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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포셀의 선언과 함께 위압이 풀린 듯 오크가 앞으로 고꾸라지려다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그리곤 고갤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피다 내 쪽을 쳐다봤다.

   

   오크가 지닌 날것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부딪히고 오크가 숨을 내뱉었다.

   

   놈의 숨은 가을의 날씨에도 흰 연기가 보일 정도로 뜨거웠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저 오크가 나를 약자로 규정했음을.

   

   도주를 위해 내 쪽으로 달려들 것이라는 사실을.

   

   그를 깨닫자마자 방패를 치켜 들었다.

   

   오크를 바라본다.

   

   야생에서 단련된 다리의 근육이 움직이는 것을 본다.

   

   멧돼지와 같은 속도로 내달리는 녀석의 움직임을 본다.

   

   단순하다. 허나 그렇기에 강하다.

   

   다른 미사여구 없이 오롯이 자신의 신체만을 믿고 내달리는 그 움직임은 잡기술이 없기에 진정으로 날카로울 수 있었다.

   

   저런 단순한 돌진은 피하면 그만이란 걸 알고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포셀에게 죽도록 구르면서 그 방법을 익혔으니까.

   

   그렇지만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실전이라는 것은 이토록 긴장되는 것이었단 말인가.

   

   잠시의 망설임은 전투에서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오크와 나의 거리가 지척에 달했다.

   

   이제와 회피를 택할 수는 없다. 어설프게 움직였다가 오히려 오크의 돌진에 휘말릴 게 뻔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피할 수 없다면 막아내면 그만이다.

   

   나는 방패를 든 탱커니까.

   

   철벽이 고한다.

   

   방패를 들리고. 다리에 힘을 넣으라고. 이를 꽉 깨물라고.

   

   상대의 힘은 직선으로 움직이니 그를 이용하면 막아내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철벽이 고하는 것을 따른다. 점차 좁아지는 거리를 보며 타이밍을 잰다.

   

   셋. 둘. 하나.

   

   지금.

   

   오크가 내 방패에 닿기 직전 앞으로 발을 내딛어 오크의 몸 안쪽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방패를 대각선으로 들어 오크의 충격을 받아냈다.

   

   콰앙!

   

   충격에 순간적으로 숨이 멎었다.

   

   이대로 다리에 힘을 빼면 그대로 오크에게 짓눌리게 되겠지.

   

   그러니 버텨야 한다.

   

   이를 꽉 깨물고 허리에 힘을 준다.

   

   다리의 힘만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다. 몸 전체를 땅에 박아 넣어서 한 그루의 나무가 되는 것이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돌진한 오크는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했으니.

   

   기울어진 방패에 부딪힌 오크는 자신의 몸을 조절하지 못한 채 나를 지나쳐 뒤로 날아가 버렸다.

   

   방패를 든 팔이 저리는 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저 멀리로 나가 떨어진 오크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내달린다.

   

   방금 전 충돌을 했을 때 오크의 육신이 그리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다.

   

   포셀이나 칼처럼 전력을 다해 메이스로 내리 찍어도 상처 하나 입지 않는 괴물들과는 달랐다.

   

   저 오크는 때리면 아파하는 평범한 생물에 불과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하니 어느 쪽이 몬스터인지 모르겠네.

   

   오크는 다급히 몸을 일으키곤 돌진하는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몬스터 특유의 근력으로 이루어진 단순무식한 주먹.

   

   맞아줄 이유도. 막아줄 이유도 없다. 저런 건 피하면 그만이야.

   

   허리를 숙이자 오크의 주먹이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렇게 오크의 몸 안으로 파고든 나지만 머리를 노릴 순 없다. 그러기엔 오크와 나 사이의 키 차이가 너무도 크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장기가 들어 있는 복부 또한 훌륭한 급소 중 하나니까.

   

   메이스를 쥔 손에 힘을 더해 복부를 후려쳤다.

   

   퍼억!

   

   끝에 철편이 박힌 메이스는 단순한 둔기가 아니다. 살갗을 파고 들어 찢어버리는 냉병기다.

   

   피가 튀기고 나의 귓가에 오크의 비명소리가 울린다.

   

   지금이 공격의 기회다. 상대가 공포에 질렸을 때 더욱 거세게 압박을 가해야 한다.

   

   재차 메이스를 찍어 주자 오크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전투의 흥분 때문인지 가빠진 숨을 들이키며 앞을 바라본다.

   

   오크의 눈에 공포가 서렸다.

   

   나를 약자로 규정했던 오크는 지금 나의 앞에서 약자로 변모해 있었다.

   

   “뭐해. 도망칠 거야. 허접 오크?”

   “크륵.”

   “덤벼. 역겨운 쓰레기♡”

   

   괴물보다 더 괴물같은 칼과 포셀에게도 먹히는 도발이 이 허접한 오크에게 먹히지 않을 리 없었다.

   

   오크는 방금 전까지 서려 있던 공포를 잊은 것처럼 소리를 내지르며 앞으로 내달렸다.

   

   이전에도 체계없이 막무가내였던 오크는 자신의 분노에 지배되어 무작정 달려 왔다.

   

   그 분노에 힘입어 나의 몸에 힘이 차올랐다.

   

   메스가키 스킬의 버프가 들어오며 느껴지는 특유의 전능감과 흥분을 느끼며 재차 메이스를 치켜 든다.

   

   방패를 들 필요는 없다. 철벽도 그리 고하고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

   

   달려오는 오크의 얼굴에 메이스를 박아 넣는 것.

   

   분노에 생각을 잃어버린 오크는 움직이는 표적에 불과했으니.

   

   그를 노리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메이스의 철편이 오크의 얼굴을 박살냈다.

   

   아무리 튼튼한 오크여도 머리를 뒤흔드는 충격에는 버티지 못한 듯 오크는 돌진하던 모습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졌다.

   

   쓰러진 오크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거기서 보이는 움직임이라고는 그저 기어들어갈 듯 자그마한 숨소리뿐이다.

   

   “이게 첫 실전이라니! 너무 훌륭하셨습니다. 감탄스러울 정도군요!”

   

   ‘…그런가요?’

   “하. 당연하지.”

   

   “이제 마무리를 지으시지요.”

   

   마무리?

   

   그 말을 들은 순간 전투의 흥분 탓에 잊고 있던 현실감이 나를 덮쳐왔다.

   

   나는 방금 전 살아있는 생명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저것이 맞아 죽기를 바라며 필사적으로.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선 죽어가는 오크에게 끝을 고해야 했다.

   

   “아가씨.”

   

   ‘알아요. 그러니까.’

   “알아. 그러니까 있어봐. 멍청아.”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건 옳은 일이다. 그게 이 세상의 상식이다.

   

   몬스터는 인간을 해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니 인간이 그를 죽이는 건 생존을 위한 발악에 불과하다. 정당방위란 소리지.

   

   게임 속에서도 지겹도록 해 본 일이다. 내가 죽인 몬스터의 수만 해도 수백만에 가까울 걸.

   

   몬스터 뿐이겠어? 내가 게임 속에서 죽여보지 않은 게 어디 있을까.

   

   사람. 용. 정령. 요정. 신.

   

   게임 속 모든 NPC를 죽이면 어떻게 되는가를 실험해 본 적 있는 나는 그야말로 학살자나 다름 없었다.

   

   그러니 이 정도는 망설일 것도 아냐.

   

    내가 죽인 오크만 해도 수백 수천만 마리일 텐데 이제와 겁을 먹는 거야?

   

   메이스를 위로 치켜들었다.

   

   그 순간 오크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분노와 공포가 섞인 애처로운 눈이었다.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이전부터 수도 없이 연습했던 동작을 반복했다.

   

   *

   

   판타지 세상의 이동수단이라 하면 무엇인가!

   

   바로 마차다!

   

   말로 차를 움직이는 마차는 중세 풍 판타지라면 단골처럼 등장하고 그건 소울 아카데미의 세계관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이전에 단 한 번도 마차를 타 본 적 없는 나는 에반스까지 가는 데 마차를 탈 수 있다고 해서 기대를 했다.

   

   다그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느긋하게 마차 바깥을 구경하는 것은 그야말로 로망!

   

   나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기꺼이 마차 위에 올라탔다.

   

   그 후 몇 시간이 지났을 무렵 내 환상은 박살이 나버렸다.

   

   마차는 최악이었다.

   

   승차감이 안 좋아서 엉덩이와 허리가 더럽게 아픈 건 그렇다 치고서라도 할 일이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마차 여행은 지루했다.

   

   창밖의 풍경을 보는 것도 처음 한 1분 정도지 비슷한 숲의 풍경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반복되다보면 아 또 숲이야? 같은 생각밖에 안 든다고!

   

   시녀랑 수다를 떠는 것도 잠시지 나와 시녀 사이에 길게 대화를 나눌 화제 같은 게 있을 리 없었고 나는 한참 동안 멍을 때려야만 했다.

   

   그래서 중간에 잠시 쉴 때 지루하다는 말을 꺼낸 게 화근이었다.

   

   알른 가문 제일의 훈련 중독자인 포셀은 내가 슬며시 꺼낸 말을 놓치지 않았다.

   

   ‘마차가 지루하십니까? 그럼 가는 길에 기사단과 함께 훈련을 하시지요!’

   

   포셀이 말한 훈련이란 게 무엇이었냐 하면 말의 옆에서 달리기를 하는 것이었다.

   

   이래서야 마차를 준비한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안에서 멍을 때리는 것보다는 낫겠지라는 생각에 난 포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이다만 말은 정말 더럽게 빠르더라.

   

   안에서 타고 있을 때는 체감을 하지 못했다.

   

    안에서 지켜보기에 마차의 말은 여유롭게 걷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런데 바깥에서 그 속도를 따라잡는 입장이 되니 말의 속도를 절로 체감할 수 있었다.

   

   말이 다그닥거리며 걷는 속도가 내가 전력으로 달리는 속도와 비슷했다.

   

   그를 따라잡기 위해 다리를 움직이는 건 정말 욕지거리가 나올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대략 십 분 정도 달렸을 무렵 나 이러다 낙오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포셀과 대머리 기사를 비롯한 기사들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들은 내 등을 밀어 주며 반 강제로 마차를 따라 잡게 만들었다.

   

   덕분에 난 지쳐 쓰러질 때까지 마차의 뒤를 쫓아야만 했다.

   

   훈련 악귀는 포셀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아래에서 여태까지 버틴 놈들도 다 똑같은 한통속이었다.

   

   마차에서 쉬다가 체력이 붙으면 마차에서 내려 달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낮 동안 미친 듯이 뛰어 다녔기에 배가 엄청나게 고팠지만 접시 위에 올려진 고기를 보고 있자니 영 손이 가지 않았다.

   

   다른 채소나 스프는 먹을 수 있었지만 고기만큼은 건드리기 거북했다.

   

   어제부터 그랬다.

   

   정확하겐 오크의 머리를 내 손으로 찍은 그 날 저녁부터 말이다.

   

   나는 왜 이렇게 비위가 약한 걸까.

   

   보통 빙의자들을 보면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던데.

   

   바퀴벌레도 무서워서 벌벌 떨던 겁쟁이라 그런 걸까.

   

   고기를 수저로 뒤적이고 있던 중에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칼이었다.

   

   “아가씨. 식사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는 내 옆자리에 앉으면서 그리 물었다.

   

   ‘아뇨.’

   “아니. 딱히.”

   

   “그럼 왜 안 드시는 겁니까?”

   

   대답할 수 없었다. 어제 오크를 죽이고 나서부터 그 광경이 자꾸만 떠올라서 그런다고는.

   

   칼 같은 기사에게 몬스터 사냥이라는 것은 지겹도록 해 본 일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그런 입장에서 이런 거 하나하나에 고민을 하는 걸 보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어제 직접 죽이신 오크가 생각나서 그런 겁니까?”

   

   칼은 내가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문제를 짚어냈다. 정곡을 찔린 내가 움찔하자 칼이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도 속은 여리신 분이었군요.”

   

   ‘시끄러워요.’

   “닥쳐. 허접한 칼.”

   

   내 날선 대답에도 칼은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맹세를 하기 전엔 기분 나빠하는 티라도 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네.

   

   참는 건지. 익숙해진 건지.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가씨. 그게 정상이니까요.”

   

   정상?

   

   “누구나 처음엔 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몬스터여도 살아있는 생물이니까요. 다들 고민하고 망설이고 헤매죠. 저도 그랬습니다.”

   

   ‘그럼…’

   “그럼 이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건데.”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주는 일이죠. 세월이 지남에 따라 녹이 슬 듯 무뎌지는 겁니다.”

   

   하. 뭐야.

   

   결국 극복하는 방법 같은 건 없다는 소리잖아.

   

   쓸모없는 허접 기사.

   

   그럴듯한 말을 하는 줄 알았더니 아무런 도움도 안 되네.

   

   내가 눈을 치뜨자 칼이 몸을 물리며 두 손을 펼쳐 보였다. 잘못했다는 것처럼.

   

   “칼!”

   

   잔뜩 도발을 해볼까 생각하던 찰나에 포셀이 칼을 불렀다.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단장님. 그게.”

   “아직 네 근신은 끝나지 않았다! 식사를 끝마쳤다면 숲을 한 바퀴 달리고 오도록!”

   “네?”

   “불만있나?!”

   “없습니다!”

   “그럼 가!”

   “옙!”

   

   명령에 따라 칼이 저 멀리로 달려간 후 포셀은 표정을 싹 바꿔서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식사 끝내시고 쉬십시오. 던전에 들어가기 전까진 몸 관리 잘 하셔야 합니다.”

   

   ‘네.’

   “알겠어.”

   

   포셀마저 가버린 뒤에 나는 고기를 가만 바라보다가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으엑. 이게 뭐야. 질기고, 냄새나는 데다가, 짜잖아.

   

   야영식은 다 이런 거야?

   

   진짜 끔찍하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 6백 돌파!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드디어 던전이 코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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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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