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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나의 실력을, 수준을 객관적으로 아는 것은 사뭇 중요한 사항이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고 해도 주관적으로 상황을 인식하며 자신에게 한없이 긍정적이게 되는 것이 사람의 심리란 것이니.

         

       허나 이한은 항상 저에게 엄격했다.

       그럴 수밖에.

       그는 스승이 없으며, 오롯이 홀로 서야만 했으니까.

       특별한 능력이 있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편리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이한은 노력하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상시 노력했다.

         

       ‘내 실력을 어떻게 가늠해야 할까?’

         

       만약 이 세계관이 무협이었다면 아마 기사란 종자들은 대부분 일류무인에서 절정 무인쯤은 될 거다.

       투기법을 익힌 놈들이며, 촉망받는 정파의 후기지수들 수준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반대로 자신은 투기법이 아닌 사외마도의 방식으로 강해진 종자일 것이다.

       사술이나 트롤의 회복력이나 거기서 거기이니.

       허나 이로 인해 강해지는 것을 반복한 이한의 수준은 분명히 말해 절정 끝자락에 닿았으리라.

         

       그리고 예상컨대 절정을 넘어 입신(入神) 경지에 이른다면 아마도.

         

       콰아아앙!

         

       저 양반이 되겠지.

         

       이한의 몸이 처참하게 흙바닥을 나뒹굴었다.

         

       파앗!

         

       다만 나뒹굴게 무섭게 그는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일련의 몸짓이 어찌나 탄력적이고 재빠른지 사람이 아니라 네 발 달린 맹수의 움직임이 연상케 될 지경.

         

       콰직!

         

       그가 바닥을 걷어찰 때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바닥이 부서졌고, 이한은 그대로 태클을 걸었다.

       그의 무게와 힘, 속도 등이 더해지자 일순 덤프트럭 충돌에 맞먹는 강한 파괴력을 자랑했지만, 아쉽게도 상대는 겨우 덤프트럭으로 움직일 만한 양반이 아니었다.

         

       휘이익!

         

       “여전히 거칠구나. 좀 더 여유로울 줄 알아야 하거늘.”

         

       바람을 갖고 노는 나비와 같은 몸놀림.

       이한의 강한 태클을 그대로 흘려버리며 피하는 발타르였고, 그는 그대로 손바닥을 들어 자연스레 이한의 등 뒤에 일장을 꽂았다.

         

       쿠우웅!

         

       “크으으윽!”

         

       바닥이 들썩였다.

       몸을 관통하는 발타르의 일장에는 신묘한 묘리가 섞여 있는지 그의 강인한 몸을 꼬챙이로 꿰뚫는 듯했고, 그를 무너트리려 들었다.

       만약 일반인이 저 일장을 맞았다면 내부에서부터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키며 그대로 터졌으리라.

       상당히 잔인한 광경이 연출됐으리란 뜻.

         

       “…이 지독한 양반!”

       “허허, 더 단단해졌구나.”

         

       허나 이한의 몸은 터지지도, 그렇다고 기절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대로 발타르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우지지직!

         

       쇠를 우그러트리는 완력이 여지없이 드러나며 발타르의 손목을 졸랐다.

       인간의 손목 따위는 얇은 나뭇가지마냥 산산조각 낼 강인한 완력.

         

       “힘만 무식하게 준다고 해서 뭐가 될까.”

         

       이한의 완력에도 발타르는 아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러 유저가 왜 초인으로 통하겠는가.

       저토록 약해 보이는 육신이 감히 누구도 예상치 못할 초인적인 힘을 담은 그릇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완력이 강하다 한들, 쉽게 부러트릴 수 없는 노릇.

         

       아니나 다를까.

         

       “흡!”

       “커헉!”

         

       이한은 형편없이 날아갔다.

       발타르의 몸에서 폭산 하듯 튀어나오는 강인한 압력이 곧 태풍이 되어 그를 날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콰앙!

         

       그는 넘어지지 않았고, 그대로 돌진하는 자세 그대로 힘을 주었다.

       종아리와 허벅지 등에 힘을 모으자 터질 듯이 부풀었고, 이한은 그 자세 그대로.

         

       콰아아앙!

         

       제 온몸을 튕겨 쏘아냈다.

       저를 마치 화살처럼 쏴버리는 대담한 수.

         

       파아앙!

         

       돌풍이 몰아치며 주변을 휩쓴다.

       주변에 널브러진 돌멩이마저 모래로 변하게 하는 압력과 충격파가 그의 힘을 알려준다.

       이를 보며 시종일관 조소를 머금던 발타르의 입가에서 처음으로 조소가 사라졌다.

         

       대신.

         

       “좋구나.”

         

       촤악!

         

       그가 처음으로 검을 들었다.

       여전히 칼집에 검이 꽂혔으나, 그가 검을 들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세가 바뀐다.

         

       사악!

         

       발타르는 이한이 자신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먼저 검을 휘둘렀다.

       허공에 대고 칼질.

       우스꽝스럽고 저게 갑자기 무슨 자세냐 싶을 수도 있다만, 일련의 휘두름이 일으킨 변화는 결코 우스꽝스러운 게 아니었다.

         

       파아앙!

         

       “…?!”

         

       쾅, 하고 이한은 무언가에 부딪친 듯 경로가 막히며 그대로 뒤집혔다.

       날아가던 화살이 방패에 막혀 꽂히는 것과 달리, 공기의 막은 무척이나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지라 그를 상처 입히지 않고 그대로 튕겨낸 것이다.

         

       “…아재, 바람으로 방패도 만들 줄 알아?”

       “작은 재주이지. 다만 산의 폭군 못지않은 맹수에겐 비교적 괜찮은 한 수이지.”

       “……돌겠네.”

         

       이한은 바닥에 주저앉은 굴욕스러운 자세 그대로 숨을 몰아쉬며 인상을 구겼다.

       허나 그는 그다지 지쳐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 비해 덜 맞기도 했지만, 그의 체력만큼은 확실히 규격 외인지라 이 정도론 숨도 안 찬 것이다.

         

       물론 오러 유저와 대결한 파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끈!

         

       “…갈비뼈가 부러졌네.”

       “허허, 겨우?”

       “겨우라니, 아파 죽겠구먼.”

         

       아마 다시 붙으려면 1시간은 있어야 하리라.

         

       “좋구나, 나한테서 이 수까지 쓰게 만들다니.”

       “그런 건 어떻게 하는 거야?”

       “바람의 결을 읽어내면 누구나 간단히 할 수 있는 수법이다. 주문쟁이 녀석들이 즐겨 쓰더군.”

       “…주문 없이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처음 알았는데.”

       “무(武)의 세계에는 끝이 없는 법. 노력하다 보면 주문쟁이들 수법쯤은 간단히 할 수 있게 되지.”

       “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마 주문쟁이도 자신과 비슷한 소리를 하리라.

       그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발언이었으니.

         

       바람의 벽이라니, 저건 또 어찌 뚫어야 하냔 말이다.

         

       ‘까도, 까도 계속 뭐가 나와.’

         

       역시 70년 산 노괴.

       숨겨둔 수법이 끝도 없다.

         

       “너야말로 방금 전 그건 무엇이냐? 마치 화살처럼 날아오더구나.”

       “궁신탄영이라고 이름 붙였어.”

       “…전에 말한 ‘금강’인지 뭔지도 그렇고, 네놈이 쓰는 기술들은 하나같이 좀 괴상한 면이 있구나.”

       “남이사.”

         

       이한은 투덜거리면서도 머리론 방금 전 대련을 복기했다.

         

       ‘내가중수법 비슷한 거 하나, 나머진 검풍(劍風)이라고 생각하면 되나?’

         

       전생 시절 수없이 본 무협지로 발타르의 수법을 제 식대로 전환해 보며 이한은 고심했다.

         

       ‘…검풍은 몰라도 내가중수법 저건 흉내 낼 수 있을지도?’

         

       …이런 식인가?

         

       투웅.

         

       “…쓰읍, 아닌가?”

         

       땅바닥을 향해 손바닥을 대어 튕겼으나, 아쉽게도 슬쩍 충격만 주고 말았다.

       이건 내가중수법보단 그냥 기운을 실은 것에 가깝다.

         

       그렇게 실망하고 있자니.

         

       “여전히 감각 하나는 좋구나. 투기법의 기초도 모르는 놈이 그걸 흉내 내? 허어.”

         

       발타르가 황당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

         

       당초 투기법이 무엇이던가.

       수련을 쌓은 무인이 몸속의 흐름인 생명력(生命力)을 느끼고 이를 분출하거나 순간적으로 몸을 강화시키는 일종의 강체술(剛體術)이 아닌가.

         

       허나 이는 아무나 익힐 수 없는 신묘한 ‘기술’과 같기에 이를 보고 투-기법(技法)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몸속 생명력을 느끼는 것부터 이를 다스린다는 것 자체는 오로지 재능의 영역이다.

       뿐인가, 흐름을 느끼는 적절한 시기는 그나마 생명력이 미약한 어린 시절에 느껴야 하는 것이 최선이고, 늦은 나이에 아무리 익히려고 해봤자 무의미하다.

       이미 가장 흐름이 세밀하고 약한 시기가 지나고, 생명의 흐름이 다소 굳어진 성인이 이를 느끼기란 요원한 일이니.

         

       한데 저놈은 다르다.

       벌써 서른이나 된 녀석인데도 여전히 성장기의 아이처럼 생명력이 ‘맥동’하는 중이니 말이다.

       그리고 성장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가진 특성이 신기한 것인지 흐름을 감각적으로 다루고 있다.

         

       예시를 들자면 방금 전 다리의 힘을 부풀려서 화살처럼 쏘아지는 방식이나, 그도 아니면 몸속 장기가 발타르의 힘을 버틴 것도 그런 원리이다.

         

       ‘다만 저놈의 힘은 중구난방이다. 그저 감각적으로 다루기에 그런 것일 테지.’

         

       투기법의 기초가 부족하고, 마냥 단련을 통해 흐름을 키울 뿐인 행위로 몸 전체에 강맹한 회전력만 형성된 특이한 상태.

       몸속에서 파도가 쉼 없이 출렁이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만약 발타르 외 누군가가 이한의 몸 상태를 알았다면 경악했을 거다.

       진즉 흐름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어야 할 놈이, 무식하게 그릇만 키워 여전히 멀쩡한 상태이니.

       미친 주문쟁이라면 그를 실험체로 삼거나, 해부하려고 발악했을 터.

         

       ‘…흥미롭단 말이야.’

         

       발타르가 느끼는 감정은 오직 흥미뿐이었다.

       저만한 흐름이, ‘생명력(生命力)’ 계속 강맹해진다 가정하고, 그릇 또한 버틸 수 있다 가정했을 때.

       만약 저러한 상태에서 오러의 각성을, 초인이 된다면 어떠할까?

         

       어쩌면.

         

       ‘전설적인 사자왕이나 기사왕에 맞먹는 강함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아직은 예상일 뿐인 단계.

       허나 앞날 창창한 젊은이의 미래를 상상하는 건.

         

       ‘말년에 참 흥미를 자극하는 놈을 발견했단 말이지, 허허.’

         

       은퇴를 앞둔 노인에겐 어쩔 수 없는 유희거리이리라.

         

       발타르는 시큰거리는 손목을 감추며 시원스레 웃었다.

         

       * * *

         

       꿀꺽….

         

       마른 침 넘어가는 소리만이 얕게 울렸다.

       그 정도로 두 기사의 충돌은 격정적인 충격을 안겼기에.

         

       특히 둘의 충돌을 처음 보는 신입 기사들의 충격은 더욱 거셌다.

       분명 이한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수석 졸업자였던 요르드를 단번에 제압했지 않았던가.

         

       그러나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뭐냐, 저건?

         

       ‘미니 [산군]?’

         

       산군, 혹은 산의 폭군으로 불리는 마물 오우거.

         

       실물로 보지 않았지만, 만약 인간 형태의 산군이 있다면 저러하지 않을까 싶었다.

       혹 마물과의 혼혈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

         

       ‘저런 사람이 왜 평기사로 남아 있지?’

         

       신분이 뭐건 간에, 저 정도 실력자라면 어느 정도 지위에 있어야 함이 옳다.

       요르드는 약간 편파적인 시선이 낀 것은 부정하지 않겠지만, 그가 아직도 평기사인 건 인정할 수가…!

         

       “벌점이 많아서 그렇다. 그러니 괜한 오해하지 마.”

       “…예에?”

       “저놈 신분이 낮아서 높은 분들 중 아니꼽게 보는 녀석들이 많은 건 사실인데, 겨우 그것만으로 지위가 평기사인 건 아니야. 저놈 행태가 불량해서 아직 평기사인 거지.”

       “불량?”

       “지각은 물론이거니와, 임무 수행도 잘 안 나가거든. 그거 때문에 벌점이 상당히 많은 상태지.”

       “…….”

       “실력만 보면 진즉 부기사단장도 노릴법하지만, 글쎄, 저놈 행실이 저러해서 언제 출세할진 모르겠네, 허.”

       “…역시 괴상한 분이군요, 리한 선배는.”

       “이한이라니까. …근데 내가 이걸 왜 정정해주고 있지?”

         

       요르드는 제이크의 뒷말을 듣지 못한 채 마냥 뜨겁게 이한을 보았다.

         

       비록 이한으로선 형편없이 깨졌다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보고 있는 요르드는 달랐다.

         

       당장 단장님이 아니라, 이한이란 존재가 거대한 벽이자 지향해야 할 목표란 걸 직감한 것이다.

         

       ‘저런 분이 곁에 있다니, 이는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저만한 강자가 곁에 있다.

       또한 항상 대련할 상대를 구하고 있다 했고!

       이는 요르드에게 기회였다.

         

       저만한 강자와 대련한다면 자연스레 그 또한 성장할 테니.

         

       ‘기대되는군.’

         

       요르드는 기사단 생활이 더할 나위 없이 보람차게 느껴-.

         

         

       “─기사, 이한 터틀은 들어라. 태도 불량, 기사단 시설물 파괴, 임무 불이행 4개월 및 여타의 죄질을 좌시할 수 없는 바. 이는 명예스러운 백은사자의 기상을 헤치는 일이니 그대를 퇴직처리해야 하는 것이 옳다. 허나! 그동안 쌓은 공도 부정할 수 없기에 이를 감안하여 그대의 죄질을 삭감할 명예스러운 처벌을 내리기로 하겠다. 팬드래건의 미래를 책임질 학도(學徒)들을 3년 간 가르치고 와라. 이는 참으로 명예스럽고도 현명한 처사가 아닐 수 없으니, 이한 터틀은 이를 영광으로 여겨라.”

         

       …어라?

         

       안타깝게도 요르드의 희망사항은 저 멀리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이한.

         

       그는 좌천당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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