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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추격이 질긴데, 우리를 쫒고 있는 건 뭐지?”

       

       “기계화 병단이에요. 신체의 움직임을 톱니기관으로 보조하고 있어서 지치지 않아요. 따돌려내야 하는데⋯⋯ 이리드?”

       

       “이번엔 저 쪽이다. 뭐지?”

       

       “지금 전력을 다해서 뛰고 있는 거 맞죠⋯⋯?”

       

       “급박한 상황에 여유를, 부릴 만큼 오만하지는, 않다.”

       

       담벼락을 한 번 넘을 때마다 이리드의 호흡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추격전이 이어진지도 10분이 지났다. 이리드는 벌써 땀 투성이가 된 참이었다.

       

       반면에 센트라의 얼굴에는 땀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음⋯⋯ 이리드, 안아도 될까요?”

       

       “뭐?”

       

       “따라잡힐 것 같아서요. 저는 조금 더 속도를 낼 수 있거든요!”

       

       이리드의 표정이 순간 고뇌로 가득 찼다. 

       

       쓸데없는 자존심은 위기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지만⋯⋯.

       여자에게 안긴 채로 도망치는 부끄러움까지 감내해야 하는 걸까. 그냥 센트라를 먼저 보내고, 자신은 적당히 근처에 숨어 있으면 되는 게 아닐까.

       

       “사과는 나중에 할게요!”

       

       “잠⋯⋯ 크읏!”

       

       그러나 이리드의 고민보다도 센트라의 추진력이 더 빨랐다. 센트라는 두 팔로 이리드의 무릎 안쪽과 등을 받치고 단숨에 도약했다.

       

       이른바 공주님 안기의 자세였다.

       

       “⋯⋯⋯⋯!!”

       

       이리드는 영혼이 뒤흔들리는 충격에 이를 꽉 물고 감내했다. 그리고 제국의 군가를 마음 속으로 열창하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비우려 들었다.

       

       센트라가 이리드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들자, 이리드의 가슴팍과 복부에 커다란 것이 얹어졌기 때문이다. 전신 타이즈는 옷감이 얇았는지, 부드러운 촉감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여자에게 안기니 뭐니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좀 더 곤란한 상황에 처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행복하고도 아슬아슬한 시간. 이리드는 의식적으로 다른 것에 집중했다. 가령 센트라가 뜀박질 한 번을 할 때 마다 거세게 흔들리는⋯⋯ 아니. 아니.

       

       센트라의 암표범같은 움직임에. 

       

       센트라는 이리드가 지시하는 지름길에 맞추어 두 다리만을 사용해서 온갖 벽과 장애물을 넘어다녔다. 훌륭한 기예였다. 훌륭한 체력이었고.

       

       그녀의 질주는 어느 건물의 옥상을 타고 달려가다가 잠시 멈췄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마차 두 대는 지나갈 법한 대로가 있어서 각력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센트라는 이리드를 잠시 내려놓았다. 

       

       천국과 지옥에서 해방된 이리드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숨을 골랐다. 심장에 나쁠 정도로 과한 자극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돌아가기 시작한 머리로 작전을 짜 냈다.

       

       이리드가 ‘지나가는 마차에 뛰어들어서 숨자’고 제안하려는 그때.

       

       센트라는 반대편 건물을 향해 갈고리 총을 쏘아냈다. 

       

       휘이이이-! 찰칵!

       

       밧줄 묶인 갈고리가 반대편의 첨탑 위에 고정되었다. 센트라는 밧줄을 두 번 당겨서 제대로 고정되었는지 확인한 후에, 이리드를 바라보며 웃었다.

       

       “준비됐어요?”

       

       “⋯⋯이대로 넘어가려는 건가? 반대편 건물로.”

       

       “그럼요!”

       

       “나는 준비됐다.”

       

       “안 된 것 같은데. 같이 넘어가려면 잡아야겠죠?”

       

       센트라는 자신의 허리를 툭툭 두드렸다.

       이리드는 천국 겸 지옥에 한 번 더 몸을 던져야 함을 깨달았다.

       

       “⋯⋯⋯⋯.”

       

       이리드는 쑥맥처럼 낮설어하며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센트라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거리가 무척이나 가까웠다. 세차게 뛰는 심장 소리가 들리면 어쩌나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로.

       

       “더 가까이. 더 단단히.”

       

       센트라가 한 팔로 이리드의 허리를 감아 끌어당겼다. 두 사람은 끌어안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리드의 코에 로즈마리 향기가 훅 스쳤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센트라는 이리드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고소공포증 있어요?”

       

       “⋯⋯아니.”

       

       “그럼⋯⋯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껴 보는 건 어때요? 엄청 기분 좋거든요!”

       

       “⋯⋯음.”

       

       “하늘을 자알 보세요, 그리고. 집중해보는 거에요. 살결을 스치는 바람이랑⋯⋯ 약간의 스릴에!”

       

       탓.

       

       센트라가 밀듯이 가볍게 도약했다. 순간적으로 몸이 붕 뜨며, 겹쳐진 두 사람의 몸이 깔끔한 호를 그려냈다. 바람이 스친다. 귀가 먹먹해지고, 머리카락이 날렸다.

       

       이리드의 금발을 가리던 거적때기가 바람에 날아가버렸지만,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하늘은 새파랗고, 로프 액션은 아찔했으며, 웃고 있는 센트라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나는 이 장면을 평생 잊지 못하겠구나.

       

       이리드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웃었다. 그 순간만큼은 머리를 아프게 하는 모든 고민을 잊어냈다. 그는 짧게나마 진정으로 자유로웠다.

       

       그렇게 짧은 비행이 끝났다. 

       

       ===============================================================

       

       어느 낡고 허름한 마굿간에 두 사람은 몸을 숨겼다. 추적자들이 포기하고 돌아갈 때까지 시간을 보낼 작정이었다.

       

       “어땠어요?”

       

       “⋯⋯퍽 재밌군. 금색 마탑주가 비행 마법을 체험해 보겠냐고 했을 때 승낙할 걸 그랬다.”

       

       “금색 마탑주와 아는 사이시군요⋯⋯?”

       

       “그래. 아마도 지금의 마탑주는 아니겠지만. 전대, 어쩌면 전전대일 수도.”

       

       “⋯⋯⋯⋯?”

       

       눈은 마음의 창이라던가. 센트라의 맑은 눈망울은 그녀의 감정을 투명하게 비추어 냈다. 순수한 궁금증이다. 이리드는 호기심 많은 고양이를 보는 것 같아서 웃었다.

       

       “말 안 해 주실 거에요?”

       

       “아니, 웃음으로 무마하려던 건 아니었다. 그저, 네가 아름다워서 웃음이 나더군.”

       

       “⋯⋯네, 네?! 아힛, 무슨 소리를 다 하시는 거람⋯⋯.”

       

       센트라는 이리드의 어깨를 쾅 쳤다. 

       

       목검 풀 스윙에 맞은 것 같이 아팠지만 감내할 만 했다. 센트리의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보니 영혼이 배부른 느낌이었으므로. 이리드는 어깨를 살살 문지르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제국의 2황자 이리드다. 100년 전에서 온.”

       

       “100년 전이요?!”

       

       “자색 마탑의 천재 마법사가 차원 마법을 복원했다. 테스트 삼아서 겪어 보았지. 다른 차원이 아니라 시간을 뛰어넘을 줄은 몰랐지만⋯⋯ 믿어 주겠나?”

       

       “물론이죠! 놀라긴 했지만⋯⋯ 솔직히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초상화랑!”

       

       “내 모습이 남아있었나 보군?”

       

       “패전 이후에, 왕국 연합에서 이리드의 초상화 액자를 바닥에 놓고, 밟고 지나가는 사람만 살려주겠다고 그랬거든요⋯⋯.”

       

       “⋯⋯적장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었나. 쯧.”

       

       “그럼, 그⋯⋯ 황자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요?”

       

       “그대로도 괜찮다. 경칭도 생략해도 좋아, 네게는 경칭이 듣고 싶지 않군.”

       

       “그럴게요, 이리드. 세상엔 신기한 일이 참 많네요!”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던 센트라는, 찬 바람이 지나가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리드는 볏짚을 한 움큼 쥐어서 센트라에게 이불처럼 덮어 주었다.

       

       “그 복장은, 레지스탕스 활동인가?”

       

       “⋯⋯아, 알고 계셨어요?!”

       

       “서류를 보면 알 수 있으니까.”

       

       “네, 레지스탕스⋯⋯ 네요!”

       

       “어쩌다가? 그런 걸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데.”

       

       “아버지가 레지스탕스의 지도자셨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단원 여러분들이 ‘너라면 좋다’고 리더 자리를 맡겨주셔서. 음, 그렇게 됐어요.”

       

       센트라의 얼굴에 그늘이 스쳤다. 레지스탕스의 지도자 자리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걸까.

       여관 일을 할 때의 센트라는 무척이나 즐거워보였다. 그녀의 품성은 투쟁보다는 일상적인 행복에 어울릴 것인데.

       

       

       “건국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작전명 『맥주와 노래』가 일어나죠. 제가 입안한 작전인데요.”

       

       “밀주로 폭동을 일으키려는 건가?”

       

       “무, 무슨 소리에요! 저는, 그렇게 싸우고 다투는 건 조금⋯⋯ 뭐랄까.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서. 음. 『맥주와 노래』는요, 취한 사람들과 같이 노래를 부르는 작전이에요. 차별과 박해를 멈추자는 내용의, 우스꽝스러운 가사의 노래.”

       

       “⋯⋯레지스탕스 단원들은 모두 찬성했나?”

       

       “반반⋯⋯? 과격하신 분들은 많이 싫어하세요. 중립이신 분들도, 제가 아버지의 딸이니까 넘어가준다는 느낌이에요.”

       

       

       왕국 연합에게서 지금까지 생존해 온 레지스탕스들이 물렁물렁한 사람들일 리는 없었다. 분명 피를 볼 준비를 마친 이들이었겠지. 그럼에도 이런 미온적인 작전이 추진되고 있다는 건, 센트라의 아버지라는 자가 엄청난 카리스마를 지녔었거나⋯⋯.

       

       “저도 알아요, 이런 장난 같은 이벤트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테죠.”

       

       “하지만 저는 다른 것도 알아요. 무장봉기를 일으켜도, 저희가 해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시민일 거에요. 손해를 입는 사람도 시민일 테고요. 일개 단체가 국가를 상대로 싸우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니까.”

       

       “그렇다면 적어도, 옳은 방법에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민중들이 스스로의 생각을 한 번이라도 되돌아보기를. 누군가를 노예라며 깔아뭉개는 세상을, 서로 욕설을 내뱉고 칼을 뽑아드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느끼기를요.”

       

       “『맥주와 노래』는 그 어리광의 결과예요.”

       

       ⋯⋯센트라에게서, 지도자의 소질이 보였거나.

       

       그녀는 성공 확률이 높지만 틀린 방법 대신에, 그저 장난으로 끝나더라도 옳은 방법을 골랐다. 누군가는 그녀를 머저리라며 욕을 하겠지만⋯⋯.

       

       “도와주마.”

       

       “정말요?!”

       

       “장난 같은 작전이지만⋯⋯ 내 손이 닿으면 다를 거다. 미래에 황제가 되는 몸이니까.”

       

       미래의 자신이 영락제(零落帝) 가 되어 제국에게 종언을 고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자신은, 젊고 건강하며, 총기가 살아있는 데다가⋯⋯

       

       인생의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뚜벅. 뚜벅.

       

       마굿간 주변을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이리드와 센트라는 산더미처럼 쌓인 볏짚 속으로 몸을 숨겼다. 비좁고 어두운 공간에 단 둘이 마주보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여기서 평생 사시는 거예요?”

       

       소근소근.

       

       “⋯⋯아니, 건국제가 열리는 날 귀환하게 되어 있다.”

       

       “그건 조금⋯⋯ 아쉬울지도요.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럼 약속할까요? 우리.”

       

       어둠 속에서 센트라의 손이 뻗어져 왔다. 그리고 이리드의 허벅지에 안착했다. 이리드의 머릿속에 이게 무슨 제스처인가에 대해서 수많은 가설이 떠올랐다.

       

       그새에 이곳저곳 더듬거리던 센트라는 마침내 표적을 찾았다. 이리드의 손이었다. 머릿속의 수많은 가설이 폐기되었다.

       

       센트라는 이리드의 손을 끌어다가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맥주와 노래』를 마무리하고 돌아가셨다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제 이름을 불러주실래요?”

       

       “⋯⋯이상한 부탁도 다 있군.”

       

       “약속해주실 거죠?”

       

       “⋯⋯그래.”

       

       ===============================================================

       

       “곧 축포를 쏠 시간이네요.”

       

       “⋯⋯진짜 할 거야? 황자님, 생각보다 마음 약하다며⋯⋯?”

       

       “방금 보셨잖아요. 2황자의 결의. 그만큼 TRPG에 진심이 되어 준다면⋯⋯ 저도 진심을 낼 수밖에-!”

       

       “난, 난 말렸다?”

       

       쫄보 마탑주가 백무빙을 치건 말건, 내 영혼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모든 것은 마지막 해피엔딩 씬을 위한 준비물일 뿐.

       

       준비는 되었다. 와봐라── 2황자 이리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6시 즈음이라고 했으니 아직 안 늦은 게 맞죠?

    눈을 감았다가 뜰 때마다 뭔가 이상할 정도로 올라가고 있어서 잠깐 혼란이 왔었습니다마는.

    결국 글쟁이의 사명이란 글을 쓰는 것. 본질을 잊지 않겠습니다, 마이 프렌즈.

    여러분의 많은 응원에 실로 무한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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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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