 할 일이잖아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단 말이에요오오오.”

       “그건 생각 못했네요.”

       

       미안하다만 가만 내버려 두었다가는 마음의 준비만 한 식경을 넘게 할 것처럼 보여서 말이다.

       

       – 띠리리리

       

       “흐엑.”

       

       글자가 사라짐과 동시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엔리가 뒤로 넘어진 것은 덤이었다.

       

       이래서야 혼자 게임을 하러 왔다면 시작조차 하지 못했겠군.

       

       전화를 받으니 지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남성의 거친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이봐! 공장에 도착했나?’

       

       공장?

       

       눈앞에 다 무너져 가는 스산한 건물로 눈을 돌렸다. 건물 높은 곳에 세월에 마모되어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글자가 박혀 있었다.

       

       ‘파리의 장난감 공장’

       

       저 곳이 공장인가.

       

       “앞에 있어요.”

       ‘잘 찾아갔군. 잘했어. 이미 말해 뒀지만 자네들의 역할은 하나야. 안에 들어가서 서류 하나만 찾아 나오라고.

       걱정 마. 안에는 아무도 없어. 있는 거라곤 인형 뿐이야. 서류 찾는 건 식은 죽 먹기 일걸?

       그것만 해내면 약속했던 보상을 주지. 행운을 비네.’

       

       상대는 제 할 말만 내뱉더니 전화를 끊었다.

       

       “그러니까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단 거죠?”

       “네에. 이 게임은 저 안에서 진행되거든요.”

       

       엔리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몸을 뒤로 빼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가죠.”

       “잠시만요. 조금만 있다 가면 안돼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서 엔리의 팔을 잡아 끌었다. 잠시가 어딨는가. 잠시가.

       

       건물 안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바깥의 모습을 보면 폐허가 펼쳐져도 이상하지 않을 터이거늘 그래도 건물의 형상은 지키고 있지 않은가.

       

       “왜 안에 불이 켜져 있는 걸까요.”

       

       엔리는 내 팔을 부여잡은 채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를 늧추지 않았다.

       

       “전기야 들어오겠죠.”

       “아까 전화 속 사람이 말했잖아요. 여기 아무도 없다고. 근데 불이 켜져 있을 이유가.”

       

       쿵!

       

       “히에에엑!”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엔리가 비명을 질렀다. 저래서야 목이 남아나질 않겠네. 내일 만나면 목이 쉬어있는 거 아닐까.

       

       “저 방 안에서 난 소리네요.”

       “그럼 다른 곳부터 둘러봐야겠네요.”

       “갑시다.”

       “여우 씨? 제 말 듣고 있죠? 듣는 거 맞죠?”

       

       듣고는 있다. 그런데 듣는다고 해서 그걸 따라야 할 이유는 없잖느냐. 나는 답답한 게 싫다.

       

       소리가 들린 곳은 예전에 사무실로 쓰이던 곳처럼 보였다. 몇 개 안되는 의자는 다 넘어져 있고 천장의 전등은 오래된 건지 꺼졌다 켜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안을 보니 상자 하나가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저게 떨어진 소리였나.

       

       우연히 떨어진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떨어트린 것인가. 어느 쪽이건 저걸 확인해야 한다는 건 분명했다.

       

       “여우 씨. 꼭 확인해야 할까요? 안 가면 안 될까요?”

       “저 혼자 갈게요.”

       “안 돼요! 그 때 갑자기 뒤에 뭐가 나타나면 어떻게 해요!”

       

       어쩌라는 게냐. 그러면 이 건물에 평생 틀어박혀 있기라도 할 게야?

       

       나는 끌듯이 엔리를 데리고 안으로 향했다. 뒤에서 엔리가 자꾸만 꿍시렁거렸지만 일부러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하아. 나에게 한글을 가르칠 때는 저만큼 믿음직한 사람이 없었거늘. 지금은 왜 이리도 아이 같은지.

       

       상자의 안에는 종이가 하나 들어 있었다. 글자는 내가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적혀 있었지만 붉은 피로 질척하게 쓰였기에 그 분위기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엔리. 이거 무슨 뜻이에요?”

       “친구야. 놀자. 라는데요.”

       

       콰앙!

       

       “꺄아아아악!”

       

       굉음이 울렸다. 위치는 방금 전 우리가 들어 온 입구 쪽이었다.

       

       엔리. 비명소리가 참으로 다양하구나. 덕택에 몇 번이나 듣고 있는데 익숙해지기가 어렵잖느냐.

       

       내가 게임을 만든 사람이었다면 반드시 엔리의 방송을 보러 왔을 것이다. 저만큼 제작자의 의도에 잘 빠져주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방에서 나와 입구로 향하니 유리 문 너머에 서 있는 곰인형 하나가 보였다. 인형은 정중한 신사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아아!”

       “인형이네요. 귀여운.”

       “저게 어디가 귀여워요!”

       

       귀엽지 않나? 폭실폭실한데다가 눈망울이 똘망거리는 것이 집에 하나 놔두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만.

       

       인형은 보란 듯 지팡이를 치켜들더니 그걸 문에다가 걸었다. 그리고는 살갑게 손을 흔들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저희… 여기 갇힌 건가요?”

       “그래 보이네요.”

       

       시험 삼아 온 힘을 다해 문을 걷어차 보았지만 다리만 징하고 울릴 뿐 문은 멀쩡했다.

       

       으음. 이건 부술 수 없는 물건이구나. 애초에 그리 설계된 것처럼 느껴진다만.

       

       그 사실을 말해주려 옆을 돌아보니 엔리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왜 그러고 있어요?”

       “뭘 하려면 말을 하고 해주세요!”

       “미안해요.”

       

       울 것만 같은 엔리의 모습에 일단 사과의 말을 내뱉었다.

       

       *

       

       엔리의 편집자인 하늘은 엔리가 어디서 저런 사람을 데리고 온 걸까 생각하는 중이었다.

       

       엔리가 데려온 속칭 여우 씨라는 사람은 담이 이상할 정도로 큰 사람이었다.

       

       VR공포게임의 걸작이자 기절 제조기라 불리는 ‘파리의 장난감 공장’을 플레이 하는 두 시간 동안 비명은커녕 놀란 적조차 없다니. 정말 사람이 맞는 지 의심스러운 지경이었다.

       

       당장 지금만 봐도 그렇다.

       

       퍼즐을 풀면서 가장 집중하고 있을만한 타이밍에 광대 인형이 튀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우 씨는 광대 인형의 이마에 딱밤을 한 대 날리고는 적당히 장난을 치라 말할 뿐이었다.

       

       그에 반해 여우 씨의 옆에 있던 엔리는 너무 놀란 나머지 아예 울음을 터트린 상태였다.

       

       서럽게 울고 있는 엔리와 이 퍼즐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는 여우 씨는 같은 게임을 하는 게 맞나 싶을 지경이었다.

       

       엔리에게 공포 게임을 추천해주기 전에 가볍게 플레이를 해본 하늘은 엔리가 정상이라 단언할 수 있었다. 여우 씨는 무언가 결여된 사람이 분명했다.

       

       그래도 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나마 게임이 진행은 되고 있잖아.

       

       하늘이 단언하건데 엔리가 혼자 ‘파리의 장난감 공장’. 줄여서 파공장을 했다면 한 시간 동안 입구 근처에서 서성거렸을 것이다.

       

       그러다 10%도 진행하기 전에 기절해서 게임이 끝났을 거다.

       

       솔직히 무서워하는 것도 적당히 진행을 하며 무서워해야 재밌는 거지. 한참 같은 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으면 답답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우 씨는 엔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공포게임을 보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반응을 해주는 엔리. 게임의 진행을 담당해주는 여우 씨. 두 사람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렇지만 저 여우 씨가 무서워하는 장면도 하나 나오면 재밌을 것 같은데.”

       

       저 담 큰 사람이 어지간한 것에 무서워 할 것 같지는 않지만 마지막. 신사 곰의 추격전이라면 저 사람을 겁에 질리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흐갸아아악!”

       

       또 다시 비명을 지르는 엔리의 목소리에 하늘이 미간을 찌푸렸다.

       

       나중에 편집할 때 시청자들의 고막을 위해서 엔리의 목소리는 줄여 놔야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조회수가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네요. 벌써 삼천을 넘기다니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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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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