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4

       한 방향으로 쭉 달려서는 무한한 골목길을 벗어날 수 없다.

        위쪽이든 아랫쪽이든 다른 층으로 넘어가는 계단을 찾아야한다.

        처음엔 영문을 모른 채 끌려가던 시엔은 이윽고 나를 앞질러 길을 찾기 시작했다.

        마탑의 구조를 꿰고 있는 그녀였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걸음이었지만, 곧 방해가 들어왔다.

       

        “저기다!”

        “저주술사를 잡아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치안대 소속 마법사들이 우리를 포위하려 몰려들었다.

        그들의 기척이 가까워진 순간 나는 ‘보이지 않는 빛’으로 주변의 모든 가스등을 꺼버렸다.

        비나의 수업 덕에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극마법이 순식간에 골목을 어둠으로 뒤덮었다.

        모순적인 현상을 술자의 인식으로 고정시키는 특성은 숙달된 마법사에게도 혼란을 야기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빨리 불을 다시 밝혀!”

        “뭐야, 가스등은 계속 작동 중인데?”

        “그럼 아무거나 빛 마법이라도 쓰라고! 루스리아가 이런 것도 못 하면 어떡해?”

        “이미 쓰고 있어! 근데도 안 보이잖아!”

       

        정신없는 틈을 파고들어 포위망을 벗어났지만, 금세 2차로 추격이 따라붙었다.

        경험 많은 마법사들은 어둠 속에서도 빠르게 거리를 좁혀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출구로 향하는 표지를 식별하기 위해 애쓰는 시엔을 붙잡으며 말했다.

       

        “길은 내가 찾을 테니까 넌 쟤들부터 처리해.”

        “네가? 할 수 있겠어?”

        “너야말로 치안대 애들한테 마법 쓸 수나 있냐? 못 하겠으면 내가 하고.”

        “거, 걸리면 분명 징계 정도로 안 끝날텐데.”

       

        나는 공격마법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없다.

        그러나 반격 없이는 저들을 따돌릴 자신도 없었다.

        창 대신 주위의 가스등이라도 뽑아서 던져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망설이던 시엔이 검을 뽑았다.

       

        “크흠, 저번에 원탁회에서 쟤들이 우리한테 책임을 떠넘기기는 했거든? 그러니까…….”

        “…….”

       

        어둠의 숲 사건을 말하는 거군.

       

        치안부의 추격대를 향해 마법을 준비하는 그녀의 입은 작게 달싹거릴 뿐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정보부 특유의 ‘은폐영창’이었다.

        어둠과 침묵 뒤엉킨 좁다란 골목의 코너에서 그들이 몸을 돌린 순간, 그녀의 마법이 펼쳐졌다.

        선두의 마법사들이 급히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땅에서 하늘로, 그 역으로, 모든 것의 아래와 위에 있는 힘을 받는다.”

        “잠깐 저건……! 저주가 아니다! 연금술이야!”

        “뭐!? 젠장, 일단 피해!!”

        “어디로…… 아아악!”

       

        현자의 약관(約款). 

        14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절대적인 진리의 구절은 오직 연금학파만이 다룰 수 있는 신비였다.

        얇은 세검이 허공에서 춤추자 주위의 벽과 바닥이 통째로 뒤집혔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휩쓸린 추격대가 발이 묶인 사이 나 역시 위치노트를 통해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지도에 표시된 ip가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 마법으로 감춰둔 차원의 틈새였다.

        그중에서도 좌표가 계속 바뀌는 인접한 구획들과 달리 줄곧 같은 ip로 확인되는 장소가 있었다.

       

        “찾았어, 이쪽이야.”

       

        탑의 기둥과 연결되어 중심축 역할을 하는 이곳이야말로 출구라 확신한 나는 곧장 나무 판자로 막힌 창구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녀 역시 눈썰미가 좋은 만큼 곧장 뒤따라올 게 분명했다.

       

        허나 어둠이 걷히고 내가 서 있는 곳은 계단이 아닌 어느 작은 은신처였다.

        위치노트로 확인해 보니 시엔이 올바른 길로 내려가고, 반대로 내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음 알 수 있었다.

       

        “저, 정보부의 개를 여기로 데려오려 하면 어떡해.”

       

        시엔 대신 내 뒤에서 말을 건 사람은 로브의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마법사였다.

       

        “해주학파는 니, 니들같은 인싸놈들 데이트 코스가 아니라고……!”

       

        체구로 보아 여자인 건 확실했지만 남에게 말을 거는 게 어려운 듯 목소리가 벌벌 떨리고 있었다.

       

       

       

        *

       

        나는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시엔처럼 내면까지 깔끔한 이가 있는 반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속으로는 얼음정수기에 열등감을 느끼는 이상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만나는 이들의 속내를 전부 알 방법은 없지만 눈앞에 있는 마법사가 위치노트를 소지하고 있다면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현재 ip에서 접속한 계정을 확인해 그 사람이 평소 어떤 글을 쓰는지 속속들이 볼 수 있었기에.

       

        ====

        ID : 프리나나

        글 : 27473

        댓글 : 143485

       

        작성 글 목록 : 

        [저번 축제 때 밤 7시부터 12시까지 미접속한 고닉 리스트]

        [파딱 실패했어 이번에도 안 뽑혔어 그 고닉 뭐야? 죽이고 싶네]

        [주딱이 여자라는 애들은 걍 뇌수가 없음]

        [주딱한테 따먹히고 싶다 아니 따먹고 싶다]

        .

        .

        .

       

        ====

        ====

        프리나나

        [아직도 해주학파를 무시하는 멍청이가 있네]

       

        이름에 무려 ‘주(呪)’라는 단어가 들어갔는데

        룰과 심판이 있는 마법제에서 니들 따위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애?

       

        공정하게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 상대가 품에서 부두인형을 꺼내는 순간

        해주학파의 무서움이 시작되는 거야

       

        — 저주학파 ㄷㄷ

        — 이건 이길 수가 없겠는데

        — 아 불리할 때만 저주쓰지 말라고 ㅋㅋㅋㅋ

         ㄴ 이러니까 치안대가 쫓아다니지 ㄹㅇ ㅋㅋㅋ

        — 돌아버리겠네 진짜 ㅋㅋ

        ====

       

        “크흠.”

        “왜?”

        “아무것도 아닙니다.”

       

        겉보기와 다르게 활동량이 어마어마한 유저였다.

        악질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기에는 조금 애매했지만, 일단 해주학파 소속은 확실해 보였다.

        먼저 말 거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 내가 나설까 고민하던 중 쥐꼬리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치노트에서 시선을 고정시킨 채 앞서 걷던 그녀에게서였다.

       

        “……프리나.”

        “클락입니다.”

        “시, 신입이야? 왜?”

        “해주학파를 선택한 이유 말인가요?”

       

        세간에서는 해주학파에 대한 인식이 나쁘다 못해 거의 범죄조직 수준까지 떨어져 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오히려 지금까지 남아있는 마법사들이야말로 저주와는 거리가 먼 이들인 것이다.

        누가 봐도 사회부적응에 의사소통장애가 있어 보이는 프리나도 어쨌거나 나를 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까 갤러리에서 본 글은 그냥 우스갯소리였던 걸로 치기로 하고.

       

        “가장 빠르게 탑을 올라갈 수 있는 길이니까요. 적어도 저에게는.”

        “…….”

       

        나의 담백한 답변에 모자 아래에 가려져 있던 먹빛 눈동자가 슬쩍 돌아갔다.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시선을 내리깔긴 했지만.

       

        “여기서 기다려.”

       

        통로 끝에 다다라 방문을 닫고 들어간 프리나는 잠시 뒤 다시 문을 열고 내게 안으로 들어오라 말했다.

        또 한 번 좌표가 바뀐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들자 앞에서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미남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쪽으로 앉게, 난 루퍼트라고 하네. 지금은 부재중이신 아녜스 님 대신 해주학파의 장문을 맡고 있지.”

        “클락입니다. 루퍼트 님께서는…….”

       

        말 끝을 흐린 이유는 그의 가슴팍에 달린 브로치 때문이었다.

        지금은 멸망한 것으로 알려진 공국의 문양.

        공작가 출신의 대귀족이 해주학파에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의 시선을 눈치챈 그가 멋쩍게 웃었다.

       

        “귀족이시군요? 그것도 체스워드의.”

        “허, 거의 대륙 반대편에 있던 나라인데 이걸 알아보는 자네가 더 신기하군. 편히 대해도 좋아, 어차피 마탑에선 마법사들의 혈통이 더욱 존중받지 않나.”

        “그럼 경칭만 쓰겠습니다.”

        “시원해서 좋군. 그렇다면 나 역시 곧장 용건으로 들어가야겠지. 정말로 해주학파에 가입하기를 원하는가?”

        “예. 해주학파의 신비가 제게 가장 잘 맞는다고 합니다.”

        “안내 데스크에서?”

        “아는 사람이요.”

       

        아녜스가 5년 내내 사감실에 찾아와 반복했던 말이며 스스로도 어느 정도 예상하는 부분이었다.

        재능도 없는데다 뒤늦게 마탑에 들어온 내게 일반적인 학파의 신비는 맞지 않을 테니까.

       

        “흠…… 저주명(詛呪名)은 시전자가 가진 위업과 악명에 따라 마력이 증폭되지.” 

       

        저주명. 아녜스가 직접 창시한 아이테르 학파만의 신비였다.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정식 명칭이 따로 있다지만 완전히 잘못 정착되어 모두가, 심지어 고위 해주술사인 루퍼트마저 그렇게 불렀다.

       

        “허나 어지간한 수준으론 턱도 없고 무엇보다 상대성을 꽤 많이 타는데, 바깥에서 이름이 제법 알려졌었나?”

        “쥐꼬리만한 명성은 있었습니다.”

        “자신이 없다면 처음부터 다시 새기는 것도 좋은 방법일세. 알잖나, 마법사들은 마탑 밖의 일 따윈 관심 없다는 것을.”

       

        저주명은 신비 중에서도 굉장히 활용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예를 들어 내가 ‘산태우기’라면 눈앞의 꼬마가 내 존재에 대해 모르는 순간 아무리 노력해도 신비를 쓸 수가 없다.

       

        상대방의 인식에 따라 그 효과가 천차만별로 널뛴다는 것.

        해주학파가 마탑에서 인기 없는 이유 중 하나이자 저주술사들이 기를 쓰고 자신의 이름을 퍼뜨리려는 이유였다.

       

        ‘혹시 부족하려나?’

       

        본래 모험가 시절 남들이 부르던 예명을 쓸 생각이었던 내게 루퍼트의 충고는 꽤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오래 전 은퇴한 모험가 나부랭이에 대해 알 턱이 없지 않은가.

       

        ‘기억’은 ‘인지’와는 별개여서 내가 누구인지 남들에게 설명하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머릿속에 내 존재가 얼마나 크게 각인되어 있느냐가 전부일 뿐.

        오히려 입으로 꺼내는 순간 미지에 대한 경외나 공포감이 줄어들어 위력이 반감되었다.

        그래서 저주술사들은 꼭 자신들의 저주명을 숨기거나, 아주 은근하게 드러내곤 했다.

       

        “하, 할 거 없으면 니 갤러리 닉으로 하던가.”

       

        고민 중이던 내게 방 한구석 흔들의자에 앉아 위치노트를 하던 프리나가 툭 던진 말이었다.

        그것을 들은 루퍼트가 씁쓸한 투로 설명했다.

       

        “아, 최근 들어 젊은 해주술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방식이지.” 

        “갤러리가요?”

        “위치노트 안에도 각자 이름이 있지 않나? 그걸로 명성을 얻으면 적어도 마탑 내에서는 효용이 크다네. 갤러리를 하지 않는 마법사는 거의 없으니까 말이야.”

        “…….”

       

        어쩐지 해가 바뀔수록 악질적인 놈들이 늘어나더라니. 여기가 그 온상이었군.

        나중에 이쪽 ip는 영구벤 해두기로 하고,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와 펜을 바라보았다.

       

        “정했다면 적고, 저 난로에 넣어 태워버리게.”

        “그것으로 끝입니까?”

        “불꽃의 크기가 곧 위력을 나타내지. 본래 저주명은 불씨부터 키워가는 것이니 너무 작더라도 개의치 말게.”

       

        어떤 걸로 하면 좋을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펜을 들고 두 글자를 적었다.

        그것을 두 번 접어 불길 속으로 넣으니 오랫동안 미뤄온 일을 해치운 것처럼 후련한 기분이었다.

       

        “축하하네. 자네도 이제 정식으로 해주…….”

       

        콰아아아앙——!!!!

       

        루퍼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벽난로가 폭발했다.

        불길은 벽을 타고올라 방 전체를 휘감더니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미친 듯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

        “뭐, 뭐야……!?”

       

        흔들의자에서 굴러 떨어진 프리나의 시선을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피했다.

        내가 선택한 저주명은 ‘주딱’이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

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