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린이 잠에 들기 직전.
그녀는 아비의 외침에 다시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슬픔이 묻어 나는 그 외침.
그녀는 순간적으로 이전의 대화를 놓쳤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그 말에 집중했다.
심각한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 그 돈을 준 건… 어디 높으신 분이었어…”
“… 어떤 높으신 분인데요?”
“그건…! 말 못해…”
“… 누군지 몰라요…?”
“아니. 알아… 그래도 말 못해… 아니, 애초에 그놈들은 숨길 생각도 없더라.”
“…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길래… 이 정도까지 당신이 입을 닫고 있는 거에요? 저희도 어디 가서는 꿀리지는 않을 텐데…”
“차원이 달라… 그놈들은… 그냥 돈이 차원이 다르게 많은 놈들이야…”
“…”
“나한테… 돈을 주면서 부탁하더라… 이번 사건 잘 마무리 부탁드린다고…”
“…”
“쫄렸나 보지. 그 대단하신 분들도. 나한테 정체를 밝히고 직접 돈을 꽂아줄 만큼… 증거를 조작해도 부족하다 생각이 들 만큼… 많이 쫄렸을 거야…”
“…”
“나는 받을 수밖에 없었어… 나는 그때는 세린이와 당신 생각밖에 안 들었거든…”
“당신…”
“너무 후회되고 화가 나는데. 나는 지금도 그 돈을 받을 거야. 당신이랑 세린이만 안전할 수 있다면.”
“…”
“증거도 뭐도 다 조작하는 놈이야…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 반성도 없는 놈이야. 그놈들이 우리한테 무슨 짓을 저지를 줄 알아… 나는 받을 수밖에 없었어…”
“…”
“너무. 너무 내가 하는 일에 자괴감이 들더라고… 또 무섭기도 하고… 당신이랑 세린이 잘못 될까봐.”
“…”
“근데 말이야… 세린이 여섯 살 때, 애가 학대를 받았더라.”
“아…”
“하필이면 민감해 죽겠는 그 시기에, 하필이면 세린이가 많이 다쳤더라…”
“… 그때 당신이 도우미를 먼지 나게 패던데 그때는 당신이 미친 줄 알았죠…”
“하하… 참…”
“…”
“그때 느낀 게 뭔 줄 알아?”
“… 뭔데요…?”
“얘만큼은. 자기 한 몸 무조건 지키게 하자.”
“…”
“독하게. 독하게 교육을 해서라도, 얘가 우리보다 더 독하게 자기 한 몸은 안전하게 지킬 수 있게 만들자.”
“…”
“근데 또 든 생각이 있어. 그 병신같은 놈처럼 되지는 말자.”
“누구요…? 누명 쓴 사람…? 씌운 사람…?”
“둘 다.”
“…”
“그 머저리같이 누명 쓴 놈처럼 되지 말고 자기 한 몸 지키면서…!”
“…”
“그 누명 씌운 놈같이 천하의 개 짐승같은 씨발새끼처럼 되지 않게 하자는 거…!!”
“….”
“그, 그 나쁜 새끼들이랑 1도 안 닮게 키우고 싶었어. 그냥 착하게. 그냥, 그냥 말 잘 듣게. 그러면서도 제 몸 하나는 잘 챙기게.”
“…”
“근데… 근데 그게… 너무 어렵더라…”
아버지의 눈물 젖은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가로막는 울먹임을 뚫고 겨우겨우 입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키우고 싶은데… 진짜로 그게 잘 안돼… 그래도 나는 애를 때리는 게 정답인 줄 알았어. 나도 그렇게 컸으니까…”
“…”
“근데, 근데… 세린이가 며칠 전에 그런 일 있고서는 뭘 느꼈는 줄 알아?”
“하…”
“아. 내가 다 부질없었구나. 내가 다 망쳤구나. 노력했는데 안 됐구나.”
“여보…”
“그래서 너무 화가 났어. 세린이한테도 화가 났어. 나한테도 화가 너무 많이 났어.”
“…”
“근데… 이제는 그냥 세린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할려고… 이렇게 키우다간 애가 행복해지지도 못할 거 아니야…”
“그럼… 몇 시간 전에 때린 건…”
“그건 벌 받아야지. 남자애들 계속 조심하라 그랬는데… 기어코 몸으로 겪었잖아… 그리고 이젠… 그게 마지막이야…”
“…”
“그냥… 나는… 세린이가 착한 아이로 자라줬으면 좋겠어 이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침묵이 새벽을 지새우고 아침을 불러왔다.
그때까지, 제대로 된 잠을 못 이룬 이세린은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진실된 마음과 그 약한 모습을.
아버지가 무언가 잘못된 일을 저질렀다는 건 안다.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배운 아버지의 진심은 느껴졌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는 법.
당장 그녀만 하더라도 몇일 전에 실수를 저질러 강간당할 뻔했다.
그렇기에.
그렇기에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생각해 주고 있는지 깨달았다.
표현이 서툴렀을 뿐.
그 안에는 진실된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안심했다.
그래서.
부모의 그 뒷이야기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근데… 그 누명 쓴 사람은 이름이 뭐였죠?”
“이 설… 이 설이야…”
그날 오후, 부모는 이세린에게 무릎 꿇고 사과했다.
그 전에 있었던 일 모든 것을 후회하며 반성하는 그 모습에, 이세린은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17살]
그녀는 그저 착한 아이만 되어주면 된다는 부모의 말을 뒤로하고, 부모가 마음속에서 원하던 아이의 모습 그대로 자라도록 노력했다.
실수를 최대한 줄이고.
고등학교에서 1등을 한다.
남들에게는 언제나 배풀고 착하게 군다.
[18살]
마찬가지로.
[19살]
계속해서.
[20살]
그리 자라왔다.
.
.
.
[28살]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다.
법을 잘 알기에 함부로 누군가가 자신을 건드릴 수 없었고.
착한 아이로 자라왔기에, 언제나 억울하고 안쓰러운 이들을 변호하는데 힘썼다.
[29살]
그렇게.
부모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낸 그녀는.
다른 세상에 소환되었다.
[일부 기억이 복구되었습니다! 이 기억은 당신에게 귀속됩니다!]
기억이.
복구되었다.
그걸 완전히 깨닫자마자 이세린은 토악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웨에에에엑!!!”
역겹다.
역겹다.
역겹다.
왜.
왜.
왜.
왜.
차라리 환상이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이 모든 게 가짜였으면 좋겠다.
그리 부정해 본다.
하지만 생생하게 현실처럼 느껴지는 기억이 내 바람을 부정한다.
오히려.
오히려.
가짜였으면 좋겠다는 그 자기 위로적 바람이 너무나도 역겨웠다.
기껏해야 어릴 적 기억이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굉장히 중요한 거였다.
어딜 도망가려고 해.
어딜 벗어나려고 해.
마주해야지.
마주했잖아.
봤잖아.
직시했잖아.
그 역겨운 진실을 깨달았잖아.
너의 아버지가 저지른 그 죄를 봤잖아.
내가 얼마나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잖아.
근데.
왜.
왜.
왜.
회피하려고 해?
“흐아아아악!! 흐, 흐아아아악!!!”
“세, 세린 씨 왜 그래요!!”
“이세린? 무슨 일이야!!!”
사람들이.
걱정한다.
역겨웠다.
너무 역겨웠다.
내가 이런 시선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내가 이렇게 행동할 자격이 있을까?
애초에 내게 이런 시선을 보낸 이들도 역겨웠다.
너무 더러웠다.
너희도.
너희도 나랑 똑같잖아.
그 사람을 아프게 했잖아.
그 사람이 고통 받는 걸 보고 좋아했잖아.
근데.
왜.
왜.
왜.
왜.
아.
아으.
미안.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그리 입 밖으로 내뱉고 싶어졌다.
이런 걸 다 떠나서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당신의 행동에 제약이 걸립니다!]
목이 찢어지도록 힘을 줘봐도, 나오지 않았다.
내뱉지 못했다.
그 말을.
미안해요.
“이, 이 씨발 새끼가 세린이한테 뭔 짓을 저지른 거야!!”
퍼억!!
박지원의 주먹이 이 설의 안면에 직격했다.
이 설이 피를 흩뿌리며 뒤로 넘어졌다.
안 돼.
아, 안 돼!!!
[당신의 행동에 제약이 걸립니다!]
그만하라고.
제발 그만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제발.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몸으로라도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당신의 행동에 제약이 걸립니다!]
아.
아아.
“아아아아악!!!!!”
나 스스로를 찢고 싶었다.
거대한 죄책감이 몸을 짖누르는 기분을 아는가.
숨이.
숨이 막힐 정도로.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니 이 고통조차 아깝다고 여길 정도로.
커다란 죄악감.
그것이 내 정신을 하얗게 만들었다.
억울한 사람.
내가 망가뜨린.
그 억울한 사람이 지금도.
망가지고 있다.
안돼.
안돼.
제발 그만해.
퍽.
퍽.
제발.
퍽.
제발!!!
퍽!
그 불행한 존재가 정신을 잃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지켜봤다.
또.
나 때문에.
그가 고통받았다.
“우에에에에엑!!!!”
“이세린 너 진짜 왜 그러냐고!!!”
듣기.
듣기 싫었다.
너도.
너도 똑같아.
너도 수십 번을 그를 괴롭혔잖아.
너도 끊임 없이 그를 고문했잖아.
더러워.
더러워.
더러워.
더러워.
근데.
나도 더러워.
“지, 지원아…”
“왜, 왜!!”
“나 어떡해…?”
“뭐 때문에 그러는데!!!”
[당신의 행동에 제약이 걸립니다!]
나 말이야.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저질렀어.
그래서 그 죄를 저지른 저 사람한테 사과해야 돼.
근데.
그걸 못한다?
나 어떡해?
아마 이 감정조차 그는 계속 느꼈을 거야.
매일을 억울하게 살면서 한 번도 웃지 못했을 거야.
매번 고통받으며 자기 잘못이 아님에도 말을 할 수 없었을 거야.
매번 혐오 받으며 스스로 자학 만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하하.
근데.
근데.
이런 것보다 내 감정을 더 먼저 느낀 나 스스로가 너무 역겨워.
나.
어떡해?
***
이세린이.
이상해졌다.
몇 시간 전, 갑작스럽게 구토를 하며 비명을 지르던 그녀는 이제는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이 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전 회차에서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일.
이시현은 당황했다.
도대체 왜?
이 설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아니.
상태창으로 그를 바라봤을 때는 그 아무것도 없었다.
[상태창]
[이름: 이 설]
[레벨: 2]
[성별: 남]
[성좌: 없음]
[칭호: 없음]
[특징: 소심, 자학, 피폐, 망가짐]
[특성: 직감]
[근력(최하): 1.2]
[민첩(최하): 1.2]
[마력(최하): 1.2]
[지력(중): 6]
[정신력(하): 2.4]
[총평: 말할 가치가 없습니다! 쓰레기입니다!]
심각할 정도로 가능성이 없는 능력치.
쓰레기라고 평가해도 될 정도로 쓸모가 없었다.
그나마 있는 특성조차 ‘직감’.
그저 누군가의 감정 상태를 직감적으로 더 잘 판단한다는 것.
그뿐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세린이 갑자기 왜 저러는 것일까.
이 설을 고문한 것 때문에?
강간당할 뻔 했던 것 때문에?
알 수 없었다.
아니.
하나.
‘성좌…’
간혹 있었다.
계약해 줄테니 대가를 지불하라고 하는 존재들.
아마 유일한 가능성이라면 이것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성좌지?
이전 회차의 이세린은 대부분 ‘선구와 선의의 천신’과 계약했다.
하지만, 제대로 풀리는 게 없는 이번 회차의 망할 나비 효과 특성 상, 그녀가 다른 성좌와 계약할 수도 있었다.
“씨발…”
그녀의 좋지 않은 상태를 바라보며, 이시현은 욕을 절로 뱉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이미 1시간 전부터 던전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튜토리얼 거대 미궁의 정중앙.
튜토리얼을 클리어 할 수 있는 던전이 있는 곳의 바로 앞이었다.
“시현 씨가 생각하기에 이곳이 튜토리얼을 일찍 끝낼 수 있는 ‘모종의 방법’같다는 소리죠?”
“그렇습니다.”
“음…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건축물 양식이니 그렇다고 생각해도 무방하겠네요.”
강아현이 표정 변화 하나 없는 얼굴로 납득했다.
이 던전의 형태는 간단히 말하자면 피라미드 같은 모양이었고, 조금 복잡하게 말하자면 기괴하게 비틀어져 있는 검은 사각뿔처럼 생겼다.
그리고 이곳 내부에는 일부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가 있다.
그걸 잡아야만 튜토리얼 통과.
그런데 씨발 못 잡게 생겼다.
갑작스럽게 멘탈이 나가버린 이세린.
똑같이 멘탈이 나가버린 이 설의 옆에 붙어서 그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도저히, 전투 상황에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그녀의 모습.
‘씨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리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그녀는 무의식 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세린 없이 잡아야 한다는 것을.
13일 차.
그 안에 튜토리얼을 반드시 클리어 해야 했다.
“후우… 그래…”
들어가는 거야.
수백 번도 더 해봤잖아.
힐러 하나 없다고 못하지는 않겠지.
할 수 있을 거야.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아직까지도 의식 한구석에서 빛나는 성좌들의 계약 메시지와, 깊은 무의식 속에서 강렬하게 찔러대는 그 강렬한 감정을 무시하면서 말이다.
[‘숨은 기억의 회고자’가 당신을 계속해서 주시합니다!]
이세린 후회 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