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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0

        나는 뛰쳐나간 로즈마리를 붙잡기 위해 온힘을 다해 내달렸다.

       

        긴 치마를 입은 채로 어떻게 저리 빠르게 뛰는지 모르겠다. 발에 모터라도 달았나? 아, 달았겠구나.

       

        “잠깐, 거기 좀 서 봐!”

       

       쏜살처럼 튀는 로즈마리를 불러세웠다. 군청색 머리카락이 사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반 바퀴 회전했다.

       

        “어, 언니.”

       

        폐소공포증 때문인지 로즈마리의 얼굴이 창백했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내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에선 가련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는 허공에 삿대질을 했다.

       

        “저쪽으로 가자.”

       

        내가 가리킨 곳은 아카데미 북부에 위치한 노천극장이었다. 몇 달 전 입학식에서 로즈마리가 습격을 걸어 반쯤 부숴놓은 그 노천극장 맞다. 그 일이 있었던 직후 지계마도사들이 어떻게든 공사를 마무리한 덕분에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 노천극장의 뒤편이 나름 좋은 장소다. 여기 있으면 교수의 눈을 피해서 마력초를 피울 수 있다. 대학원생 중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들 아는 핫플레이스. 

       

       대화만 하면 입이 심심하다. 품에서 버릇처럼 골든슈타인을 꺼낸 로즈마리가 내 입에 담배 하나를 물려주었다. 입에 물자마자 느껴지는 격이 다른 연초의 쌉싸름한 맛에 머리가 둥실거린다.

       

        매연 한 모금을 머금고 기다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로즈마리였다.

       

        “저런 폭탄은 우리 집에서 만들어도 되잖아요.”

       

        로즈마리의 눈가에는 약간의 물기가 고여있었다. 폐소공포증을 느낀 직후의 모습이라 그런지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 울먹이는 어린아이처럼 잠긴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에서 애처로움이 묻어나왔다.

       

        “집에 가면 더 좋은 재료와 도구가 많이 있어요. 실험실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구요.”

       

        그래, 집. 집이라.

       

        집은 마왕성을 비유적으로 이루는 말이다. 이 몸의 원주인이 웬만하면 두 번 다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한 장소.

       

        “집에서 연구하는 편이 더 나은데도 불구하고 언니는 이곳 인간들의 아카데미에서 연구하는 길을 선택했어요. 왜 이런 선택을 하셨는지 전 잘 몰랐어요. 그래서 언니가 동아리에서 무슨 일을 하시나 알아보려고 이렇게 고집을 부렸어요. 그런데 저런 폭탄을 만드시는 거라면…….”

       

        지금이 말허리를 자를 적기였다. 나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왼손으로 옮기고는 입을 열었다.

       

        “저건 모형이야.”

        “예…?”

        “말 그대로 모형이라고.”

       

        로즈마리는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로 쳐다보았다. 당연하다. 나 같아도 쉽게 안 믿는다.

       

        “예술 전시회나 발명대회에 내는 건 기정사실이야. 거기서 돈을 조금 타먹어야 하거든.”

        “돈이요? 돈은 왜요?”

       

        로즈마리는 일단 들어보겠다는 스탠스를 취했다. 이럴 땐 에테르의 몸이 정말 편리하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개소리 하지 말라면서 스태프로 목을 그어버렸겠지. 블루베리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제국 경제가 안 좋아서 모아뒀던 돈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돈을 벌 수단이 마땅찮으니 이런 거라도 해서 자금을 벌어야지.”

        “연구 자금이요?”

        “생필품 구매비용도 포함해서.”

       

        내 말에 로즈마리는 아, 하고 짧게 탄식을 흘렸다. 필리우트 제국 경제를 박살낸 건 다름 아닌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즈마리는 곧 대수롭지 않다는 듯 표정을 말끔이 바꾸었다. 

       

        “언니 돈은 제가 대신 지원해 드릴 수 있어요.”

       

        물었구나. 예상보다 빠른걸.

       

        “제국 경제를 박살낸 건 저예요. 큰 고기는 잘게 썰어 놓아야 나중에 먹기 편하죠.”

        “그 살인적인 물가에 나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연구자금이건 생필품 구메하는 데 드는 돈이건 제가 전부 감당해 드릴 수 있다는 뜻이에요. 저번에 디저트 카페에서도 말씀드렸잖아요. 저 돈 많다고.”

       

        황제도, 재무장관도, 조폐국장도 아닌 일개 공작가의 자제가 이만한 나라의 경제를 꽉 쥐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쯤 되면 제국은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 없겠는데.

       

        갑자기 제2황자가 안타까워지기 시작했다. 왜, 자기 대에서 권력의 총화가 끊겨버리는 거잖아. 나에게 한 짓과는 별개로 이건 불쌍한 게 맞다.

       

        “단, 언니가 저희를 살려주신다는 전제 하에요.”

       

        이건 또 무슨 농담인가 싶다. 난데없이 살려달라니. 얘는 무슨 내가 광폭한 학살자로 보이나.

       

        “제 잘못으로 언니가 생활고에 찌들어 계신다는 건 알았어요. 이 점은 제가 참작해서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잘 조정할게요. 하지만 제가 도와드린 만큼 언니도 절 도와주셔야 해요.”

        “그 도와준다는 게, 살려달라는 소린가?”

        “네.”

       

        로즈마리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맨 처음과는 다르게 조곤조곤한 투였다. 

       

        “얼마 전, 언니는 저에게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 없다고 답하셨어요. 즉 아직까지는 중립이라는 거죠. 그래서 저 폭탄이 모형이라고 언니가 말했어도 전 믿지 못하겠어요. 죄송해요.”

        “미안하긴 뭘. 합당한 추론이지.”  

        “그러니까 최소한의 보험이라고 들고 싶은 거예요. 저 폭탄이 인간의 손에 넘어가지만 않게 해 주세요. 우리 군에 피해만 안 준다면 언니의 연구가 끝날 때까지 제국에게 유예기간을 줄 수 있어요.”

       

        치밀함이 담긴 발언이다. 나를 매개로 제국의 멸망을 결정짓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내가 무슨 연구를 하는 줄 알고?”

        “어떤 연구라도 하시겠죠. 다만 그 연구까지 포함해서 마왕군에 피해만 안 주길 바랄 뿐이에요.”

       

        이렇게 된 이상 선택이 강요된다.

       

        로베스피에르 이사장과 그 일당에겐 가능한 플레어 소형화를 일찍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뫼스바이어라는 이름의 교수가 있었다. 그 교수는 로즈마리가 심어 놓은 스파이다.

       

        틀림없이 내가 이사장과 내통하고 있다는 걸 로즈마리도 알 터. 거기까지 고려했다면 언약이라도 좋으니 날 묶어놓을 심산인 거겠지.

       

        물론 언약 따위 씨알도 안 먹히는 게 절대다수다.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계약은 계약서로 해야지, 안 그런가? 괜히 말로만 약속을 주고받았다가 뒤통수 맞기 딱 좋다.

       

        문제는, 에테르가 이런 언약조차도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불신과 통수가 일상인 각박한 사회에서 언약을 지키려 하다니. 좋게 말하면 착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호구나 다름없다. 아, 아니지. 둘이 같은 표현인가?

       

        어쨌건.

       

        “그러지 뭐.”

        “약속한 거예요?”

       

        나와 로즈마리는 새끼손가락을 걸며 담배를 마무리했다. 슬며시 웃는 모습에 마음이 잠깐 여려졌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아무리 이런 몸이라지만 정신은 인간. 사고체계가 다른 마수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이전에 나는 이 세계를 떠나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적이 있다. 지구로 가려면 마도연구를 완성해야 한다. 그 연구를 끝마치기 전에 마왕이 부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수소탄 개발도 우선순위를 높게 잡아야 한다.

       

        로즈마리가 마왕군을 때려치우기라도 하면 모를까. 장래에 스태프를 맞대는 일은 기정사실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서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그래서, 가장 급한 생필품이 무엇인가요? 가능하면 돈보다는 현물로 드리는 게 편할 것 같아서요.”

        “그렇지. 마침 향신료 중에 또 먹고 싶었던 게 있는데.”

        “뭔데요?”

       

        궁금하다면 답할 수밖에 없지.

       

        “베릴륨.”

       

         이게 대량으로 구하기 참 힘들더라고.

       

       

        **

       

       

        좋은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견실한 노력이 요구된다.

       

        좋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런 리스크가 없는 인생에는 성장이 없다.

       

        과실의 맛이 깊어지려면 그만큼 서리를 맞아야 하듯이, 완벽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통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버멜은 그런 기분으로 아카데미 주변 산기슭을 오르는 중이었다.

       

        “…후우.”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예정된 지점에 도착한 버멜은 바닥에 쌓인 낙엽을 발로 치워버렸다. 그러고는 나뭇가지를 주워 그 자리에 연성진을 그려나갔다.

       

        땅을 도화지 삼아 그린 연성진에 마력을 불어넣는다. 이제부터 이 구간은 공기의 보호를 받는다. 역설적이게도 공계마도사가 이런 식으로 보호를 걸어 놓으면 풍화나 침식이 되지 않는다. 연성진이 그 형태를 잃지 않고 수 개월 이상 보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걸로 3개 째.”

       

       찌뿌드드한 허리를 펴자 연골이 맞물리는 소리가 척추를 관통했다. 뻣뻣하면서도 시원한 감각이었다.

       

       연성진을 그려야 하는 장소는 총 다섯 군데. 이제 두 곳만 더 처리하면 된다.

       

        [상급 공계마도 ─ 완벽한 은신(Perfect Stealth)]

       

        아무래도 높은 위계의 마법을 계속 켜놓고 있으니 마력 낭비가 심하다. 그러나 은신을 해제하는 즉시 죽음이라고 생각하니 견딜 만했다. 버멜은 시장에서 사 온 마력초 서너 개를 연달아 물었다.

       

         마력을 보충하는 동안에도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버멜은 속으로 마법의 단어를 외쳤다. 그러자 늘 그랬듯이 반투명한 창이 공중에 팟, 하고 나타났다.

       

        [2번 시련 발생 가능성 : 70.1%]

        [3번 시련 발생 가능성 : 99.9%]

        [4번 시련 발생 가능성 : 80.0%]

       

        ‘돌아버리겠네.’

       

        상황이 좋지 않다. 이대로라면 이번 학기에는 시련 3연타를 맞게 된다. 

       

        1번 시련인 ‘흑사병’으로 그 정도였다. 이번에는 3개 동시에 터지면 진짜 아무것도 못하고 끝이다.

       

        어떻게든 하나라도 스킵하거나, 시기를 잘 조절해서 순차적으로 터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특히 3번 시련은 거의 확정적으로 벌어질 테니 2번이나 4번 가능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뭐야. 4번 확률이 왜 이리 높아…?”

       

        분명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50%였던 게 어느덧 80%까지 올라와 있었다.

       

        4번 시련은 에테르와 관련된 시련이다. 시스템창 기준으로 에테르의 스트레스 수치가 85를 넘기면 자동으로 발생하는 이벤트.

       

        금안족의 타락과 관련된 시련이라는 점에서 17번과 비슷하다.

       

        ‘이거 터지면 진짜 안 되는데….’

       

        4번이 터지면 17번은 확정적으로 터진다. 그러면 18번이 터지고, 20번이 터지고, 21번과 22번, 23번까지…. 버멜은 흐읍, 하고 헛숨을 삼켰다. 상상만 해도 아찔해진다.

       

        그러니까 막아야 한다. 버멜이 아카데미 주변을 돌며 대형 마법진의 각 포인트를 연결하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었다. 3번 시련이 대비되면 4번은 웬만해선 발동하지 않을 테니까.

       

        쉴 틈은 없었다. 버멜은 다음 지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뿐인 동향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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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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