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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세피로트는 세상이 떠나가게, 그칠 줄을 모르고 울어댔다.

여태 만화적 연출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사람이 오래도 울면 진짜로 눈물이 고인다.

“흐윽, 후으···”

“저어···서고관님?”

“흐아아아앙··!!”

조금 진정된 거 같다가도, 호명 당하기가 무섭게 다시 스위치 눌린다. 달래주고는 싶은데, 뭘 어째야 하나.

최근에 사적인 대화를 나눈 여자라곤 마리아나 료나 정도. 심지어 얘네는 울어도 시간 좀 지나니까 알아서 씩씩하게 그쳤다.

어떻게 된 게 만나는 족족 몸만 큰 애새끼 천지에 애들이 오히려 의젓하다. 필리아 제국, 이대로 괜찮은가?

“저도 다 이해해요. 좋아하는 무언가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덕질하고 싶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저도 그랬고요.”

일단 감싸고 들자.

나도 나름 이런 쪽 유경험자로서, 숨기고픈 취미에 이해자가 한 명 생기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인지는 잘 안다.

“흐읍···그치, 만···.”

그래, 그런 것보다도 사진 쪽이 문제였겠지.

이것도 뭐···대충 칭찬해 주면 되지 않으려나?

“사진도···흉하다든가, 치녀라든가. 그런 엄한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거, 거짓말···그렇게 생각, 하신 거군요···.”

“정말이에요. 저는 서고관님 사진을 보고 나서···”

[진실의 입]

“솔직히 좀 많이 꼴렸습니다.”

“에? 흐, 에엑···??”

“? 오빠?”

“···?!!”

아니 여기서 갑자기 구라 방지 마법을 걸면···!

“이건, 그러니까!”

“아바···아바바바···”

세피로트의 눈물이 쏙 들어갔다. 대신에 머리가 고장이 나선, 단어를 이루지 못한 말만을 연신 뱉어냈다.

마리아의 눈매가 평소보다 5도 정도는 날카로워져 있었다.

“바람, 펴?”

내가 눈이 침침해졌나? 마리아한테 왜, 빨간 안광이 나오는 거 같지···?

* * *

그래도 내가 세피로트를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단 사실만은 명백해진바.

그녀도 얼추 마음을 추스르고 대화를 나눌 상태까지는 호전되었다.

마리아는···아직 어리니까 패스. 세피로트도 애가 한 말에 크게 연연하진 않을 거다.

휙-

방금 저거, 마리아 시선 피한 건가···?

“크흠. 그러니까···지하실의 도서들이 더는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아졌다고 판단해서, 전부 위로 옮기고 거기를 취미 공간으로 활용했다는 말이죠? 어차피 남이 올 일도 없겠다?”

“네···맞아요.”

아무리 봐도 그냥 권력 남용한 거 같은데.

내가 기억하기로 그중에 분명 ‘금지된 전술급 대마법 모음집’도 있었다. 그게 안 중요해졌다고?

“그, 그보다···지하실 통로, 여는 방법···어떻게 아신 거, 예요···?”

분위기로 견적 재고 말 돌리는 거 보면 거즘 확실하다.

뭐···자기가 알아서 잘 지키겠지. 황궁 서고가 털릴 수준이면 애초에 이미 답이 없을 상황이긴 하다.

“지인이 알려줬어요.”

나도 대충 둘러댔다. 디아가 하는 거 보고 배웠으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으음···”

그렇게 미심쩍게 노려보면 뭐 어쩔 건데. 진실의 입은 경계하는 상대에겐 효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먹힌다 한들 무슨 말을 꺼낼지까지는 어쩌지 못하리라.

“서고관님. 누구에게나 자세히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지금, 주도권을 쥔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비밀이 ‘서로’에게 있다면, ‘서로’ 그 비밀을 지켜주는 게 상책 아닐까요?”

애매하게 방문에서 서 있던 걸, 다시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어서 몸을 왼쪽, 사진을 모아 둔 벽으로 향할수록. 거기에 맞춰 세피로트의 블랙홀 같은 동공이 실시간으로 개방되었다.

“저, 저기···아니···죠?”

“이런 대부분 헐벗거나 독특한 복장을 입고 찍은 사진들, 보기 흉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남들이 보기에’는 참 많이 부끄럽겠다. 그죠?”

본보기로 아무 사진 하나를 들어 팔랑였다.

하의는 한 손으로 치마를 걷어 올려 속옷을 살짝 드러내고, 위에는 오직 손으로만 중요 부위를 가린. 적나라한 사진.

“얼굴은 하관만 찍혔다지만···정체가 특정되는 거야 시간 문제죠. 특히 누구의 사진이라더라, 이런 소문까지 나돌면 말이에요.”

“힉, 흐에엑···!!”

황궁 서고관은 음습하게 몰래 본인의 야한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다. 심지어 그게 민중에 퍼졌다.

이런 루머가 도는 것만으로도 쪽팔린 일인데, 물증까지 존재한다. 대강 어디에 쓰였을지도 뻔하다.

그러다가 조사에 나선 기사단이나, 개인적인 호기심의 단장급에게 지하실의 진실마저 들킨다? 어느 날 세피로트가 자폭하고 남은 재로 발견돼도 이상할 게 없다.

이를 막으려면 우리 둘 다 죽이는 수밖에 없을 텐데. 황실 귀빈인 걸 떠나서, 그럴 깜냥은 되고?

“죄, 죄죄죄, 죄송해요···!! 부디 그것만은, 봐주세요···!! 바, 발, 발이라도···핥을 테니까···!!!”

대마법사의 빠른 두뇌 회전으로 그 사실에까지 도달했는지, 세피로트가 도게자를 박고 애원해 왔다.

“걱정 마세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서로의 비밀이 지켜지기를 바라고 있으니까요. 마리아, 신발 다시 신어.”

“치.”

“대신에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은데요.”

물론 그렇다고 자원봉사는 안 한다.

정보 길드든, 음흉한 귀족한테든. 팔아넘기면 나올 이득이 얼만데.

“네, 네네네···!! 뭐든지 말씀만, 하세요···!”

다행히 세피로트는 협조적. 내심 지켜주고픈 심정을 알아줘서 정말이지 고맙다.

이것으로 다음 주 신문 1면 내용은 예측이 불가능해졌다. 역시 미래를 몰라야 인생이 재밌지.

“성녀님을 만나 뵙고자 하는데, 이를 위한 추천장을 써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 그럼요···!! 바로 써, 드릴게요···!!”

세피로트가 주저앉은 자리에서 흡사 네발로 기듯 지상으로 뛰쳐나갔다.

이쯤 되니 털이 복슬복슬한 대형견을 보는 듯하다.

“···아무것도 안 달려 있어서 그런가? 마리아가 뭐라도 달아줘야 남자답게···”

“마리아?”

“마리아 아무 말도 안 했어.”

이제 지하실에서 볼 장은 다 봤다.

마냥 헛수고만 하지는 않았다며, 사진 한 장 챙기고 계단을 올랐다.

“마리아. 우리 나중에 개라도 기를까?”

“마리아는 이미 오빠를 기르고 있어.”

“뭣.”

달리 반박할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조용히 마리아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아직 기반이 불안정해서 많이 의지한다 뿐이지, 길러지는 건 아니다. 정말로.

* * *

서고에서 나온 직후, 내일부로 황궁을 나서겠다고 전했다.

명확한 실마리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다음 가능성으로 다가갈 열쇠는 얻어냈다.

황궁 서고관이 써준 추천장. 이건 신분 불문하고 독대도 가능하게 해줄 막강한 카드다.

‘마법에 단서가 없었다면, 신에 기대보는 수밖에.’

현시대의 성녀는 세간에서 평하길, 역대 내로라해왔던 선대들을 제치고 불세출의 천재라 칭송받는 존재.

따로 찾아본 게 아님에도 내 귀로 소식이 일일이 퍼 날라질 지경인 거 보면 말 다 했다.

성녀의 능력이 뛰어남은, 곧 그만큼 신과 가깝다는 증거. 어쩌면 이 대륙의 유일신과 만남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똑똑-

어째 황궁에 머문 이래 처음 듣는 것 같은 노크 소리.

어색하다가도, 이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암시하는 터라 서둘러 문으로 향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이 씨, 마리아 양.”

문 앞에서 우리를 맞이한 건 백발에 회색빛 눈을 가진 한 소녀였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모습이 무척이나 고와, 순간 성녀가 먼저 찾아왔나 싶은 착각마저 일었다.

“저는 제3기사단장. 사성황로의 유리 시저라고 합니다.”

“아, 넵. 처음 뵙겠습니다, 기사단장님.”

“안녕, 하세요.”

유리 기사단장은 뒷짐을 진 채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해 왔다.

당장 내일 나갈 건데 기사단장이 대뜸 무슨 일일까. 설마 서고관 겁박한 게 들켰나?

“내일 나가신다고 들었어요.”

“네, 맞습니다.”

“폐하께선 두 귀빈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내일 열리는 제도 경매에 참여해 보시는 걸 권유하셨습니다.”

“제도 경매라면···중앙 광장 뒤편에서 열리는 바로 그?”

유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참가할 의향이 있으시다면 지정석이 보장되는 VIP 권한과, 저를 호위로 대동시킬 것을 약속하셨고요.”

“이즈리 언니는요?”

“이즈리 선배님은 부단장 폭행 건으로 시말서 작성 후 휴가가 밀린 채 자숙 중이세요.”

‘저걸 다 말해줘도 되는 건가···?’

어쨌든, 경매 참가는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곧장 성녀에게로 직행할 게 아니라 잠시 집에 들러 재정비할 거기도 했고.

일반 참가 경쟁률부터가 고역인 제도 경매를 무려 VIP로, 그것도 기사단장을 대동한 채?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

“마리아, 갈 거지?”

“오빠가 간다면 마리아도 갈래.”

“네. 저희 둘 다 참가하겠습니다.”

마침 여기서 자금도 두둑이 벌었겠다, 사회를 순환시킬 좋은 기회.

거기에 잘만 하면 기사단장 인맥이 더 늘어난다. 이번에도 잘 부탁해, 마리에몽.

“네. 폐하께는 두 분 다 참가하시는 것으로 보고드릴게요.”

유리 기사단장은 발로 문을 밀어 닫은 뒤 걸음을 옮겼다.

황궁에서의 마지막 일정, 제도 경매로 결정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연참입니다. 두 개 올렸으니 부디 그것까지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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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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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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