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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

         

         

        -타앙—!

        -탕—!!

         

         

         간헐적인 격발음이 들릴 때 마다 적들이 우왕좌왕 흩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저건 단지 저들의 훈련상태가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정예할수록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기습을 당했을 때, 정상적인 장교라면 적의 공격 빈도로 적의 수를 가늠하니까.

         

         

        -격발음이 들리는 간격을 본다면 적은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인원에 불과하다.

         

         

         여기까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지금 이 숲에서 격발음이 들리는 곳이 한 방향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

         

         동쪽에서 한 번, 타앙. 그쪽으로 병력을 돌리면 어느새 그 방향에 남아 있는 것은 시체 몇 구가 전부.

         

         당황해서 병력을 산개할 때, 다시금 서쪽에서 한 번, 타앙.

         

         이 즈음에서, 지휘 장교가 하고 있을 생각은 뻔했다. ‘적은 소수의 인원을 분산시켜 우리를 몰아 넣고 있다.’

         

         정확한 판단이다.

         

         상대가 절멸부대 현장 지휘관이 아니라면.

         

         

        -철컥.

         

         

         긴장감과 살기, 분노가 가득 덮인 숲 속의 대기를 느끼며 천천히 권총을 들어 올렸다. 저 앞, 병사 셋이 횃불을 든 채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겁에 질린, 또는 분노에 찬 행동이다. 그 둘은 멀리서 볼 때에 어떤 차이도 없었으니까.

         

         이반은 숨을 길게 내쉬고,

         반절. 복압을 잡고 단단하게 내려 눌러서,

         

         가늠쇠울의 끝을 상대에게 겨누고, 거리를 계산해 다섯 눈금 위로 들어 올린다.

         

         물 흐르는 듯 매끄럽게, 본능적인 움직임에 가까운 ‘학습’으로.

         

         여기까지가 0.3초.

         

         활짝 뜨인 푸른 눈, 양안은 빠르게 주위를 살핀다. 세 병사의 간격, 이들의 키 차이, 그를 기준으로 떨어진 거리의 정도.

         

         그렇게 계산이 마쳤을 때, 가장 멀리 있는 녀석을 시야 안에 가득 담고.

         

         격발.

         

         

        -타앙—!

         

         

         격발 순간 총을 내리고 도끼를 쥔다. 사살을 확인할 필요는 없다. 저들이 알려주니까.

         

         

         “제기랄! 이노프가 당했어!”

         “어디냐! 나와! 빌어먹을!!”

         

         

         나무 위를 빠르게 뛰어넘어 다음으로, 저들이 휙휙 휘젓고 있는 횃불은 그 자체로 훌륭한 표적지시기다.

         

         숲 속에서 불을 피우는 것은 시인성이 너무 좋다. 물론 횃불마저 없다면 아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숲이지만, 그야 저들 잘못 아닌가.

         

         이런 날을 고르지 말았어야지.

         

         기본적으로 야간 급습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지휘관의 탁월한 능력과 모든 병력의 완벽한 훈련 상태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이들도 야간에 숲에서, 그것도 타국의 숲에서 벌이는 기습 앞에선 머뭇거릴 것이다. 아마 작전 투입 직후에 1/3 가량은 낙오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적의 총병력은 50인 안팍.’

         

         

         적의 분산 정도와 분산된 적들의 분대 단위 규모를 보자면 그 정도.

         

         이반은 횃불을 든 병사 머리 위에 서서 그렇게 생각하며, 도끼를 움켜쥐고 그대로 내려 꽂혔다.

         

         

        -콰아아앙!!

         

         “으아아악!!”

         

         

         겁이 많은 놈이다. 정작 도끼에 맞은 녀석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했는데도.

         

         하지만 훈련은 제대로 받아본 모양이다. 그가 나타난 순간 총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니.

         

         이반은 허릴 숙였다. 놈의 방아쇠에 덜덜 떨리는 손가락이 밀려들어간다.

         

         조준 과정 따윈 없다. 이 거리에선 의미가 없을 뿐더러, 놈은 그럴 만한 정신이 없었다.

         

         패닉에 빠져 일단 쏘고 본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게 둘 순 없다.

         

         

         “주, 죽어어엇!!”

         

         

         그 말을 흘려들으며 허벅지에 힘을 준다. 놈의 손등에 힘줄이 바싹 솟았다.

         

         그 찰나, 이미 한 달음 다가온 이반이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한 번에 오른 어깨와 목덜미가 동시에 부서진다. 말 그대로, ‘부서진다.’

         

         격렬한 힘을 담은 일격, 그리고 재빠르게 몸을 틀어 다시금 일 격. 다시 또 일 격.

         

         세 번의 도끼질이 반 호흡 아래에서 이뤄졌다. 더 이상 이 자리의 누구도 입을 열수 없게 되었다.

         

         

         “후우.”

         

         

         이반은 어깨를 뚜둑, 풀고는 도끼를 꽂아 넣었다.

         

         이 이름 모를 병사가 쥐고 있던 총을 들어 하늘을 향해 겨냥하고, 방아쇠에 가는 실을 걸어서 바로 옆 나무에 걸쳐 두었다.

         

         총을 죽은 시체의 품에 안겨두고 단단히 고정시키면 이걸로 할 일은 끝이다.

         

         

         총성이 들렸으니 누군가 이 곳을 찾을 것이다.

         

         이 시체를 건드리는 순간 장전된 총이 격발할 테고, 지휘부는 당혹감 속에서 이반의 위치를 오판하겠지.

         

         현장의 정보가 지휘부로 가는 딜레이, 어두운 숲이 주는 시야의 제한, 낯선 환경의 공포, 정보의 혼란, 차근차근 줄어가는 아군.

         

         유능한 적일수록 속이기 쉽다.

         

         이반은 나무 위를 타고 달음박질 치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건. 이상하다.

         

         적들의 상태는 튜토리얼이라 하기엔 너무나 유능하다.

         

         

         ‘디안 오거스트는 이자벨의 튜토리얼을 조력하고 사라지는 NPC였을 터.’

         

         

         이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상황, 그가 아니었다면 과연 이자벨이 홀로 이 숲을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

         

         충분한 화기와 잘 훈련된 병력, 유능한 지휘부를 둔 적의 상태를 감안한다면.

         이제 스물 갓 된 어린 아이가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의 위험이 아니다.

         

         

         ‘왜…? 적의 섬멸이 튜토리얼 클리어 조건이 아니기라도 하나?’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막강한 적을 상대로 도망치면서 조작을 익혀야 하는 게임이.

         

         하지만 어떻게? 그리고, 어디로?

         

         프리첸카야까지 남은 거리를 고려한다면, 방향조차 잡을 줄 모르는 어리숙한 꼬마가 무사히 숲을 벗어날 확률은 0%에 수렴할 텐데.

         

         이반은 혼란 속에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고민은 사태가 끝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

         

         

        *

        

        

        “대장, 또 당했습니다. 이번엔 세 놈 모두가 도끼에 썰려 있었다고 합니다.”

        “허 참. 이건 뭐….”

        

        

        사내는 턱을 쓸어 만지며 신음했다.

        호랑이를 상대하는 기분이다.

        

        약한 녀석부터 차근차근, 집단의 목을 옥죄어 오는 사냥법이다.

        

        이에 대한 대응법은 단순했다. 병력을 밀집시키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순 없다. 그의 목표는 ‘용사의 딸’이었으니.

        

        

        “차라리 지금이라도 애들을 모으는 편이…?”

        “멍청한 것. 그게 바로 지금 저 밖에 있는 놈들이 바라는 것 아니겠나.”

        

        

        적은 소수다. 당연한 일이다.

        

        만일 다수의 역습을 맞이했다면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쓰진 않았을 터.

        

        굉장히 정예화된 소수의 타격대가 지금 저 숲에 흩어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타앙—!

        

        

        다시 한 번 총성이 들렸다. 이번엔 서쪽.

        그리고 곧이어.

        

        

       -타앙—!

        

        

        이번엔 북쪽 너머에서.

        

        총성은 차츰차츰 그가 있는 위치를 향해 가까워지고 있다.

        

        

        “이미 우리 위치를 알고 있어.”

        “예?”

        “이미 이 곳이 사령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멍청하긴! 모르겠나?”

        “아, 예. 그렇긴,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왜 우릴 직접 공격하지 않는지…?”

        

        

        사령부를 타격하고 난 뒤에, 혼란에 빠진 병력을 하나하나 사냥하는 편이 훨씬 간단하지 않은가.

        

        왜 적들은 이런 번거로운 짓을 벌이고 있나.

        

        그건.

        

        

       -타앙—!

       -타앙—!

        

        

        각기 다른 방향에서 들린 두 번의 총성 끝에, 사내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충격이 다가왔다.

        

        

        “총 줘봐.”

        “예? 아, 예!”

        

        

        사내의 총을 뺏어들고 허공에 격발한다. 타앙—!

        

        잠시 그대로 굳어 있던 사내는 곧, 으르렁 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한 놈이군.”

        “하지만 대장, 총성의 방향이…!”

        “빌어처먹을, 잔재주를!!”

        

       -우드득!

        

        

        사내는 손에 쥔 총을 으스러트리며 일갈했다.

        

        

        “우리 총성이잖나! 저 놈은 우리 애들을 죽이고 격발 시간을 조절한 거야! 간단한 트랩이면 어린애도 할 수 있는 짓인데, 그걸 놓치다니!”

        

        

        사내는 총의 잔해를 바닥에 집어 던지며 칼을 뽑아 들었다.

        

        

        “처음 총을 쏘고 우리 반응을 살폈겠지. 사선 감지를 가졌나 아닌가! 우리 반응은 너무 기민했어. 제기랄!”

        

        

        보통의 병사들은 총성이 들리는 순간 엄폐물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령부는 아니었다. 그들의 대장은 사선감지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총성이 들리자마자 곧장 총성의 방향을 가늠해서 추적대를 파견했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곧장 여길 치지 않은 이유가 뭐겠어! 상대할 자신이 없거나, 시간을 끌려선 곤란한 상황이겠지. 저 정도로 훈련 받은 놈들이 그런 생각을 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 엉?”

        “호, 혼자라서….”

        “그래! 이런 빌어먹을. 총성은 애초에 미끼였다고! 애들 다 모아! 제길, 용사 새끼의 딸년을 직접 상대하고 싶진 않았는데….”

        

        

        사내의 얼굴에 그어진 흉터가 일그러졌다.

        

        용사의 딸이라. 용사의 반절만 닮았어도 괴물의 새끼는 괴물이다.

        

        그는 용사를 기억한다. 그 터무니 없는 무력의 화신을 기억하고 있다.

        

        아무리 어리더라도 방심해선 안 된다. 그 때 용사도 고작 서른살 남짓의 어린 놈이었으니까.

        

        사내는 어깨를 풀고 걸음을 내딛었다.

        

        

        “저 계집은 내가 직접 상대한다. 애들을 모아서 숲 속에 있는 새낄 잡아와.”

        “예, 대장님!”

        

        

       

       *

        

        

        “네가 용사의 딸인가?”

        

        

        이자벨은 달빛 아래에 선 채로, 숲 속에서 나온 한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등 뒤엔 공포에 젖은 채 모여 앉은 사람들이 있었다.

        

        모닥불 앞에 모여서, 추위에 떨며 그녀를 바라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자벨은 고개를 흔들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무겁게 감겨오는 칼을 억지로 틀어, 강하게 고쳐 잡았다.

        

        

        “아니.”

        

        

        눈을 떴다. 달빛이 주위를 어스름히 밝히고 있었다. 사내의 실루엣이 조금 더 명확하게 보였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도, 누군가의 목숨을 등에 업고 싸우는 것도 처음이다.

        

        하지만, 괜찮다. 이것이 ‘바르기 때문에’.

        

        

        “막시밀리앙과 마리의 딸이다.”

        

        

        용사의 딸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딸이다.

        그런 의미를 담아서.

        

        눈 앞에 선 사내는 길게 웃었다.

        

        놈의 머리 위에 드리운 뿔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었다.

        

        마족이다. 이자벨은 침을 삼켰다. 마족을 상대하는 것도 처음인데.

        

        

        “훌륭하군.”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고쳐 쥐었다.

        

        

        “나는 아이펠로스. 제 6용장 각하의 근위보병사단 출신. 백인장이다.”

        “이자벨. 탈레스 소속. 기사다.”

        

        

        밤바람이 인다. 침엽수림이 우스스 떨렸다. 타앙, 저 멀리서 아스라히 총성이 들렸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질주했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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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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