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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칼리팍은 마족이었다.

       

       아주 오랜 시절부터 마계에 태어나 모두를 때려잡고 패권을 잡은 존재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매우 강했다.

       다른 마물과 마수와는 비교 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였다.

       

       지옥견 케르베로스?

       

       그딴 놈도 자신의 밑에 불과했다.

       애초에 그는 그런 마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스스로 생각하고, 발전할 줄 아는 고귀한 존재였기에.

       

       마계의 패권을 잡고 살아간 지도 수백 년.

       칼리팍은 마계가 슬슬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고작해야 마물과 마수, 그리고 다른 마족 따위는 자신에게 상처는커녕 피해 조차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루한 삶이었다.

       

       ‘마왕’님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는 여태까지 마게에서 태어났던 모든 것들과 존재를 달리했다.

       

       태어난 순간 옆에 있는 산만한 마수를 찢어죽였다. 산을 때려부숴 거대한 산맥을 평평한 평지로 만들었으며, 그가 가볍게 팔을 휘둘러 내리찍은 바닥은 거대한 협곡이 되어 수천 년 동안 지형이 바뀌었다.

       

       그래.

       그는 ‘패왕覇王’의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사내였다.

       

       켈리팍은 그에게 처참히 당했다.

       

       저항은커녕 마치 어린 짐승 손에서 놀아나는 벌레처럼 이리저리 구르다 못해 팔다리가 뜯겨져 나갔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죽을 거라 생각했다.

       

       마계에서 패자는 승자에게 잡아먹히는 것이 곧 당연한 상식이고, 일상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달랐다.

       

       [너, 내 부하가 되어라.]

       

       그리 말하며 건넨 손.

       켈리팍에게는 너무나 찬란하고, 강인해 보이는, 동시에 너무나 달콤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의 오른 팔이 되어 마계를 침범하길 몇십 년.

       

       마왕님께 소식이 들려왔다.

       

       동굴에서 만난 어떠한 존재에게, 분신이 일격살 당하셨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단순히 격을 드러낸 것 만으로.

       

       믿기지 않았으나, 믿어야만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마왕님이 직접 이야기 하셨기에.

       

       그 때부터 켈리팍은 그 존재를 어떻게 억제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한 생각은 품지 않았다.

       단순히 격 만으로 마왕님의 분신을 죽일 정도라면, 자신의 흑마법은 어떤 방식으로든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예상외로 손쉽게 풀렸다.

       

       왕녀, 엘리세르데.

       그에게 제물로 바쳐진 그녀를, 녀석은 꽤나 애지중지 여기는 듯 했다.

       

       그걸 빌미로 놈을 묶어놨다.

       그건 제대로 된 목줄 조차 걸지 못하는, 그냥 퍼포먼스에 불과했으나 만족했다.

       

       어차피 놈을 죽일 방법은 없었으니까.

       잠시라도 놈을 억제하는 수단이 존재한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충분… 했을 텐데….]

       

       켈리팍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갈라진다.

       마치 고대의 신화처럼, 푸른 하늘에 균열이 생기며 먹구름이 몰려온다.

       

       어느새 하늘은 검은 먹구름으로 가득 찼으며,

       

       툭, 투둑.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건 그리 밝은 날씨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강렬했고 강인했다.

       

       마치 나의 존재는 하늘 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끝도 없이 이어진 거체가 유유히 하늘을 깨부수며 하늘 위에 서있었다.

       

       녀석은, 그는, 그 존재는.

       고고히 하늘에 떠있는 채 가만히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정확히는, 칼리바르고 왕국의 병력과 마물, 마수들만이 그곳에 티끌 조차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소멸했다.

       

       그건 분명 전의 투박한 방식과는 달랐다.

       예전에도 그가 격을 드러내는 것 만으로 모든 이들이 혼란에 빠져 자해하려 하였으나, 이번엔 그저 고요히 존재 자체가 소멸했으니.

       

       [격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도 안 된다.

       격은 태어날 때부터 그 존재가 업을 쌓아가며 생기는 업적.

       

       그렇기에 존재 자체에 자연스레 깃드는 것이 격이었다.

       

       그걸 어느 정도로 방출하느냐는 쉽다.

       애초에 격이라는 것 자체가 그 존재가 타고난 가능성이자, 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격이라는 걸.

       조금만 드러내도 죽어버리는 하찮은 벌레들 사이에서.

       

       정확히 하나하나 모든 격의 양을 조절해서 방출하는 건, 그 어떠한 이들도 불가능했다.

       

       그건 설령 마왕님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제아무리 그라고 해도, 절대적인 격의 총량이 많을 뿐 이런 섬세한 컨트롤은 불가했으니까.

       

       시선이 향한다.

       그것만으로, 트렐리니아 왕국과 인접한 모든 적들이 죽었다.

       

       켈리팍은 그 시선이 감히 자신을 향할까 두려웠다.

       온전히 드러낸 격을 단 한 명이 마족에게 쏟아낸다면, 그 마족은 어떻게 될까.

       

       그러나 그는 신경 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

       천천히 하늘을 배회하더니 왕녀에게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요르문간드님….”

       

       왕녀의 손이 요르문간드의 머리를 향한다.

       

       어쩐지 그 장면이, 매우 느린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왕녀가 그에게 손을 대게 두지 말아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지팡이를 들었다.

       왕녀에게 내건 저주를 터트릴 작정이었다.

       

       [네놈은, 여기서 죽어야 한다.]

       

       새카만 악의가 담긴 저주가.

       왕녀의 심장 어림에 향한다.

       

       그리고.

       

       [죽음을 불허한다.]

       

       왕녀의 심장에 있던 저주가, 완전히 존재를 박탈당한 채 사멸했다.

       

       그때서야 켈리팍은 깨달았다.

       설령 자신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저 둘을 막을 수는 없으리라고.

       

       이미 계약은 치뤄졌다.

       왕녀는 본인의 모든 것을 놈에게 바친 신녀였고, 그런 신녀의 죽음은 설령 하늘이 죽이려들어도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신녀의 존재를 비롯한 모든 것은, 오로지 그의 것이었기에.

       

       새하얀 손이 요르문간드에게 닿았다.

       

       요란한 소음은 없었다.

       오로지 전장에 자리한 고요한 침묵.

       

       그렇기에 더욱 경건한.

       신녀의 손이 그의 주인에게 닿는 순간, 고요한 기운이 전세계에 퍼졌다.

       

       미쳐 날뛰듯 폭주하던 격 또한 천천히 사그라 들었다.

       

       마치 그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한, 숨 막히는 고요함.

       

       이윽고 녀석이 감았던 눈을 떴을 때.

       

       [……아.]

       

       마족은.

       이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했다.

       

       

       * * *

       

       

       한없이 고요하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벽이,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다.

       

       끝을 모르고 푸르기만 한 새로운 지평선.

       그곳에 발걸음을 들인 육체는, 그 전과는 궤를 달리했다.

       

       크기가 더욱 커졌다.

       이제는 행성을 한 바퀴 감아 꼬리를 물기는 커녕, 두 바퀴도 거뜬히 감을 수 있었다.

       

       이 행성의 크기가 지구의 크기와 궤를 달리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 북유럽 신화 속 요르문간드의 크기도 거뜬히 넘어섰으리라 생각한다.

       

       요르문간드는 신녀가 된 엘리세르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변화가 생겼다.

       흑요석처럼 반짝이던 검은 눈이, 마치 자신과 같은 신비한 기운을 담은 푸른 눈동자로 변했다.

       

       거기다 은은한 격을 흩뿌리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요르문간드의 신녀가 되면서, 자연스레 압도적인 양의 격을 얻은 것이다.

       

       그럼, 사태 파악은 이쯤하고.

       

       크기를 조금 줄였다.

       사실 너무나도 커서, 저 마족이 벌레만도 못해보이거든.

       

       어찌나 작던지.

       한입으로 삼켜도 아무런 느낌 조차 들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할까.’

       

       놈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해야 더욱더 끔찍하게 놈을 죽일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하는 중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던 나는, 이내 결심했다.

       

       [네놈의 모든 걸, 받아가마.]

       

       마족을 바라본다.

       이윽고 놈의 모든 걸 낯낯이 파헤친다는 감각으로 시선을 집중하자.

       

       놈의 모든 것이 점점 흩어지기 시작했다.

       

       몸을 두른 강대한 마기.

       놈이 태어나 죽인 것들의 업.

       녀석을 존재하게 해주는 격.

       

       녀석이 수천 년의 세월을 살아오며 쌓아온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아, 안돼!!]

       

       마족이 꿈틀거린다.

       놈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기운들을 붙잡아보려는 듯, 필사적으로 몸을 발버둥쳤다.

       

       바닥에 손을 뻗으며 몸을 비비고,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입자들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소리치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무의미했다.

       이윽고 모든 입자가 사라졌을 때, 마족은 텅 빈 눈으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놈은 이제 마족 조차 되지 못했다.

       그저 모든 존재를 사멸당한 쓰레기만도 못한 버러지일 뿐.

       

       [이제… 이제 만족하는 거냐…? 내 모든 걸!! 네놈이 다 앗아갔으니!! 이제서야아!!]

       

       [아니.]

       

       [뭐…?]

       

       [이제 시작이다.]

       

       놈을 먹어치웠다.

       녀석은 아무런 저항 조차 하지 못한 채 나에게 잡아먹혔다.

       

       하지만 그게 끝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놈을 보낸 곳은 위장이 아닌, 전혀 다른 이차원의 공간이었으니까.

       

       그곳은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모든 생물들이 죽지 않으며, 정해진 수명에 따라 죽어야 할 생물들이 피부가 썩고 곪아도, 다리가 박살나고 씹어먹히더라도,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 고통이 가득한 세계에서.

       놈은 수천 년이고, 수만 년이고, 수십만 년이고.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 터였다.

       

       [흠…….]

       

       요르문간드의 시선이 지상을 향한다.

       

       마물과 마수에게 짓밟힌 대지는 생기를 잃고 검게 오염되어 있었다.

       

       ———파스스스스.

       

       그가 입에서 푸른 기운을 모으고.

       

       지상을 향해 그걸 쏘아낸 순간.

       

       대지가 푸르게 물들었다.

       검게 변한 대지가 예전의 색을 되찾았으며, 푸른 꽃과 풀들이 자라나고, 순식간에 나무들이 자라 거대한 숲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그 중에서 악의를 지닌 모든 이들이 순식간에 사멸한다. 자신의 신체 하나하나가 부서지는 듯한 소름끼치는 고통을 느끼면서.

       

       “싫어, 싫어, 싫어싫어싫어!!!”

       

       칼 레디엄스가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린다.

       

       그는 그렇게.

       이 세상에 어떠한 흔적 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했다.

       

       전장은 고요한 침묵만이 존재했다.

       

       그러다.

       

       “신을… 숭배하라.”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트렐리니아의 왕, 레스벨리고의 목소리.

       

       전장에 퍼진 그 울림이.

       이윽고 모든 이들에게 퍼져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 아아… 신이시여…!!”

       

       “숭배합니다, 경외합니다.”

       

       “저희에게 구원을 내리신 신이시여…! 제 신앙을…!”

       

       경외가 물결처럼 전장에 퍼져나간다.

       

       모두가 무릎을 꿇은 채, 신성한 신적 존재를 우러러보았다.

       

       어떠한 종교도 존재하지 않던 트렐리니아 왕국에, 새로운 종교가 자리 잡은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칼리팍의 시점은 다음화에 짧게 나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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