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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0

       누구나 계획이 있다.

        

       미친 듯이 바닥을 굴러다닌 뒤 몸이 걸레짝이 되기 전까지는.

        

       나는 당연히 그 훈련 시간 동안 시간을 몇 번이고 되돌렸다. 심지어 훈련장은 황성 내에 있는 것이었고, 나도 이미 여러 번 사용해본 곳이라 꽤 익숙했다. 황성 부지 안에 있는 곳답게도 당연히 그 산보다는 훨씬 평탄했고,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뛰어다니기 훨씬 편했다.

        

       이론적으로는.

        

       그 이론 안에는 목검을 들고 있는 검성이 없었다.

        

       검을 한 번 한 번 피하는 것은 그래도 해볼 만 했다. 일단 얻어맞고 나면, 적어도 검의 궤적 자체는 루카스가 휘두르는 것과 비슷했으니까. 물론 검성도 진심으로 휘두르는 것은 아닐 테고, 그건 루카스가 휘두르던 것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몇 번 피할 수는 있어도, 내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멀쩡하게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무리 체력 분배를 하면서 제일 나은 방법으로 피하더라도 몇 번이고 쇄도하는 그 나무 검을 무한히 피하는 것은, 검성과 비슷한 실력을 갖추지 않은 이상은 불가능하다.

        

       들고 있는 모의 총기로 막아보기도 했지만, 그뿐이다. 내가 막으려고 하면 검성은 검을 더 세게 휘둘러서 내가 약하다는 사실만 더 확실하게 새겨줄 뿐이었다.

        

       그래도 무조건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루카스가 무작위로 나한테 검을 휘두르지 않은 지 시간이 꽤 흘렀다. 루카스 본인이 사라져버려서 잊어가고 있던 그 감각이 천천히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지금은 루카스가 진심으로 달려들면……

        

       ……음, 솔직히 여전히 자신은 없다. 루카스가 진심으로 단칼에 내 목을 자르려고 달려들면 피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봐도 재능이 없군.”

        

       검성은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서 불만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도 없어 보이고.”

        

       나는 여기까지 와서 도망갔을 때의 그림이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지만, 검성은 그런 내 모습에 다소 감명받은 모양이었다.

        

       “그런 근성은 싫어하지 않는다.”

        

       소년만화에서나 들을 법한 대사였다.

        

       원작 게임을 일본 회사에서 만들었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 이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좋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 말에, 앨리스와 레오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끝까지 서 있기는 했다. 나는…… 음, 그래도 바닥에 누워있는 것은 조금 아닌 것 같아서 의자에 앉아있는 채였고.

        

       허리를 세우고 앉는 것은 힘들 것 같아서, 양 팔꿈치를 무릎에 댄 채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앉아있었다.

        

       그런 내가 걱정되었는지, 앨리스와 레오는 곧장 내게 달려왔다.

        

       “실비아, 괜찮아?”

        

       별로 안 괜찮다. 앞으로 최소 2주는 이런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바로 후회가 밀려들었다.

        

       루카스 찾기, 굳이 지금 할 필요가 있을까?

        

       시간을 되돌려서 그냥 없는 일로 만들어버리고 남은 2주는 푹 쉬면 안 될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괜히 고개를 들었다가 앨리스와 레오 사이, 조금 떨어진 곳에 서있는 검성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는 검성은 웃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는 모르겠다. 흐뭇하다는 웃음일까?

        

       그리고, 그 웃음을 보고 나니, 왠지 시간을 돌리는 행위가 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시간을 돌리는 것은 2주가 끝난 뒤로 하자.

        

       적어도, 내가 책임지겠다고 생각한 것은 확실하게 책임져본 뒤에 시간을 돌려도 늦지 않겠지.

        

       애초에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늦는다’라는 선택지는 없었지만.

        

       “괜찮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앨리스나 레오가 아닌 검성을 향해 있었다.

        

       호오, 하고, 검성의 입 모양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내가 300일 동안 명상 훈련을 할 때, 몇 번 정도 보았던 표정이었다.

        

       적어도 그때보다는 저런 표정을 더 자주 보는 것을 보면, 나의 훈련도 마냥 헛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

        

       ……그렇게,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라버니, 언니 같은 말을 썼다는 것도 시간을 되돌리면 없던 일이 된다.

        

       음, 뭐, 그래도 ‘언니’라는 말은…… 언젠가 앨리스한테 갚아주는 쪽이 좋긴 하겠지. 내 컨셉이 다 무너질 때 쯤, 그러니까 아마, 내가 생각해둔 마지막쯤에 말이다.

        

       이번에는 지보를 찾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제도 안에 지보가 있긴 하지만, 적어도 그건 던전을 깨가면서 찾아야 할 물건은 아니었다.

        

       그러니…… 아마도 ‘나로 추정되는’ 그 검은 로브를 입은 가면녀가 갑자기 튀어나올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나는 황성 훈련장에서, 그 가면 로브를 향해 말했다.

        

       바깥으로 이어지는 공간에는 굳이 불이 켜져 있지는 않았다. 특히 훈련소 정 가운데라면 더 그렇다. 굳이 불을 켜둘 이유가 없으니까.

        

       황성을 올라 지붕을 타고 들어오지 않는 이상은 여기 올 수도 없고, 훈련장의 뚫린 지붕을 통해 안으로 들어온다고 한들 복도를 지키는 경비원한테 걸릴 수밖에 없다.

        

       ……원래는 안쪽에도 경비원이 있어야 하겠지만. 훈련장을 조금 더 확실하게 눈에 익혀두고 싶었던 내가 다 내보낸 뒤였다.

        

       저 가면녀는 그 사이에 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우연은 아닐 것이다.

        

       만약 저게 ‘나’라면, 내가 언제 무슨 일을 했는지 정도는 기억할 테니까. 하루하루를 전부 기억하지는 못해도 내가 뭔가 겪은 날은 확실하게 기억할 거다.

        

       검성을 만나 제도로 처음 온 날이나,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이나.

        

       사실 어떻게 들어왔냐고 물어보는 것은 틀린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그 유적의 가장 깊은 곳에 당당하게 있던 존재가 아니던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이나 절차는 저 자한테 전혀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저자는 내 능력도 막을 수 있었고.

        

       단순히 나와 같은 시간대에 있어서 내 능력과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건, 아니면 저자가 의도적으로 막아내는 것이건—

        

       그리고, 그 사실을 떠올린 나는 등에 소름이 쫙 돋는 것이 느껴졌다.

        

       “……왜 지금?”

        

       그래, 왜 하필이면 지금?

        

       어느 순간에나 나타날 수 있다면, 훨씬 더 유용한 타이밍이 있을 것이다. 아니, 물론 내 목숨을 노리는 것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저게 진짜 나라면, 적어도 나한테 이런 인정머리 없는 짓은 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의 경악에 찬 목소리를 듣고도 상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니, 대답이라고 할 만한 반응 자체는 있었다.

        

       저자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는 어깨를 떨었다.

        

       공포에 질리거나, 긴장하거나, 그래서 어깨를 떤 것은 아니다. 내가 두려웠다면 애초에 이렇게 단둘이 있을 상황에 나타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보다는, 저 움직임은……

        

       웃음을 참고 있는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기다란 로브에 감싸인 어깨였지만, 어깨를 앞으로 살짝 움츠린 채 웃음을 참듯 떨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 내 생각이 확실하게 맞는 것 같았다.

        

       “…….”

        

       나는 한순간 몸을 긴장시켰다가, 곧장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너무나도 쉽게, 그 로브 자락을 잡을 수 있었다.

        

       이자는 계속 웃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웃음을 참는 사람 특유의 숨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대체……!”

        

       하지만 내가 뭐라고 더 말을 하기도 전에, 그 가면이 앞으로 불쑥 다가왔다.

        

       그리고 뭔가 확실하게 알려주겠다는 듯, 가면 너머로 말을 건넸다.

        

       “실비아.”

        

       “…….”

        

       공격하려는 것 같지도 않았고, 도망가려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다소 웃음기 어린 목소리는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기는 했지만, 살기 같은 것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 ■■■ ■■■ ■.”

        

       그 말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물속 깊은 곳에서 몇 미터 바깥의 사람한테 말을 걸듯, 무언가에 막힌 듯 나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뭐라고?”

        

       순간 말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내가 그렇게 묻자, 가면녀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한순간, 뭔가에 실망한 듯.

        

       “…….”

        

       “…….”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가면에 뚫린 구멍 안에서 눈이 반짝였다. 여전히 무슨 색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비추는 빛은 희미한 달빛이 전부였으니까.

        

       나는 천천히, 한 손을 놓았다.

        

       그리고 그 손을 들어 가면에 가져갔다.

        

       내가 가면을 벗기기 직전까지도, 그자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

        

       딱 그 순간에, 그자는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다는 듯.

        

       ……누가 데리고 가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 그보다.”

        

       잠깐 뭔가에 홀린 것 같던 기분이 가시고 나서, 내 머리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다시 한번, 등에 소름이 쫙 돋았다.

        

       설마, 설마, 설마…….

        

       “아, 아니겠지.”

        

       괜히 혼자 중얼거린다.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설마, 쟤랑 마주치기만 한 것으로 내 능력이 막혀버리거나 하겠어?

        

       딱히 둘이 싸우거나 한 것도 아니잖아?

        

       나는 잠깐 숨을 가다듬은 뒤,

        

       “좋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그렇게 힘차게 외쳤다.

        

       그리고 뭔가에 세게 부딪히고, 그대로 기절했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훈련장이었다.

        

       아마, 내가 훈련장으로 왔을 때의 그 시간일 것이다. 적어도 달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으니까.

        

       그 가면녀는 없었지만.

        

       나는 훈련장 한가운데 대(大)자로 뻗은 채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망했네.”

        

       설마 웃고 있던 게 이것 때문이었나?

        

       ……그놈, 미래의 나이건 아니건, 확실하게 죽여버리겠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암약군사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칭찬은 역시 글 자체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특히 저는 어린 시절부터 작가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기에, 독자 여러분께서 이렇게 칭찬해주실때마다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제 실력에 대한 확신 하나 없이 쓰기 시작한 글이지만, 이렇게 독자 여러분께서 좋아해주시는 것을 보니 제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독자 여러분께서 만족하실만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동안 느낀 즐거움이 여러분께도 확실하게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여러분께서 찾아오셨을 때, 늘 여기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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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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