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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요나. 주머니에서 손 빼.”

       

       “아이에에에에에에!!!”

       

       리디아?! 리디아 어째서?!?!

       

       이 타이밍에 리디아가 나올 줄은, 심지어 내 범행을 알아차렸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찌나 깜짝 놀랐는지, 동서남북으로 울부짖으며 도망치려 했을 정도.

       

       “얍.”

       

       물론 바로 잡혔다. 겨드랑이 밑에 손을 집어넣어 번쩍 들어 올리더라. 붕 뜬 발을 허우적거려 보아도 벗어날 수가 없다.

       

       세상에. 이게 어떻게 되는 거지? 엘리면 모를까 리디아는 그리 키가 크지 않아서 힘들 텐데….

       

       “아.”

       

       이제 보니 리디아는 거의 만세 수준으로 나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자기 새끼를 자랑하는 수달 같은 모양새.

       

       사실 그렇게 귀여운 일은 아니고 현행범 체포에 가까운 무언가였지만.

       

       안 그래도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리디아가 눈에 띄는 행동을 하니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기 시작했다.

       

       “고결한 리디아? 저 남자애는….”

       

       “핑챙이잖아. 상대가 리디아고, 저 꼬마도 꼬질꼬질한 게 외모만 반반한 걸 보아 꽃뱀이겠지.”

       

       “그거 핑챙 혐오야 이년아…근데 정말 그런 거라면 꼬시는 데 성공한 건가?”

       

       “성공했겠냐. 괜히 뒤에서 순결한 리디아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니까.”

       

       “하긴. 그 돈 벌어서 다 어디다 쓰는지 몰라.”

       

       “일단 너처럼 창관에 꼬라박는 건 아닌 듯.”

       

       “뭘 깨끗한 척이야. 니년이 무기 살 돈으로 노예 샀다는 거 다 알 거든?”

       

       “노예 순애는 인생의 필수 요소지.”

       

       “순애가 하고 싶으면 노예로 부리지 말고 해방시켜줘 병신아.”

       

       “꼴알못. 노예가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어서 날 사랑하는 척하는 게 꼴리는 거야.”

       

       “? 미친년인가.”

       

       인파 사이에서 들려오는 무서운 이야기에 호달달 떨고 있자니, 리디아가 재차 요구해 왔다.

       

       “주머니. 내놔.”

       

       “아, 음. 그게 말이죠 리디아 님….”

       

       슬쩍 눈동자만 굴려 엘프 강도 년이 지나간 방향을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거리가 너무 먼 탓인지, 살짝 힐끔거리고는 다시 제 갈 길 가는 모양.

       

       최악의 경우는 면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갑을 꺼냈다.

       

       “내 10배의 원한이….”

       

       “…원한?”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 때문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면 나를 내려주는 리디아. 그녀가 일단 양손에 하나씩 지갑을 받아들며 물었다.

       

       “요나. 그게 무슨 소리?”

       

       “말 그대로예요. 제가 예전에 구걸로 먹고살 때, 얼마 없는 돈마저 전부 뜯어간 년을 우연히 발견해서 복수 좀 하려고 했죠.”

       

       “얼마인데?”

       

       “8쿠퍼요.”

       

       “그 정도면….”

       

       “네네. 별거 아닌 거 같죠? 하지만 그때는 진짜 큰일이었다니까요.”

       

       “그랬어?”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5일간 아무것도 못 먹었을 때라는 점이 문제였어요.”

       

       “5…일?”

       

       “넹. 그쯤 되면 내가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느낌이 와요. 그래서 어떻게든 반항해 보려 했는데…역시 어른 여자에게는 당해내지 못하겠더라구요.”

       

       “……뭐?”

       

       당황한 목소리. 리디아가 걱정된다는 듯 지극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괜찮아?”

       

       “당연히 안 괜찮죠! 8쿠퍼는 제 전 재산이었다니까요?! 덕분에 정말 굶어 죽나 싶었다구요! …뭐, 운 좋게도 바로 다음 날에 신전의 배급이 있어서 이렇게 살아남았지만 당시에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내 말은 그게 아냐. 무서운 경험을 한 거잖아. 보통 트라우마가…아.”

       

       횡설수설하며 무언가 말하려던 리디아였으나, 이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서 한층 더 짙어지는 안쓰러움.

       

       뭐지 내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리디아가 일전에 쌍단검 클랜장을 상대할 때처럼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두 엘프 강도 년이 사라진 방향을 노려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한숨과 함께 눈에서 힘을 풀었지만.

       

       “에휴.”

       

       그리고는 어색한 손놀림으로 내 정수리를 토닥이기 시작한다.

       

       “잘했어.”

       

       “네? 뭐가요?”

       

       “죽이고 싶었을 텐데 참은 거잖아.”

       

       “아무리 8쿠퍼의 원한이 크다지만, 삥 뜯긴 걸로 사람을 죽이고 그러진 않거든요?!”

       

       리디아는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쓰다듬 받는 동안은 가만히 있었다.

       

       이제 알았는데 오늘의 리디아는 사복이었다. 쉬는 날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인가.

       

       전체적으로 겨울에 어울리는 따뜻해 보이는 복장. 하지만 그런 두꺼운 옷으로도 숨기지 못하는 존재감이 하나 있었으니.

       

       쭐렁쭐렁.

       

       “오….”

       

       항상 갑옷만 입고 있어 볼 수 없었던 가슴이 바로 그러하다.

       

       정확한 크기는 코트를 벗어봐야 알겠지만, 일단 찌머크는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그렇게 한참을 감상하자 리디아도 내 시선을 알아차린 걸까. 잠시 손을 멈추더니, 붉은색 눈동자를 깜빡인다.

       

       “요나. 이상한 표정.”

       

       “아, 별거 아니니까 계속해 주세요.”

       

       “…응.”

       

       기분 나빠하는 기색은 없이 계속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리디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판 대륙에서 여자의 가슴은 그렇게까지 부끄러워할 만한 것이 아니니까.

       

       멸신전쟁 이전의 문화가 조금 남아있기 때문인지, 아예 가슴을 까고 다니면 미친 노출광 취급 받긴 하지만…딱 그뿐이다.

       

       속옷 정도의 면적만 가리고 다니면 오케이라는 느낌. 그렇기에 가슴의 노출과 주변의 시선에 관대한 편이다.

       

       지금은 날이 추워 다들 꽁꽁 싸매고 다니지만…여름에는 진짜 장난 아니었지.

       

       이런 설정을 짠 과거의 나에게 치얼스!

       

       아무튼 그런 상황이다 보니 리디아도 설마 내가 자신의 가슴팍을 야한 눈으로 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거겠지.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번뜩임.

       

       …잠깐. 이거 슬쩍 만져봐도 되는 거 아닐까?

       

       남녀역전 세계니까, 아직 어리니까,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등등. 머릿속으로 온갖 변명을 늘어 놓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냥 흑심이다.

       

       빼앗긴 지갑을 다시 돌려받으려는 척, 기습적으로 손을 뻗었다. 이대로 적당한 실수를 가장해 그대로 궤적을 꺾으면…!

       

       “여기.”

       

       “에?”

       

       정면에서 대놓고 움직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미 몇 번 본 움직임에 다시 당하지는 않는다는 걸까.

       

       리디아는 너무나 간단히 내 손을 낚아채더니, 그 위에 방금 압수했던 지갑을 올려놓았다.

       

       두터운 가죽 너머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가슴은 아니었지만, 이건 이것대로 좋네.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복잡한 마음에 멍하니 리디아를 올려보자, 멋쩍다는 듯이 시선을 피한다.

       

       “원래는 혼낼 생각이었어. 내 목적은 요나의 계도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예외. 오히려 칭찬해야 할 일이야.”

       

       “그럼 앞으로도 슬쩍하고 다녀도 괜찮나요?”

       

       “…이걸로 복수를 끝낼 생각이었다는 걸 칭찬해 준 거야. 소매치기 자체는 나쁜 짓.”

       

       “아하? 엘리도 그렇고 리디아 님도 그렇고 대체 저를 뭘로 보시는지 모르겠는데, 함부로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상식 정도는 있거든요?”

       

       “소매치기도 나쁜 짓이라는 상식은?”

       

       “언제까지고 상식에 얽매이면 큰 사람이 될 수 없답니다.”

       

       “…역시 가르칠 게 많겠어.”

       

       피식 웃으며 헝클어진 내 머리를 가다듬어 주는 리디아. 그 사이에 잽싸게 오늘의 전리품을 확인해 보았다.

       

       흠…이 정돈가.

       

       역시 동화만 가득하네. 다만, 그 양이 상당하니 총액은 기대할 만하리라. 적어도 밥 한 끼 사주기에는 충분하겠지.

       

       “리디아 님. 식사는 아직이었죠?”

       

       “응. 이제부터 먹으러 가는 길.”

       

       “오늘은 수입도 있었으니 제가 살게요! 앞장서시죠!”

       

       가슴을 콩콩 두드리며 그런 소리를 하자, 리디아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기대하고 있을게.”

       

       “네! …근데 너무 비싼 가게는 아니죠?”

       

       “걱정 마. 자주 가는 단골 가게에 가려는 것뿐이니까.”

       

       자주 가는 가게라면 그렇게 비싸지는 않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리디아를 따라갔다.

       

       …그리고 후회했다.

       

       ***

       

       리디아를 따라 도착한 레스토랑. 나는 그만 치밀어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냈다.

       

       “이 거짓말쟁이! 절 속이셨군요!”

       

       “음해, 곤란. 난 속인 적 없어.”

       

       “어떻게 이런 가게를 자주 간다는 건가요?!”

       

       빼액 소리를 지르며 주변을 보라는 듯 팔을 크게 휘두른다.

       

       천장에서 흔들리는 샹들리에. 착실히 드레스 코드를 맞춰온 손님. 깔끔히 차려입은 웨이터. 그리고 기본 단위가 실버인 메뉴판.

       

       세상에. 물 한잔에 1실버라니 돌아버린 것인가.

       

       그냥 물이 아니고 무슨 마력이 어쩌구 신성력이 어쩌구 적혀있긴 한데, 아무튼 물은 물이다.

       

       “완전 비싼 곳이잖아요! 고오오급 레스토랑이잖아요! 보통 단골 가게는 적당히 저렴하고, 적당히 맛있는 곳 아닌가요?!”

       

       “엣헴. 내가 자주 가는 음식점 중에서는 저렴한 편.”

       

       “거짓말 금지! 만약 그랬으면 아무리 리디아 님이라도 금방 거지가 됐을 거예요!”

       

       “그, 그건 아냐. 제대로 장비도 사고 있으니까.”

       

       묘하게 삐질 거리는 태도로 그리 말하는 리디아. 생각해 보니 리디아의 지갑은 고위 모험가치고 꽤 가벼웠지. …설마?

       

       “솔직히 말해보세요 리디아 님. 모험가 일로 번 돈은 어디에 쓰고 있나요? 고위 모험가시니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미궁도시에 거점 하나는 마련하셨겠죠? 엘리가 가게를 차린 것처럼요.”

       

       “……노 코멘트.”

       

       “진짜로 비싼 밥이랑 비싼 장비사는 데 다 쓴 거예요?!”

       

       경악하는 나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리디아. 그녀가 근처의 종업원에게 손가락 2개를 들어 보였다.

       

       “둘, 안내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마침 좋은 자리가 비었으니 그리고 안내해 드리지요.”

       

       꽤 소란스러웠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정중하게 꾸벅이는 종업원.

       

       생각해 보면 이 사람도 처음에 나를 봤을 때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지 않았나? 금방 원상태로 돌아와서 잘못 봤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확실하다. 내 복장을 보고 쫓아내려다, 리디아의 일행이라는 걸 확인하고 그냥 넘어간 거네.

       

       대체 얼마나 자주 왔길래 이런 대우를…?

       

       내가 어이없어하는 사이. 종업원의 안내를 받은 리디아가 평소의 무표정으로 레스토랑 내부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다급히 달려가 그런 리디아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리디아 님! 리디아 님! 여긴 너무 비싸요. 남자가 돼서 한 입으로 두말하기 참 그렇긴 한데, 다른 가게 가면 안 될까요?!”

       

       “응? 남자랑은 무슨 상관이야?”

       

       “제가 사드린다고 했잖아요. 근데 여기 음식값은 전 재산을 털어도 안 될 거 같단 말이에요….”

       

       내 간절한 속삭임에 리디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무언가 깨달은 표정이 되었다.

       

       “아, 그거 진심이었구나. 걱정 마. 돈은 내가 낼게.”

       

       “허어억…!”

       

       그래. 리디아가 내 주머니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니 여기서 얻어먹을 생각인 건 아니었겠지. 방금건 단순한 장난이었으리라.

       

       이 세상에서는 여자가 밥값을 내는게 매너라는 인식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렇게 비싼 곳에서 밥을 사주다니. 역시 리디아는 좋은 눈나가 분명하다. …라고 생각했다. 리디아가 덧붙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대신 요나의 빚에 달아둘게.”

       

       “…….”

       

       이것도 장난 맞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8쿠퍼 지키러다 배빵 맞는 돚거 미소녀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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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EP.14





       “요나. 주머니에서 손 빼.”


       


       “아이에에에에에에!!!”


       


       리디아?! 리디아 어째서?!?!


       


       이 타이밍에 리디아가 나올 줄은, 심지어 내 범행을 알아차렸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찌나 깜짝 놀랐는지, 동서남북으로 울부짖으며 도망치려 했을 정도.


       


       “얍.”


       


       물론 바로 잡혔다. 겨드랑이 밑에 손을 집어넣어 번쩍 들어 올리더라. 붕 뜬 발을 허우적거려 보아도 벗어날 수가 없다.


       


       세상에. 이게 어떻게 되는 거지? 엘리면 모를까 리디아는 그리 키가 크지 않아서 힘들 텐데….


       


       “아.”


       


       이제 보니 리디아는 거의 만세 수준으로 나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자기 새끼를 자랑하는 수달 같은 모양새.


       


       사실 그렇게 귀여운 일은 아니고 현행범 체포에 가까운 무언가였지만.


       


       안 그래도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리디아가 눈에 띄는 행동을 하니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기 시작했다.


       


       “고결한 리디아? 저 남자애는….”


       


       “핑챙이잖아. 상대가 리디아고, 저 꼬마도 꼬질꼬질한 게 외모만 반반한 걸 보아 꽃뱀이겠지.”


       


       “그거 핑챙 혐오야 이년아…근데 정말 그런 거라면 꼬시는 데 성공한 건가?”


       


       “성공했겠냐. 괜히 뒤에서 순결한 리디아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니까.”


       


       “하긴. 그 돈 벌어서 다 어디다 쓰는지 몰라.”


       


       “일단 너처럼 창관에 꼬라박는 건 아닌 듯.”


       


       “뭘 깨끗한 척이야. 니년이 무기 살 돈으로 노예 샀다는 거 다 알 거든?”


       


       “노예 순애는 인생의 필수 요소지.”


       


       “순애가 하고 싶으면 노예로 부리지 말고 해방시켜줘 병신아.”


       


       “꼴알못. 노예가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어서 날 사랑하는 척하는 게 꼴리는 거야.”


       


       “? 미친년인가.”


       


       인파 사이에서 들려오는 무서운 이야기에 호달달 떨고 있자니, 리디아가 재차 요구해 왔다.


       


       “주머니. 내놔.”


       


       “아, 음. 그게 말이죠 리디아 님….”


       


       슬쩍 눈동자만 굴려 엘프 강도 년이 지나간 방향을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거리가 너무 먼 탓인지, 살짝 힐끔거리고는 다시 제 갈 길 가는 모양.


       


       최악의 경우는 면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갑을 꺼냈다.


       


       “내 10배의 원한이….”


       


       “…원한?”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 때문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면 나를 내려주는 리디아. 그녀가 일단 양손에 하나씩 지갑을 받아들며 물었다.


       


       “요나. 그게 무슨 소리?”


       


       “말 그대로예요. 제가 예전에 구걸로 먹고살 때, 얼마 없는 돈마저 전부 뜯어간 년을 우연히 발견해서 복수 좀 하려고 했죠.”


       


       “얼마인데?”


       


       “8쿠퍼요.”


       


       “그 정도면….”


       


       “네네. 별거 아닌 거 같죠? 하지만 그때는 진짜 큰일이었다니까요.”


       


       “그랬어?”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5일간 아무것도 못 먹었을 때라는 점이 문제였어요.”


       


       “5…일?”


       


       “넹. 그쯤 되면 내가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느낌이 와요. 그래서 어떻게든 반항해 보려 했는데…역시 어른 여자에게는 당해내지 못하겠더라구요.”


       


       “……뭐?”


       


       당황한 목소리. 리디아가 걱정된다는 듯 지극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괜찮아?”


       


       “당연히 안 괜찮죠! 8쿠퍼는 제 전 재산이었다니까요?! 덕분에 정말 굶어 죽나 싶었다구요! …뭐, 운 좋게도 바로 다음 날에 신전의 배급이 있어서 이렇게 살아남았지만 당시에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내 말은 그게 아냐. 무서운 경험을 한 거잖아. 보통 트라우마가…아.”


       


       횡설수설하며 무언가 말하려던 리디아였으나, 이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서 한층 더 짙어지는 안쓰러움.


       


       뭐지 내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리디아가 일전에 쌍단검 클랜장을 상대할 때처럼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두 엘프 강도 년이 사라진 방향을 노려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한숨과 함께 눈에서 힘을 풀었지만.


       


       “에휴.”


       


       그리고는 어색한 손놀림으로 내 정수리를 토닥이기 시작한다.


       


       “잘했어.”


       


       “네? 뭐가요?”


       


       “죽이고 싶었을 텐데 참은 거잖아.”


       


       “아무리 8쿠퍼의 원한이 크다지만, 삥 뜯긴 걸로 사람을 죽이고 그러진 않거든요?!”


       


       리디아는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쓰다듬 받는 동안은 가만히 있었다.


       


       이제 알았는데 오늘의 리디아는 사복이었다. 쉬는 날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인가.


       


       전체적으로 겨울에 어울리는 따뜻해 보이는 복장. 하지만 그런 두꺼운 옷으로도 숨기지 못하는 존재감이 하나 있었으니.


       


       쭐렁쭐렁.


       


       “오….”


       


       항상 갑옷만 입고 있어 볼 수 없었던 가슴이 바로 그러하다.


       


       정확한 크기는 코트를 벗어봐야 알겠지만, 일단 찌머크는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그렇게 한참을 감상하자 리디아도 내 시선을 알아차린 걸까. 잠시 손을 멈추더니, 붉은색 눈동자를 깜빡인다.


       


       “요나. 이상한 표정.”


       


       “아, 별거 아니니까 계속해 주세요.”


       


       “…응.”


       


       기분 나빠하는 기색은 없이 계속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리디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판 대륙에서 여자의 가슴은 그렇게까지 부끄러워할 만한 것이 아니니까.


       


       멸신전쟁 이전의 문화가 조금 남아있기 때문인지, 아예 가슴을 까고 다니면 미친 노출광 취급 받긴 하지만…딱 그뿐이다.


       


       속옷 정도의 면적만 가리고 다니면 오케이라는 느낌. 그렇기에 가슴의 노출과 주변의 시선에 관대한 편이다.


       


       지금은 날이 추워 다들 꽁꽁 싸매고 다니지만…여름에는 진짜 장난 아니었지.


       


       이런 설정을 짠 과거의 나에게 치얼스!


       


       아무튼 그런 상황이다 보니 리디아도 설마 내가 자신의 가슴팍을 야한 눈으로 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거겠지.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번뜩임.


       


       …잠깐. 이거 슬쩍 만져봐도 되는 거 아닐까?


       


       남녀역전 세계니까, 아직 어리니까,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등등. 머릿속으로 온갖 변명을 늘어 놓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냥 흑심이다.


       


       빼앗긴 지갑을 다시 돌려받으려는 척, 기습적으로 손을 뻗었다. 이대로 적당한 실수를 가장해 그대로 궤적을 꺾으면…!


       


       “여기.”


       


       “에?”


       


       정면에서 대놓고 움직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미 몇 번 본 움직임에 다시 당하지는 않는다는 걸까.


       


       리디아는 너무나 간단히 내 손을 낚아채더니, 그 위에 방금 압수했던 지갑을 올려놓았다.


       


       두터운 가죽 너머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가슴은 아니었지만, 이건 이것대로 좋네.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복잡한 마음에 멍하니 리디아를 올려보자, 멋쩍다는 듯이 시선을 피한다.


       


       “원래는 혼낼 생각이었어. 내 목적은 요나의 계도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예외. 오히려 칭찬해야 할 일이야.”


       


       “그럼 앞으로도 슬쩍하고 다녀도 괜찮나요?”


       


       “…이걸로 복수를 끝낼 생각이었다는 걸 칭찬해 준 거야. 소매치기 자체는 나쁜 짓.”


       


       “아하? 엘리도 그렇고 리디아 님도 그렇고 대체 저를 뭘로 보시는지 모르겠는데, 함부로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상식 정도는 있거든요?”


       


       “소매치기도 나쁜 짓이라는 상식은?”


       


       “언제까지고 상식에 얽매이면 큰 사람이 될 수 없답니다.”


       


       “…역시 가르칠 게 많겠어.”


       


       피식 웃으며 헝클어진 내 머리를 가다듬어 주는 리디아. 그 사이에 잽싸게 오늘의 전리품을 확인해 보았다.


       


       흠…이 정돈가.


       


       역시 동화만 가득하네. 다만, 그 양이 상당하니 총액은 기대할 만하리라. 적어도 밥 한 끼 사주기에는 충분하겠지.


       


       “리디아 님. 식사는 아직이었죠?”


       


       “응. 이제부터 먹으러 가는 길.”


       


       “오늘은 수입도 있었으니 제가 살게요! 앞장서시죠!”


       


       가슴을 콩콩 두드리며 그런 소리를 하자, 리디아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기대하고 있을게.”


       


       “네! …근데 너무 비싼 가게는 아니죠?”


       


       “걱정 마. 자주 가는 단골 가게에 가려는 것뿐이니까.”


       


       자주 가는 가게라면 그렇게 비싸지는 않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리디아를 따라갔다.


       


       …그리고 후회했다.


       


       ***


       


       리디아를 따라 도착한 레스토랑. 나는 그만 치밀어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냈다.


       


       “이 거짓말쟁이! 절 속이셨군요!”


       


       “음해, 곤란. 난 속인 적 없어.”


       


       “어떻게 이런 가게를 자주 간다는 건가요?!”


       


       빼액 소리를 지르며 주변을 보라는 듯 팔을 크게 휘두른다.


       


       천장에서 흔들리는 샹들리에. 착실히 드레스 코드를 맞춰온 손님. 깔끔히 차려입은 웨이터. 그리고 기본 단위가 실버인 메뉴판.


       


       세상에. 물 한잔에 1실버라니 돌아버린 것인가.


       


       그냥 물이 아니고 무슨 마력이 어쩌구 신성력이 어쩌구 적혀있긴 한데, 아무튼 물은 물이다.


       


       “완전 비싼 곳이잖아요! 고오오급 레스토랑이잖아요! 보통 단골 가게는 적당히 저렴하고, 적당히 맛있는 곳 아닌가요?!”


       


       “엣헴. 내가 자주 가는 음식점 중에서는 저렴한 편.”


       


       “거짓말 금지! 만약 그랬으면 아무리 리디아 님이라도 금방 거지가 됐을 거예요!”


       


       “그, 그건 아냐. 제대로 장비도 사고 있으니까.”


       


       묘하게 삐질 거리는 태도로 그리 말하는 리디아. 생각해 보니 리디아의 지갑은 고위 모험가치고 꽤 가벼웠지. …설마?


       


       “솔직히 말해보세요 리디아 님. 모험가 일로 번 돈은 어디에 쓰고 있나요? 고위 모험가시니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미궁도시에 거점 하나는 마련하셨겠죠? 엘리가 가게를 차린 것처럼요.”


       


       “……노 코멘트.”


       


       “진짜로 비싼 밥이랑 비싼 장비사는 데 다 쓴 거예요?!”


       


       경악하는 나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리디아. 그녀가 근처의 종업원에게 손가락 2개를 들어 보였다.


       


       “둘, 안내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마침 좋은 자리가 비었으니 그리고 안내해 드리지요.”


       


       꽤 소란스러웠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정중하게 꾸벅이는 종업원.


       


       생각해 보면 이 사람도 처음에 나를 봤을 때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지 않았나? 금방 원상태로 돌아와서 잘못 봤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확실하다. 내 복장을 보고 쫓아내려다, 리디아의 일행이라는 걸 확인하고 그냥 넘어간 거네.


       


       대체 얼마나 자주 왔길래 이런 대우를…?


       


       내가 어이없어하는 사이. 종업원의 안내를 받은 리디아가 평소의 무표정으로 레스토랑 내부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다급히 달려가 그런 리디아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리디아 님! 리디아 님! 여긴 너무 비싸요. 남자가 돼서 한 입으로 두말하기 참 그렇긴 한데, 다른 가게 가면 안 될까요?!”


       


       “응? 남자랑은 무슨 상관이야?”


       


       “제가 사드린다고 했잖아요. 근데 여기 음식값은 전 재산을 털어도 안 될 거 같단 말이에요….”


       


       내 간절한 속삭임에 리디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무언가 깨달은 표정이 되었다.


       


       “아, 그거 진심이었구나. 걱정 마. 돈은 내가 낼게.”


       


       “허어억…!”


       


       그래. 리디아가 내 주머니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니 여기서 얻어먹을 생각인 건 아니었겠지. 방금건 단순한 장난이었으리라.


       


       이 세상에서는 여자가 밥값을 내는게 매너라는 인식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렇게 비싼 곳에서 밥을 사주다니. 역시 리디아는 좋은 눈나가 분명하다. …라고 생각했다. 리디아가 덧붙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대신 요나의 빚에 달아둘게.”


       


       “…….”


       


       이것도 장난 맞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8쿠퍼 지키러다 배빵 맞는 돚거 미소녀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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