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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춘봉이의 상태도 안정됐겠다, 흑호문의 금고에 들어있던 물건들을 확인했다.

   

    “오, 오….”

   

    일단 은자가 꽤 많다. 뒷골목 흑도 방파라고 무시할 만한 양이 아니다. 이 정도면 몇 년은 놀고 먹어도 꽤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 외에는 땅문서와 무공서 몇 개 정도. 다만 춘봉이가 무공서들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쓰레기들이야. 쳐다보지도 마.”

   

    그래도 궁금해서 읽어보긴 했다. 그리고 곧바로 납득했다.

   

    “진짜 쓰레기네.”

    “그럼 가짜 쓰레기겠냐?”

    “그럴 수도 있지. 삼재검법도 꽤 쓸 만한데 혹시 모르잖아.”

    “그래도 삼재검법 정도면 검증된 무공이거든?”

   

    아무리 널리 퍼진 흔한 무공이라 해도 그 오랜 시간 큰 변형도 없이 남아있는 이유가 있는 법이란다.

   

    이렇게 들으니까 또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흠.”

   

    아무튼 이제 부자다. 삐죽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붙잡고 주머니에 은자 몇 개를 챙겼다.

   

    “금 씨. 우리 쇼핑이나 갈까?”

    “쇼…, 뭐?”

    “물건 사러 가자고.”

    “뭐 사게? 돈 생겼다고 낭비하면 안 된다?”

   

    잠시 고민하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옷이랑…, 네 검? 먹을 것도 좀 사고.”

   

    주변을 둘러보니 무너지기 직전인 집 꼬라지가 보인다. 나름 정들긴 했는데, 솔직히 이제 슬슬 진짜로 자다가 깔려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사는 어떻게 할까? 흑호문 거기 들어가서 사는 것도 괜찮지 않나?”

    “거기 있는 시체는 어쩌게.”

    “아, 맞네.”

    “그리고 거기 너무 커. 둘이서 살 건데 그렇게 커서 뭐하려고.”

   

    미간을 구긴 채 입술을 툭툭 두드리던 서준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좋은 생각이 났다.

   

    “일단 옷부터 사자.”

   

   

    *

   

   

    집에서 나름 몸을 빡빡 닦은 뒤 시장으로 향했다. 새옷을 입었는데 막상 몸이 더러우면 기분이 좀 그렇잖아.

   

    “아니, 근데 진짜 신기하네.”

   

    서준이 춘봉의 정수리에 코를 박았다.

   

    “너 진짜 혼자 뭐 쓰는 거 아니지?”

   

    물론 춘봉이는 기겁하며 팔을 휘둘러댔다.

   

    “뭐, 뭐 하는데!”

    “왜 너만 좋은 냄새 남?”

    “어릴 때 벌모세수니 뭐니 이것저것 다 받아서 그런 거지, 뭐.”

   

    체내에 노폐물이 없으니 냄새가 날 일도 없단다. 좋은 향기가 나는 건 선조 중 하나가 청운신공에 선녀공의 묘리를 더해서 그런 거고.

   

    “선녀공이면 그건가? 미인 되는 무공.”

    “그렇지.”

    “흠.”

   

    서준의 눈이 춘봉이의 전신을 훑었다.

   

    “가슴이 커지는 데는 딱히 효과가 없…, 아악!”

   

    얻어맞았다.

   

    솔직히 스스로 생각해도 자업자득이라 딱히 할 말은 없었다.

   

    “하아…. 가슴 얘기는 됐고. 그거보다 너 진짜 어떻게 한 거냐?”

    “뭐를.”

    “음기를 양기로 바꿨잖아. 태극의 이치라도 깨달은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아니면 방법이 없는데.”

    “태극?”

   

    열평형 상태 그거?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너 음기가 대충 무슨 느낌인지는 알잖아.”

    “알지? 내가 다루는 게 음기에 가까운데.”

    “응. 양기도 대충 알지 않아?”

    “알긴 알지?”

   

    그럼 다 된 거 아닌가? 음기는 고요하고 양기는 활발하다. 조용한 친구들을 좀 후려패서 활발하게 만들면 그게 양기잖은가.

   

    “맞지?”

    “뭔 개소리야? 그게 되겠냐?”

    “됐잖아.”

    “그건…, 그렇네?”

   

    춘봉이가 표정을 괴상하게 구기는 사이 포목상에 도착했다. 주로 옷감을 팔긴 하지만 옷도 있긴 있다.

   

    춘봉이가 앞장 서서 들어가는데 느닷없이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거지 새끼들 줄 거 없다! 괜히 물건 더럽히지 말고 썩 꺼져!”

   

    춘봉이가 제 뺨을 더듬었다. 먹다 남은 반찬 국물이 그녀의 턱선을 타고 떨어져내렸다.

   

    “씨발….”

   

    울컥한 듯 그녀의 얼굴이 빨갛다. 눈물도 조금 맺힌 것 같았다.

   

    알아주는 명문가에서 자라다 이런 취급을 받는 건 무슨 기분일까? 

   

    잘은 몰라도 그거 참 기분 좆같을 것 같았다.

   

    “어이.”

   

    콰앙-!

   

    발길질에 매대 하나가 박살이 나 날아간다.

   

    이곳은 무림. 기분 좆같으면 무력으로 해결하는 세계.

   

    꼬우면 좆같을 짓을 안 하면 되는 건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 새끼가 내 동생을 울려?”

    “아, 안 울었거든…. 그리고 이게 뭔 삼류 깡패 같은 짓거리야? 하지 마.”

    “씁!”

   

    서준이 검집 째 검을 뽑아들었다. 그걸 본 포목상 주인이 주춤했다.

   

    “너, 너 이 새끼! 이 가게는 청하문에게 보호세를 내는 가게다! 뒷감당 할 자신 있어!?”

    “청하문? 그건 또 뭔 듣보 문파야?”

   

    뭐 하는 친구들인지는 몰라도 저 새끼 대가리 좀 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이리 와 새끼야.”

    “이익…!”

   

    궁지에 몰린 포목점 주인이 그릇을 던졌다. 안에 내용물도 있다. 처먹는 중이었으면 곱게 처먹을 것이지.

   

    스윽-

   

    검집 끝에서 내공이 넓게 퍼진다. 손바닥만 한 넓이에 불과했으나, 그걸 휘두르자 남은 잔상이 보호막처럼 변했다.

   

    “거, 검막劍幕…?”

   

    왠지는 몰라도 뒤에 있던 춘봉이가 당황했지만 일단은 신경 쓰지 않았다.

   

    촤악-!

   

    보호막 위로 퍼진 내용물을 보니 뭐 시뻘건 국 같은 걸 먹고 있던 모양이다. 냄새는 영 별로. 이딴 걸 던지고 앉았어.

   

    “어, 어어….”

   

    당황한 주인이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 고수신 줄은 몰랐습니다…. 한 번만 자비를….”

    “친구야.”

    “예, 예!”

    “일단 좀 맞자.”

   

    존나 팼다.

   

   

    *

   

   

    “아, 이 자비로운 마음씨를 어이 할꼬.”

    “잘했어.”

    “응? 진짜? 뭐라 할 줄 알았더니.”

    “내가 왜? 그 정도면 나름 양호한 거지.”

   

    목숨을 잃은 것도 아니고, 사지 중 하나가 잘린 것도 아니다. 심지어 어디가 부러지지도 않았다.

   

    그냥 두드려 패는 정도로 끝난 건 확실히 온건하게 끝난 편이 맞았다.

   

    “난 그냥 니가 또 사람 죽일까 봐 그랬지.”

    “내가 뭔 살인귀냐? 막 죽이고 다니게.”

    “아니었어? 그거 놀랍네.”

    “뭣. 이 새끼.”

   

    낄낄대며 걷는 서준과 춘봉의 옷차림은 어느새 말끔하게 변해있었다.

   

    예의 그 포목상에서 가져온 옷들이다. 적당히 두들겨 팬 하해와 같은 자비의 대가로 몇 개 좀 무료로 가져왔다.

   

    “이제 검이나 사러 가자.”

    “내 검?”

    “그럼 내 검이겠냐? 내 건 있는데.”

    “안 망가졌어? 험하게 쓴 거 같은데.”

   

    그녀의 물음에 검을 뽑아들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기겁했다. 

   

    “아오 새끼야! 길거리에서 막 뽑지 말라고!”

   

    춘봉이에게 이끌려 구석진 곳에 틀어박혔다. 그녀는 검 상태를 보더니 의외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멀쩡하네. 신기하구만.”

    “내가 잘 써서 그렇지.”

    “응. 맞아.”

   

    뭐? 전혀 상상치도 못한 반응에 후다닥 뒤로 물러나자 춘봉이가 눈깔을 사납게 떴다.

   

    “뭐 새끼야. 왜. 뭐.”

    “너 누구야! 금춘봉 아니지!”

    “아가리.”

   

    저 미친놈이 검을 던졌다. 재빠르게 손잡이를 잡아채 검집에 넣었다.

   

    “위험하게.”

    “일류나 된 놈이 이게 뭐가 위험하다고. 아니지. 너 아까 그거 뭐야.”

    “또 뭐요.”

    “검막.”

    “아…, 아까 그거? 그냥 될 거 같아서 쓴 건데?”

    “씨발 좆같은 재능 진짜.”

   

    험한 말을 뱉은 춘봉이가 이마를 탁 쳤다.

   

    “축하한다. 절정 고수님.”

    “…절정? 진짜?”

    “어, 새끼야.”

    “흐음.”

   

    턱을 잡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으니 춘봉이가 눈을 아니꼽게 떴다. 

   

    “이 새끼, 또 뭔 소리 하려고.”

    “아니,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건데.”

    “어, 뭐. 말해봐 새끼야.”

    “무공 이거 진짜 좆밥 아님? 개쉬운데?”

    “…이 씨발 새끼가!”

   

    춘봉이가 허공을 날아 발차기를 갈겼다. 꽤 매섭다. 잽싸게 반응해 피한 뒤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땅에 내려줬다.

   

    “휴. 거 금춘봉 씨. 꽤 날래지셨습니다?”

    “닥쳐 그냥.”

   

    입술을 삐죽 내민 춘봉이가 손가락 위로 백금빛의 기를 피워올렸다.

   

    “오…?”

    “이제 일류 정도 힘은 쓸 수 있어.”

    “뭐야. 너 열일곱이라며. 그 전부터 일류였다고?”

    

    흥, 춘봉이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절정경이었거든? 말했잖아. 주변에서 천재니 신동이니 떠받들어졌다고.”

   

    열다섯에 절정. 기나긴 무림사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었다.

   

    그때 무림이 꽤 떠들썩했는데, 막상 이런 상황이 되자 아무런 쓸모가 없다.

   

    “빌어먹을 것들.”

    “왜 또 시무룩해졌어.”

   

    서준이 춘봉의 정수리를 툭툭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근데 이 새끼, 뭐? 열다섯에 절정? 그래놓고 지금 나한테 이러고 있냐? 뭐 고도의 기만 그런 거냐?”

    “나랑 니랑 같냐? 됐고, 그냥 검이나 사러 가자.”

   

    갑자기 기분이 팍 가라앉은 듯한 춘봉이가 앞장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서준이 잽싸게 그녀를 등 뒤에서 안아들어 목마를 태웠다.

   

    “으, 으앗…!?”

    “가자, 춘봉아!”

    “자, 잠깐…! 내려줘 개새끼야!”

    “그런 거 없어용.”

   

    춘봉이가 꽉 움켜쥔 머리카락이 꽤 빠졌다. 슬픈 일이다.

   

   

    *

   

   

    이서준 이 미친 새끼. 

   

    기어코 목마를 태운 채 대장간에 도착했다. 진짜 미친놈인가? 주변 사람들 시선에 수치사할 뻔했다.

   

    “…내려줘.”

    “예이.”

   

    어쩐지 오랜만에 밟는 것 같은 땅에 내려서자 느낌이 이상하다. 그를 빤히 올려다보니 이 새끼가 씩 웃더니 내 머리를 헝큰다.

   

    “하지 말라고.”

   

    거친 듯 부드러운 손길은 인정하기 싫지만 조금 기분 좋다. 싫은 척 머리를 뺐지만 끝까지 따라와 머리를 헝크는 손길에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아무튼 너, 너무 뻗대지는 마. 경지랑 무력이랑은 다른 얘기니까.”

    

    경지라는 것은 내공을 얼마나 자유로이 다룰 수 있는가를 나누는 척도다.

   

    이서준 저놈을 예로 들자면 내공을 다루는 솜씨는 절정이 맞지만, 검을 다루는 솜씨는 일류 초입 정도라 볼 수 있었다.

   

    사실 그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다. 뭐? 검기를 쓰다가 신검합일의 단초를 잡아?

   

    미친 소리긴 한데 실제로 저놈이 검을 다루는 솜씨가 확 나아져서 뭐라 할 수도 없다.

   

    “예예, 잘 알겠습니다 춘봉 선생. 아무튼 우리 검이나 보러 갈까요?”

   

    – 영감! 거 일 년 만인가? 

   

    당차게 대장간에 들어가는 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금희가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

   

    “하여간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 …야! 같이 가, 새끼야!”

   

    춘봉이가 짧은 다리로 오빠의 등을 열심히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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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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