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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남자의 등장으로부터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몸을 좀먹던 고통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몸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아.”

       

       “몸에 좋은 건 아픈 법이지. 병을 막기 위한 백신도 처음엔 아프지만, 결국 몸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백신···.”

       

       

       손에 힘을 쥐어보았다.

       

       꽈아악.

       

       오늘, 태도를 휘둘렀던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손에 감긴 붕대가 툭, 끊기는 감각과 함께 느껴지는 엄청난 힘.

       

       

       “···이게, 힘.”

       

       “그래. 우리의 힘이다.”

       

       

       고개를 들어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면을 쓰고, 품이 넓은 코트를 입어 체형마저 확인이 불가능했다.

       

       

       “너희 조직의 일원이 되었는데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건가?”

       

       “그 환약의 진정한 힘이 드러난다면, 너도 우리와 함께하게 될 거다. 아직은 아니야.”

       

       “진정한 힘?”

       

       “그래. 우리의 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해.”

       

       

       시간이 필요하다니.

       

       끊어진 붕대를 바라보았다.

       

       이 힘이, 완전한 힘이 아니라고?

       

       

       “그 힘이 온전하게 발현할 때까지, 너는 인류의 수호자를 자청하는 아카데미의 일원으로 있도록.”

       

       “···그렇게 하지.”

       

       “좋아.”

       

       

       그 말을 끝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떠나갔다.

       

       진정한 힘이라니.

       

       아무리 단련해도 늘어나지 않던 힘이, 이렇게 손쉽게 들어오는 것이었던가.

       

       라이라는 복잡미묘한 심정으로 남자가 떠나간 자리를 한참 바라보았다.

       

       

       

       ***

       

       

       

       “강해졌구나, 라이라. 하루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선생님이 감탄하며 라이라의 훈련을 지켜보았다.

       

       태도를 휘두르는 힘이 어제와는 사뭇 다른 강렬함이 느껴졌다.

       

       

       “흐읍···!”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며, 순식간에 베어지는 허수아비들.

       

       이야, 엄청나게 강해졌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흥!]

       

       “그렇게 말씀하니 더 걱정되거든요.”

       

       

       다행히 작가님이 실수한 건 없는 모양이었다.

       

       그 녀석들이 라이라를 잘 강화해 준 모양이네.

       

       

       “그런데 작가님, 빌런은 소설에서 어떻게 하실 예정인가요?”

       

       [네? ···그야, 주인공한테 죽는 게?]

       

       “그런가요···.”

       

       

       결국 죽을 운명인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어렸을 적,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던 기억이 떠올랐다.

       

       필요한 행위였기에 어쩔 수 없이 희생시켰던 유닛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뭔가 그거랑 비슷한 느낌인 것 같기도 하고.

       

       어쩔 수 없잖아.

       

       작가님이 원하는 내용대로 전개하려면 희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카데미 소설은 항상 그래. 사건과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언젠가는 아카데미 습격도 일어날 테고, 빌런들이 세상을 뒤엎겠지.

       

       마수도 있는 세상이니까 갑자기 마수들이 침공할 수도 있어.

       

       주인공에게 시련을 안겨주고, 그 시련을 통쾌히 돌파해나가는 게 아카데미의 주요 재미 포인트다.

       

       아니,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웹소설이 그렇지.

       

       그 시련을 안겨주기 위해서는 악당 역할이 필요하니까. 나는 그걸 선정했을 뿐이야.

       

       내가 선정하지 않으면 다른 등장인물이 빌런이 되니까.

       

       게다가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고.

       

       작가님의 소설에서 나오지 않는, 빌런으로 선정 당하기 전의 뒷이야기를 바라봤을 뿐이다.

       

       그것도 별다른 접점도 없는 상태로. 그저 태도를 휘두르는 모습을 바라봤을 뿐.

       

       내가 빌런을 선정하지 않아도 문제다.

       

       결국 작가님은 누가 되었던 간에 빌런을 설정해야 한다.

       

       그건 분명해. 소설의 전개를 위해서 필요하니까.

       

       내가 모르는 사람이 빌런으로 설정되면 누군가는 빌런이 된다. 그 결과로 전개를 예상하지 못하게 되면 피해가 늘어나겠지.

       

       아예 작가님을 돕지 않고 소설의 전개를 막아버린다면? 그 결과로 소설의 연재가 중단된다면?

       

       세상이 멸망할까? 아니면, 온 세상이 멈춰버릴까? 잘 모르겠다.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작가님을 도와 내 눈앞에서 빌런의 행동을 확인하는 것밖에 없다.

       

       애초에 사람도 아니고, 소설 속 등장인물이잖아?

       

       모르겠다.

       

       역시 이런 건 생각하지 말자. 언제나처럼 밝게 웃으며, 작가님을 도와 세상을 완결시키자.

       

       굳이 내가 이런 걸 생각할 필요가 없지. 작가님이 모든 걸 결정할 테니까.

       

       나는 조언을 할 뿐이야.

       

       생각한들 머리만 아파질 뿐.

       

       결국 사람도 아닌 활자들.

       

       작가님의 손짓 하나에 운명이 정해질 인형들이니까.

       

       

       “좋아, 오늘의 훈련은 이쯤 하고, 대련을 시작하마. 라이라, 고르고 싶은 상대가 있나?”

       

       “저 녀석이요.”

       

       “아르테? ···어제의 일을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니겠지, 라이라.”

       

       “아니에요. 그저, 힘을 시험해보고 싶어졌을 뿐이니까요.”

       

       “그렇다는데, 아르테. 어떻게 할 거지? 거절해도 상관없다.”

       

       

       상념을 깨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시선을 돌리자, 라이라가 나와 대련하고 싶다고 신청한 모양이었다.

       

       으음···.

       

       마음 같아서는 하기 싫은데.

       

       그런데 저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아하니 거절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감도 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네.

       

       

       “좋아요. ···방식은요?”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단판승부.”

       

       “준비하도록. 금방 시작할 테니.”

       

       

       야, 잠깐만.

       

       나 능력 안 쓰면 허접인데?!

       

       

       [아, 독자님 지겠네. 화이팅!]

       

       

       작가님?!

       

       

       

       ***

       

       

       

       “···이상할 정도로 강해졌다고?”

       

       “그래. 예전보다 확연히 강해졌어. 아무리 대련이라지만, 아르테를 그렇게 쉽게 이기다니.”

       

       

       시우는 오늘 있었던 대련을 떠올렸다.

       

       아르테와 맞붙었던 그 여학생.

       

       이름이 분명···라이라. 그래, 라이라였다.

       

       

       “그 왜, 태도를 쓰는 여학생 한 명 있거든.”

       

       “아, 혹시 이름이 라이라야?”

       

       “어떻게 알았어?”

       

       “유명하거든. 열등생이라고. 그 여자가 아르테를 이길 정도로 강해졌다니, 수상하긴 하네.”

       

       “···응? 열등생?”

       

       “몰랐어? 매일같이 수련하는데도 실력이 도통 늘지를 않는대. 그래서 열등생이라던데?”

       

       

       이상하다.

       

       시우는 위화감을 느꼈다. 저번과 비슷하게.

       

       공격받지 않았는데도 직감이 울리는 게, 착각이라기에는 너무 확고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녀가 열등생이라고?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다른 학생들과 비슷한 수준이었을 텐데.

       

       ···열등생?

       

       그러고 보니 어제 유독 힘들어했는데.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게 아니라고?

       

       

       “그녀는, 분명 평범했던 게···?”

       

       “무슨 소리야? 평범은 무슨. 나랑 접점도 없는데 열등생이라고 소문났는데. 너, 주변에 관심 없구나.”

       

       “···그런가?”

       

       “그래. 소문이라도 좀 듣고 다녀.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시우는 일단 그에 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내 직감은 물리적인 위협만 알려준다고 판명 났었다.

       

       측정해줬던 담당 선생님은 성장의 가능성이 있다고는 했지만, 그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고도 했고.

       

       생명의 위기를 느낄 정도가 아니면 성장하기는 힘들다고 했던가.

       

       여태껏 그런 경험을 한 적은 없었다.

       

       3급 마수를 처치했을 때도 그 정도로 몰려있진 않았으니까.

       

       내가 착각한 거겠지.

       

       

       “예전보다 태도를 다루는 기술은 떨어졌어. ···하지만, 신체 능력이 압도적으로 좋아진 것처럼 보였어.”

       

       “기술을 떨어트리는 대신 올라간 기본 스펙이라. 포션인가?”

       

       “포션?”

       

       “응. 그런 포션이 있어. 광폭화 포션이라고 해서, 스펙을 압도적으로 높여주는 대신 지능이 순간적으로 감퇴하거든. 그래서 기술을 잘 펼치지 못해.”

       

       

       광폭화 포션이라.

       

       들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라이라의 현 상황과는 맞지 않는 것 같은데.

       

       

       “그건 나도 들었지만, 광폭화 포션처럼 미친 듯이 날뛰지는 않던데. 그건 진짜 미친 듯이 날뛰어서 그렇게 이름 붙은 포션이잖아.”

       

       “글쎄, 그러면 나도 잘 모르겠는걸.”

       

       “수확은 없나···.”

       

       “아니, 하나 있어.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사람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아냈으니까.”

       

       

       모른다는 걸 아는 것도 중요한 법이야.

       

       그렇게, 아멜리아가 웃으며 말했다.

       

       

       “모르는 걸 아는 게 중요하다, 라···.”

       

       “중요하지.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존재해. 미지에 대한 공포심이.”

       

       “···잘 알 것 같아.”

       

       

       미지에 대한 공포라면 뼈저리게 느껴본 적이 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할 수 없는 여자.

       

       온종일 생각해도 그 마음을 파악할 수 없는 여자.

       

       아르테 이시스, 그녀에게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래? 뭔가 무서워 하는 게 있나 보네. 그럼 그거, 해결했어?”

       

       “아니, 아직.”

       

       “흐응···. 나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사람이 죽는 걸 두려워하는 이유도 미지에 대한 공포 때문이래.”

       

       “···그래?”

       

       “응. 죽은 뒤에 우리는 어떻게 될까. 천국이라는 게 정말 있을까? 윤회하게 될까? 만약 천국이라는 게 있다면, 나는 천국에 갈까, 지옥에 갈까. 생각해 본 적 있어?”

       

       

       전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죽은 뒤에 어떻게 되냐니.

       

       잘 모르겠다.

       

       

       “결국 우리는 죽은 뒤에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몰라. 사후세계라니, 결국 인간이 지어낸 것. 직접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서 죽음이라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는 거지?”

       

       “맞아. 죽은 후에 어떻게 될지 안다면 사람들은 죽음을 그렇게까지 두렵다고 여기지 않을 거래. 재밌지?”

       

       

       배시시 웃는 아멜리아의 모습이 살짝 의외였다.

       

       내가 모르는 모습을 엿본 듯한 기분.

       

       아가씨 같은 모습답지 않게, 과격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녀의 새로운 일면을 엿본 느낌이었다.

       

       

       “네가 두려워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한 번쯤은 알아보려고 해도 좋지 않을까?”

       

       “알아본다···.”

       

       “그래. 자라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솥뚜껑이었다! ···같은 거, 있을 법하지?”

       

       

       아멜리아의 말이 맞았다.

       

       확실히 그녀가 내게 보여준 모습은 두려웠다.

       

       하지만 아르테를 막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무서워하면 안 돼.

       

       아멜리아의 새로운 일면을 확인했듯이.

       

       아르테의 새로운 면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마워, 아멜리아. 도움이 됐어.”

       

       “다행이네. 자,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자고.”

       

       “응.”

       

       

       뭔가,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 머냐… 정말 하고싶은 말은 많거든요. 작가의 말에 이것저것 쓰고 지우고 하고있네요.

    30분가까이 이게 스포일까? 말해도 될까 하면서 고민하고 있는데,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가서 결정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상상하는 재미를 위해 제가 소설에 더 첨언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평소에 올리는 시간대에 한편 더 올라올 예정이에요

    ***

    이븨븨 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레이호시 님, 3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S급 빌런, 그 이름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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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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