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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자신의 솜씨를. 사방팔방 광고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

         ‘……하지만. 때로는 네가 무슨 짓이 가능한 미친 놈인지, 적들에게 똑똑히 각인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아.’

         ‘…불행히도 난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네.’

         ‘명심하게, 젊은 친구. 이 세상은… 한번 손에 쥐었던 걸 놓치면 다시 줍기 힘든 곳이야.’

         

       

       

         네오 헤이븐의 한적한 바(Bar) 안에서, 술잔을 닦는 남자에게 대화를 걸면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평소엔 그냥 주류 아이템을 팔아주는 NPC지만. 때로는 위험한 일거리를 소개해주기도, 유능한 동료와의 만남을 주선해주기도, 은밀한 장비 구매나 만남의 장을 열어 주기도 하는 상점 주인. 슈나이더.

         

         메인 스토리에도 나름대로 도움을 주는 인물인 데다, 그 위치도 여러모로 들릴 일이 많은 주점인 만큼. 유저들 사이에서는 ‘중년간지’ 라던가. ‘정상인 판독기’ 등 호감형 캐릭터로 통했고. 그 구체적인 배경은… 개발사에서도 응답한 바가 없지만, 추측하기에 충분한 증거는 게임 내에서 제공했다.

         

         습격 이벤트로 덮쳐오는 적에게 맞서 싸울 때, 과할 정도로 적극적인 태도.

         언제나 가게 내부에 장식되어 있는 흐릿하고… 핏자국이 남아있는 가족사진.

         ……칵테일 중에서 블러디 메리만은 몇 번을 골라도 만들지 않는 묘한 버그.

         

         

         “…? 왜 언니?”

         “…….”

         

         꼬마 아가씨, 메리와. 그 엄마, 슈나이더 씨의 부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막돼먹은 침입자들을 정리해줬다 해도. 나 또한 낯선 침입자. 나중을 위해서라도 오해없이 물러나는 게 최선이지만… 가기전에 감사인사를 꼭 표하고 싶었다.

         

         “응?!”

         “…네?”

         

         천천히 다가가서 메리를 한번. …신장차가 좀 있지만, 어머님을 한번 꼬옥 껴안아드렸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그들이 안다면 불쾌하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마치… 면책권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이 습격이 나라는 존재로 인해 발생했을 수도 있으나. 내가 취한 행동은 의미가 있었다. 이게 그저 네오 헤이븐 프라임이라는 게임의 시나리오일수도 있지만, 이런 무구한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따르리라.

         

         짧지만 따스한 포옹이 끝나고, 떨어진다.

         

         “…아!”

         

         “아. 미안…!”

         

         다짜고짜 껴안아서 메리와 어머님의 옷에 묻은 피를 털어 줄려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피라는 게 손으로 털어지는 경우는 내 전투 슈트밖에 못 봤다.

         

         너무 멍청한 행동을 한 것 같아서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지금이라도 멋있게 퇴장하자. 아직 안 늦었다. …아마도.

         

         재빠르게 뒤돌아서, 탄약을 점검하는 척하며… 아니, 점검하며! 가정집을 빠져나왔다. 의도치 않은 육탄전을 겪어보니 견적이 나왔다. 바보처럼 이런 몸으로 전장에 뛰어드는 게 아니라, 아예 정크 샵으로 가서 남아있다는 호버크래프트를 끌고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샵 사장한테 거래에 대해 따지기도 해야겠고.

         

         …어디까지나 드라마긴 했지만, 그 유명한 장군님도 말씀하시지 않았나?

         당장 전차를 끌고가서 적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라고.

         

         사박사박….

         사박… 사박….

         

         그런데… 모래를 헤치는 발소리가 늘어났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초롱초롱한 꼬마 메리와, 경계심은 그새 어디에 두고 오셨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신 어머님이 계셨다.

         

         “저기… 적도 처리했으니, 안전하게 집에 계시는 게…?”

         

         “마을 어딘가에 흑사회 녀석들이 더 남아 있다면, 차라리 믿을 만한 사람 뒤를 따라가는 게 나을 것 같네요.”

         

         “그럼… 예쁜 언니 옆으로 가도 돼?”

         

         “안 돼. 예쁜 언니를 도울 수는 없어도, 방해는 하면 안 된 단다?”

         

         부담은 지우지 않겠다. 지켜 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딸아이의 안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망설이지 않는다. 정말…… 슈나이더 씨 본인만큼이나 굉장히 멋지신 아내분이다. 이러면 대체 주연급 인물들은 직접 마주했을 때 얼마나 매력 넘치고 무시무시할지 상상도 안 된다.

         

         지이익…!

         

         “우와…!”

         

         “…이건 방탄성능이 있으니까. 이번에는 메리가 엄마 옆에 꼭 붙어서 지켜주는 거야. 알았지?”

         

         “응! 응!!”

         

         재킷을 벗어서 꼬마 아가씨에게 인형 옷을 씌우듯 폭! 하고 덮어씌웠다.

         주요장기가 무방비하게 노출됐다고 사이버웨어가 지랄을 하긴 했는데. …어쩌라고! 눈에 들어와버린 이상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게임에서는 못 보던 방어구라 몇 클래스 탄약까지 막아주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입혀 놓으니 마음이 좀 놓였다.

         

         끼기긱… 끼이이익….

         

         서로에게 찰싹 달라붙은 모녀를 확인한 뒤, 자물쇠가 박살 난 정크 샵 철조망을 천천히 밀고 안으로 진입했다.

         

         무수하게 쌓여 있는 고철과 폐기물들. 잠들어 있는 대형 압축기와 로봇 팔들.

         사장이 이런 탁 트인 곳에 멀쩡한 호버크래프트를 놔둘 만큼 멍청하진 않았으니, 분명 가게 옆에 딸린 대형창고를 비우고 거기다 넣어 놨을 것이다.

         

         하지만… 입구의 상태로 보건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선객이 있음은 확실.

         처음에 걱정했던 어깨보다도, 계속 긴장한 상태로 소총을 들고 있으려니 팔이 저릿저릿하다.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끝내야 한다.

         

         “해킹 전문가는 씨팔…! 다른 애들 좆뺑이 치고 있을 때, 꿀 빠는 일 인줄 알았더니, 이대로 돌아가면 대장이 참 존나 좋아하겠다, 이 새끼야!”

         “아니…! 이건 그냥 호버크래프트가 아니라 기업 물건이라니까?! 씨발. 길가에 널린 똥차였으면 진작에 뚫었지!”

         

         “……뭐 이런 등신들이…?”

         

         창고 근처로 다가갈수록 들리는 대화에 맥이 다 빠진다.

         이것도 아까 죽인 관음증 환자처럼, 누군가 덜 떨어진 동료를 이용해 함정을 판 건 아닐까 싶을 지경.

         

         “!!”

         

         아니다. 방심하긴 일렀다.

         

         살짝 열린 창고 문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자, 목 뒤편으로부터 난 와이어를 차량 외부 패널에 꽂고 열심히 씨름중인 놈이 보였다.

         

         미관상 정말 거지 같은 임플란트라, 나는 처음부터 특성으로 때웠지만… 메트로폴리스에서 해커라면, 손가락이든 다른 부위던 거의 필수적으로 받는 개조시술의 흔적이 분명했다. 갱단에서 도시 출신 해커라면 나름 고급인력, 게다가 무슨 깜찍한 개조를 더 받았는지도 모르니….

         

         타당!!

         퍼석…!

         

         “……이런 씹?!”

         

         총구가 불을 뿜고. 몸값 비싼 해커 친구가 먼 길을 떠났다.

         그 와중에 혹시라도 흔들리는 조준 때문에 표적을 빗맞힐라, 몸통을 노렸는데 머리가 깨져서 다행이다. 덕분에 다른 놈은 놀라서 넘어지느라 총도 못 뽑았다.

         

         남은 녀석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곧장 밀고 들어갔다.

         

         “흑사회 갱단. 맞지?”

         

         “……도시 년놈들은 무슨 속옷만 입고도 돌아다닌다더니… 진짜였네.”

         

         “….”

         

         탕!!

         

         “?! 아아아아악—!! 씨발!!”

         

         너무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아서, 허벅지로 맑은 공기 좀 먹으라고 숨구멍을 뚫어줬다.

         코앞에서 동료가 죽고, 눈앞에는 총 든 킬러가 있는데, 남의 속옷구경이 최우선이라니…? 이 세계에 팽배한 쾌락지상주의는 정말 미쳤다. 나까지 머리가 아파진다.

         

         어떻게든 출혈을 막아보겠답시고, 두툼한 손이 허벅지를 꾹꾹 눌러 댄다.

         고문 비슷한 흉내를 내서 조금 착잡하긴 하지만 지금은 쓸 수 있는 수단을 모두 활용해야 한다.

         

         “씨발… 씨발!”

         

         “…야. 팔뚝에 문신… 임플란트 빛나는 거 뭐야. 전화냐, 통신이냐?”

         

         “……대장이, 주점 앞으로 돌아오라고 보낸 통신이다.”

         

         입장 차이를 몸으로 경험해서 그런가…? 고분고분해진 걸 보니 마음이 약해진다.

         이런 조무래기 소악당을 살려준다고, 설마 파멸적인 결과가 돌아올까….

         

         “너네 대장한테 호버크래프트 끌고 돌아간다고 말해. 아, 메리랑 어머님은 거기 계시지 말고 얼른 들어오세요.”

         

         “…알겠다.”

         

         내 망설임과, 창고로 들어오는 모녀를 보고. 살길이 있는 걸 직감한 놈이 순순히 협박을 따랐다.

         원작이 시작하기 전까지. 내가 움직여서 구할 수 있는 인물들도 물론 있겠지만, 반대로 일어날 나비효과도 얼마나 커질지 고려해봐야 한다. …아닌가? 그렇게 따지면 원한을 가진 놈이 살아서 일으킬 문제가 더 크지 않나?

         

         삐빅…!

         

         – 에나마 코퍼레이션, 미스 아나스타샤 확인되었습니다. –

         

         “……아. 맞다.”

         “?!”

         

         호버크래프트 문을 열기위해 생체정보를 스캔하자 명료한 기계음이 등록된 내 신원을 밝혀버렸다. 마…어쩌구 박사가 멋대로 등록해둔 가짜 신분이긴 한데, 들어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

         세상이 내 손가락을 떠미니… 너무 고성능인 기업 제품을 원망하도록.

         

         “자… 잠깐! 아무한테도 절대 말 안 할…!! 크레딧! 그래, 나 모아둔 크레딧이 좀 있…!!”

         

         “…이제 와서 찝찝하게 연결고리(Connecting link)를 남겨둘 생각은 없어서. 추적자가 얼마나 성가신데.”

         

         눈치 빠른 어머님이 메리의 눈과 귀를 막은 채로 호버크래프트에 탑승하시는 걸 확인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미 충분히 험한 광경은 다 봤다지만, 빈도를 줄여서 나쁠 건 없겠지.

         

         

         

         “으아아… 팔 아프다….”

         

         “언니! 괜찮아? 나 아빠한테 언니 얘기해도 돼? 응?”

         

         “그래 그래….”

         

         위이이잉…!! 쾅!

         

         떠오른 호버크래프트가 창고 문을 작살내면서 발진한다.

         아직도 네트워크에는 욕설만 무성하고 사망자 소식 같은 건 전혀 안 보인다. 하긴 워낙 적과의 조우율이 높아서 그렇지, 이정도면 충분히 빠른 지원군이 될 것이다.

         

         부우우우웅—!!

         

         “!! 왔다! 호버크래프트다!”

         

         총소리가 거센 주점 앞 공터로 돌입했음에도, 조악한 인간 포탑들은 이쪽을 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아군이라 여기고 반겨주었지.

         그렇게 별다른 저항 하나 없이, 장비도 좀 더 좋아 보이고 옷도 요란한 놈들의 앞에 정차하는데 성공했다.

         

         원래는 차량 자체로 뭉개고 들이받을 계획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두 팔 벌려 환영해준다면 나도 마침 줄 선물이 있었다.

         

         운전대를 조작해 출입문을 개방을 눌러 놓고, 문 쪽으로 움직인다.

         

         “안전벨트 꽉 붙잡고 계세요…!!”

         “응!!”

         “……조심하세요.”

         

         핑…!!

         

         탑승객 두 분에게 엄중한 경고를 마침과 동시에, 파편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다.

         문이 열리고, 던져진 녹색 죽음이 하늘을 날았다.

         

         “파이어 인 더 홀, 이 새끼야…!!”

         

         이 멍청이 무리들은 끝났으니, 남은 놈들만 잘 정리하면 난장판도 끝….

         

         ……잠깐, 저 수류탄. 파편 수류탄인 건 들었는데 폭발까지 걸리는 시간이 몇 초 더라…? 아니, 애당초 무슨 신관을 쓰는 모델이지? 사이버웨어야…?

         

         [ M85 파편 수류탄은 H320 충격신관을 사용하는 모델로, 착탄 즉시 폭발합니다. ]

         

         

         아. 시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불장난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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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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