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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정은선의 말은 촬영장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누가 봐도 방금 서연의 연기는 좋았으니까.

       

       ‘역시.’

       

       공정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정은선은 역시 서연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게 분명했다.

       조서희를 특히 예뻐했던 그녀이니, 그녀가 오디션에서 떨어진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최근 퍼진 소문처럼 조방우 감독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정은선 배우님.”

       

       이런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이는 결국 자신 뿐이었다.

       원로 배우이자, 이 드라마에서 가장 힘이 강한 배우라고 한다면 단연 그녀였으니까.

       

       “그, 말씀이 너무 과하십니다. 서연 양의 연기는 충분히 훌륭했습니다.”

       

       아역에게 바라는 연기력은 본래 그리 높지 않다.

       대사를 뭉개지지 않게 내뱉고, 감정선을 타는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유망한 배우였다.

       

       괜히 조서희가 일일 드라마의 공주님이라 부르는 게 아니었다.

       그녀만큼 연기를 잘하는 아역은 공정태도 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서연을 보기 전까진.

       

       ‘이 아이의 연기에는 힘이 있어.’

       

       기술은 부족해도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아이다.

       드라마에선 어려울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훌륭히 증명하지 않았던가.

       

       “네?”

       

       그런 공정태 감독의 말에 정은선은 찌푸려진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 눈매가 은혜대비의 그것과 같이, 칼날 같아 무심코 움찔할 정도였다.

       

       “크, 크흠. 말이 좀 심하신 게 아니냐 했습니다.”

       

       아무리 원로 배우라도, 이 촬영장의 감독은 자신이다.

       저런 정은선의 태도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본래 서연에게 색안경을 끼고 보던 이들까지 저건 좀 너무한게 아닌가 싶었을 정도니까.

       

       “…….”

       

       정은선은 그런 공정태의 말에, 잠시 말이 없었다.

       

       “무언가 제 말뜻을 잘못 이해하신 것 같네요.”

       “예?”

       

       방금 그 말에서 잘못 이해할 것이 있었나?

       당황한 공정태가 반문했지만, 정은선의 시선은 여전히 서연에게 향해있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 서연은 어벙한 얼굴로 마주할 뿐이었다.

       그녀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이해 못했다.

       

       솔직히 서연의 입장에선.

       

       ‘지적 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김부장도 매번 이렇게 꼬투리 잡았는데.

       그런 평온한 생각을 이어갈 뿐이었다.

       

       “공 감독님은, 방금 서연 양의 연기가 어떠하셨죠?”

       “어땠냐니요. 당연히 좋았지요. 좋았으니 제가 오케이 사인을 보낸 게 아닙니까? 오히려 제가 묻고 싶습니다. 정은선 배우님은 방금 서연 양의 연기의 어떤 부분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은 겁니까?”

       “저는 그런 말을 한 적 없습니다.”

       

       정은선은 그런 공정태의 말에 단호히 답했다.

       

       “제가 말한 건, 이 아이의 연기에 감정이 담기지 않았다고, 진심이 아니라고 한 것이지요.”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공정태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연기는, 두말할 나위 없었습니다. 네, 너무 좋았죠. 솔직히 깜짝 놀랐습니다.”

       

       갑작스런 칭찬이었다.

       당황한 공정태가 가만히 그녀를 보고 있자, 정은선은 잠시 서연에게 시선을 주었다.

       맑은 눈이다.

       

       붉은 빛이 느껴지는 신비로운 눈동자.

       아마 저 눈이, 그녀의 매력 중 하나인 거겠지.

       

       “공 감독님.”

       “네, 네?”

       “서연 양의 어머니와 잠시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런 그녀의 말에, 공정태는 굳을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으니까.

       

       ***

       

       “…….”

       

       수아는 잠시 눈앞에 있는 중년의 여성을 보며, 몸을 움츠렸다.

       솔직히 수아는 정은선 배우가 싫었다.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감탄한 서연의 연기를 보고, 그런 말을 하다니!!

       

       만약 다른 스태프가 말리지 않았다면, 당장 촬영장에 뛰어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더니 이렇게 그녀와 마주하게 되었다.

       

       촬영도 잠시 멈춰진 상태였다.

       서연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이 좁은 대기실에는 공정태와 수아, 그리고 정은선 배우만이 있을 뿐이었다.

       

       “말씀드리지만, 서연 양의 연기에는 진심도 감정도 들어가 있지 않아요.”

       “……그게 무슨 소리세요?”

       

       한참 쫄아 있던 수아는, 그런 정은선의 말에 발끈했다.

       탁자를 탕! 하고 내려치며 강하게 반박하려던 수아는 이어진 정은선의 말에 손을 멈췄다.

       

       “진심도, 감정도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그 정도라는 이야기라는 뜻이에요. ……모두가 그 아이를 감정 연기를 장기로 삼는 아역이라 생각하더군요.”

       “아.”

       

       그제야 공정태는 정은선이 무엇을 말하는지 깨달았다.

       그도 경험이 많은 감독이다.

       그녀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도리어 여태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고 할 수있다.

       물론, 수아는 그런 공정태와 달리 정은선이 말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처음에는 저도 착각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오늘 연기를 보고 확신했습니다.”

       

       정은선이 서연을 처음 본 건 두유 CF였다.

       그때는 단순히 발랄한 아이구나, 했을 뿐이다.

       

       연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다음은 이번 태숨달 오디션이었다.

       

       자신이 아끼는 후배, 조서희가 출연한 메이킹 필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서연을 보았다.

       

       ‘뭔가, 이상해.’

       

       조서희와 서연의 연기대결.

       1부와 2부로 나뉘어진 박빙의 승부는 확실히 훌륭했다.

       

       어린 나이에 이정도 연기를 펼치다니.

       정은선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후배인 조서희를 응원했지만, 서연에게 눈이 갔다.

       

       ‘이상해.’

       

       몇 번이고 돌려봤다.

       서연의 연기는 사람들의 눈을 끌었다.

       

       감정 연기.

       자막으로 서연의 장기는 감정 연기라 말했다.

       메소드 연기라고.

       

       ‘아니야.’

       

       하지만, 정은선은 메소드 연기를 장기로 삼는 배우였다.

       그녀이기에 알 수밖에 없었다.

       서연은 진짜 메소드 연기가 아니다.

       

       메소드 연기라면, 저렇게 빠르게 감정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어린 아이라면 특히 그렇다.

       

       아니, 애초에 아역의 장기가 감정 연기라는 건, 솔직히 위험한 부류다.

       혹시 방송이라 편집한 건가? 자신이 보지 못한 게 있나?

       하지만 저게 진짜라면.

       

       정은선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평범한 아이가 저런 걸 할 수 있을 리 없다.

       

       감정 연기면 타고 난 배우라고 설명하면 된다.

       그조차 너무 완벽했지만, 저런 ‘경험’에서 나오는 연기는 타고 나는 게 아니다.

       

       그러니 외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다.

       아역 배우들이 보통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

       

       부모.

       그것을 떠올렸을 때부터, 정은선은 줄곧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이에게 과한 기대를, 노력을 강요하는 경우는 자주 있는 법.

       

       이번에도 그런 경우라 생각했다.

       

       그러니 분명 부모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에서 본 수아는 딱히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메소드 연기는 깊은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것 같아요.”

       

       자신의 배역에 깊이 몰입해, 물속에 깊이 가라앉는다.

       그러니 나올 때 숨이 차고, 쉽사리 그 감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서연 양은 그렇지 않죠. 이건, 표면적인 연기를 한다는 거예요. 감정 연기라고 느껴지는 건,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익숙한 거죠. 이런 건 평범한 아이들에게 나타나지 않는 경우라…….”

       “좋지, 않은 건가요?”

       

       수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은선은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망설였다.

       

       메소드가 물 속에 뛰어드는 거라면.

       서연은 그 표면을 걷는다.

       

       물의 표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처럼, 감정을 모방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건지, 지금도 정은선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감정을 쓰지 않아도 이 정도에요. 아직 기술이 없으니까, 그런 거겠죠.”

       

       그래서 정은선은 조서희를 좋아했다.

       조서희는 선을 알았다.

       

       써도 되는 감정의 선을 알았다.

       하지만 서연은 선이 없었다.

       

       브레이크도 없었다.

       그야 모르니까.

       

       자신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르니까.

       그 선이 지켜진 건, 연기에 감정을 담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서연이 연기를 배우고.

       정말로, 흉내가 아닌 메소드 연기를 펼치게 된다면.

       

       진심으로 감정을 담아 연기를 한다면.

       

       “저도 잘 모르겠네요. 별일 없을 수도 있지만…… 서연 양은 어리니까요.”

       

       정은선은 생각한다.

       감정 연기는, 아이에게 독이다.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지나친 감정 연기는 되도록 자제하는 게 좋다고,

       

       특히 정서가 예민한 아이가 만약 메소드 연기를 한다면, 그 영향에서 아주 오랫동안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비록 가짜여도 이렇게 깊은 연기를 펼치는 아이가.

       

       “배우의 연기를 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될지.”

       

       그러니 정은선은 서연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기가 계속 불편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감정의 강물을 거닐며, 표면을 들여다보던 아이가 실수로 한 번 발을 헛디딜 것 같아서.

       그래, 강물에 내놓은 아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부디, 제 우려이길 바랄 뿐이네요.”

       

       그런 정은선의 말에, 수아도.

       공정태 감독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

       

       조금의 소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촬영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어쨌든 정은선 배우와 함께 나오는 씬은 이미 한 번에 오케이를 받은 상태였으니까.

       

       그림도 썩 괜찮았다.

       이후 엄마와 돌아온 정은선 배우는 여전히 불편한 얼굴이었지만, 말이 좀 과했다고 사과까지 했으니까.

       

       “서연아.”

       “네?”

       

       그때, 돌아오는 길에서 엄마는 조용히 물었다.

       

       “연기는 어때?”

       

       엄마는 어쩐지 평소보다 기분이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이유는 알기 어려웠다.

       혹시 정은선 배우가 뭐라했나?

       

       그건 아닐 것 같은데.

       솔직히 나는 사람을 보는 눈이 그리 좋지 않지만, 정은선 배우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계속 못마땅한 눈으로 보긴 했다만.

       

       “재밌어요.”

       “그래?”

       “네.”

       

       처음에는 버튜버를 하기 전 간단히 연습해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이것도 나름 마음에 들었다. 결국 전혀 다른 내가 된다는 점에서 버튜버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빨간약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평범한 버튜버의 빨간약이 인기 배우?!

       라고 하면 뭔가 멋지지 않나?

       

       아니, 그래도 빨간약은 좀…….

       

       “서연아, 혹시 힘든 일 있으면 꼭꼭 엄마에게 말해줘야 해?”

       “네? 아, 네.”

       

       그런 엄마의 말에 나는 무심코 대답했다.

       적어도 최근 나는 전생에 비할 바 없이 성실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증거가, 내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돈!

       여기서 열심히 해서, 광고도 더 찍고, 드라마도 더 나가면!

       

       ‘흐음.’

       

       문득 나는 오늘 정은선 배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진심이 아니라고, 감정이 담기지 않았다고 하던 그녀의 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으으음.’

       

       나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에 대해선, 최근 대략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드디어 15화까지 왔네요.
    언제나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정은선 배우님 좋은 분이었는데 까이는 게 안타까워 한 편 더 올립니다.
    비록 그렇게 의도한 건 저입니다만..

    후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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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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