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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꿈’을 꾸게 된 지 어느덧 이틀째.

       

        소녀는 오늘도 회색빛 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찾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전에 마주친 귀여운 아이들이다.

       

        ‘……?’

       

        상점가의 골목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름조차 모르는 그 아이들이 괜스레 걱정이 돼, 소녀의 걸음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일평생 ‘루시드 드림’을 겪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불현듯 꿈을 꾸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자신의 아이를 찾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가.

       

        물론, 아이들을 찾는 목적 이면에는 ‘반려’에 대한 약간의 기대가 섞여있었다.

       

        미래 남편이 될 사람을 과거의 자신이 확인한다. 그것만으로 얼마나 심장이 쿵쿵 뛰는 일인가?

       

        ‘아!’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상업 지구를 지난 소녀는 아카데미 외곽의 주거 지구로 진입했다.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한산한 분위기의 골목을 지난 곳의 놀이터. 

       

        소녀는 그곳에서 볼 수 있었다. 바로 어제, 천진난만한 얼굴로 그녀를 ‘엄마’라 부르던 두 아이를 말이다.

       

        멈칫!

       

        그런데.

       

        ‘……!!’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저건…… ‘나’ 잖아요……?”

       

        황급히 나무 뒤로 몸을 숨긴 소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꿈속의 ‘자신’은 지금보다 나이가 조금 들어보였다. 하지만 더 성숙한 매력을 풍기고 있어, 도리어 더 아름다운 듯한 미모를 갖고 있었다.

       

        “엄마! 이것 봐!”

        “나두!”

        “두 사람 조심해요? 다치면 주사를 맞아야 하니까요.”

        “윽!”

        “주사 시러!”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그녀가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어째서인지 복잡한 심정이 슬며시 고개를 치켜든다.

       

        ‘아이들…….’

       

        그제야 어제, 어째서 두 아이를 보며 애틋한 감정이 스멀스멀 느껴졌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원인은 잘 모르겠으나, 저 아이들은 정말 미래의…… 그녀의 아이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자각몽’이라고 할지라도 이토록 가슴이 미어지는 감정이 들 리가 없지 않나.

       

        “아빠다!”

        “아빠아아아! 오빠가 때렸어!”

       

        복잡한 심정으로 두 아이가 노는 걸 지켜보고 있는데, 이내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흡!”

       

        순간적으로 숨이 멎을 뻔 했다. 아이들의 아빠, 그녀가 함께할 미래의 남편. 그 사람이 놀이터 저편에서 손을 흔들고 있던 것이다.

       

        소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쭉 내밀었다.

       

        궁금했다.

       

        그녀가 만나게 될 사람이, 함께 미래를 약속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

       

        그 남자를, 미래의 남편이란 사람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문자 그대로…… 마치 사진 어플을 이용해 ‘블러 처리’를 한 것처럼,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을 보는 것처럼.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두 아이와 미래의 ‘자신’이 행복한 미소로 다가가고 있는데도, 꿈속의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나마 알아낸 사실은 미래의 남편이 창백한 흰 피부를 가졌다는 것, 평균보다 조금 더 큰 키를 가졌다는 것. 그게 전부였다.

       

        “어째서…….”

       

        고작 그 정보로는 누군가를 특정할 수조차 없다. 그에 안타까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삐비비빅!

       

        그것이, 소녀의 두번째 루시드 드림이었다.

       

        * * *

       

        “유리몬.”

        “네?”

        “요즘따라 낯빛이 많이 어두워. 혹시 힘든 일 있어?”

       

        한유리는 친구의 걱정에 쓰게 웃었다.

       

        힘든 일?

       

        많다. 아주 많다. 

       

        히어로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라는 지위와, ‘일성’의 금지옥엽, 아카데미의 ‘랭커’, 여왕 따위의 칭호는 그녀의 하루하루를 힘들게 만드는 공신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그녀가 진 사명이니까.

       

        “괜찮아요. 요즘 통 잠을 설쳐서…….”

       

        순간적으로 자신이 겪은 일들을 절친한 친구에게 말해볼까, 싶었던 한유리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친구… 송수아는 불과 며칠 전, 죽음을 극복했다.

       

        기적을 일으킨 것은 학생회 주관의 ‘훈련’에서 마주쳤던 임혜성. 

       

        그가 없었다면…… 송수아는 죽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소중한 친구를 잃었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렇기에.

       

        “아마 며칠 푹 쉬고 나면 괜찮을 거에요.”

        “너무 무리하지 마? 나는 유리가 힘들어하는 건 도저히 못 보겠어. 내가 도울 수 있으면 언제든 말해. 나는 항상 유리 편이니까.”

        “걱정 고마워요.”

       

        한유리는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송수아가 한유리에게 마음의 짐을 지게 하기 싫어하는 것처럼, 그녀 또한 송수아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으니까.

       

        그 뒤로.

       

        밤이됐다.

       

        평소처럼 늦은 밤까지 격무에 시달린 한유리는 자정이 넘어서야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오늘도…… 그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한유리. 그녀는 힘든 아카데미 생활에서, 새로 마주한 자극이 즐거웠다.

       

        의도하지 않았던 ‘루시드 드림’…… 그러니까 자각몽이 그녀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느낌이 가득했던 것이다.

       

        오빠로 보이는 남자 아이와, 여동생인 여자 아이. 

       

        그 깜찍한 아이들이 그녀의 가장 큰 위안이었다.

       

        .

        .

        .

       

        “엄마? 엄마!”

        “왜 여기서 잠들었어?”

        “……아?”

       

        한유리는 평소의 회색빛 도시가 아닌, 어느 단란한 가정집에서 눈을 떴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본다.

       

        깔끔한 티가 가득한 집의 풍경과, 귀여움이 뚝뚝 떨어지는 두 아이의 얼굴.

       

        “그냥…… 피곤해서?”

       

        한유리는 깨달았다. 자신이 기다렸던 꿈이다. 마치 행복한 동화속 이야기처럼 반가운 꿈이 그녀를 맞이한 것이다.

       

        “엄마 피곤해?”

        “엄마 안 피곤하게 우리가 안아주자!”

       

        꼬옥!

       

        두 아이가 곧장 한유리의 품 안에 안긴다.

       

        “……!”

       

        포근한, 따듯한 어린 아이의 체온이 곧장 한유리의 마음을 녹인다.

       

        “고마워요.”

       

        마음 속 빈 공간이 충족되는 즐거운 마음. 아이들을 품 안에 안은 한유리는 빙그레,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

        “응? 왜요?”

        “나 배고파.”

        “아……!”

       

        한유리가 탄성을 터뜨렸다.

       

        비록 꿈에서의 역할에 불과하지만,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다.

       

        그렇기에 배가 고픈 아이들을 먹일 사람은 한유리, 바로 그녀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맛있는 밥을 해줄 테니까요.”

        “응!”

        “와아! 밥! 밥!”

       

        신이 난 아이들을 뒤로하고, 한유리는 집 안을 서성였다. 밥을 하기 전, 우선 화장실을 찾는 것이었다.

       

        달칵!

       

        화장실을 찾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문 앞에 소형 러그가 깔린 곳, 그곳의 문을 여니 화장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후우!”

       

        작게 심호흡한 한유리는 거울 앞에 다가갔다. 그러자 보이는 건…….

       

        움찔!

       

        바로 그녀였다. 하지만, 원래 세계의 그녀가 아니다. 어제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었던 ‘미래’의 그녀가 거울 안에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상황은 뻔했다.

       

        꿈속의 그녀는 미래의 자신이 되었다. 애당초 꿈에서 다른 세계로 온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 납득이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흐음.”

       

        화장실을 나온 그녀는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어느정도 사용감이 있는 주방 집기, 냉장고 안에 가득찬 영양 가득한 재료들이 그녀를 반겼다.

       

        그런데.

       

        “미래의 나는…… 요리를 아주 잘 하는 모양인데요?”

       

        문제가 있었다. 호기롭게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겠다는 의지와 달리, 한유리는 제대로된 요리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 그래도!”

       

        계란 몇개와 야채를 꺼낸 그녀는 한 음식을 떠올렸다.

       

        달걀 볶음밥. 딱히 레시피가 없어도 당장 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러니까…… 일단은 야채를 기름에 볶고, 풀어 익힌 계란에 밥을 함께 볶으면 되는 거겠죠?”

       

        혼잣말을 중얼거린 한유리가 팔을 걷어붙였다.

       

        전투 시작이다.

       

        * * *

       

        “흐음…….”

        “회장님, 뭘 그렇게 보십니까?”

        “아. 대단한 건 아니에요. 요리를 배워볼까, 싶어서요.”

        “……요리. 분명 썩 괜찮은 취미입니다.”

       

        학생회 소속 남학생의 질문에, 한유리는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후후, 취미가 아니라 의무에 가깝지만요.”

        “……?”

       

        한유리는 어제의 일이 떠올라,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볼록 튀어나온 배를 통통 두드리던 개구쟁이들. 그 귀여운 녀석들이 한 그릇 더 달라고 하던 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사랑스러운 아이들.”

       

        두 아이만 떠올리면 자꾸만 웃음이 지어졌다.

       

        어제는 두 아이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도 성공했다. 이전의 허망하게 꿈에서 깬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수확을 올린 셈이다.

       

        장남, -하늘.

        차녀, -소미.

       

        사랑스러운 이름이다. 이름처럼 사랑스러운 외모에, 톡톡 튀는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고.

       

        장남인 하늘이는 장난치는 것을 좋아한다. 밥을 다 먹고 지치지도 않는지, 놀아달라며 한유리에게 매달려서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모르겠다.

       

        차녀인 소미는 말 그대로 ‘오빠바라기’다. 언제나 오빠가 하는 것이면 따라해야 직성이 풀렸고, 그 오빠를 따라하는 버릇은 잠에 들어서야 끝이 날 정도다.

       

        “후훗.”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의 결실인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

       

        이 세상의 누구나, 아주 자연스럽게 행하는 그것이 이리 행복한 일일거라 생각하지 못했었다.

       

        “소갈비찜?”

       

        요리책자를 찬찬히 훑는데,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는 음식이 눈에 밟혔다.

       

        “하늘이, 소미. 둘 다…… 저를 닮아서 고기를 엄청 좋아할 거에요.”

       

        곰곰이 고민하던 한유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다음 저녁은 소갈비찜이에요.’

       

        그리 생각하는 한유리의 왼손, 검지 손가락엔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밴드가 붙어있었다.

       

        ……어젯밤, ‘꿈’에서 당근을 손질하다 베인 상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이른 오후~저녁 사이에 1편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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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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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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