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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0

    <140 – 곡예수행>

     

    지젤은 처음 도로시에게 오크노디가 하급반 학생을 불타는 링에 뛰어들게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뭔가 착각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불쌍한 과거를 지녔지만 누구보다도 착한 아이.

    그런 선하고 무해한 아이가 심한 짓을 한다니.

    그로서는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게 왜 진짜지?”

     

    막상 도착한 현장.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는 어떠한 거짓도 없었다.

     

     

     

    * *

     

     

    <운빨로 아카데미 졸업하기>에서는 업적을 저지르면 타이틀과 함께 능력치 보정효과를 받는다.

    하지만 이 업적이라는 것이 꼭 대단한 활동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불타는 링 통과하기>처럼 일반적으로는 행할 일이 없는 기행에 분류되는 것들도 성공할 때마다 칭호를 주는 경우가 있다.

     

    ‘서커스 기행코스가 단기간에 능력치를 빨아먹기에는 가장 효율이 좋지!’

     

    그래서 열심히 채찍을 휘둘렀다.

     

    “뛰어, 모브! 이번엔 세 개를 연달아 넘는 거야!”

    “못해못해못해! 몸이 너무 무겁다고오!”

    “이거 넘으면 민첩해져!”

     

    열심히 모브를 독려하고 있자니 뒤에서 기겁하는 소리가 들렸다.

     

    “꼬마숙녀. 지금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앗. 언제 왔어요, 지젤아저씨?”

    “오크노디가 남학생 한 명을 학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만 설마 그게 진짜였다니…”

    “우씨. 학대 아니거든요? 훈련이에요.”

    “서커스 훈련도 훈련이라고 주장할 순 있겠군요.”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보니 이 광경이 어떻게 보일지 한 번 고민하게 되었다.

    채찍을 휘두르며 불타는 링에 중량도구를 주렁주렁 매단 남학생을 뛰어들게 만드는 여자아이.

    …정상적인 광경은 아니다.

     

    “이해해주세요. 모브는 오늘까지 능력치를 올려야 내일 시험에서 통과할 수 있거든요!”

     

    모브가 낙제위기에 걸리지만 않았으면 애초에 이런 짓을 하지 않아도 됬겠지만 말이다.

     

    “아아악! 다리에, 다리에에에━!”

    “앗, 지금 꺼드릴게요!”

     

    미리 물 생성 주문으로 가득 채워둔 양동이를 힘껏 끼얹으니 모브의 다리에 붙었던 불이 꺼졌다.

    몸부림차다가 물을 맞고 축 늘어진 모브의 몰골이 마치 살인현장에서 시체 한 구라도 발견한 것처럼 보여서 조금 웃음이 나왔다.

     

    “킥킥. 머해, 모브? 이거 했다고 그렇게 지쳐버리면 어떡해.”

    “…10분만 쉬게 해줘…”

    “알았어. 딱 10분만이야!”

     

    모래시계를 탁 뒤집고 정확히 시간을 재는 모습에 모브의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무리 훈련이 급해도 그렇지 너무 위험한 건 아닙니까? 실제로 불까지 붙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양동이에 물도 채워뒀잖아요!”

     

    방금 비운 양동이에 다시 한 번 <물 생성> 주문을 걸자 거품이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물이 나왔다.

    손가락으로 콕 찍어먹으니 취향대로 달달하고 맛있는 사이다맛 물이 완성됐다.

    뿌려도 되고 마셔도 되는 물이라니 이거 완전 최강 아닌가?

     

    “아카데미 측에서 안전사고가 생길지 모른다고 제재를 가하지는 않겠습니까?”

    “아. 그거라면 괜찮네. 안 그래도 오크노디양이 허가를 구해서 지켜보고 있으니.”

     

    상자 뒤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던 교관 한 명이 손을 흔들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물 한 잔 드릴까요?”

    “오. 부탁하네. 이상하게 오크노디양이 만드는 물은 톡톡 쏘는 달달한 맛이 들어서 아주 마음에 들어. 물팔이 견습마법사들도 이런 거나 좀 배워야 하는데.”

    “헤헹. 아무나 저만큼 할 수 있으면 곤란하죠. 이것도 다 노하우에서 나오는 거라구요.”

    “하하. 열한 살보다 노하우가 부족한 것들은 마법사 노릇을 할 자격도 없겠군.”

    “에이. 다 제가 잘난 탓이죠.”

     

    대수롭지 않게 하하호호 웃으며 교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지젤이 무언가 굉장히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교관을 째려봤다.

     

    “꼬마숙녀. 제대로 된 어른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남에게 시키지 않습니다. 아무리 교관이 동행했다고 해도 이 훈련은 너무 과합니다.”

    “그게 문제예요?”

    “그게 문제입니다.”

    “흥. 그럼 제가 증명하면 되는 거네요? 그땐 지젤도 아무 말 못하는 거죠?”

    “오크노디? 지금 뭘 하려고… 오, 오크노디양!”

     

    지젤이 귀찮게 말리려 들 틈도 없이 재빨리 불타는 링을 향해 도약하였다.

    팟-!

    작은 키 탓에 모브처럼 고개를 숙여 통과하는 대신에 훌쩍 높이 뛰어올라 통과한다.

    링 하나를 통과하자마자 빈 공간을 손으로 짚고 팔 힘으로 강하게 지면을 밀어 통과한다.

    마지막으로는 두 다리로 착지했다가 스프링처럼 몸을 크게 펼치며 빙그르르 1080도 회전을 하며 착지 후 두 팔을 벌리며 짜잔 등장!

     

    [불타는 링을 뛰어넘는 묘기곡예에 성공했습니다.]

    [도약 경험치+10]

    [곡예 경험치+5]

    [멀리뛰기 경험치+2]

    [칭호 <곡예사:불타는링>을 습득합니다.]

    [칭호보유효과로 민첩이 1 상승합니다.]

     

    능숙한 착지에 지젤이 겨우 한 시름 놓았다.

     

    “사람 놀래키는 데에는 정말 도가 텄군요. 그러다가 불이라도 붙을까봐 깜짝 놀랐습니다. 부디 부탁이니 다시는 안 그랬으면 좋겠군요.”

    “지젤아저씨는 바라는 게 너무 많아요!”

    “약속해주시면 오크노디가 먹어보지 못한 음식 하나를 사드리겠습니다.”

    “와 정말요?”

    “약속입니다.”

    “네 약속!”

     

    손가락을 걸고 위아래로 흔들며 엄지로 도장까지 꾹 찍었다.

     

    “히히.”

    “후우. 곡예실력이 대단하던데 어디서 비슷한 경험이라도 해본 적 있습니까?”

    “예전에 많이 해봤어요! 민첩해지려면 곡예를 잘 해야하거든요. 초심자 시절에는 막 불도 붙고 그랬는데 익숙해지면 겁도 안 나고 보상은 쉽게 받고 그래서 오히려 꿀이에요!”

     

    지젤이 갑자기 등을 돌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지젤아저씨?”

    “아, 죄송합니다. 잠시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그만…”

    “나이 먹으면 고생이 많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걱정만 늘어서 정말 하루도 편히 보내질 못하겠습니다.”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10분짜리 모래시계가 바닥 가득 쌓였다.

     

    “일어나요, 모브. 다시 곡예점핑시간이에요.”

    “그으읏… 너무 힘들어…”

    “엄살 부리지 말고 빨리 일어나요. 그래야 내일이 되기 전에 단도저글링 5개 돌리기랑 접시돌리기, 공중제비도 돌죠!”

    “애초에 시험은 바위 부수기인데 민첩훈련을 왜 하는 거냐고…”

    “민첩계수가 높아야 약점찌르기 크리티컬 데미지가 잘 박히죠.”

    “이런 건 진짜 이상해…”

    “모브. 학년수석 되보셨어요?”

    “…”

    “아니면 시키는 대로 하세요!”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일어난 모브가 불타는 링을 향해 다시 뛰어갔다.

    이번에는 상반신에 불이 붙은 모브가 사람살려를 외치며 발버둥쳤다.

    양동이로 힘껏 물을 끼얹으며 생각했다.

     

    “모브도 참 배움이 느리다니깐!”

    “나 그냥 낙제 당할래…”

     

    약한 소리를 하는 모브의 입에 플라톤 교수님에게 받았던 프로틴쉐이크를 들이부었다.

     

    “이거 먹고 빨리 체력회복이나 하세요!”

     

    이렇게 애지중지 챙겨주는데 낙제 당하는 건 진짜 말이 안 돼!

     

     

    * *

     

     

    용사 이슈타르는 심란함을 느꼈다.

     

    “오크노디… 하필이면 어째서 네가 마왕후보로 손꼽히고 있단 말이냐…”

     

    동료후보 1순위.

    누구보다도 탐이 나던 아이가 하필 마왕후보라니.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악마군주.

    다크프린세스.

    그것들은 모두 마왕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

    선행클래스라는 사실을.

    마계의 거물들은 마왕의 권좌에 도전할 자격이 있다.

    오크노디는 그 자격이 예정된 자.

    본인만 원하면 언제든지 마왕후보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악신들도 그 거취를 주목한다.

    사악한 거악들이 손을 내밀거든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인간은 본디 힘의 유혹에 약하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도 그 힘에 이끌린 이들이 대다수가 아니었던가.

     

    “이슈타르. 그만 포기해요.”

    “오크노디는 아직 마왕후보생이 아니야.”

    “용사파티에서 배신자가 나오면 그 시대의 용사는 십중팔구 사명의 달성에 실패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잖아요.”

    “원통해서 그래. 재단 녀석들은 대체 어떻게 오크노디를 발견해서 저 아이를 꼬드기고 저런 사악한 운명을 걷게 하는 건지. 운명이 원망스러워…”

     

    안목키우기 강의에서 있던 일을 소문으로 듣자마자 이슈타르는 오크노디보다 그녀의 배후에 존재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재단을 원망했다.

    와이히엠하이 재단.

    전 세계의 인재들을 모집해서 세계제일의 교육기관에 파견하고, 그들의 재능을 인질로 삼아 아카데미에 압박을 가하는 조직.

    이 불길한 단체는 기어이 용사파티의 동료후보로 손꼽힐만한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마저 수석장학생으로 선출해 대놓고 인질극을 벌이는데 성공했다.

    당대 용사인 이슈타르가 오크노디의 처우를 두고 이렇게 번민에 사로잡힐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걱정 되면 한 번 찾아가보지 그래요?”

     

    용사 이슈타르의 소꿉친구 유피.

    그녀가 하루 종일 끙끙 앓는 이슈타르의 꼴을 보다 못해 조언을 했다.

     

    “그래야겠어. 조언 고마워, 유피.”

     

    일단 만나자.

    가서 오크노디와 직접 대화를 나눠보자.

    적성이야 단순히 어쩌다 그런 적성이 걸렸을지도 모르고, 재단은 의외로 제대로 된 교육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렇게 오크노디를 수소문해서 찾아간 외진 곳에는 불타는 링과 학대당하는 소년, 답답하다는 듯이 자기가 직접 링을 뛰는 오크노디가 있었다.

     

    “이러케이러케 하면 되잖아요. 이걸 왜 못해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넋이 나간 그녀의 귓가에 현장 구석에서 중얼거리는 지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단 녀석들… 대체 몇 살부터 오크노디에게 저런 끔찍한 수련을… 그것도 저런 수련이 오히려 꿀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가혹한 훈련일정을…”

     

    젠장.

    역시 재단은 나쁜 녀석들이 맞았잖아.

    이슈타르는 결심했다.

    저 아이는 무조건 재단의 품에서 벗어나게 하자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용사파티에 받아들이자고.

    눈앞의 여자애 하나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딜 용사를 자처할 자격이 있겠냐고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스탯작은 못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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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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