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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 이것으로 1024기 틸레트 아카데미 입학시험이 전체 종료되었습니다. 모든 수험자께서는 잊으신 물건이 없나 확인하시고 짐을 챙겨 귀가하시길 바랍니다.

         

       ─ 이번 입학시험의 결과는 정확히 2주 뒤 아침 7시에 우편을 통해 고지될 예정입니다.

         

       ─ 모든 수험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하아….”

         

       끝났구나.

         

       긴장감이 빠져나가자 불안함이 그 자리를 채운다.

         

       만약 붙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평생 이 세계에 남아 치맥 한 번 구경 못 하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 좌우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 저녁이었다.

         

       주황빛 저녁놀을 받으며 교정을 빠져나가는 학생들.

         

       정문에서 기다렸다가 초콜릿 따위의 요깃거리를 건네주는 학부모들.

         

       망쳤다며 우는 여학생과, 붙은 것 같다며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는 남학생.

         

       그 모든 풍경을 눈에 담고는 뒤를 돌았다.

         

       “야! 실기 잘 봤어?”

         

       벌써 세 번째다. 자칭 드워프의 후손이 기세등등한 눈빛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어린애의 가장 큰 특징이 감정을 숨기는 데 서툴다는 것이다. 꼬맹이의 전반적인 표정과 몸짓을 보니 시험을 잘 본 모양이었다.

         

       “꼬맹아, 집에 안 가고 뭐 하니?”

       “마력 없는 노랭이 얼굴 보러 왔지. 그래서 시험은 잘 봤냐구!”

       “어떻게든.”

         

       이미 지나간 일을 길게 곱씹어보는 취미는 없다. 끝난 건 끝난 거다. 당장 내일 할 일을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 전에 얘부터 떨쳐내고.

         

       “근데 아까부터 왜 이리 쫓아다녀? 우리 오늘 처음 만난 사이 아니야?”

       “대지의 정령왕께서 내게 속삭이고 있어, 너랑 다니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거라구 말이야!”

       “밥 살 돈 없으니까 다른 데 가서 알아봐, 꼬맹아.”

       “꼬맹이 아니거든? 제대로 이름으로 부르라고!”

       “너 나한테 이름 알려준 적 없잖아.”

       “엑.”

         

       사레라도 들린 듯 크흠흠, 하며 목을 푸는 꼬맹이. 기침할 거면 입을 좀 막고 하세요.

         

       꼬맹이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프레이. 프레이 셸커니.”

         

       생긴 것과는 정반대로 제법 고상한 이름이었다. 성씨도 있는 걸 보면 귀족일 텐데.

         

       “내가 먼저 이름 댔잖아. 너도 말해!”

       “에테르. 성씨는 없어.”

       “와, 평민이야?”

       

       여기서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전략으로 간다.

         

       “아니, 대학원생.”

       “아하! 그래서 가문이 없구나!”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꼬맹이…. 프레이는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하는 날 쫄랑쫄랑 쫓아왔다. 수험생들이 밖으로 빠져나간 덕에 저녁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찾아 앉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쉴 새 없이 쫑알거리는 꼬맹이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자니 식판이 금방 비워졌다. 늘 먹던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다 보니 5분 내로 모든 걸 흡입해버린 것이다.

         

       ‘너 그렇게 먹으면 체한다’라며 충고 아닌 충고를 하는 프레이를 두고 연구동으로 향했다. 어찌 된 게 무반응으로 일관해도 계속 따라온다. 길가에서 멍멍이 하나 주운 기분이다….

         

       기어코 이 작은 멍뭉이는 하스펠트 교수의 연구실까지 쳐들어왔다. 나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그냥 한숨으로 현재 심정을 대변했다.

         

       “우와, 여기가 너희 주인님 연구실이야?”

         

       주인님, 그래. 처음 여기 왔을 때까지만 해도 하스펠트 교수를 그렇게 불렀었지.

         

       자기가 듣기 싫다고 ‘교수님’으로 호칭을 바꾼 게 언제였더라. 이젠 기억도 안 난다.

         

       놀이공원에 처음 온 어린이처럼 방방 뛰면서 비품실과 주 연구실을 돌아다니는 프레이를 보자 머리가 멍해졌다. 아무리 봐도 아카데미에 지원할 만한 정신연령이 아니었다.

         

       “아무거나 만지면 안…….”

       “와, 이거 트랜지스터잖아!”

         

       그 말에 프레이로 향하려던 내 걸음이 멈췄다.

         

       꼬맹이는 내 따가운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스펠트 교수 위에 놓인 마석 하나를 집어다가 이리저리 돌리며 관찰했다.

         

       아, 맞다. 기초마도이론 마지막 문제.

         

       오늘 필기고사에서 나왔으니 프레이가 트랜지스터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

         

       그나저나 하필이면 거기서 트랜지스터 회로 작성 문제가 튀어나올 줄이야. 변별력을 기르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너무 지나쳤다.

         

       “그래서 여긴 뭐 하러 들어온 거야?”

        “일하러.”

       “으엑, 하루쯤은 놀아도 되잖아!”

         

       이건 악마의 속삭임이다. 이 악마의 꼬드김에 넘어가 본래 신분을 망각해선 안 된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자.

         

       나는 프레이의 한 잔 하자는 요구를 거절하고는 양장본을 꺼내들었다. 꼬맹이는 너무하다며 볼을 빵빵하게 불린 뒤 자신이 묵는 여관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콰아아앙─!!

         

       거 조금만 살살 닫지.

         

       아무튼.

         

       입학시험이 끝나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다. 하스펠트 교수가 나더러 석 달 안에 완성해 오라고 한 전쟁용 스크롤이 그것이다. 이게 작별 선물이면 좋겠는데.

         

       촤라락.

         

       [최상급 화계마도 ─ 플레어(Flare)]

         

       [태양, 제4의 상태, 그리고 다섯 번째 상태로 통하는 길이 이곳에 있나니.]

         

       [▷ 이 마법을 아직 익히지 않았습니다.]

       [▷ 미완성 상태의 마도입니다. 학습이 아닌 연구를 통한 습득을 추천드립니다.]

         

       “설명 왜 이래.”

         

       오늘 밤샘 확정이다.

         

       **

         

       사방에서 탄내가 진동했다.

         

       클라이스는 코를 틀어막으며 전황을 둘러보았다.

         

       4차로 쏟아져나왔던 상급 마수는 대부분 진압한 상태였다. 늑대처럼 생긴 것은 불태워 없애버렸고, 맹금류를 닮은 괴물은 반으로 찢어 죽여버렸다.

         

       그 수를 짐작하면 20만에서 25만. 1차부터 3차까지의 마수를 전부 합하면 거의 100만은 넘고도 남을 기계의 산이 땅바닥에서 낙엽처럼 굴러다녔다.

         

       헤를라인과 힘을 합쳐 잡아낸 재앙급 마수도 있다. 그 시체는 언덕 앞으로 끌고 들어왔다.

         

       급이 높은 마수에게서 질 좋은 마석을 왕창 얻을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클라이스가 원하는 트랜지스터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쯤 하면 슬슬 공세가 멈출 때도 되지 않았나?

         

       아니, 그런 생각을 할 때면 항상 다음 파도가 몰려오기 마련이었다.

         

       “온다.”

         

       두두두두두두두─.

         

       지평선 너머로 5차 웨이브의 시작을 알리는 굽소리가 들린다. 머리가 둘 달린 파충류들이 대기를 가르며 군영으로 돌진했다.

         

       “메리, 슬슬 준비 됐어요?”

       “그래. 이쯤이면 충분할 거야.”

         

       마력초로 MP를 보충한 메리가가 클라이스의 제스처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스태프를 꺼내서 땅에 내리꽂았다.

         

       [최상급 지계마도 ─ 메카로멘시아(Mecharomancia)]

         

       선언과 함께 주변의 마소가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땅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괴물의 사체가 천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잘려나간 부분은 다른 마수의 사체로 덧대어졌다. 불타 그을린 흔적은 송두리째 노려낸 뒤 토양과 함께 반죽되어 두꺼운 장갑으로 재탄생했다.

         

       마수와 마수가 섞인 결과물이 또 다른 마수를 만들어낸다.

         

       죽었다가 살아난 마수. 지계마도사들은 그것을 ‘골렘’이라 불렀으니.

         

       메리가의 선언과 함께 여태까지 제국의 군인들을 악몽으로 몰아넣었던 상급 마수는 상급 골렘으로 탈바꿈됐다.

         

       그 수는 어림잡아 80만. 클라이스가 쓰러뜨린 마수의 수에 비하면 살짝 모자란 양이었지만, 적어도 이 넓어터진 전장을 메꾸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죽은 마수, 골렘은 더는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인류의 편이었으며, 또한 엘프를 포함한 이종족의 편이기도 했다. 새 주인의 명령을 받은 마수들이 지축을 울리며 한때의 동료들을 짓밟아나가기 시작했다.

         

       “작성, 상급 골렘 렉슨.”

         

       남은 재료로 말처럼 생긴 골렘을 연성해낸 메리가는 클라이스를 태우고 골렘의 행렬을 뒤따랐다.

         

       “메리,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안 돼요. 옛날처럼 신난다고 막 나서다가 다치지 말고.”

       “알아. 그나저나 확인해야 하던 게 뭐였더라? 탑의 외관?”

       “외관하고 마수가 나오는 출입구요. 삼각법으로 높이가 어느 정도까지인지 계산할 수 있으면 더 좋아요.”

         

       두 사람은 골렘의 비호를 받으며 언덕에서 내려온 뒤 그대로 전방을 향해 질주했다. 영 기분 좋은 드라이브는 아니었다.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기가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클라이스와 메리가는 지금 같은 계산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골렘의 속력과 달리는 시간을 계산해 초원에서 탑까지의 거리를 추정했다.

         

       결과는 금방 나왔다. 삼각비를 활용해 탑의 최소 높이를 역산해낸 값은 믿기 힘들 정도였다.

         

       “대충 얼마 나와요?”

       “1.8km 정도.”

       “전 2.1km에요.”

         

       마탑 건축사에 길이 남을 만한 높이였다. 두 사람은 혀를 내두르며 더 앞까지 접근했다.

         

       “상상 이상으로 견고하네.”

       “겉면만 봐도 쉽게 안 부서질 것 같아요. 크기도 워낙 크고.”

         

       탑의 정문만 해도 1백 미터에 육박할 정도였다. 그 안에서 인간보다 최대 50배는 커다란 짐승들이 나왔으니 보통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덜덜 떨며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탑에서 마수가 끝없이 쏟아져나왔다. 두 교수가 점점 철탑에 가까워짐에 따라 새끼를 토해내는 정도가 더 심해지는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몰고 온 골렘이 점차 밀리기 시작했고, 아군이 초당 수백씩 갈려나갔다.

         

       이 이상으로 이곳에 머물러선 안 됐다.

         

       “후퇴하죠.”

       “나도 방금 그 생각 했어.”

         

       판단은 빨랐다. 마탑의 외관까지 대강 둘러 본 두 사람은 말을 돌려 진지로 향했다.

         

       다행히도 마수의 진격은 다섯 번째 웨이브를 끝으로 잠잠해졌다. 클라이스와 메리가는 마지막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전선의 통신병에게 연락해 군단장이 있는 후방으로 물러났다.

         

       “웨이브 개시부터 종료까지 28시간 21분 경과, 둘 다 수고했네.”

         

       중장의 격려와 함께 두 여인은 그대로 쓰러졌다. 전선에 막 투입된 어리버리한 신입 마도사들의 생명을 하나라도 더 보호하기 위해 군을 물린 뒤 둘이서만 전투를 치렀기 때문이었다.

         

       클라이스는 손에서 불꽃 하나 만들어낼 힘조차 없었다. 조사보고를 마치자마자 자는 쪽잠은 세상 그 어느 때보다도 달콤했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단잠이었다.

         

       사흘째 되는 날, 두 사람은 마탑에서 나타나는 마수의 종류와 공략법을 일선 병사들에게 알려주고는 수도로 향하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푸히힝.”

         

       돌아왔을 때는 자정을 넘긴 뒤였다. 일부 골목에선 통금령이 시행되고 있다. 수도에 입성하자 어딜 밤에 싸돌아다니냐는 경비의 주의를 받긴 했지만, 곧바로 신분을 보여주자 상대가 머리를 조아리는 등 우스운 해프닝도 있었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라고.”

        “메리도요.”

         

       중간에서 헤어진 뒤 자신의 저택으로 향하려던 클라이스는 문득 아카데미로 발을 돌렸다.

         

       조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방치하고 떠난 지 사흘이나 지났지만 혹여라도 도망쳤을까 하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여태까지 자신의 조수는 단 한 번도 도주 시도를 하지 않았으니까.

         

       2년 전, 자신이 독감으로 몸져누웠을 때도 잠적하기는커녕 곁에서 간호를 해 주었던 아이다. 클라이스가 노예를 상징하는 쇠목걸이를 풀어준 것도 그 이후부터였다.

         

       ‘그러고 보니 플레어 작성을 맡겨놨었죠.’

         

       플레어, 그녀가 전역한 이후부터 조금씩 연구해오던 극강의 화계마도.

         

       플레어만이 절멸급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적어도 클라이스의 생각으로는 그랬다.

         

       황실에서 에테르를 거래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 사실을 당사자에게 전달하지는 않았다. 괜히 알려줬다가 그 다음부터 일을 건성건성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난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플레어를 완성하지 못하면 미래에 나라가 마수에게 먹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마당인데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연구하는 것보다는, 금안족의 도움을 잠깐이라도 받아 아이디어 하나라도 건지는 편이 이득이었다.

         

       그랬기에 내린 결론은 하나.

         

       조수에게 플레어 연구를 최대한 맡기도록 한 뒤 나머지를 자신이 완성한다.

         

       “흐…….”

         

       좋은 계획이다. 아주 좋은 계획.

         

       그렇게 생각했는데.

         

       ‘뭘까요, 뭔가 허전해질 것 같은 이 느낌은….’

         

       일단…. 일단 어려운 생각은 나중으로 미뤄버리자. 지금은 머리가 온통 피로로 누적돼서 감정이 무뎌져 있는 상태였다.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조수 얼굴이나 보고 들어가야겠어요.’

         

       클라이스는 노곤해진 몸을 이끌며 에테르가 있는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은 마치, 술에 찌든 사람과도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2/07/31 : 일부 서술 및 클라이스의 내면 묘사 방향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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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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