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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14화. 선택은 자유야. 마음대로 해.
     
     
     
     
     
     
   * * *
     
   지하 9층을 벗어나는 데 5일이 걸렸다.
   상층으로 연결된 출구가 전부 막혀 온 쉘터를 다 헤매고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출구가 막힌 이유는 폐쇄 조치에 따른 것이었다.
   다만, 이전과 방식의 차이는 있었다.
     
   지하 10층처럼 폐쇄까지 시간제한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떤 경고나 안내 없이 이루어진 기습적인 폐쇄였다.
   그리고 층 전체를 폭파했던 것과 다르게 상층으로의 이동을 차단했다.
     
   “세상에, 맙소사. 경고도 없이 승강장을 전부 막아버리다니.”
     
   리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같은 말을 반복했었다.
     
   하지만 강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일행을 이끌고 북부와 동부, 그리고 남부 승강장으로 이동했다.
     
   ‘어차피 긴급 폐쇄라는 건 그런 거니까.’
     
   자동 복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이런 폐쇄 결정은 결국 구성원을 살릴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십 년 가까이 대테러 진압팀에서 활동하며 자연히 알게 된 정치적 속성이었다.
   그건 세계 종 보관소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인류의 오래된 논제.
     
   강호는 그 해묵은 논쟁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정말 어쩔 수 없었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폐쇄를 결정한 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강호는 어느 순간부터 그를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말이네요. 강호 씨 예상대로 모든 통로가 다 막혔어요.”
     
   마지막 남부 승강장에 도착했을 때, 리사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뿐 아니라 레이나와 사토시도 절망했다.
     
   ‘하지만, 강호 씨라면…?’
   ‘소령님은 방법을 알지 않을까?’
     
   역시 믿을 건 한강호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믿음에 부응했다.
     
   업데이트된 재난 매뉴얼의 내용으로 설계도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탈출로를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수의 격전은 피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생각보다 뮤턴트나 변이 생명체의 수가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최소한 이동 경로에 있는 대피소는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게나마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로 일행이 42명이 됐다.
     
   * * *
     
   강호만 아는 탈출로.
   8층으로 올라온 통로는 다름 아닌 하수로였다.
     
   여과나 정수 처리를 하지 않고 버려도 되는 오폐수를 지층에 흘려버리는 관로였다.
   당연히 규정 위반 시설이었기에 정식 구조도나 설계도면 등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하아, 아아아…!”
   “사, 살았다!”
     
   사람들은 살았다는 기쁨에 한동안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괴물로 변한 옛 동료를 피해, 종류를 알 수 없는 더러운 오물의 강을 건너 생존했다.
   참담함부터 감사까지 온갖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런데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
     
   끼아아아악!
   크르르르.
     
   “으악!”
   “아, 안 돼!”
     
   폐수 처리 쉘터에서 나오자마자 팔 네 개 달린 경비원들이 톱날 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8층은 10층처럼 쉘터마다 네 개 통로로 연결돼 있다. 무조건 우측 통로로 이동한다.”
     
   선두에 있던 강호와 레이나, 울프가 다수의 괴생명체를 상대하는 사이, 리사와 사토시는 일반 연구원 38명을 다음 쉘터로 호위했다.
   이능력자가 네 명, 울프를 포함해도 다섯 명뿐이었기에, 이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그렇게 여섯 개의 쉘터를 이동했다.
   다행히 죽거나 부상, 낙오된 일행은 없었다.
     
   10층에서 마주쳤던 누더기 골렘이나 9층의 크리처처럼 특별한 능력의 괴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능력이 없는 일반인에게는 고역일 수밖에 없는, 살 떨리는 여정이었다.
   그래도 한강호 일행 덕분에 살아서 7층에 오를 수 있었고, 같은 방식으로 6층까지 올라갔다.
     
     
   “너무 조용한데?”
   “하지만, 깨끗해. 부서지거나 충격이 있던 흔적은 없어.”
     
   6층 비상 통로를 나오자 온통 하얗고 넓은 조리실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쉽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내내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 많은 피를 뒤집어쓰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강호는 그런 사람들에게 약간의 긴장 완화를 주문했다.
     
   “조금은 마음 편히 이동해도 돼. 재난 매뉴얼의 내용대로라면, 이곳에 생명체는 없을 거야.”
     
   그의 말대로였다.
   이후 이동하는 쉘터마다 처음의 조리실과 다르지 않았다.
   어떤 위험도 없었고, 변이 생명체도 없었다.
     
   “원래 이곳은 ‘세계 종 보관소의 라스베이거스’ 아니었나요?”
     
   그나마 종 보관소의 각 층 구성을 아는 레이나가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각종 휴게 시설과 유흥시설, 편의 시설 등을 집약해 놓은 곳이라 그렇게 불렸더군.”
     
   그 대화에 사토시가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저도 여기 올라와서 자주 시간을 보냈거든요. 그런데 언제, 왜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사이, 층 전체 시설이 바뀌었다는 주장이었다.
   강호는 곧장 매뉴얼의 새로운 시설 안내를 확인했다.
     
   “이용 인구 감소, 공간과 전력 낭비, 쉘터 기능 중복, 그게 용도를 변경한 이유라는데.”
     
   바뀐 용도는 ‘공단’이었다.
     
   각종 식품과 생필품부터 종 보관소 유지 보수에 필요한 기계 부품까지.
   층 구성 자체가 제조나 제작 등을 위한 팩토리 쉘터와 예비 전력 생산 시설로 채워졌다.
     
   “아, 그래서 전부 휴머노이드뿐이군요!”
   
   전자동화.
   6층은 말 그대로 인간의 관리와 노동력이 필요 없는 곳이었다.
   간혹 돌아다니는 건 휴머노이드가 전부였다.
     
   덕분에 6층에서는 휴머노이드의 친절한 안내까지 받으며 5층으로 올라가는 승강장으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단, 6층 역시 중앙 정보 시스템과 통신은 이용할 수 없었다.
     
   ‘정보와 통신을 차단하는 건 통제와 강제를 위한 가장 기본 조치다.’
     
   시간이 갈수록 어떤 의구심이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강호는 심신이 지친 일행을 위해 최소한의 휴식과 정비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안배했다.
   지금 있는 6층처럼 원래의 평화로움을 유지하는 곳이 더는 없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편으로는 그 평화로움이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강하게 자극했다.
   
   “우리, 그냥 이곳에서 지내면 안 될까요? 만약 5층으로 올라갔다가 그곳도 아래층과 같으면…….”
     
   우려와 걱정에서 시작된 누군가의 의견이었다.
   약속된 하루의 휴식이 끝나고, 이제 5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모였을 때였다.
   하지만 강호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도 언제까지 안전할 순 없다. 결국 전 층이 다 폐쇄될 거야.”
   “왜죠? 이유가 뭔가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저 생존 확률이 높은 쪽으로 움직이는 것뿐.”
   “……….”
     
   강호는 사람들의 눈빛과 태도를 보며, 자신들끼리 이미 어떤 결정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나, 명분을 만들기 위한 트집이 시작됐다.
     
   “뚜렷한 대책도 없으면서, 무작정 올라가야 한다는 거야?”
   “항상 명령 하기에 난 또 뭐 대단한 계획이라도 있는 줄 알았네.”
   “그렇다면, 난 여기 남겠어. 확실치도 않은 판단과 책임지지도 않을 대장 놀음에 어울렸다가 죽을 필요 없잖아.”
     
   강호는 말문이 막혔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살려줘서 고맙다고 했던 이들이었다.
     
   사실 예전 같았으면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했을 것이다.
   완벽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족함을 자책하며 미안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인질을 구하려고 사지로 뛰어드는 대테러부대 팀장이 아니다.’
     
   강호는 따지듯 마주 서 있는 사람들을 슥 훑어봤다.
     
   “대장질이라…. 내가 당신들을 억지로 끌고 왔나?”
   “그, 그건 아니지만…”
   “선택은 자유야. 마음대로 해. ”
     
   강호는 그대로 돌아서서 휙 가버렸다.
   그런 강호의 뒷모습을 보던 레이나가 경멸 어린 눈으로 사람들을 노려봤다.
     
   “저 사람이 아니었다면, 당신들이 지금 살아 있을까?”
     
   그녀는 콧방귀를 끼며 강호를 따라갔다.
     
   “흥. 쓰레기들.”
     
   레이나의 거칠고 차가운 태도에 사람들이 욕을 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자기장 피폭으로 돌연변이나 된 주제에!”
   “인간도 아닌 것들이!”
     
   그 어이없는 성토에 침착하던 리사도 결국 한마디를 하고 돌아서야 했다.
     
   “좀비나 크리처가 되는 것보단, 이런 돌연변이가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그럼, 행운을 빌어요.”
     
   사토시는 멀찍이서 상황을 보고만 있었다.
   내내 울프에게 속삭이기만 했다.
     
   “울프, 가서 물어.”
     
     
   결국 15명은 6층에 남았다.
   처음부터 함께했던 강호 일행 포함, 27명만이 5층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5층은 강호의 예상대로 이미 폐허가 되어있었다.
   모든 시설과 설비가 파괴되어 있었고, 생존자는 보이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인지, 크리처나 뮤턴트, 좀비도 없었다.
   이유는, 산소 공급까지 막혀 호흡이 필요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던 것이다.
     
   “리사 박사님의 판단 덕입니다.”
     
   산소 공급 장치가 내장되어 있는 우주복 형태의 방호복을 선택한 리사의 준비성에 누군가 감탄하고 감사해했다.
     
   “감사는 강호씨에게 하세요. 재난 매뉴얼 내용을 통해서 이곳 상황을 예측한 건 강호씨에요.”
     
   그녀의 말대로 강호는 5층 상황을 최악으로 가정해 두었다.
   판단 근거는 5층이 주거 쉘터가 집중된 곳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많은 만큼 피해가 클 수밖에.
     
   하지만 한 가지, 강호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 있었다.
     
   ‘시체가 없다.’
     
   강호는 어떤 불안감에 전율했다.
   그 많은 사람이 전부 변이체가 됐을 가능성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방해 요소가 없었기에 일단 위층으로 올라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뜻밖에 정보 시스템과 통신이 살아있는 4층 상황 통제실에서 6층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어떡해!”
   “오, 신이시여.”
   “맙소사.”
     
   유토피아라도 되는 양 6층에 남은 사람들이 휴머노이드에게 사냥당하고 있었다.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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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선택은 자유야. 마음대로 해.

* * *

지하 9층을 벗어나는 데 5일이 걸렸다.

상층으로 연결된 출구가 전부 막혀 온 쉘터를 다 헤매고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출구가 막힌 이유는 폐쇄 조치에 따른 것이었다.

다만, 이전과 방식의 차이는 있었다.

지하 10층처럼 폐쇄까지 시간제한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떤 경고나 안내 없이 이루어진 기습적인 폐쇄였다.

그리고 층 전체를 폭파했던 것과 다르게 상층으로의 이동을 차단했다.

“세상에, 맙소사. 경고도 없이 승강장을 전부 막아버리다니.”

리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같은 말을 반복했었다.

하지만 강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일행을 이끌고 북부와 동부, 그리고 남부 승강장으로 이동했다.

‘어차피 긴급 폐쇄라는 건 그런 거니까.’

자동 복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이런 폐쇄 결정은 결국 구성원을 살릴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십 년 가까이 대테러 진압팀에서 활동하며 자연히 알게 된 정치적 속성이었다.

그건 세계 종 보관소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인류의 오래된 논제.

강호는 그 해묵은 논쟁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정말 어쩔 수 없었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폐쇄를 결정한 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강호는 어느 순간부터 그를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말이네요. 강호 씨 예상대로 모든 통로가 다 막혔어요.”

마지막 남부 승강장에 도착했을 때, 리사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뿐 아니라 레이나와 사토시도 절망했다.

‘하지만, 강호 씨라면…?’

‘소령님은 방법을 알지 않을까?’

역시 믿을 건 한강호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믿음에 부응했다.

업데이트된 재난 매뉴얼의 내용으로 설계도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탈출로를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수의 격전은 피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생각보다 뮤턴트나 변이 생명체의 수가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최소한 이동 경로에 있는 대피소는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게나마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로 일행이 42명이 됐다.

* * *

강호만 아는 탈출로.

8층으로 올라온 통로는 다름 아닌 하수로였다.

여과나 정수 처리를 하지 않고 버려도 되는 오폐수를 지층에 흘려버리는 관로였다.

당연히 규정 위반 시설이었기에 정식 구조도나 설계도면 등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하아, 아아아…!”

“사, 살았다!”

사람들은 살았다는 기쁨에 한동안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괴물로 변한 옛 동료를 피해, 종류를 알 수 없는 더러운 오물의 강을 건너 생존했다.

참담함부터 감사까지 온갖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런데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

끼아아아악!

크르르르.

“으악!”

“아, 안 돼!”

폐수 처리 쉘터에서 나오자마자 팔 네 개 달린 경비원들이 톱날 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8층은 10층처럼 쉘터마다 네 개 통로로 연결돼 있다. 무조건 우측 통로로 이동한다.”

선두에 있던 강호와 레이나, 울프가 다수의 괴생명체를 상대하는 사이, 리사와 사토시는 일반 연구원 38명을 다음 쉘터로 호위했다.

이능력자가 네 명, 울프를 포함해도 다섯 명뿐이었기에, 이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그렇게 여섯 개의 쉘터를 이동했다.

다행히 죽거나 부상, 낙오된 일행은 없었다.

10층에서 마주쳤던 누더기 골렘이나 9층의 크리처처럼 특별한 능력의 괴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능력이 없는 일반인에게는 고역일 수밖에 없는, 살 떨리는 여정이었다.

그래도 한강호 일행 덕분에 살아서 7층에 오를 수 있었고, 같은 방식으로 6층까지 올라갔다.

“너무 조용한데?”

“하지만, 깨끗해. 부서지거나 충격이 있던 흔적은 없어.”

6층 비상 통로를 나오자 온통 하얗고 넓은 조리실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쉽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내내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 많은 피를 뒤집어쓰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강호는 그런 사람들에게 약간의 긴장 완화를 주문했다.

“조금은 마음 편히 이동해도 돼. 재난 매뉴얼의 내용대로라면, 이곳에 생명체는 없을 거야.”

그의 말대로였다.

이후 이동하는 쉘터마다 처음의 조리실과 다르지 않았다.

어떤 위험도 없었고, 변이 생명체도 없었다.

“원래 이곳은 ‘세계 종 보관소의 라스베이거스’ 아니었나요?”

그나마 종 보관소의 각 층 구성을 아는 레이나가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각종 휴게 시설과 유흥시설, 편의 시설 등을 집약해 놓은 곳이라 그렇게 불렸더군.”

그 대화에 사토시가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저도 여기 올라와서 자주 시간을 보냈거든요. 그런데 언제, 왜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사이, 층 전체 시설이 바뀌었다는 주장이었다.

강호는 곧장 매뉴얼의 새로운 시설 안내를 확인했다.

“이용 인구 감소, 공간과 전력 낭비, 쉘터 기능 중복, 그게 용도를 변경한 이유라는데.”

바뀐 용도는 ‘공단’이었다.

각종 식품과 생필품부터 종 보관소 유지 보수에 필요한 기계 부품까지.

층 구성 자체가 제조나 제작 등을 위한 팩토리 쉘터와 예비 전력 생산 시설로 채워졌다.

“아, 그래서 전부 휴머노이드뿐이군요!”

전자동화.

6층은 말 그대로 인간의 관리와 노동력이 필요 없는 곳이었다.

간혹 돌아다니는 건 휴머노이드가 전부였다.

덕분에 6층에서는 휴머노이드의 친절한 안내까지 받으며 5층으로 올라가는 승강장으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단, 6층 역시 중앙 정보 시스템과 통신은 이용할 수 없었다.

‘정보와 통신을 차단하는 건 통제와 강제를 위한 가장 기본 조치다.’

시간이 갈수록 어떤 의구심이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강호는 심신이 지친 일행을 위해 최소한의 휴식과 정비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안배했다.

지금 있는 6층처럼 원래의 평화로움을 유지하는 곳이 더는 없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편으로는 그 평화로움이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강하게 자극했다.

“우리, 그냥 이곳에서 지내면 안 될까요? 만약 5층으로 올라갔다가 그곳도 아래층과 같으면…….”

우려와 걱정에서 시작된 누군가의 의견이었다.

약속된 하루의 휴식이 끝나고, 이제 5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모였을 때였다.

하지만 강호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도 언제까지 안전할 순 없다. 결국 전 층이 다 폐쇄될 거야.”

“왜죠? 이유가 뭔가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저 생존 확률이 높은 쪽으로 움직이는 것뿐.”

“……….”

강호는 사람들의 눈빛과 태도를 보며, 자신들끼리 이미 어떤 결정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나, 명분을 만들기 위한 트집이 시작됐다.

“뚜렷한 대책도 없으면서, 무작정 올라가야 한다는 거야?”

“항상 명령 하기에 난 또 뭐 대단한 계획이라도 있는 줄 알았네.”

“그렇다면, 난 여기 남겠어. 확실치도 않은 판단과 책임지지도 않을 대장 놀음에 어울렸다가 죽을 필요 없잖아.”

강호는 말문이 막혔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살려줘서 고맙다고 했던 이들이었다.

사실 예전 같았으면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했을 것이다.

완벽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족함을 자책하며 미안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인질을 구하려고 사지로 뛰어드는 대테러부대 팀장이 아니다.’

강호는 따지듯 마주 서 있는 사람들을 슥 훑어봤다.

“대장질이라…. 내가 당신들을 억지로 끌고 왔나?”

“그, 그건 아니지만…”

“선택은 자유야. 마음대로 해. ”

강호는 그대로 돌아서서 휙 가버렸다.

그런 강호의 뒷모습을 보던 레이나가 경멸 어린 눈으로 사람들을 노려봤다.

“저 사람이 아니었다면, 당신들이 지금 살아 있을까?”

그녀는 콧방귀를 끼며 강호를 따라갔다.

“흥. 쓰레기들.”

레이나의 거칠고 차가운 태도에 사람들이 욕을 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자기장 피폭으로 돌연변이나 된 주제에!”

“인간도 아닌 것들이!”

그 어이없는 성토에 침착하던 리사도 결국 한마디를 하고 돌아서야 했다.

“좀비나 크리처가 되는 것보단, 이런 돌연변이가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그럼, 행운을 빌어요.”

사토시는 멀찍이서 상황을 보고만 있었다.

내내 울프에게 속삭이기만 했다.

“울프, 가서 물어.”

결국 15명은 6층에 남았다.

처음부터 함께했던 강호 일행 포함, 27명만이 5층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5층은 강호의 예상대로 이미 폐허가 되어있었다.

모든 시설과 설비가 파괴되어 있었고, 생존자는 보이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인지, 크리처나 뮤턴트, 좀비도 없었다.

이유는, 산소 공급까지 막혀 호흡이 필요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던 것이다.

“리사 박사님의 판단 덕입니다.”

산소 공급 장치가 내장되어 있는 우주복 형태의 방호복을 선택한 리사의 준비성에 누군가 감탄하고 감사해했다.

“감사는 강호씨에게 하세요. 재난 매뉴얼 내용을 통해서 이곳 상황을 예측한 건 강호씨에요.”

그녀의 말대로 강호는 5층 상황을 최악으로 가정해 두었다.

판단 근거는 5층이 주거 쉘터가 집중된 곳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많은 만큼 피해가 클 수밖에.

하지만 한 가지, 강호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 있었다.

‘시체가 없다.’

강호는 어떤 불안감에 전율했다.

그 많은 사람이 전부 변이체가 됐을 가능성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방해 요소가 없었기에 일단 위층으로 올라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뜻밖에 정보 시스템과 통신이 살아있는 4층 상황 통제실에서 6층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어떡해!”

“오, 신이시여.”

“맙소사.”

유토피아라도 되는 양 6층에 남은 사람들이 휴머노이드에게 사냥당하고 있었다.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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