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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이렇게 당하는 건가?’

       

       하지만 마취독 안개를 들이마시고도 수 초, 머릿속이 조금 띵해지는 듯한 불쾌한 감각을 느꼈을 뿐, 내 인지능력에는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테이블 아래로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이 역시, 저 마취독 안개는 내 신체의 움직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처럼 마취가 통하질 않았다는 것이다. 설마, 이거……

       

       ‘독 저항?’

       

       아침에 내 마력 상태를 점검해볼 때, 뭔가 숨겨진 패시브 능력 하나가 있는 것 같다고 느꼈었는데, 그게 이거였던 건가? 독 저항 패시브라면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인데.’

       

       이 패시브 능력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하고, 나는 갑자기 강도가 들어 위협을 받고 있는 현 상황에 집중했다.

       

       물론, 놈들이 목숨까지 해치진 않을 것이고 아마 지갑이나 시계같은 귀중품만 털어갈 것이다.

       

       하지만 지갑에는 지금의 내 전재산이 들어있었고, 그걸 강도에게 털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물론 돈이야, 본가에 사정하면 돈을 부쳐주긴 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본가에 연락을 넣을 방도조차 모른다……. 그리고 어찌저찌 연락을 넣어도, 21세기처럼 바로바로 디지털 송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지갑을 털리면, 짧으면 며칠, 길면 몇 주 동안 한 푼도 없이 살아야 할 수도 있었다.

       

       학교 동급생들이나 하숙집 딸래미한테 생활비를 빌리는 것도 모양이 빠지는 일이었고.

       

       게다가 명색이 엽사전문 학생, 21세기로 치면 ‘헌터 아카데미’ 학생인데 일개 강도한테 털리다니 그게 말이나 되겠는가.

       

       ‘그럴 수는 없지.’

       

       이대로 털릴 수는 없다! 나는 강도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다른 손님들처럼 테이블에 엎드린 채 고개만 살짝 들어, 우선 가까운 주변 상황부터 파악했다. 

       

       내 앞에 웅크려 앉은 사이가네 교수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에 빠지거나 기절하지는 않았지만, 두드러기가 불거져 오르는 얼굴을 감싸쥔 채 신음하며 엎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특정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 듯, 아닌게 아니라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마력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자잘한 각성 능력은 있는 것 같은데, 일반 과목을 가르치는 일반과 교수랬지. 그렇다면 싸울 줄은 모를 것이고…….’

       

       끽다점 안에 다른 각성능력자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나 뿐.

       

       나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강도단을 살폈다. 세 명의 사내는 진작에 해독 앰플이라도 마셨던 것인지, 뿌연 마취독 안개 속에서 손님들의 지갑이며 귀중품 따위를 털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놈들의 강도짓이라는게 어딘가 엉성하고 허술하기가 짝이 없었다.

       

       아무리 이 끽다점이 번화가에서 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간 한적한 곳일지언정, 엄연히 경성 시내 한가운데인데 대낮에 이런 강도짓을 벌인다는 것도 그랬고,

       

       게다가, 테이블 위에 가진 것을 다 올려놓으라고 자기네들 입으로 외쳐놓고, 사람들이 뭘 꺼내고 자시고 하기도 전에 마취독 안개를 살포해 버렸다.

       

       그래서 놈들은 지금, 잠든 사람들의 주머니를 일일히 손수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놈들은 강도짓이라고도 끽해야 한두 번 해본, 혹은 이번이 처음인 초보(?)임이 확실했다. 은행같은 곳은 분명 경비가 삼엄할테니 이런 조그만 끽다점을 털기로 결정한 거겠지.

       

       그에 비하면, 나는 21세기에서 현직 헌터였을 당시 대테러 경비에도 몸담아봤던 몸이었다. 이렇게 허술한 놈들은 눈 감고도 상대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지금의 나는 21세기의 내가 아니었다는 것.

       

       강도가 들고 있는 총은 확실한 위험이었다. 21세기와 같은 방탄 마력장 아티팩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지금의 의료기술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총에 맞으면 결국 죽거나, 불구자가 되어 전화도 없는 중환자실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안돼!’

       

       다행히 총 든 강도는 한 명. 그 정도면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용할만한 물건이 없는지 고개만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까지도 은은하게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 턴테이블이 바로 근처에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곳으로 몸을 굴려, 레코드판을 잡고 강제로 빼내었다. 턴테이블 바늘이 레코드판을 거칠게 긁으며 나팔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만, 나는 개의치 않고 레코드판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이건 송병오 녀석이 있었다면 좀 나았을겠지만.’

       

       지금의 내 주 능력인 오러 블로잉 계열—지금의 용어로 말하자면 강기 취입계 능력은, 사물이 손에서 떨어지면 그 힘을 잃는다. 

       

       투사물이 손을 떠나 목표물에 닿았을 때 마력 대미지가 폭발하는 마력탄 계열의 능력과는 정 반대.

       

       하지만 지금은 내 능력만으로도 충분했다.

       

       “뭐, 뭐냐!”

       

       총을 든 강도가 턴테이블의 파찰음을 듣고 이 쪽으로 총구를 막 돌리려는 찰나, 나는 마력을 한껏 끌어올려 레코드판을 집어던졌다.

       

       어차피 목표물에 닿아 폭발할 필요까지는 없으니, 던지는 시점까지만 마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면 된다. 목표물까지 정확하게 날아갈 수 있도록.

       

       내 손을 떠난 레코드판은 테이블 위로 엎어진 손님들의 머리 위를 스치며, 끽다점의 끝에서 끝을 가로질러 날아가, 강도의 손에 명중했다.

       

       “으윽!”

       

       손을 크게 베인 강도가 권총을 떨어트리자마자, 나는 바로 옆의 유리창을 깨고 교수를 부축해 밖으로 던져놓고는, 장식용 어항에 꽂혀있던, 마침 적당한 길이의 고무호스를 집어들었다.

       

       나는 고무호스에 오러를 불어넣어 꼿꼿하게 세워진 고무봉으로 만들어 감아쥔 채, 테이블을 뛰어넘어가며 강도에게 달려갔다.

       

       그대로 테이블을 박차고 뛰어내리며,

       

       퍼억-!

       

       고무봉으로 강도의 목덜미를 가격, 쓰러트리고 이어지듯 다른 두 명의 강도 역시 뒤통수며 관자놀이를 타격해 제압해냈다.

       

       마취독 안개를 발산하던 각성능력자가 제압당하고, 창문이 깨져서  환기가 되어 안개가 걷히자 잠시 기절해 있었던 사람들이 금세 하나둘 다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리 치명적인 독은 아니었나보다.

        

       이렇게 상황이 다 마무리되자마자, 끽다점 안으로 순사 무리가 뛰어들어왔다. 경찰들이 뒤늦게 도착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구만.

       

       『너는 뭐냐! 손 들어!』

       

       순사부장 계급장을 달고 있는 경찰이, 쓰러진 강도들 앞에 서 있던 나에게 외쳤다. 나는 순순히 손을 들고 말했다.

       

       『경성 엽사전문의 생도입니다.』

       『엽사전문 생도? 그래, 어떻게 된 건가?』

       

       나는 대충 사건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그 동안 순사들은 능숙하게 강도들을 결박하고 일으켜 세웠다. 특히, 마취독 안개를 살포했던 각성능력자 강도에게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 할 정도로 단단히 결속하고, 눈에는 안대와 입에는 재갈까지 채웠다.

       

       내 설명을 들은 순사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가 수습했다, 고…… 자네, 이름은?』

       『시라바야시 데쓰젠(白林哲然)입니다.』

       『흠, 데쓰젠? 조선인인가? 일본인?』

       

       콧수염을 기른 순사부장은 그렇게 물어왔다. 그도 그럴것이, ‘시라바야시’는 일본식 성씨였지만, 이름인 ‘철연’은 일본 한자음으로 읽으면 뭔가 어색한, 조선인다운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조선인입니다, 만…….』

       『그럼 자네도 참고인으로서 같이 서로 가지.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자네 증언과는 다른 일이 있었는지도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되니까.』

       

       아, 잠깐. 송병오가 저번에 말한게 이거였나. 아직 엽사 면허가 없는 조선인 각성능력자가 사건에 휘말리면 괜히 덤터기로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고 했던 것. 그래서 출세하고 봐야 한다고 했었지……

       

       ‘그래도 내가 명색이 남작 아들인데, 귀족 지위를 내세워서 빠져나갈까? 근데 그게 경찰한테도 통하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아, 기다리시오! 경관!』

       

       하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사이가네 교수였다. 교수는 마취독에서 벗어나자 알레르기 증상 역시 회복되었는지, 언제 그랬냐는 듯 말쑥한 신사의 모습으로 멀쩡하게 돌아와 있었다. 순사부장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사이가네 교수는 순사부장에게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경성 엽사전문학교 일반과 교수로 재직중인 사이가네 세이지 교수입니다.』

       『학교 교수셨구려.』

       

       그리고 이어지는 사이가네 교수의 말은 뜻밖이었다.

       

       『이 생도의 신분과 행적은 제가 보증합니다. 이 생도의 대신에 제가 참고인으로 가지요.』 

       『선생이?』

       

       순사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사이가네 교수가 말했다.

       

       『내일부터 본격적인 수업일이라, 생도의 입장에서는 준비할 것이 많을 겁니다. 그런 생도의 시간을 빼앗아서야 되겠습니까?』

       『흠…….』

       

       잠시 고민하던 순사부장은,

       

       『뭐, 좋소. 사이가네 선생. 어디…… 그럼, 금일 14시까지 종로서로 출석하시오.』

       『그리 하리다.』

       

       순사들이 떠나간 후, 나는 사이가네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만, 어째서 저의 대신에 가 주시는 겁까?』

       『말했잖나? 생도의 시간을 빼앗으면 안 된다고…….』

       『……그게 전부입니까?』

       『하하! 역시 그냥 넘어가지 않는군…… 그래, 실은, 저 조선인 각성능력자 강도 때문이라네.』 

       

       사이가네 교수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지만, 곧 다시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것이다.

       

       『그는 아마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하고 사형 선고를 받을테지.』

       

       사형이라니?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각성능력까지 악용하는 위험한 짓을 한 이상, 아무리 생계형 범죄니 뭐니 해도 죗값은 치뤄야 하는 범죄자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형까지는 너무하지 않은가?

       

       『그래. 각성 능력으로 저지른 범죄는, 다른 범죄보다 더 큰 위험으로 간주되니까 말일세. 게다가 가난한 조선인이니 변호의 기회도 없겠지. 그래서 아마 사형을 받을 테지만…… 나는 가능하다면 그를 구제해 볼 생각일세.』

       

       사이가네 교수의 입에서 나온 그 말에, 나는 순수하게 놀라고 말았다.

       

       『구한다구요?』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많은 조선인들이 각성능력을 가지고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해 범죄의 길에 빠져드니 말일세. 얼마든지 사회를 위해서 공헌할 수 있는 선택지도 있는데 말이야…….』

       

       이 사람은 대체 뭐지? 사회적 지위도 있는 일본인 교수가, 자신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 뻔했던 조선인 범죄자를 변호한다니. 생불인가?

       

       하지만……

       

       ‘이 자가 일본인으로서 가지는 한계겠지.’

       

       사이가네 교수의 말은, 어디까지나 일본인으로서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이었다.

       

       그 조선인 각성능력자의 어설프기 짝이 없던 강도놀이는, 아마 가난에 몰린 나머지 저지른 생계형 범죄였을 것이다. 그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과연 이런 허술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거야.’

       

       사실 지금의 나도, 내 전생의 헌터 경험으로 커버치고는 있지만, 백철연이라는 학생의 각성능력 수준은 아카데미 입학생이라고 치기엔 애매한 편이기는 하다. 아마, 백철연이 이 학교에 입학하는데에는 부모의 빽도 조금 있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부유한 친일파 집안이 아니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녀석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범죄의 길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선택지가 있으니까.’

       

       비록 친일파 집안의 자식이 된 것은 통탄할만한 일이지만, 어쨌든 덕분에 헌터 아카데미같은 곳도 다닐 수 있고, 졸업 뒤에 미국으로 뜬다는 선택지도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

       

       

       

       사이가네 교수와 헤어지고, 잠시 경성을 더 방황하다 하숙집에 돌아온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하루빨리 미국에 갈 계획을 궁리하고 있었다.

       

       ‘미국을 가도 문제인게, 거기도 이미 헌터는 많겠지? 뭐, 헌터로 먹고살기 힘들면 그냥 세탁소라도……’

       

       그런 생각을 하며 방 안에 드러누워 있는데,

       

       “저어, 손님.” 

       

       하고, 하숙집 딸이 문 밖에서 인기척을 낸다. 뭔가 싶어 문을 열어주자, 하숙집 딸은 문간에 서서 잠시 말없이 내 얼굴만 빤히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이거요!”

       

       하고 나에게 불쑥 뭔가를 내미는 것이다. 느 집엔 이거 없지? 하듯 내밀어진 그녀의 조그만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박카스 병 모양으로 조그마한 갈색 유리병.

       

       갑자기 나한테 뭘 주나 싶어 받아들고 보니, 병에 붙어있는 라벨에는…… 「青酸カリ」, 그러니까 ‘청산가리’라고 인쇄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먹고 죽으라는 건가……?’

       

       식은땀이 흘렀다. 여자애가 대뜸 청산가리 병을 건네는 상황이 무슨 의미인지 내 상상력으로는 언뜻 이해가 되질 않아,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이걸…… 왜?”

       

       하숙집 딸이 말했다.

       

       “손님 방에서 나왔어요. ……휴지통에서요!”

       

       뭐?

       

       “술병 치다가요, 유별난 게 있길래 봤더니 싸이나(청산가리)지 뭐예요. 것두 빈 병으루……. 보니까 쥐약으루다 뿌린 것두 아닌 것 같구……”

       

       그녀 입장에서는 휴지통을 비웠더니, 술병들 사이에 청산가리 병이 들어있었다, 라는 상황. 왜 이런 물건이 내 방 휴지통에 들어있었는지 묻는 눈치다.

       

       하지만 나로서도 알 길이 없었다. 어째서 내 방의 휴지통 안에 청산가리 병이, 그것도 빈 채로……

       

       ‘설마, 자살?’

       

       청산가리라면 역시, 음독자살의 대명사격인 독극물이다. 그런 것이 빈 병으로 발견되었다면 추측은 뻔했다. 내가 빙의된 이 백철연이라는 학생, 그저 술 먹고 죽은 줄 알았는데,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을 한 거였다고?

       

       내가 청산가리 병을 쥐어들고 말이 없자, 하숙집 딸은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저는 행여나 손님이 그걸루 뭘 하실려던 게……”

       

       나는 얘가 괜한 의심을 할까 싶어 급한 대로 둘러대었다.

       

       “어, 이거 말이지. 학교에서 어제, 저기 뭐야, 실습할 때 썼던 거야.”

       “실습이요?”

       “그러니까, 독약으로 몬스터, 아니 마수를 죽일 수 있는지 없는지…… 뭐 그런 실험을 했거든! 거기에 쓴 거야!”

       “…….”

       

       내 변명을 들은 하숙집 딸은 긴가민가하는 눈치였다가, 뭔가 우습다는 듯이 푸흣 웃으며 말한다.

       

       “마수가 쥐두 아니구, 싸이나루 죽어요? 그럼 엽사두 인제는 다아 일자리 잃겠네!”

       “어허!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게다마」같은 소형 하급 마수를 가지고 한 실험이었다고! 너 게다마가 뭔지도 모르지?”

       “저두 그 정도는 알어요. 그 쪼끄맣고 뭉실뭉실한 거……”

       

       누가 그랬던가? 거짓말을 할 때는 1%의 사실을 섞으라고. 뭐, 어제 학교에서 실습으로 「게다마」를 비롯한 소형 하급 마수들을 잡았던 것은 사실이었으니, 내 말은 그럭저럭 신빙성이 높게 들렸을 것이다.

       

       “암튼 학교 폐기장에 버려야 하는데 내가 실수로 들고 와 버렸네! 내가 처리할테니까 신경쓰지 마! 너 이거 만졌으면 손 잘 씻고!”

       

       이렇게까지 얘기하니 하숙집 딸은 그제서야 그럭저럭 납득하는 듯 했다.

       

       “……네에.”

       “뭐, 그럼……. 나 공부할테니까, 이따가 저녁이나 좀 부탁할게.”

       

       나는 그렇게 둘러대고는, 황급히 방 문을 닫고 문고리까지 걸어두었다.

       

       ‘후우…….’

       

       하숙집 딸에게는 그럭저럭 둘러댔는데, 문제는 나였다. 정작 나를 납득시킬만한 해답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청산가리 병을 들여다보았다. 처음 손에 들었을 때부터 알았던 것이지만, 병은 완전히 비어있는 채였다.

       

       ‘이걸 다 마신 건가.’

       

       청산가리. 다른 이름으로는 시안화칼륨. 일반인이었다면 조금만 가지고도 치사량인, 치명적인 맹독성 물질이었다. 이걸 무슨 박카스 들이키듯이 다 마셨다면……

       

       아무리 독 저항 패시브가 있어도, 죽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 왜?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거지?

       

       나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헌터, 즉 ‘엽사’라고 하는 전문 고소득 직종이 예정되어있는 고등교육에 입학. 비록 떳떳하지는 않아도 부유한 집안.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나는 좁다란, 두어 평 남짓한 하숙집 방을 둘러보았다. 혹시라도 뭔가 알아낼 수 있을까 싶어 방을 뒤져보던 나는, 앉은뱅이 책상 위에 가지런히 세워진 교과서며 노트들 사이에, 편지봉투 한 장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표는 붙어있지 않은 편지봉투 겉면에 쓰여진 발신인은 지금의 나 백철연이었고, 수신인은 아버지 되는 사람인 백노평.

       

       봉투를 뜯어보니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삼가 아버지께 올립니다. 저는 이곳 경성에서…>

       

       로 시작되는 장문의 편지였다.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편지를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낳아주신 하해와 같은 은혜는 잊지 않고 있사오나…>

       

       <…제가 태어남과 동시에 제 어머니께서 명을 달리하신 이래로, 아버지께서는 저를 있으되 없는 자식으로 대하셨고, 큰어머님 또한 저를 항상 눈에 가시로 여기어…> 

       

       <…저는 첩출의 서자로서……> 

       

       뭐? 잠깐. 첩출? 서자? 큰어머니?

       

       얘, 가족관계가 뭐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여전히 교복 안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호적등본을 꺼내들어, 호적에 나타나있는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 등을 빈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 결과, 아래와 같은 가계도를 그릴 수 있었다.

       

            백림노평(69)

        황씨(정처)─┴─윤씨(첩·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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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림철우(46)  백림철연(17)

          │

        백림남수(24)

       

       

       (호적상에는 당연히, ‘백’씨가 아닌 창씨성인 ‘백림’으로 성씨가 표기되어 있었다.)

       

       가계도를 그려놓고 보니, 내 아버지되는 사람인 백노평이 정실부인은 따로 있으면서, 뒤늦게 들인 첩에게서 낳은 자식이 바로 지금의 나 백철연이었다.

       

       ‘첩에게서 나온 자식이었구나…… 어쩐지.’

       

       명색이 남작의 자식이라면 이런 허름한 하숙방에 자취를 할 형편은 아닐텐데, 경제적인 지원이 어딘가 부실하게 느껴졌던 것이 이런 이유에서였던 것일까.

       

       ‘그나저나 이런 개족보가 있나.’

       

       같은 항렬의 ‘백철우’라는 이복형은 거의 내 아버지뻘인 연령이고, 심지어 조카 ‘백남수’ 마저도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

       

       백노평이가 나이 오십 넘어서 새 첩을 들여서 낳은 자식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노인네가 기운도 팔팔했나보네…….’

       

       가족관계와 집안 사정을 대충 파악한 나는, 편지를 계속 읽어 내려갔다.

       

       <…아버지께서는, 각성하여 능력을 득한 제가 백림씨의 명예를 드높일 방법으로는 제가 각성능력자 전형으로 황군 장교로 입대하는 수밖에 없다며, …>

       

       <…그 자격을 얻기 위해 엽사전문을 졸업하라고 하셨지요. 저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이곳 경성으로…>

       

       

       ‘……뭐?!’

       

       황군? 입대? 뭐지? 갑자기 어질어질한데?

       나는 편지의 나머지 뒷 부분을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그것이 저는 너무나 두렵습니다. 

       

       일본의 씨(氏)를 사용하여 조선인 동무들의 눈총을 받을 것이 두렵고, 부족한 재주로 엽사전문의 학업을 마칠 수 있을지가 두렵고, 또 졸업 후 전쟁터로 나아가기로 정해진 것이 두렵습니다.

       

       이런 저에게 능력이 각성되고야 만 것은 오히려 저주인가 합니다.

       

       저에게는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일병(日兵)이 될 생각은 결코 없습니다. 하지만 차마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이로 인하여 다른 길을 택합니다.

       

       못난 자식이 먼저 가오니 부디 용서하소서.>

       

       .

       .

       .

       

       편지는 그곳에서 끝났다. 아니, 이것은 편지가 아니라 죽기 직전에 남긴 유서였다.

       

       나는 이제서야 백철연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야 말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의 내 기분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졸업하면…… 일본군 입대로 정해져 있었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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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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