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40

       

       『아, 접니다.』

       

       교수 한 명이 손을 들며 말했다. 여전히 강의실은 어두워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 목소리는 영어 수업을 하던 다나까 류쇼(田中龍勝) 교수였다. 

       

       『다나까 선생이?』

       『예. 나까모리 선생이 본인은 연구로 바쁘다며, 저에게 충견(忠犬)을 맡겼었지요.』

       『하지만 선생은 일반과 교수잖습니까? 영어를 가르치는.』

       

       그 물음에 다나까 교수가 설명했다.

       

       『별 것은 아니고, 나까모리 선생이 충견을 제어하는 ‘명령어’를 영어로 하자고 하여, 애초부터 저와 푸로젝트를 공유했었습니다.』 

       『아, 그것이 그렇게 되었었군요. 명령어 때문에.』

       『예. 명령어가 일본어나 조선어라면 일상생활에서 예기치 못하게 혼선을 빚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영어 중에서도 자주 쓰이지 않는 어휘로, 제가 명령어를 정했지요. 모처럼 말이 나온 것, 이 자리에서 명령어를 공유할까요?』

       

       그 말에 다른 교수들은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이야, 괜찮습니다. 영어라면 질색이니까요.』

       『그래요. 영어를 잘 하는 다나까 선생만 계속 알고 있으시오.』

       

       다나까 교수는 상석에 앉은 교수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이번 회의의 안건이 충견인 것은?』

       『그것이 다름이 아니라…… 그 ‘충견’이 근래들어 사고를 많이 일으키고 다니는 듯 한데, 폐기하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라고 생각합니다만.』

       

       상석에 앉은 교수의 제안에 다른 교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사고라고 한 것은 물론 근 수일간 경성에서의 늑대 사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다나까 교수가 놀라며 항변한다.

       

       『에에, 폐기는 이르지 않습니까? 나까모리 선생의 죽기 전에 만들어낸 역작이잖습니까. 뭐니 저러니 해도, 인간 마수화의 성공적인 사례—』

       

       그 말에, 다른 교수가 얼른 말을 끊고 지적을 한다. 

       

       『이야이야, 다나까 선생! 용어를 주의해서 말해 주세요. 히가시노리 연구소에서 제안한, ‘을종(乙種) 황국신민화’라는 좋은 용어가 있잖습니까? 단순히 육체적인 변화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충성심 역시 고취되니까요.』 

       

       다나까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아무튼 그 말대로, 능력도 만연히 개화한데다, 저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부작용이라면, 사람을 잡아먹어야 능력이 유지되는 것입니다만……』

       『그게 바로 문제라는 거요. 이렇게 사고를 일으키다간 결국 경찰에 목덜미를 잡히지 않겠소?』

       

       상석에 앉은 교수가 묻자, 다나까 교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경찰은 전연 눈치채지 못하고 있으니 너무 심배할 것은 없습니다. 신문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야생 늑대의 소행으로 단단히 믿고 있더군요.』

       『하긴, 조선에는 아직도 야생 늑대가 많으니까요!』

       

       가만히 앉아있던 다른 교수도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사요오(さよう; 그렇소이다)! 경성부는 그나마 낫지만, 부외(府外)로만 나가도 늑대 지옥이지요, 지옥! 일본 내지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만.』

       

       그런 맞장구를 받으며, 다나까 교수는 이어 설명했다.

       

       『에또, 그리고 쓸모가 없지는 않고요. 지난달에 있었던 ‘령입자 흡인기’ 폭파의 건 말입니다. 학교 내부 인원, 특히 생도 중의 하나의 소행이 아닐까 싶어, 행적이 수상한 생도를 찾아오라는 지시를 내려둔 참입니다.』

       『생도의 소행이라고 생각한다고요? 

       

       다나까 교수가 설명했다.

       

       『예. 나까모리 선생에게 들었던 것이지만, 신사 지하에 령입자 흡인기가 수장된 잔해에서, 남학생도의 제복 단추며 천조각 같은 것을 발견했었다더군요. 결정적으로, 교탄(敎彈)이 발견되었으니, 아마 사격술 전공의 생도가 아닐까 짐작되는 것입니다.』

       『과연! 만약 적(敵)이 생도라면, 뭐니 해도 같은 생도라야 찾기가 수월하겠지요. 교수의 입장에서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이런 목적에서는, 충견도 꽤나 쓸만하군요.』

       『실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마침 의심스러운 생도 하나를 주시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상석에 앉아있던 교수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의심스러운 생도요?』

       『예. 아직 이름까지는 전해듣지 못했습니다만, 사격술 전공인데다가 실력도 뛰어나고, 은근히 사회적인 불만을 표출하는 말을 자주 하는 녀석이라고 합니다.』

       『호오…….』

       

       다나까 교수의 말을 들으면 확실히 여러 면에서 수상한 생도임이 분명해 보였다. 교수들이 흥미를 보이자 다나까 교수는 마지막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조금 더 기다려 보지요.』 

       

       

       

       ***

       

       

       

       “누가 내 얘기를 하나 보군!”

       

       송병오 녀석은 버스 창문에 비친 얼굴을 연신 들여다보며 머리를 매만지다가 귀를 긁적였다. 나는 녀석에게 농담삼아 말했다.

       

       “글쎄. 공팔자 걔가 친구한테 네 흉이라도 보는 게 아닐까.”

       “뭐? 흐흐! 예끼, 이 사람아! 그 애는 남의 흉이나 보는 그런 사람이 아닐세!……”

       

       그렇게 말하는 송병오 녀석은 아주 입이 귀에 걸렸다. 고작 몇 시간 얘기를 나눈 것만으로 어지간히 빠진 모양이었다.

       

       뭐,남의 연애사에 내가 신경쓸 필요는 없겠지. 어쨌거나 공산주의 책 따위나 탐독하던 녀석이 세상을 밝게 보게 되다니, 사뭇 긍정적인 변화가 아니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버스는 어느새 하숙집이 있는 동네에 다다랐다.

       

       “돈간마찌데스-! 돈암정이요-!”

       

       버스가 감속하기 시작하며 안내양이 외쳤다. 아니, 안내양이 아니지. 지금 사람들은 죄다 ‘뻐스·껄’이라고 부르더라. 정식 명칭은 여차장이라던가.

       아무튼 버스 문이 열리자 나는 송병오에게 말했다. 

       

       “먼저 내려.”

       “응? 자네는 어딜 가려나?”

       “경성 시내에 좀 가 보려고. 뭘 좀 알아볼 게 있어서.” 

       “아침에 말한 기선회사 말인가? 자네, 미국 여행이니 뭐니 노래를 부르더만, 아주 몸이 달았군 그래!”

       “응. 미리 배표 가격이나 알아보려고. 어딜 가면 좋을까…….”

       

       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송병오가 말했다.

       

       “글쎄! 다른 곳은 몰라도 내 알기로 조선우선이 남대문통에 있을 걸세.” 

       

       이름있는 기선회사 이름인 모양이었다. 아무튼, 남대문에서 내리면 되는 건가. 송병오 녀석은 먼저 내리고, 나는 경성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 그대로 남았다. 버스는 경성 시내를 통과해, 총독부 앞을 지나고 선은전 광장도 지난 뒤에 버스 걸이 외쳤다.

       

       “난다이몬데스-! 남대문요-! ”

       

       남대문 앞 광장에서 내린 나는, 행인들에게 물어가며 기선회사를 찾았다. 

        

       ‘여긴가.’

       

       어렵게 찾을 것도 없이, 남대문 광장에서 경성역 방향으로 통하는 큰길에 줄지어 선 근사한 건물들 중, 3층 석조건물의 전면에 세로로 <조선 우선(郵船) 기선 주식회사>라는 글자가 양각으로 붙어 있는 건물이 있었다. 

       

       과연, 꽤 이름있는 회사인가. 이런 곳에서 배표를 사면 되는 모양이었다. 

       

       물론 지금 바로 미국으로 갈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급할 때 헤매기 전에 미리 연습해두는 것이다.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또, 학생 신분으로 해외로 가는 배표를 구할 수 있는지도 알아야 했다. 학교 다니다가 수틀리면 바로 해외로 내뺄 생각이었으니까.

       

       기선회사 건물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외로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 배를 타러 온 사람들인가? 나는 실내 한쪽 벽에 붙어있는, 운항노선을 적어놓은 표 앞으로 다가갔다.

       

       ‘어디보자.’

       

       운행 노선을 슬쩍 살펴보니 느낀 것은, 의외로 국내 노선이 활발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선내선(鮮內線)으로 쓰여 있었는데, 그러니까 조선 내의 한 항구에서 조선 내의 다른 항구로 이동하는 노선 말이다.

       

       하긴, 아직 고속도로는 만들어지기도 전이고 철도 노선은 몇개 있지도 않으니, 국내에서 다른 먼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항구에서 항구로, 예를 들어 인천에서 목포나 여수로 가려면 내륙을 가로지르는 것보다 배를 타는게 더 용이한 것이다.

       

       이곳에 북적이는 손님들은 대개 이런 선내선(鮮內線)을 타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물론 조선 내 노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상하이나 일본의 나가사끼, 시모노세끼 등으로 가는 해외 노선도 꽤 있었다.

       

       ‘미국을 가려면 나가사끼나 시모노세끼에서 갈아타야 한한다고 했지.’

       

       운임비는 노선이나 승객 등급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했지만, 주로 조선 안에서 이동하는 것은 몇 원, 일본으로 가는 것은 몇십 원이었는데,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그리 어려운 돈은 아니었다.

       

       ‘좋아.’

       

       기선회사 홀을 둘러보니,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배표를 사기 위해 신청 서류 비슷한 것을 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쪽으로 다가간 나는 작성 견본을 보고, 승선신입서(乘船申込書)라는 이름의 신청서 양식을 써내려갔다.

       

       ▼행선지 長畸(나가사끼)

       ▼성 명 白林哲然(백림철연)

       ▼연 령 만십칠세

       ▼민 족 조선인

       ▼직 업 학생(경성엽사전문학교)

       ▼주 소 경성부 돈암정 삼십사번지 이십일호

       ▼목 적 여행

       

       ‘이 정도면 됐나.’

       

       대충 양식을 기재한 나는 접수 창구에 가서 서류를 들이밀었다. 창구에 앉아있던, 이십대 중반 남짓해 보이는 여성 사무원은 종이를 받아들고 설렁설렁 훑어보다가 대뜸,

       

       “엽사전문? 학생, 각성능력자요?”

       

       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묻는다. 나는 되물었다.

       

       “예. 문제가 됩니까?”  

       “몰라요? 조선인 각성능력자는 제 맘대로 해외로 나갈 수 없지! 내지(일본)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고.” 

       

       뭐라고? 나는 사무원에게 물었다.

       

       “아니, 왜요?”

       

       내가 묻자 사무원 누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설명했다.

       

       “원, 학생야말로 모르는 수가 있어? 그, 몇 해 전에 조선인 각성자 한 놈이 글쎄, 동경에 가서 천황 폐하를 해하려 한 적이 있지 않아! 아-주 난리였는데…… 아무튼 그때부텀 법이 바뀌어가지고는, 조선 놈들 중에서 각성능력인 놈은 조선 밖으로, 제 맘대로는 못 나간다, 이거야.” 

       

       몇 년 전에 조선인 각성능력자가 일본 도쿄에서 천황을 상대로 테러를 시도했기 때문에, 조선인 각성능력자는  일본으로도 마음대로 못 가는 법이 생겼다고 한다. 명목상으로는 한 나라인데도.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센징밴이냐고!’

       

       21세기에서 해외 게임 서버가 한국인의 접속을 막아두는 것을 농담삼아 ‘센징밴’이라고 하긴 했지만, 이거야말로 진짜 센징밴이 아닌가. 

       

       돈이 있어도 조선인 각성능력자라는 이유로 해외를 못 나간다니. 송병오 녀석의 말마따나, 조선인 각성능력자는 예비 범죄가 취급이었던 것이다.

       

       “뭐, 방법이 없어요?”

       

       내가 사무원에게 묻자 사무원은 아직도 안 갔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글쎄, ……신분증명서가 있으면 안될 것도 없지!”  

       “신분증명서요?”

       “그래. 지역 경찰서장의 도장이 찍힌 걸로. 이런 걸로 말야!”

       

       사무원 누나는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서랍에서 조그마한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다. 나는 종이를 받아들고 살펴보았다.

       

       증명사진이 한 장 붙어있는 조그만 종이쪼가리였는데, 확실히 기재 내역 중에 [기타·각성능력 여부 급(及) 등급] 이라는 항목이 있었고, 좌측에는 지역 경찰서장의 것으로 보이는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나는 사무원에게 종이를 돌려주고 생각했다.

       

       ‘경찰서장의 신분증명서라…….’

       

       조선인 각성능력자가 조선 밖으로 여행하려면, 지역 경찰서장으로부터 신분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라. 마침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렇잖아도 오늘 저녁에 종로경찰서장을 만날 생각이긴 했는데.’

        

       차라리 잘 됐다. 어차피 오늘 만나려고 했으니. 적당히 호감과 신뢰를 확인한 뒤에 신분증명서 한장 써달라고 부탁하면 어렵지 않게 들어줄 것이다.

       

       단순히 표면적인 인맥이나 트려는 생각이었기에 계속 만남을 미뤄왔었는데, 이렇게 쓰임새가 생기게 되자 단번에 의욕이 생겨났다. 

        

       ‘서류 한 장 써달라고 종로경찰서장을 만나는 놈도 없겠지.’

       

       아닌게 아니라, 종로경찰서장이라는 그 직위만으로도 대다수의 조선인들에게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종로경찰서장을 자신의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이용하려는 조선인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였다.

       

       ‘알게 뭐냐. 서류 발급기로 이용해 주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연재일이 아니지만, 내일은 왁찐을 맞으러 가기 때문에 오늘 미리 써서 올립니다!
    내일 업로드가 될지 안 될지는 모루겟소요!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