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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14. 시간 문제

       

       

       이런 말이 있다.

       고기 맛을 알아버리면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고기 맛을 알아버린 동물은 답이 없다고.

       

       “크, 큰일 났다…”

       

       고기가 아니라 채소지만.

       초련이는 채소 맛을 알아버린 이후.

       고기에 잠깐의 시선조차 주지 않고, 상추를 끊임없이 탐닉했다.

       

       “샤아아-! 샤아아-!”

       “초, 초련아. 고기 좀 먹어. 아니면 내가 쌈 싸서 줄까?”

       “샤아아-!”

       

       초련이는 내게 ‘갈!’하며 고기를 극구 거부했다.

       채소 맛을 알기 전에는 고기를 잘 먹었는데.

       채소 맛을 알고 나서는 고기를 먹을 생각이 1도 없다.

       일반적인 고기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린 것 같다.

       

       “용생 절반을 손해 보고 있었던 것처럼 먹네.”

       “샤아아-”

       “손해 보고 있던 게 맞다고?”

       “샤아아-!”

        

       팩트 체크를 해보니 사실이라 한다.

       초련이의 용생은 채소 맛을 알기 전과 후로 나누어지고 말았다.

       나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예전의 초련이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부모가 같으면 입맛도 똑같을 것이지. 너희는 왜 하나같이 다르냐.”

       “종족이 다르니까. TV를 보니까 인간도 백인, 흑인, 동양인으로 나뉘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야.”

       “인종이 아니라 용종. 뭐 그런 거야?”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냠-

       수련이는 젓가락을 포크처럼 사용하며 고기를 입에 넣었다.

       그래도 초련이와 다르게 수련이는 가끔 쌈을 싸기도 하며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한 명은 육식. 한 명은 잡식. 한 명은 채식인가. 쉽지 않네.”

       “집주인. 잡식이 아니라 골고루 잘 먹는다고 해. 기분 나빠.”

       “예민하기는. 알았어.”

       “…”

       

       수련이는 푸른 눈으로 레이저를 쏘듯이 나를 노려봤다.

       언제 저렇게 언어 능력이 늘어난 건지.

       애는 쑥쑥 큰다고 하더니, 그게 사실인가 보다.

       너무 빨리 큰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초련아.”

       “샤아아-?”

       

       우물우물-

       초련이는 왜 불렀냐며 초록빛 두 눈을 깜빡거렸다.

       앞발로 상추를 고정하고, 열심히 물어뜯고 있던 도중이었다.

       

       “앞으로 고기는 절대 안 먹을 거야?”

       “샤아아-!”

       

       밝은 울음소리로 대답했다.

       초련이의 뜻은 확고해 보였다.

       

       ‘괜히 미안해지네.’

       

       하지만, 나는 현실적인 이유로 초련이의 뜻을 꺾어야만 했다.

       

       “솔직히 말하면 매일 상추만 먹을 수 없어.”

       “샤아아…”

       “아직 실망하지 말고. 그래도 가끔 상추 같은 채소들을 잔뜩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샤아아-?”

       “뭔지 궁금해?”

       “샤아아-!”

       

       초련이는 어서 빨리 말해달라는 듯이 눈을 빛내며 콧김을 내뿜었다.

       그에 나는 씨익 웃으며 초련이의 귀에 속삭였다.

       

       “내일을 기대해.”

       “샤아아-?”

       “내가 그 방법을 가져올 테니까.”

       

       잘 안될 수도 있지만.

       일단 해봐야 하는 법.

       

       ‘성공하면 식비를 많이 줄일 수 있어. 실패하면…’

       

       실패하면 뭐 아쉬운 거고.

       시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렇게 나는 내일 성과를 가져오겠다며 초련이와 약속했다.

       그러자, 접시에 코를 박으며 먹고 있던 화련이가 말을 걸었다.

       

       “집주인!”

       “어?”

       “초련이한테 더 초록색 풀 많이 줘!”

       “갑자기 왜.”

       “내가 더 많이 먹을 수 있잖아!”

       “…”

       

       화련이는 상당히 욕심이 많네.

       이것도 드래곤의 특징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

       

       

       내가 사는 빌라의 이름은 ‘행복 빌라’이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 이름을 잘못 지은 것 같지만.

       

       아무튼.

       빌라는 지하층을 제외하고 총 5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부터 4층까지는 일반 세대로 층마다 2세대의 가구가 살고 있다.

       지상에 사는 사람들은 햇빛도 안 들어오는 나와 달리 아주 좋은 조건에 살고 있다 볼 수 있다.

       

       ‘나보다 조금 더 처지가 나은 편이지. 남들이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지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 건물의 주인은 4층의 벽을 허물어서 두 개의 세대에 직접 거주하고 있다.

       그녀는 돈이 꽤 짭짤하게 들어올 텐데도 치안도 좋지 않은 서울-09에 계속해서 거주하고 있다.

       아마 괴팍한 성격 때문에 이런 지역에서 사는 게 아닐까 싶다.

       자가격리 느낌으로.

       

       “그 괴팍한 할멈이랑 얘기가 잘 통해야 할 텐데.”

       

       나는 손에 든 무게감 있는 검은 봉투를 확인했다.

       할멈의 대답에 따라 이 봉투에 담긴 녀석들의 운명이 결정된다.

       환불은 구입 후 3일까지 가능하니까.

       

       “하아, 가보자.’

       

       똑똑-

       

       “할멈. 안에 있어?”

       

       없나?

       나는 문을 한 번 더 두드리고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사람이 움직이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냥 늙어서 걸음이 느린 모양이었다.

       30초 정도 기다리고 있자, 문 뒤에서 날카로운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구야?

       “나야. 지하에 사는 이하준.”

       -이 쌍놈 새끼가. 드디어 왔네?

       

       끼이익-

       욕설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러나, 문에서 나온 건 할멈이 아니었다.

       

       “이 시끼가!”

       

       나는 문에서 튀어나온 나무 지팡이를 손쉽게 피했다.

       

       “아이고.”

       

       탁-!

       단단한 나무 지팡이는 힘없이 바닥을 강타했다.

       늙어도 힘은 여전하네.

       

       “할매. 힘도 좋아. 오래까지 살겠어.”

       “이 썩을 놈이. 너 때문에 내 수명이 1년은 더 줄었다. 이 시간에 왜 찾아오고 난리야?”

       

       할멈은 지팡이를 내딛으며 천천히 문에서 나왔다.

       나이가 느껴지는 흰 머리에 주름이 가득한 얼굴.

       그러나, 표정은 아직 죽을 때는 멀었다는 듯이 살아 있었다.

       

       “오랜만에 봐도 그 성격 여전하네.”

       “시끄러. 본론이나 얘기해. 여긴 뭐 하러 왔어? 밀린 월세 갚으러 왔어?”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꺼져. 너랑 할 말 없어.”

       

       할멈은 아무런 미련 없이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잠깐만!”

       

       탁-

       나는 돌아가려는 할멈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

       힘 조절에 실패하면 큰일 날 것 같은 어깨였다.

       

       “할멈. 일단 얘기부터 들어봐.”

       “밀린 월세부터 내.”

       “6개월이나 밀렸는데 어떻게 내.”

       “밀리지 말고 꾸준히 냈어야지. 이 썩을 놈아.”

       

       역시 연륜을 이기기는 힘드네.

       드래곤들이 나를 상대할 때 이런 기분을 느꼈겠지.

       괜히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다.

       

       “이제부터라도 천천히 낼게. 그전에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말해봐.”

       “나랑 옥상 좀 같이 쓰면 안 될까?”

       

       5층.

       옥상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할매에게 허락받아야 한다.

       열쇠는 오직 할매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 화단 꾸리게. 이것도 가져왔어.”

       

       나는 그리 말하며 할매에게 검은 봉투의 내부를 보여줬다.

       

       “봐. 흙이랑 상추 씨앗도 사 왔어.”

       “…내가 거절하면 어쩌려고 씨앗을 샀냐.”

       “거절하기 힘들게 하려고 씨앗 사온 건데?”

       “에휴, 이 썩을 놈. 잠깐 기다리고 있어 봐.”

       

       할멈은 그리 말하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나를 버린 줄로만 알았을 때.

       천천히 걸어 나오며 손을 건넸다.

       

       “열쇠다. 비어있는 화단도 있을 거니까. 그거 써.”

       “뭐야, 할멈 왜 이렇게 착해.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나는 평소랑 똑같아. 네가 달라졌을 뿐이지.”

       “나?”

       “쯧-”

       

       할멈은 혀를 차고 말했다.

       

       “구봉구. 그 자식이 너 찾더라. 덜 맞으려면 돈 좀 모아놓고 있어라.”

       “…”

       

       벌써 수금일이 다가왔나.

       시간 참 빠르네.

       나는 열쇠를 세게 쥐고, 할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고마워. 열쇠는 잘 쓸게.”

       “…자주 얼굴 비치고 그래라.”

       “어, 시간 나면 갈게.”

       

       쿵-

       할멈은 내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는 문을 닫았다.

       서로 봤던 기간이 오래됐기 때문일까.

       내가 없어진 동안 나름 걱정했던 것 같다.

       빚이 생기기 전에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기도 하니까.

       

       “자, 그럼 옥상에나 올라가 볼까.”

       

       나도 처음에 가까운 옥상.

       나는 옥상문에 열쇠를 꽂아, 빌라의 가장 높은 곳에 발을 내딛으려 했다.

       그러나, 문을 열기만 하고 옥상에는 올라가지 않았다.

       

       “…애들도 데려와야겠다.”

       

       혼자 보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내 원룸은 반지하도 아닌 지하이다.

       빛이 들지 않으며, 곰팡이 습기가 가득하다.

       그렇기 때문에 드래곤 녀석들이 빌라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바깥을 구경했으면 했다.

       너무 원룸에만 있으면 심심할 테니까.

       

       “바깥으로 나온 소감이 어때, 애들아.”

       

       화련이는 하늘에 떠오른 달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좋아! 나 자주 나올래!”

       

       와아아-

       화련이의 붉은 눈이 달에 비쳐 한층 더 강렬해졌다.

       갑갑했던 원룸을 벗어나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수련아. 너는 어때?”

       

       수련이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쁘지 않아. 혼자였으면 더 좋았을 것 같고.”

       “…아빠 상처받는다?”

       “아빠가 아니라 집주인.”

       “…”

       

       서운하네.

       그래도 혼자라면 더 좋았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지.

       수련이는 저 혼자 떨어져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을 가만히 느끼며,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고 있었다.

       

       “저거 중2병이네.”

       “샤아아-?”

       “초련아 너는 저렇게 되면 안 된다?”

       

       읏차-

       나는 초련이를 들어 옥상을 한 차례 둘러봤다.

       할매가 고추를 말린 흔적들과 화단에는 이름모를 나무와 각종 꽃이 피어 있었다.

       

       “샤아아아…”

       

       초련이는 입을 떡하니 벌린 채, 그 식물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초련이의 눈에는 아주 인상이 깊은가 보다.

       

       “초련아. 너는 저 중에서 뭐가 제일 마음에 들어?”

       “샤아아-!”

       

       초련이는 곧바로 앞발을 뻗었다.

       그곳에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초록색의 방울 토마토가 자리하고 있었다.

       

       “맛있는 건 기가 막히게 아네.”

       “샤아아-!”

       

       드래곤에 눈에는 당연한 일인가 보다.

       그렇게 우리는 옥상 구경을 끝내고.

       가장 중요한 파종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상추 씨앗을 사면서 대충 들었는데.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하더라.”

       “샤아아-”

       “대충 흙에 퇴비를 뿌리고, 씨앗을 간격을 두고 요리조리 흩뿌리면…”

       

       끝.

       상추는 키우기 아주 쉽다고 하더니.

       정말 쉬운 느낌이었다.

       

       “이렇게 끝나도 될까 싶을 정도네.”

       “샤아아-!”

       

       초련이는 흙을 마구 밟으며 흙을 평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잘 자라라는 듯이 눈을 감고 화단을 향해 숨결을 내뱉었다.

       

       ‘기도하는 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마무리 작업까지 완벽하게 끝마쳤다.

       

       “잘했어, 초련아! 손 위로 올려!”

       “샤아아-?”

       “하이파이브!”

       

       짝-

       마치 영혼의 단짝처럼.

       나와 초련이는 기가 막힌 하이파이브를 성공했다.

       아빠와 딸의 완벽한 작품이었다.

       

       “으으, 저게 뭐야. 야 초련. 집주인이랑 놀지 말라고 했지. 이상해진다고.”

       “유치해.”

       

       질투하기는.

       나는 질투심 많은 드래곤 녀석들을 무시하고, 초련이를 어깨 위로 올렸다.

       

       “이제 슬슬 들어가자. 이러다가 들키겠다.”

       “내가 먼저 들어갈 거야! 다 비켜!”

       “많이 즐기긴 했어.”

       “샤아아-!”

       

       드래곤들은 기분 전환을 해서 좋은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집을 향해 돌아섰다.

       이제 저 화단에 심은 상추가 어떻게 자랄지는.

       

       “초련아. 저거 나중에 맛있게 먹자. 좋지?”

       “샤아아-! 샤아아-!”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초련이의 현재 모습도.

       초련이는 다른 드래곤과 달리 느긋한 편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느린 다르팽이입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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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Dragon Egg

I Picked up a Dragon Egg

드래곤의 알을 주웠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picked up an Egg from the Dragon’s Nest. “Shakk!!!!” “Should I just sell?” I should have picked some other tr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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