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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0

        

         

       “이해야 간다마는 그래도 참거나 좀 더 온건하게 의견을 표출하지 그랬느냐. 무릇 화는 복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액을 끌어오는 것이라, 항상 입과 혀를 조심해야 하느니라.”

         

       진성은 시선을 슬슬 피하는 대마녀에게 타박을 하듯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말투는 그렇게 화가 묻어 있지 않았고,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본디 복과 손님은 비슷한 면이 있는 법. 여유가 넘치고 성격이 좋은 이에게는 흔쾌히 찾아오지만, 화가 많고 주위에 폐를 끼치고 다니는 이에게는 쉬이 찾아오지 않는 것이 바로 이러한 성질 때문이니라. 하니 앞으로는 옳은 일을 하여도 그 강도를 잘 조절하고, 분노가 아닌 설득의 형태로 나타나도록 해야 할 것이니라. 알겠느냐?”

       “네, 네? 네….”

         

       대마녀는 진성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가족에게 폐를 끼쳤으니 크게 혼이 날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도리어 가벼운 충고만 듣고 끝나지 않았는가. 심지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대마녀가 한 말에 대해 깊게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그뿐만 아니라 은근히 잘했다는 칭찬도 안에 섞여 있기까지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 한 말도 혼을 냈다기보다는 그냥 ‘잘하긴 했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으니까 한마디만 하겠다.’라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다만 그 뒤에 있었던 수습을 보아하니 나의 말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고 있음은 잘 알았다. 참으로 기쁘고 기쁜 일이니 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으랴? 대마녀야, 나에게 손을 내밀어 보아라.”

         

       진성은 그렇게 말하곤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대마녀는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싶어 우물쭈물하더니, 잠시간의 망설임 끝에 오른손을 그 손바닥 위에 슥 올렸다. 마치 대형견이 사람 손바닥 위에 자신의 앞 발을 올리는 것 같은 모양새 같았다.

         

       진성은 자신의 손 위에 올라온 대마녀의 손을 살포시 쥐고는 자신의 왼손을 내밀어 무언가를 피워내기 시작했다.

         

       꿀렁.

         

       진성의 소매에서 녹아내린 황금이 액체처럼 흐르며 진성의 손바닥에 모이기 시작했다. 여러 지류에서 모인 냇물이 호수가 되는 것처럼 한 덩어리를 이루고, 한 덩어리가 된 황금은 티끌이 쌓여 산이 되는 것처럼 몸집을 불려 나가며 산 비슷한 형태를 이루었다.

         

       그리고 적당한 크기가 된 황금은 나선형으로 이리저리 몸을 배배 꼬더니 길쭉한 막대기 모양이 되었고, 그 막대기의 끝부분은 넓게 펼쳐진 원판이 되었다. 이윽고 원판은 여러 갈래로 잘리더니 서로가 몸을 겹치고 또 겹치며 모여 꽃의 형상을 이루었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장미였다.

         

       황금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본 대마녀는 그 빛에 현혹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녀는 진성의 손에 들려 있는 황금 장미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고, 진성은 그 황금 장미를 손가락으로 슬쩍 집어 들더니 자신이 붙잡고 있는 대마녀의 오른손에 가져다 댔다.

         

       꿈틀.

         

       그러자 황금 장미의 끝부분이 마치 뱀처럼 움직이더니 대마녀의 손목을 휘감았고, 길쭉한 막대기였던 줄기는 이리저리 휘어지는 덩굴처럼 마녀의 팔목을 감싸는 팔찌가 되었다. 그리고 피어오르려는 꽃봉오리 형태의 황금 장미는 제 몸을 얇고 작게 바꿔 팔찌 장식물로 적당한 크기로 변했다.

         

       그 결과 대마녀의 오른 손목에는 아주 자그마한 황금 장미를 그대로 엮어 만든 것 같은 아름다운 팔찌가 자리 잡게 되었다.

         

       “앞으로도 주위에 덕을 베풀고 좋은 일을 하라는 의미로 내 간단한 주물을 만들어 선물한 것인즉, 앞으로도 나의 말을 가슴에 잘 담아두어 잘 실천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니라.”

         

       진성은 그렇게 말하며 대마녀의 손등을 스윽 쓸어내렸다. 그리곤 간지러워하는 그녀를 보며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이 어찌나 순수해 보였는지, 대마녀는 순간 진성의 미소가 자신의 팔에 걸린 황금 팔찌와 비슷한 광채를 뿜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다.

         

       “잘 간직해야 할 것이야. 그리하겠느냐?”

       “아, 네….”

       “간단한 액막이의 힘이 있으며, 삿된 것을 물리치는 힘이 있느니라.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해가 되지는 않을 터. 다만 황금이라는 것이 현혹하는 기질이 있으며, 꽃 역시 그 아름다운 모습과 그 향기에 이끌려 오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큰 해가 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꽃이 찾아온 벌과 나비에게 꿀을 주어 꽃가루를 묻혀 번식하듯 너 역시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그들에게 복을 준다면 이는 더 커다란 복이 되어 돌아올 것이니라. 잘 기억해두거라.”

         

       진성은 간단하게 팔찌의 능력에 관해 설명하고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대마녀가 손을 쓴 것인지 쓸데없는 장식물들이 모조리 사라져서 휑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나, 도리어 그 휑한 모습이 진성에게는 더 편안함을 주고 있었다.

         

       ‘익숙한 모습이로다.’

         

       그는 그렇게 걸어가다가 문득 벽 한구석에 적힌 낙서를 발견했다.

       예술품이 걸려있던 자리에 적은 것 같은 낙서는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선명한 검은색이었다.

         

       낙서는 꽤 기하학적인 문양이었다.

       사람이 손으로 그린 낙서라기보다는, 무언가 그림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 영감을 받아 만든 것 같은 형상. 예술적인 가치가 있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할 법한, 꽤 잘 그린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낙관처럼 정사각형이 그려져 있었고, 그 안에는 좁쌀만 한 글씨가 적혀있었다.

         

       『 왔다 감 – 봄 & 겨울 』

         

       봄.

       겨울.

         

       그 두 단어만 보고도 진성은 이 낙서를 누가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엘라와 아나스타시아 자매의 짓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그러했지. 담비 역시 내가 따끔하게 지적해서 고치기 전까지 곳곳에 영역 표시를 하듯 제가 다녀간 흔적을 남기는 것을 즐겼다.’

         

       진성은 회귀 전 자신과 함께 전장을 누볐던 동료를 떠올렸다. 그리고 향수에 젖어 자신도 모르게 낙서를 손으로 스윽 쓰다듬으려고 할 때, 그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은인, 그거 지우면 안 된답니다~”

         

       진성이 고개를 돌리자 조금 열린 문에서 아나스타시아가 고개만 빼꼼 내민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진성이 쳐다보자 배시시 웃더니 한껏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 추억인데 그냥 내버려 두면 안될까용?”

         

       그리고 진성이 그 말에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 문 안쪽에서 바삐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두두두 하는 발소리와 함께 뛰어온 엘라는 아나스타시아의 입을 콱 틀어막았고, 그 과정에서 작게 열렸던 문은 활짝 열리게 되었다.

         

       편해 보이는 복장을 하고 있던 엘라는 아나스타시아의 입을 꽉 막은 채로 진성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낙서해서 죄송해요. 지우셔도 된답니다! 아니, 제가 지울 테니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

         

       엘라의 말에 아나스타시아는 눈을 부릅뜨더니 몸을 바둥거리며 그녀에게 벗어났다. 그리곤 크게 소리쳤다.

         

       “아니에요! 지우지 말아주세요!”

       “아니, 언니….”

       “동생! 언니 명령이에요! 방금 한 말을 취소하고 어서 내 의견에 동의하세요!”

         

       콕콕.

         

       “꺅! 이게 무슨!”

         

       아나스타시아는 어린애 특유의 넘치는 힘과 재빠른 몸놀림으로 엘라의 몸을 잡고 이리저리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녀가 방심한 틈에 뒤쪽에 자리 잡았고, 콕콕 찌르는 행위로 그녀를 공격했다. 엘라가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아나스타시아를 잡으려고 했지만, 마치 엘라의 패턴을 모두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하는 아나스타시아를 잡을 수는 없었다.

         

       “아 진짜! 대체 뭐 하는 거예요!”

         

       콕콕콕.

         

       “꺄악!”

         

       이러한 행위는 엘라가 분노를 터뜨려도 계속 이어졌다.

         

       “취소! 취소!”

       “그래요~잘했어용~”

         

       아나스타시아는 엘라가 항복을 선언하자 그제야 공격하는 행위를 멈췄고, 바닥에 주저앉은 엘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엘라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아나스타시아가 얄밉다는 듯 흘겨보았고, 천천히 기회를 보다가 그녀가 슬쩍 한눈을 판 사이 그녀를 번쩍 들어 올리곤 문 안쪽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문을 쾅 닫아버리고 자신의 몸을 기대서 그녀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막았다.

         

       쾅쾅!

         

       “동생! 이게 무슨 짓인가요!”

       “그냥 거기서 그러고 있도록 하세요!”

       “동생-! 우리의 작품을 지켜야 해요! 이건 예술이에요! 예술은 지켜줘야 해요!”

         

       엘라는 온몸으로 문을 막으며 진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상황이 민망했는지 그를 보는 엘라의 얼굴에는 민망함이 꽤 묻어 있었다.

         

       “그…. 헤어 박. 언니가 꼭 여기다가 그림을 그려봐야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제가 책임지고 지우도록 할게요.”

       “그림이라.”

         

       진성은 다시 한번 낙서를 바라보았다.

         

       기하학적인 모양새.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영감을 받아 단숨에 그려낸 듯한 문양.

         

       진성은 문양을 보고, 휑한 복도를 보았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문양이 복도에 잘 어울리는가?

       그렇다.

         

       예술품이 놓일 텐데, 그때도 어울리는가?

       그렇다.

         

       문양 자체에 특별한 힘은 있는가?

       모른다.

         

       그래.

       모른다.

         

       진성은 문양을 바라보았다.

       문양에서는 그 어떠한 에너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기, 마나, 마력, 자연력 등의 에너지는 한 톨도 느껴지지 않았으며, 오직 문양은 그림이자 벽 일부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문양은 그가 알고 있는 그 어떠한 주술과도 연관이 없어 보였으니, 안전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이곳저곳 쑤시고 다니면서 사고를 치던 회귀 전의 담비를 떠올려본다면….

       만약 이 문양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면 없애는 것이 훨씬 이로울 것이 분명했다.

         

       진성은 허공을 쥐어서 근처 빈방의 문을 열었고, 거기서 하얀 종이 한 장을 가져왔다.

       그는 하얀 종이 한 장을 문양 위에 덮듯이 올려놓고는, 종이 위쪽을 손으로 이리저리 문질렀다.

         

       마치 잘 배어들게 하려는 것처럼.

         

       그리고 가만히 종이 위에 손을 올려놓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대로 종이를 벗겨내었다.

         

       “어머.”

         

       진성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고 있던 엘라는 깜짝 놀라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벽에 그려진 문양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대신에 문양에 붙어있던 하얀 종이에 그림이 이사라도 한 것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진성은 엘라에게 그 종이를 내밀었다.

         

       “프라우 빈터. 손님에게 어찌 낙서를 지우는 허드렛일을 시키겠습니까? 그리고 아무리 낙서라고 하더라도 엄연히 추억이 담긴 것인데 함부로 취급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는 환하게 웃었다.

       마치 아까 대마녀에게 지었던 순수해 보이는 웃음과도 닮아있었다.

       하지만 아까 지었던 것이 소년의 웃음이라면 지금 짓는 것은 청년의 웃음이었다.

         

       “여기 프라우 빈터의, 프라우 렌츠의 추억을 담았습니다. 받아주시겠습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엘라의 손 위에 종이를 올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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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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