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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0

     “키에엑-!” 

    숲 속에서 난데없는 괴성이 들렸다.

    꽤 우렁찬 성량을 자랑하는 그 비명은 태연스럽게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몇 새들을 놀래켜 하늘로 날려보낼 정도였다.

     

    그 비명을 지른 생물은 바로 머리털 없이 말라 비틀어진 듯 자글자글한 인간의 얼굴에 지나치게 핼쑥한 몸에 새의 날개와 다리를 대충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의 괴물, 하피다.

     

    하피의 비명은 동료를 부르는 행위다.

    하지만, 그 하피의 비명을 들을 수 있는 동료는 없을 거다.

    왜냐하면, 이미 이 지역은 사일런트로 가려진 상태니까.

    아까 놀라서 날아간 새가 고작 세마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것을 증명한다.

     

    “비온!”

     

    미리 스톡해둔 주문을 시동어로 내뱉으며 지팡이로 하피를 겨눈다.

    그러면 손가락 끝에서 발사된 마법이 어떠한 전조도 없이 쏘아져나가 하피의 근조직을 마비시켰다.

    순식간에 날개를 사용할 수 없게된 하피, 이번엔 순수한 당혹감과 공포심으로 비명을 지른다.

     

    퍽-!

     

    떨어진 하피는 죽지 않고 버둥거렸다.

    비행형의 몬스터는 보통 무게가 가볍기 때문에 추락한다고 끝이 아니다.

    적어도 이 숲에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다.

     

    그가 침착하게 곧바로 무력하게 떨어진 하피의 목을 틀어쥐자 하피는 눈을 크게 뜬 채로 한참동안 파닥거리다가 추욱 늘어져버린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눈꺼풀을 열어 눈을 까뒤집은 모습을 확인하고는 저쪽으로 휙 던져버리고는 몇 차례 손을 털고 조금 커다란 나무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주머니에서 울리는 통신기기의 알림음.

    그는 곧장 허리춤에서 통신기기를 꺼내든다.

     

    “그쪽은 끝났어?”

    “어, 이제 막 둥지를 확인하려던 참이었어.”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나무를 타고 올라가 나무로 대충 얽어놓은 듯 한 구조물에 다가갔다.

    아마도 그것이 그가 말했던 하피의 둥지이리라.

     

    둥지 안쪽엔 알 몇 개와 쓰레기, 그리고 천 조각과 나뭇잎만 있을 뿐, 그가 찾는 것은 없었다.

     

    “아이의 흔적은 없네.”

    “그래. 이쪽도 마찬가지야.”

     

    숲에서 발견된 아이의 발자국.

    그 탓에 긴급하게 실시하게 된 수색작업엔 그다지 친척이 없었다.

     

    “경찰쪽에선 뭐래?”

    “최근 실종된 10살 언저리의 아이는 없다고 하네.”

    “역시 뭔가 착각한 거 아냐? 예르나.”

    “그럴지도.”

     

    착각이라면 정말 다행이겠지.

    신고가 접수된 것도 없다고 하니까, 아마 별 일 없을 거다.

     

    그는 시계를 확인해본다.

    점심시간이었다.

    아무리 아이를 찾는게 중요하다고 해도, 식사는 해야 하는 법이었다.

    수색작업은 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작업이기도 하고, 아직 제대로 된 신고도 들어오지 않은 상태라 대원들의 의욕도 그다지 높지 않다.

    아이의 발자국이라는 게 결국 실제 아이가 아니라고 밝혀진다면 이 수색에 의미는 없는 것이 되니까.

     

    혹시나 ‘루크’와 같은 사례가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인신매매라, 그런 일이 어디 흔한 일도 아닌데다, 인신매매범들이 딱히 지적장애를 가진 것도 아니다.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이 두번씩이나 일어날 리가 없겠지.

     

    “예르나, 이제 점심시간인데, 식사는 하고 다시 수색하는게 어때?”

    “그래. 다이튼, 너도 이제 슬슬 복귀해.”

    “어? 어, 알겠어.”

     

    예르나의 통신이 끊긴 것을 확인한 다이튼,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으며 생각했다.

     

    ‘허, 설득할 필요도 없었잖아.’

     

    아이와 관련되면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예르나가 어떻게?

    흠, 혹시 이것도 루크의 덕 일까.

     

    —–

     

    예르나는 사살한 그리폰의 사체를 후에 회수팀이 회수할 수 있도록 GPS 단말기에 표시해두고는 몸을 일으켰다.

    역시 어디에도 추가적인 흔적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식인의 흔적도 없고, 이쯤 되면 정말 이 숲에 아이가 존재하긴 했는지 의문스러울 지경이다.

     

    설마, 숲지기들 중에 누가 장난을 쳐 둔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무슨 처벌을 줘야 할까…….

     

    잠깐 체벌수위에 대해 고민하던 예르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아마 착각이겠지.’

     

    이제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걱정을 하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자신이 과도한 걱정을 하면서 몸을 망칠수록, 루크가 또 걱정을 하게 되니까.

    걱정이 걱정을 낳는다고, 이제 그만 하는게 좋을 테다, 루크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러고보니 이번에 루크가 베리튼으로 체험학습을 간다던데, 참 잘 된 일이구나 싶다.

     

    그동안 루크가 항상 똑같은 일상에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 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요즘엔 첼로도 잘 연주하지 않고, 콧노래도 잘 부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마침 소풍을 준비하면서는 또 즐거운 듯 한 콧노래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기에 꽤 기분이 들뜬 것 처럼 보였다.

    소풍이 여간 좋은 게 아닌 모양이지.

     

    꽤 돈이 들지 않을까 걱정이 좀 되었지만 그 부분은 세레나가 ‘제가 전에 학비 전액 지원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냥 루크한테 시루드하고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 달라고 전해주세요.’라고 말하며 여행경비까지 전액 대납해주었기 때문에 더 이상 비용을 걱정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정말 좋은 분이시라니까.

     

    그나저나 베리튼, 정말 좋은 나라다.

    엘프가 많기도 하고, 세계수도 멋지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좋아한다면 베리튼 관광은 꽤 탁월한 선택이다.

    그러니 루크도 많이 좋아할 것 같다.

    루크는 숲에서 산책하는 걸 많이 좋아하니까.

     

     

    아마도 처음일 루크의 해외여행.

    많이 기대가 될 것이다.

     

     

     

    그래도 루크랑 한동안 떨어져야 한다니, 그 부분은 걱정을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혹시 해외에서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지?

    길을 잃는다거나, 뭔가 사건에 휘말려서 큰일이 생기면?

     

    그……. 보호자는 아이들 소풍에 막 따라갈 수 없나?

     

    그러고보니 고향에 안 내려간 지도 꽤 시간이 지났는데, 슬슬 한번쯤 내려갈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는 한데.

    좋아, 오랜만에 어머니나 뵈러 가봐야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루크와 같이 가면 좀 많이 눈에 띄겠지?

    루크와는 따로 비행기표를 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걸음을 옮기다보니 곧 저기서 숙소의 모습이 보였다.

    숙소에 다가갈수록 뭔가 루크의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평소 루크가 부르던 노래랑 느낌이 조금 다르네.’

     

    평소 부르던 노래는 아주 차분하고 느긋한, 여유로운 음악이었다면 이번에 루크가 부르는 노래는 조금 다급한, 활기찬, 급박한 느낌의 노랫소리였다.

     

    뭐, 딱히 듣기 안 좋은 목소리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런 루크의 목소리는 꽤 낯설어서, 새롭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

     

    그런데, 갑자기 숙소 안에서부터 누군가 도도도- 하고 뛰는 것 같은 발소리가 들렸다.

     

    ‘이상하네, 이건 혹시 루크가 뛰어다니는 중인 걸까?’

     

    아니, 그렇다기엔 발자국 소리가 둘처럼 들린다.

     

    ‘이상한데, 설마 침입이 있나?’

     

    그럴리가, 그렇다면 루크는 노래를 부를 게 아니라 비명을 질렀던가, 했겠지.

    하지만 예르나는 조금 빨라진 발걸음으로 숙소에 다가가고 있었다.

    마침내 숙소의 문 앞까지 다가가자, 그 너머에서 조금 더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예르나는 잠깐 문고리를 돌리려던 손을 멈췄다.

     

    “그만 멈추라니까!”

     

    설마 저게 자신을 향해 쏘아진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저 말은 누굴 향해 하는 말일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건 문을 열면 알 수 있을 테니까.

     

    벌컥.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놀라웠다.

     

    “파이, 제발! 아직 그건 굽지도 않았단 말이다! 잠깐 멈추거라! 하다못해, 발이라도 좀 닦고 움직이거라!”

     

    “시-러! 안 뺏겨!”

     

    “아니, 바닥이 더러워진단 말이다! 대체 발에다 뭘 묻히고 다니는 게냐, 그대는!”

     

    놀랍도록 루크와 닮은 듯 보이는 푸른 하늘색머리의 소녀와, 잠옷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한손엔 걸레를 들고는 자신이 묶은 듯한 머리칼을 휘날리며 그 아이를 쫓는 루크.

    초현실적인 광경에 예르나는 당황한 채로 굳어버렸다.

     

    ‘ㅇ, 얘는 또 누구야?’

     

    ——–

     

    푸른 소녀는 도망치며 반죽을 다 먹어치우고 나서야 얌전해졌다.

    겨우 차분해진 분위기속에서 루크는 소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루크의 설명을 들은 예르나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그러니까……. 얘가 루크, 네가 평소에 말하던 그 ‘정령’이라는 얘기야?”

    “아마도, 그렇다네. 이름은 파이, 아니. 파이리스라고 한다네.”

    “……그렇구나.”

     

    그냥 상상 속 친구인 줄 알았는데…….

    정령이란 건 동화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 아니었나?

    ……라고, 생각하기엔 좀 다른 것이, 이미 자신의 눈 앞에는 마수와 용이 합쳐진 키메라인 루크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 생각하니까 정령에 대한 것도 딱히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보면 전혀 정령같이 보이진 않는데…….”

     

    애초에 정령이라는 게 몸이 있고, 뭘 먹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그 말에, 파이리스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령 맞는데-?”

     

    그리 말하며 순간 사라져버리는 능력을 보여주는 소녀.

    어디로 사라졌는지 놀란 예르나가 고개를 돌리며 찾으려 하자, 정수리 부근이 간질간질해서 머리를 쓸어넘겼다.

     

    “파이, 머리에서 내려오게.”

    “알겠어, 에레!”

     

    파이리스는 루크가 자신을 대마법사라고 믿는 것처럼 자신을 정령이라 믿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정령의 특성을 지닌 것 같다.

    그리고 루크는 어째선지 그 모습을 처음부터 볼 수 있었던 것 같고…….

     

    “정말 정령이 있었구나…….”

     

    예르나는 멍한 표정으로 소녀의 청록색 눈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이 아이가 숲 속에 발자국을 남긴 것 같았다.

    애초에, 바닥에 찍혀 있는 저 발자국과 크기도 얼추 비슷하고.

     

    하지만 걸리는 점은, 소녀가 너무도 루크와 닮아 있다는 점이었다.

    조금 새침한 눈매, 물결처럼 웨이브진 머릿결, 오밀조밀하게 귀여운 이목구비.

    특히나, 저 청록색의 홍채는, 루크의 한쪽 눈과 너무나 똑같다.

     

    쌍둥이 자매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설마, 진짜로 자매라던가?’

     

    신빙성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닮았다는 것을 설명하기가 어려우니까.

    세상 어딘가에선 정령에 대한 실험도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예르나가 그리 떠올리며 소녀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자, 소녀는 그것이 자신을 소개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상당히 천진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한다.

     

    “나, 파이리스!”

     

    “그래, 파이리스.”

     

    “응!”

     

    소녀가 짓는 웃음은, 은은한 루크의 웃음과는 또 다른 한없이 순수하고 해맑은 웃음이었다.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은 그 미소에 정말, 오랜만에 아이를 깨물어주고 싶다는 충동에 어금니 안쪽이 간질간질해진다.

     

    아무튼, 예르나는 묻고 싶은 말을 묻기로 했다.

     

    “파이리스, 왜 그렇게 루크랑 닮았어?”

    “루크 아냐, 에레!”

    “에레?”

    “어떤 이유로, 파이는 나를 ‘에레’라고 부르더군. 그게 당최 무슨 뜻인지, 영문을 모르겠단 말이지.”

    “그래?”

     

    에레, 어쩌면 그것이 루크의 진짜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생각을 읽었는지, 루크는 조금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예르나, 그대까지 날 에레라고 부르지는 말게. 나는 루크 이루시니까. 차라리, 평소처럼 날 ‘루’라고 부르게나.”

    “으, 응. 알겠어, 루.”

     

    꽤 예쁜 이름인 것 같은데.

    혹시, 옛날의 일이 떠올라서 싫은 걸까?

    소녀는 역시 에레, 아니.

    루크의 옛 모습을 아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파이리스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예르나? 아니야.”

    “응?”

     

    파이리스는 예르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카리나, 카리나 리스핀드!”

     

    “……어떻게 그 이름을?”

     

    예르나는 표정을 급격히 굳혔다.

    그 이름은 일전에 이야기를 할때에도 루크에게 말해준 적이 없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크큭, 그것이 너의 ‘진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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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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