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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와… 이게 대체 몇 권이냐?’

       

       원작에서도 대공성의 도서관에 대해 짤막하게 나온다.

       르미앙의 시녀가 이곳에 책을 반납하고 대여하는 장면으로써 말이다.

       르미앙이 부탁한 마도학 연구에 대한 책이었는데, 시녀가 ‘개인’적인 책도 대여하는 장면이었다.

       

       바로, 달달한 로맨스 소설.

       그렇기에 들려본 것이다.

       

       로맨스 소설이 있다면, 응당 반지의 황제나 황좌의 게임 같은 판타지 소설도 있을 테니까.

       낭만 가득한 이세계에서 낭만 가득한 판타지 소설을 읽는 건 실이 있으면 바늘이 있듯,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너무 복잡한데.’

       

       렌들러 영감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마음의 양식 운운하길래, ‘마법 이론’에 관련된 책을 찾아오라 일러둔 터였다.

       오늘 저녁부터 시작될 레이첼과는 실전 훈련을, 책으로는 이론 공부를 하기 위함이었다.

       냉큼 걸음을 했던 것으로 보아 도서관에 와본 적이 있는 듯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길을 물어볼 걸 그랬다.

       

       ‘흐음….’

       

       문 열린 지하철마냥 끝없이 도열한 책장은 목을 꺾어 올려다 봐야 할 정도로 높았다.

       빼곡히 들어찬 책은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일 정도였고.

       각 책장의 위로 대분류를 위한 현판이 붙어 있기는 했다만, 종류가 워낙 많아 식별이 어려웠다.

       그야말로 책에 압사당할 것 같은 복잡함.

       그럼에도 기분이 좋은 건, 도서관이란 곳이 풍기는 쿰쿰하면서도 정겨운 냄새와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요와 평온, 그리고 지식의 요람 속에서 쇼핑하는 재미 때문일 터다.

       

       어쨌든.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데…, 아.’

       

       방황하던 나의 눈에, 도서관 문양이 새겨진 모자를 쓴 사서(司書)가 보였다.

       

       “저기.”

       “네. 무슨 일이실까요?”

       

       책을 정리 중이던 사서가 나를 쳐다봤다.

       

       “에, 엘든 공자님? 여,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이제는 당연한 수순처럼, 사서의 동공에도 경이와 당혹이 깃들었다.

       엘든 라펠리온의 고향은 북부령에서 말을 타고 사흘은 가야 할 거리인데, 그 먼 거리의 도서관 사서조차 악명을 알 정도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던 걸까.

       참으로 대단한 녀석이었던 듯싶다.

       익숙한 시선.

       사서의 눈엔 땔감을 찾으러 온 방화범으로 보일 터다.

       해명보단, 언명을 택했다.

       

       “소설책 코너를 찾고 싶은데.”

       “왜, 왜요? 아니. 죄, 죄송합니다. 어떤 류의 소설 말씀이신가요?”

       “흠.”

       

       앞서 얘기했듯, 엘든 라펠리온의 기억이 완벽하진 않았다.

       폭음 후 전날의 기억이 드문드문 나듯, 나 역시 그러했다.

       특히 지금처럼 원작의 엘든이 관심가지지 않은 종목에 한해선 다소 멍청하다 싶을 정도로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렇기에, 어떤 류의 소설인지 정의해달라는 물음에 대답이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판타지? 라고 하기엔 이곳이 판타지 세계관이었기에 현대인이 현대물을 찾는 것과 같아 이상했고.

       장르 문학? 이라고 하기엔 중세시대에 그런 분류가 있었을까 싶었다.

       

       “……!”

       

       침묵이 길어질수록 새하얗게 질려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사서에, 고민은 짧게 끝내야 했다.

       

       결국.

       

       “……다 큰 사내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소설.”

       

       내뱉고도 민망한 대답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단어로 정의할 수 없으니 그것을 풀어서 설명할 수밖에였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대답, 그리고 참으로 엘든 라펠리온다운 대답에 다행히 사서의 낯빛이 원색으로 돌아왔다.

       

       “아, 그럼 따라오시겠어요?”

       

       옳지.

       다행히 의사소통이 됐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총총 걸어가는 사서의 뒤를 따라갔다.

       마치 미로처럼 이어진 책장들 사이를 비집고, 헤치고 걸어가길 5분쯤.

       사서의 걸음이 멈췄다.

       

       “여기에요! 그럼 즐거운 시간 되세요~!”

       

       …즐거운 시간?

       도서관 사서가 내뱉기엔 다소 묘한 느낌의 인사였지만, 사서의 입장에선 책을 고르는 시간이 게임을 하는 것처럼 즐겁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책장으로 다가갔다.

       

       

       

       [용녀의 환락기행]

       [열녀가 몸을 식히는 법]

       [사창가의 주인]

       [대물 용사님의 여마왕 길들이기]

       

       

       

       ……

       

       의사소통이 안 됐나보다.

       

       

       **

       

       

       “히익! 주, 죽을 죄를 졌습니다아-!”

       

       사서에게 돌아가 재차 의사를 전달했고, 이번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개망나니 엘든 라펠리온으로 사는 법, 같은 참고서는 없으려나.

       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순수 문학] 코너로 입장했다.

       

       ‘하긴, 판타지 세계에서 판타지 소설은 순수 문학이긴 하지.’

       

       내겐 판타지 소설이다만.

       순수 문학 코너엔 기대했던 대로, 낭만과 군침 가득한 소설 제목들이 즐비하게 꽂혀있었다.

       

       [붉은 늑대들]

       [사자왕 라탄 일대기]

       [라니아 연대기]

       [칠흑의 제왕]

       

       물론 판타지물이라 하더라도 중세란 옛날 시대를 배경으로 쓰여진 만큼, 현대인인 내겐 어린아이가 퍼먹는 청국장과 같을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도 난 그런 아이였다.

       웹소설과 더불어 고전 판타지물까지도 탐독했던 누렁이 중의 누렁이가 이준우였던 것이다.

       

       ‘흐음~ 뭘로 시작해 볼까나.’

       

       우선은 순수 문학 코너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군침이 돈다고 해서 전부 대여했다간 족히 100권은 될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재밌는 걸로 추려내려면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시작하든, 첫발이 중요한 법이다.

       첫발의 성공은 이어질 쾌조를 알리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신선노름을 하듯 뒷짐을 진 채, 순수 문학 코너를 한 바퀴 돌았는데.

       

       ‘흐음, 내가 선택 장애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군침 도는 소설들이 너무 많았다.

       이럴 때 검색 찬스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소설광인 친구라도 한 명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현대 문명의 이기(利器)와 소설광 벗의 부재를 아쉬워하며 다시 한번 한 바퀴를 돌기 시작했고, 결국 맛나 보이는 소설들의 1권을 7개나 집어들어야 했다.

       소개글도 없는, 표지에는 제목과 저자만 덜렁 적힌 책들이라 찍먹이라도 해야 느낌이 올 것 같다.

       7층 책탑을 든 채, 독서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데….

       

       ‘성가시게 하는군.’

       

       아까부터 자꾸만 시야의 언저리에 기웃거리는 것이 있었다.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차림새로 보아 귀족가 영애인 듯했다.

       힐긋 얼굴을 확인했지만,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

       망나니와 도서관.

       두 단어의 조합을 이해하지 못한 이가 귀찮게 굴 것만 같아 신경 안 쓰이는 척 무시하고 있었는데.

       

       저벅.

       

       또각.

       

       저벅.

       

       또각.

       

       …

       

       …

       

       저벅.

       

       또각.

       

       발걸음에 맞춰 따라오기 시작해 더 이상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선은 7층 책탑부터 놓기로 했다.

       탁, 독서를 위해 마련된 공간에 도착해 책상 위에 책을 놓았다.

       등 뒤로 느껴지는 인기척.

       귀찮은 잡상인이 들러붙은 듯한 불쾌감에, 미간을 찌푸리며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오명은 쓸모가 없어도, 악명은 적당한 쓸모가 있는 법이다.

       몸을 돌려 잡상인과 마주했다.

       

       “용건만 간단히 했으면 하는데.”

       

       시야의 언저리에서 기웃거리기만 한 이유는, 쉬이 말을 붙이지 못해 졸졸 따라다니기만 한 이유는, 백작가 이하의 신분이기 때문일 터다.

       탐독의 시간을 방해받은 것에 대한 불쾌감을 참을 이유는 없었다.

       하여, 그리 싸늘히 경고 했는데…….

       

       

       “…와, 뭐야? 진짜 엘든 라펠리온이잖아?”

       

       

       끝이 말린 롤빵머리의 영애님께서 책 두 권을 품에 안은 채,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했다.

       

       

       

       **

       

       

       

       “흐흐흥~”

       

       절로 나오는 콧노래.

       사뿐거리는 걸음.

       종이의 큼큼한 군내 속에 파묻혀 읽을 거리를 찾는 이 시간은 도통 질리지가 않는다.

       

       “오늘은~ 뭐를 읽어볼까나~”

       

       왕립 아카데미로 진학한 이유가 그곳에 있는 도서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탐독을 좋아하는 백작가 영애.

       친한 벗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책벌레라 불리는 영애가 머나먼 북부령까지 행차한 것은, 다름아닌 대공성의 도서관 때문이었다.

       혹한의 추위도 그녀의 독서열을 막지 못한 것이다.

       

       “꺄~ 이거 재밌어 보이는데?”

       

       그렇게 북부령에 도착한지 나흘이 넘어가고 있었고, 본 적 없는, 소문만 들었던, 너무도 읽고 싶었던 소설책들의 향연에, 매일 행복사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그녀였다.

       

       “와앗! 론트 작가님께서 쓰신 소설이네? 이건 무조건 읽어봐야지!”

       

       오늘도 그러했다.

       수천 권에 달하는 소설책 속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행복해하던 그녀였다.

       치맛자락이 휘날려라 돌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말이다.

       그러다, 그녀의 미소에 의문이 걸렸다.

       

       ‘응…?’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걸린 것이다.

       엘페리온 왕국에서 보기 드문 새까만 흑발과 루비를 빼다 박은 듯한 적안의 사내였다.

       특히나 앉아있던 자리 탓에 사내의 뒤통수와 옆모습을 자주 봐왔던 그녀였다.

       냉큼 다가가 인사를 건네려 했지만, 걸음이 뚝 멈췄다.

       

       맞다.

       

       ‘엘든이 도서관에 있을 리 없잖아. 바보.’

       

       같은 반 학우였다곤 하나, 크게 접점을 가지지도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도서관이란 정적인 곳과는 상극이란 건 알고 있었다.

       데론, 카일, 블런드와 함께 어울리며 책보단 술을 가까이하고 정적인 것보단 동적인 걸 좋아했던 엘든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잘못 봤으리라 생각하곤 시선을 거두려 했는데.

       

       ‘그러고 보니 그 4명이 대공녀님의 혼약대전 최종 후보가 됐었다지?’

       

       시녀에게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자신이 같은 반 학우였던 것을 알기에, 그 4명 중 누가 우승할 것 같냐며 물어봤었으니까.

       평소 소설책 이외엔 관심이 없었던, 그래서 재학 시절에도 친하게 지낸 이가 손에 꼽을 정도 였던, 또한 성적도 하위권일 만큼 학창 시절이 무관심하게 흘러갔던 그녀에겐 혼약대전 또한 관심 없는 것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사내의 얼굴이 엘든인 것 같고, 그래서 반가웠던 건 그저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사람을 마주친 의외성 때문일 뿐이었다.

       

       ‘흠, 아무리 봐도 엘든 맞는 거 같은데.’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엘든 라펠리온이다.

       하물며 혼약대전의 최종 후보로써 대공성에서 마주칠 명분도 충분했다.

       한데, 대체 순수 문학 코너에서 무얼하고 있는 걸까?

       이제야 순수 문학의 재미에 눈이라도 뜬 걸까?

       의외성이 던진 의문에, 자신도 모르게 엘든의 주변을 서성거리는 롤빵머리의 영애.

       그러다 그가 7층 책탑을 쌓았을 때, 탄식해야 했다.

       

       ‘어, 저거 진짜 재미없는 건데.’

       

       전부 졸작에 가까운, 독자들을 불쾌하게 만들고자 써내린 책들이었다.

       입문작으로써는 결단코 추천할 수 없는 책들로 7층을 쌓아버린 엘든에, 결국 그의 뒤를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용건만 간단히 했으면 하는데.”

       

       그와 마주했다.

       정말로 엘든이 맞았다.

       

       “…와, 뭐야? 진짜 엘든 라펠리온이잖아?”

       “……그렇다만.”

       “여기서 뭐해?”

       “보다시피 소설 좀 읽어볼까 해서. 근데 누구…?”

       “응?”

       

       재학 시절 내내 아무런 접점이 없었어도 그렇지.

       3년 간 같은 학급에서 지낸 동기를 고작 몇 년 지났다고 못 알아볼 수가 있지?

       물론 질이 나빠 보여 멀리했던 건 있지만, 그래도 일면식도 없는 것처럼 대하는 건 조금 서글프지 않나, 싶은 영애가 자신을 소개해야 했다.

       

       “나, 몰라? 졸업반 때 네 자리 대각선 뒷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엘든의 대각선 뒷자리에 앉아 늘 소설만 읽던 롤빵머리 영애님, 엘론드 백작가의 차녀이자 소설광인, 아리엘 엘론드였다.

       

       “으흠.”

       

       “기억나지?”

       

       “모르겠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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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후피집물의 후회캐가 되었습니다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curious about what a female-oriented tragic romantic fantasy was like, so I skimmed through only the free chapters. And then… “…Ha.” I found myself transmigrated into one of the main male characters, destined for tears of regret, exhaustion, and obsession. So, the first thing that had to be done was… “I, Elden Raphelion, hereby declare my withdrawal from the competition for the betrothal of the Third Northern Duchess.” To escape this trag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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