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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검을 모욕한 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은 고트베르크 기사단장 타냐에게 절대적인 대원칙이었다.

     

    빈민가에서부터 자신을 지켜준 것은 오로지 검 한 자루뿐이었다.

     

    눈을 뜨면 휘두른다.

    선잠을 자다가도 휘두른다.

    오른손은 항상 허리춤에 위치한다.

    가끔 운이 좋아 누워 자는 날이 있어도 머리맡에는 단정하게 검이 놓여있었다.

     

     

    검을 쥘 수 있었기에 후작가 기사단의 단장이라는 위치까지 올라왔다.

     

    빈민가 생활을 청산하고 기사도를 몸에 익혀 어엿한 한 명의 검사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목마르다.

     

    소드익스퍼트라는 경지도, 작은 지방의 기사단장이라는 직책도 부족하다.

     

    검과 함께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그 끝을 봐야만 한다.

     

    정점에 올라야만 한다.

     

    그래야만.

     

    “훕! 후웁! 아이고!”

     

    눈앞의 망나니처럼, 검을 우습게 보는 자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있다.

     

    “더 하시겠습니까?”

     

    타냐는 무감정하게 물었다.

     

    속으로는 조금 후련한 기분이 들었기에 표정을 숨겨냈다.

     

    전부터 그가 친 사고를 수습하느라 몇 번이나 애를 먹었는지 모른다.

     

    이건 일종의 원한 풀기이기도 했다.

     

    ‘도련님이 말씀하신 대로 황실 기사단에 관심이 가긴 하지만.’

     

    단순한 계약관계이긴 해도 고트베르크 가문에 충성하기로 한 번 입에 담았다.

     

    그것을 가볍게 저버리라는 말, 검술을 쉽게 보는 태도.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도련님이 주치의 시험에서 뽑힐 리도 없을뿐더러, 설령 뽑힌다고 해도 나를 호위기사로 데려갈 리가 없어.’

     

    타냐는 대련을 빌미로 망나니가 반응하지 못할 신속의 검술을 선보였다.

     

    그녀의 빠른 검이 망나니의 팔과 등짝을 기세 좋게 타격하고 있었다.

     

    “허억, 허억.”

     

    마침내 망나니가 바닥에 엎어졌다.

     

    이만큼이나 혼쭐이 났으면 포기하고 더 못 일어나겠지.

     

    그런데.

     

    “으윽, 진통제 먹고, 응급처치. 후우.”

     

    조금 예상과 다르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다시 목검을 잡아든다.

     

    “자, 이어서 해보자고. 기본 품새가 이게 맞아? 틀렸으면 바로 말해.”

     

    있는 힘껏 목검을 휘두르는 망나니.

    자세도 궤적도 엉망진창이다.

     

    타냐는 그의 검을 툭 쳐서 다시 그를 넘어뜨렸다.

     

    “야야, 진짜 최하급 마물이 이 정도로 강해? 최악이구만. 다시!”

     

    …또 일어선다.

     

    숨을 헉헉대면서도, 까진 상처로 범벅이 됐음에도 계속해서 일어선다.

     

    ‘뭐지?’

     

    타냐는 그제야 망나니의 긴 앞머리 사이로 그의 눈빛을 제대로 보았다.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르다.

     

    흐리멍텅하고 초점이 없던 눈은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곳에는 삶에 대한 집착을 불태우는 광인이 한 명.

     

    ‘윽…!’

     

    기세에 압도된 타냐는 자기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파악!

     

    틈을 타고 망나니가 힘껏 휘두른 목검이 타냐의 목검 위로 겹쳐진다.

     

    “오, 이번엔 안 넘어졌어!”

     

    자신도 모르게 방어 품새를 펼친 타냐였다.

     

    반격이 없자 기세가 등등해진 망나니가 있는 힘껏 연격을 휘두른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 타냐는 어느샌가 그에게 쌓여있던 화가 풀려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인정했다.

     

    ‘주군께서… 변하셨다.’

     

    타냐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이제야 그의 말이 이해가 간다.

     

    그는 자신에게 고트베르크 가에 맹세한 충의를 배신하라고 종용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자신이 반드시 주치의로 합격해서 너를 호위기사로 데려가겠다는 의미였다.

     

    ‘꼬여있던 건 내 쪽이 아닌가.’

     

    타냐 자신도 어릴 때부터 기사였던 건 아니었다.

    성장기 땐 빈민가의 흔한 불량배 중 하나였을 뿐, 기사도를 배운 건 고트베르크 기사단에 입단한 후였다.

     

    이만한 변화의 의지를 보여준다면 응당 답하는 것이 부하의 도리이다.

     

    타냐가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도련님.”

     

    “왜?”

     

    “솔직히 검의 재능은 없으십니다.”

     

    “나도 그건 알아!”

     

    타냐의 타박에 라스가 성질을 냈다.

     

    “그러니 요령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마물을 상대로 효율적인 잔기술입니다.”

     

    라스가 기분이 나빠졌는지 인상을 확 찌푸렸다.

     

    그 표정에서 전과 같이 제멋대로던 망나니의 모습이 되살아나려 했다.

     

    단순한 내 착각이었나, 타냐가 판단을 후회할 즈음 라스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걸 왜 이제야 알려주냐! 나 준비됐어. 뭔데, 빨리 알려줘 봐.”

     

    털털한 그의 반응을 보고 타냐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갑작스런 기습을 당했다면 이 자세를 기억하십시오. 검을 들고 있다고 가정하고….”

     

    타냐의 설명을 진지하게 듣는 라스.

     

    그와 함께하다 보니 타냐는 자기도 모르게 유쾌한 땀방울을 흘렸다.

     

     

     

    ***

     

     

     

    “와 선넘네.”

     

    사람이 한계를 넘으면 감탄이 나오더라.

     

    그 정도로 타냐는 나를 빡세게 굴렸다.

     

    그것도 4일 내내!

     

    “응급처치 아니었으면 진짜 못 버텼지.”

     

    그래도 보람이 있었다.

     

     

    ―――――――――――

     

    근력 : 10 (UP)

    체력 : 11 (UP)

    마력 : 1

    마나 : 15 (UP)

    신성력 : 22

    신앙심 : 100

     

    ―――――――――――

     

     

    겨우 4일.

     

    4일 만에 이 저질스런 체력과 근력을 최소한 뭐라도 할 수 있을 정도 수준으로 올려놓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최소한 죽지는 않겠는데….”

     

    주치의 실기시험이 내일로 다가왔다.

     

    17년 인생에 운동을 처음 해봤는지 근육이 비명을 질러대지만 하루만 버텨봐야지 뭐.

     

     

    물에 흠뻑 젖은 미역처럼 침대에 널브러져 있으니 방문 근처에서 쿵, 하고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뭐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벌컥 열었다. 마왕군과 싸우던 경험 때문일까, 무심코 이럴 때도 기습에 주의하게 된다.

     

    밤에 텐트를 치고 잘 때 밖이 부스럭거리면 높은 확률로 마물이 다가왔다는 뜻이다.

     

    고개를 젖히니 호다닥, 내 시야에서 숨으려 급히 모퉁이로 들어가는 회색 머리칼을 발견했다.

     

    누군지 알게 되니 맥이 탁 풀렸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

     

    “네리아, 무슨 일이야?”

     

    잠깐의 정적 후에 네리아가 모퉁이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당황하는 표정에서 증발하는 땀이 만화 효과처럼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는 것 같다.

     

    “오, 오라버니. 제가 쉬시는 데 방해했죠? 죄송해요….”

     

    “아니야, 괜찮아. 그런데….”

     

    어디서 좋은 냄새가 난다. 잘 구워진 고소한 버터 향이었다.

     

    살펴보니 네리아가 손에 쟁반을 공손하게 들고 있었다. 위에 손바닥만 한 쿠키가 가득 올라가 있었다.

     

    “그거 때문에 노크를 못 했어?”

     

    “앗, 네에. 요즘 엄청 지쳐 보이셔서 조금 구워봤어요.”

     

    “직접 만들었다고? 대단하네.”

     

    쿠키의 모양이 꽤 단정해서 전문 사용인이나 요리사가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하긴 평소 보던 것들보다는 크기가 상당히 커다랗긴 했다. 네리아는 재료를 듬뿍 쓰는구나. 어릴 때부터 마음이 아주 넓다.

     

    “오라버니 드리려고… 단 음식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나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레 눈을 깜빡이는 네리아.

    혹시나 시키지 않은 일을 해서 민폐였을까 걱정인 모양이다.

     

    오직 나를 위한 쿠키를 구워주셨단다.

    기쁘지 않을 리가.

     

    “하하, 잘 먹을게. 하지만 단 건 그냥 그런 편이야. 고르자면 짠 게 더 좋더라.”

     

    “그러셨어요? 벌꿀사탕을 매일 드시고 계셔서 좋아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거야 살려고 먹는 거고.

    싫어하진 않지만. 계속 먹을 만은 하다.

     

    쿠키를 들어 한 입 베어 물어본다.

    보들보들한 식감과 함께 고소한 이스트 향이 머리 전체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달다.

     

    설탕도 아주 거리낌 없이 사용했구나.

     

    “아, 유자청이에요. 그냥 설탕보다 훨씬 풍미가 있어요.”

     

    “나 단 거 좋아했나?”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었던 의문이 들었다.

    흠… 가치관은 확실한 편인데.

     

    별다른 수식어 필요 없이, 맛있다.

     

    이런 쿠키는 비상식으로 몇 개라도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다.

     

    쿠키를 씹는 내 얼굴을 유심히 지켜보던 네리아.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함께 도톰한 볼살이 찹쌀떡처럼 부풀어 올랐다.

     

    “헤헷.”

     

    해냈다!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듯한 자신만만한 표정의 네리아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쿠키를 구워왔어?”

     

    내 질문에 네리아가 조금 걱정하는 태도로 바뀌었다. 발끝을 들어 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대답하는 네리아.

     

    “오라버니가 타냐 단장님과 훈련하시는 거 봤거든요…. 너무너무 아파 보였어요. 저도 정원에서 넘어졌을 때 엄청 쓰라렸는데, 오라버니는 얼마나 아프실까 했어요.”

     

    네리아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그런데 그때 사용인 언니가 주신 쿠키를 먹으니까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오라버니도 좋아하실 수 있겠다 싶어서….”

     

    아이고, 기특하기는.

    10년 후의 네리아는 마왕군과 싸우느라 많이 피폐해진 상태였구나.

     

    망나니 오빠를 이렇게나 챙겨줄 정도니, 순수한 지금은 작은 천사님이 따로 없었다.

     

    “고마워, 네리아. 남은 쿠키는 내려가서 우유랑 같이 먹을까?”

     

    “우유요?”

     

    생각지 못한 방법이었는지 네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우유랑 먹으면 쿠키는 훨씬 맛있어. 또 우유를 먹으면 키가 더 많이 크거든.”

     

    “헉, 정말이에요?”

     

    키가 큰다는 말에 네리아가 양 주먹을 가슴께로 모으며 눈을 반짝였다.

     

    “그래. 그 나이 때는 적정 칼슘량 보충이 골격 성장에 필수요소거든.”

     

    “…잘은 모르겠지만 오라버니 말씀이니 엄청 중요할 것 같아요. 우유랑 먹을래요!”

     

    말도 참 잘 듣는 네리아의 얼굴은 겨울을 날 먹이를 발견한 다람쥐 같았다.

     

    아셀라가 네리아의 반이라도 닮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네리아와 함께 우유를 찾으러 주방으로 내려갔다.

     

     

     

    ***

     

     

     

    “후보들이 전부 모였군.”

     

    아버지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도 전이지만 많은 이들이 저택 북부 언덕에 모여있었다.

     

    타냐가 지휘하는 고트베르크 기사단은 전투 준비를 마쳤다.

     

    나는 아버지 앞에 서 있다.

     

    내 양옆으로는 치유사 후보들이 긴장한 채 열을 맞춘 상태다.

     

    아버지가 우리를 향해 선언했다.

     

    “지금부터 실기 시험을 시작하겠다. 오늘 있을 마물 토벌전에서 여러분의 활약을 채점할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Ayanami님 20코인 후원 감사해요!! 첫 작부터 항상 읽어주셔서 감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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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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