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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민가에서 상당히 떨어진 외딴 숲속.

       빛이 차차 잦아드는 우거진 그늘의 아래.

         

       남자를 유혹해 잡아먹는다는 요부의 소문이 도는 낡은 나무집에.

       한 명의 여인이 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유라크네.

       어두운 보랏빛 머리카락과 맑고 커다란 눈이 특징적인 여자였다.

         

       그날은 지난해 겨울이었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매일의 일과를 반복하고 있었다.

         

       숲을 거닐며 열매를 따고,

       삭정이를 줍고,

       덫을 확인하고,

       텃밭을 돌보고,

         

       남편의 무덤을 손질했다…….

         

       오두막 뒤의 양지바른 곳에 살랑거리는 풀들로 뒤덮인 작은 봉분.

       그 아래에는 노란 겨울꽃들이 만발했다.

         

       혹시 죽은 남편이 보내는 편지일까, 작년에 살려두었던 무덤가의 꽃 한 송이.

         

       그 한 송이가 기어코 주변에 또 다른 꽃들을 피워낸 것이다.

       그녀는 그 꽃들이 자라는 것을 매일매일 지켜보았다.

         

       이렇게 많으니 올해는 좀 꺾어도 될 것이다.

         

       그녀는 두 송이를 꺾어 봉분 위에 얹었다.

         

       “생일 케이크 같네, 그렇지?”

         

       절대 대답이 돌아올 리 없는 상대를 향해 말을 건넨 그녀는 미끄러지듯 주저앉아 그곳에 등을 기댔다.

         

       그녀의 손끝을 스치는 풀포기 하나하나마다 그녀는 등을 기댄 남자와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큰 것부터 귓가에 소곤거리는 작은 것까지.

         

       하지만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점점 느끼게 됐다.

       자신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자신의 귀에 사랑을 속삭일 그 남자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돌팔매질을 대신 맞아가며 자신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해주었던 10살의 낯선 소년은…….

       꺾은 꽃을 줄기째 손가락에 묶어주며 함께 할 그날을 약속했던 15살의 친한 친구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둘이 살자며 자신의 손을 잡아끌고 달렸던 20살의 멋진 청년은…….

         

       그렇게 함께 도망쳐 도착한 곳에서.

       그날을 맞이하기도 전에 별빛을 따러 가버렸다.

         

       괜찮아. 괜찮아.

       자신을 원망하지마.

       제발 살아가 줘.

         

       떠나면서까지 자신을 걱정하던 남자.

         

       유라크네는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어리석은 사람.

       별빛이라고?

         

       그녀가 바라던 가장 반짝이는 것은 이미 그녀 옆에 있었다.

       당신이 속삭여 주는 한 마디.

       그거 하나면 충분했는데…….

       멍청이.

         

       그는 그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지 알았을까?

         

       아마 몰랐겠지.

         

       그랬다면 살아가 달라는 부탁이 홀로 남은 자신에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았을 테니까.

         

       옛날부터 예쁘고 값나가는 것들을 제쳐두고 못나고 가치 없는 것에 집중하던 바보 같은 남자.

         

       하지만……

         

       기다려줘.

       이제 조금만 있으면.

       곧…….

         

       그때였다.

         

       부스럭.

         

       나뭇가지와 풀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살아 있는 것의 발소리다.

       짐승일까?

         

       그녀는 눈물을 닦았다.

         

       이런 숲속에서 여자 혼자 살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지난 2년간 별문제 없이 지냈다.

         

       그녀에겐 예전에 떠돌이 점쟁이 노파에게서 배운 몇 가지 주술이 있었다.

       꽃과 풀로 독과 약을 만들거나, 짐승의 침입을 차단하는 법이 그것이었다.

         

       집 주변을 둘러싼 주술에는 피 냄새가 진한 짐승들은 들어오길 꺼리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주술은 매일 관리하고 있으니 문제가 생길 리 없었다.

         

       아마도 작은 짐승일 것이다.

       토끼 같은…….

         

       “안녕하세요?”

         

       유라크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소리가 난 그곳을 돌아보니 어둠 속에 누군가 서 있었다.

         

       새까만 정장에 새까만 망토.

       유독 새하얀 얼굴과 금빛 머리카락이 빛나 보였다.

         

       유라크네는 벌떡 일어나 낫을 손에 쥐었다.

       남자는 유들유들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여기 팔 여섯 개를 가진 분이 계신다던데요?”

         

       처음에 든 생각은 ‘들켰다’였다.

       악마를 사냥한다며 자신들을 쫓던 교단의 퇴마사들을 떠올렸다.

         

       그도 교단에서 나온 인물일까?

         

       하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라면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을 말을 했다.

         

       “정말 아름다운 분이시군요. 저와 함께 가지 않겠어요? 여기서 혼자 지내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뜻밖의 제안이었다.

         

       그는 자신의 꼴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아름답다고 말해주었다.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녀의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가, 같이 가자고요? 어, 어딜…….”

       “서커스단이요! 거기 당신과 같은 동료들이 잔뜩 있답니다!”

       “우, 웃기지 말아요! 뜬금없이 서커스단이라니. 당신을 어떻게 믿고…….”

         

       그러나 남자는 그녀의 항의를 듣는 체 마는 체하며 성큼성큼 오두막으로 다가갔다.

         

       “후후, 손님이 왔다면 마실 거라도 좀 내와 주시면 좋겠는데요.”

       “이, 이봐요! 집에 함부로 들어가지…….”

       “어라? 찻잎이 있군요. 좀 타주시겠어요?”

       “사람 말 좀 들어요!”

         

       그렇게 실랑이를 하며 몇 시간을 보냈다…….

       내일이면 떠난다는 조건으로 함께 차를 마시며 몇 시간을 보냈다…….

       그가 품에서 마술처럼 꺼낸 술을 마시며 또 몇 시간을 보냈다…….

         

       밤새 떠든 이야기 이야기마다 웃음과 눈물이 번갈아 피어났다.

         

       다음 날, 그는 약속대로 떠났다.

       그녀와 함께.

         

       처음에는 그저 기뻤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이 잔뜩 있어서.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그 남자가 있어서.

         

       행복했다.

       그의 본성을 알기 전까지는…….

         

       “뭐가 문제일까요?”

       “네, 넷? 뭐가요?”

         

       유라크네는 화들짝 놀라 말했다.

       자신의 정신머리를 탓했다.

         

       감히 저 악마 앞에서 다른 생각을 하다니.

         

       “감자 말입니다.”

         

       단장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손에 든 감자를 내밀었다.

         

       그것을 본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기대했던 둥글둥글한 알맹이는 보이지 않았다.

       주먹만 했던 감자가……

       깎이고 깎여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바닥에는 뭉텅이로 썰린 감자껍질들이 가득했다.

         

       아니, 이 두께들을 보면 이걸 껍질이라 부를 수 있을까?

         

       “설마 아까부터 계속……?”

       “……죄송합니다.”

         

       그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바구니에는 결딴난 감자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전부 지금 그의 손에 들린 것과 비슷했다.

         

       반듯하고……

       뾰족하고……

       그리고 작았다…….

         

       대참사다.

       어찌나 뭉텅뭉텅 잘라냈는지, 그의 자루에 담긴 감자껍질의 부피가 대야에 쌓인 감자알맹이의 부피와 비슷할 정도였다.

         

       “저…….”

         

       그녀는 표정 관리를 하려고 애썼다.

         

       설마 악마는 이런 방식도 취하는 걸까.

       재료를 망쳐서 식사를 엉망으로 만들기?

         

       “……잘 깎는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그게 전 필러가 있는 줄 알고…….”

       “필러……요?”

       “네. 요렇게 Y자 형태에 중간에 칼날이 2개 박힌……하하, 여기는 없겠군요. 죄송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죄송하면 그렇게 웃지를 말든가.

       그러게 나 혼자서 한다니깐, 괜히 끼어들어서.

         

       재료를 망쳐놓고 웃는 그의 꼴이 왠지 옛날 생각을 떠오르게 했다.

         

       -헤헷, 여보. 미안! 다 망쳐버렸네!

         

       도와주겠다고 주방에 들어와서 일거리만 늘리던 그녀의 남편.

         

       얄미워.

       얄미워.

       얄미워.

         

       에잇.

         

       딱.

         

       “……?”

       “……아.”

         

       유라는 자신의 손이 저지른 짓에 대해 경악했다.

         

       왼쪽 등에 달린 팔.

       그게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다.

         

       옛날에 남편에게 그랬던 것처럼…….

       딱밤을 먹인 것이다!

       저 악마 단장의 정수리에!

         

       “으음.”

         

       단장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재빨리 단도를 집어던지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다, 단장님……. 이, 이건…….”

       “아, 괜찮….”

       “제, 제가 실수로…….”

       “전혀….”

       “부, 부탁드립니다……. 그러니…….”

       “유라크네 씨!”

         

       유라는 숨을 흡 들이켰다.

       원더스타인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입에 걸린 미소는 여전했다.

       그것이 더 소름 끼쳤다.

         

       다른 사람들이 그 미소를 접하고 안심하다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떠올랐다.

       그의 손짓 한 번에 사람들은 끔찍한 모습으로 변했다.

         

       자신도……자신도……같은 일을 당하는…….

         

       툭.

         

       그녀의 어깨에 올라온 그의 손.

         

       유라는 몸이 벌벌 떨려왔다.

         

       나도 그렇게 되는 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차라리 한 번에 죽여줬으면…….

       그런 꼴은 당하기 싫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것 같은…….

       

       “좀 진정하세요.”

         

       그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의 손이 한 번 닿을 때마다 그녀는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의 행동에는 어떠한 악의도 없었다.

       그저 그녀를 달래주려는 의도 외에는…….

         

       “다, 단장님?”

       “네.”

         

       단장은 미소지었다.

       평소처럼.

         

       어딘가 어색한,

       어딘가 꾸민듯한,

       어딘가 장난기 많은,

       그런 미소.

         

       평소 그대로의 원더스타인이었다.

         

       “……저, 저를 아, 안 벌하시나요?”

         

       그녀의 말에 단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웃었다.

       재밌다는 듯이.

         

       “고작 딱밤 한 번 먹인 것 때문에요? 아프지도 않았어요.”

         

       이상했다.

       정말 이상했다.

       

       그는 악마였다.

       지금까지 그가 저지른 짓들이 떠올랐다.

       그 모든 만행을 그는 웃는 얼굴로 저질렀다.

         

       평소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죄책감도 고민도 없이 태연하게.

         

       인간이라면 그럴 수 없었다.

       오직 악마만이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악마가 자신을 안심시키려 한다고?

       악마의 자비일까? 아니면 악마의 변덕일까?

         

       어느 쪽이든 안심할 수 없었다.

       그는 웃는 얼굴로 모욕을 들어주다가, 웃는 얼굴 그대로 상대를 망가뜨리곤 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장 그의 장단에 어울려주는 것뿐이었다.

       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도록.

         

       “죄, 죄송해요. 제가 좀…… 과민반응을 했네요.”

         

       그가 지금까지 저지른 짓거리를 생각하면 과민반응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악마가 자비로운 척을 하고 싶어 한다면, 그에 맞춰 줄 수밖에 없다.

         

       “사과할 필요 없다니까요.”

       “죄, 죄송합니다. 아, 아니, 그, 그러니까…….”

       “그만.”

       “죄송…….”

       “이런……. 좋아요. 알았어요. 그렇게까지 죄송하다면 벌을 받아야겠지요.”

         

       그가 팔을 들어 올렸다.

         

       아, 역시나.

       악마는 자신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녀를 풀어줬다 쥐었다 하며 반응을 즐기는 것이다.

         

       단장의 손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제발, 덜 고통스럽게 끝내주기를.

       그녀는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딱.

         

       맑고 시원한 소리가 그녀의 이마를 때렸다.

       그리고…….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의 부드러운 손끝이 그녀의 발갛게 달아오른 이마를 어루만졌다.

       

       “다, 단장님?”

       “이걸로 갚은 겁니다?”

         

       그는 빙그레 웃더니 그녀의 이마에서 손을 뗐다.

       그녀는 맥이 탁 풀려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이런 벌써 2시군요.”

         

       단장이 허공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중얼거렸다.

       멀리서 나루터의 종소리가 땡 땡땡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같이 가죠.”

       “……네?”

       “여자 혼자 가기엔 밤길이 어둡잖아요. 제가 같이 가드릴게요.”

         

       자신을 향해 환하게 미소짓는 단장을 유라크네는 멍한 얼굴로 바라봤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5개월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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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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