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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0

       

       

       

       

       

       이드밀라 님의 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이드밀라의 표정을 살폈다. 

       

       ‘굳어 있어.’

       

       아르에게 걱정 말라며 웃어 보일 때의 여유가 지금은 느껴지지 않았다. 

       

       【크크크….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역시나로군. 뭐,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에서 마련해 둔 함정을 일일이 돌파하면서 들어오는 걸 보고 확신했고.】

       

       ‘아, 그러고 보니.’

       

       분명 이드밀라는 각종 함정들을 앞장서서 거침없이 돌파해 나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 정도 함정은 10서클의 마법을 사용하는 고룡에게는 타격을 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아까 이 아래로 한 번에 이동하면 우리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고 말은 하셨지만….’

       

       물론 그게 거짓말은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만약, 이드밀라 님이 헤카르테의 말과 달리 온전한 상태였더라도 상황이 같았을까?’

       

       마왕이 하는 말의 뉘앙스로 볼 때, 온전한 힘을 가진 이드밀라는 우리를 데리고도 충분히 안전하게 이곳까지 바로 내려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드밀라의 성격 상, 할 수만 있다면 함정을 스킵하고 한 번에 내려왔을 것이다. 

       

       문득 아까 이드밀라가 아르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헤카르테는 천 년 전에도 이모한테 져서 봉인 당한 녀석이야. 이번에도 절대 안 질 거니까 걱정하지 말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저 말이 마치 ‘지는 거예요?’에 대한 대답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여태껏 봐 왔던 이드밀라라면, 자신이 이길 게 확실한 상황에서는 굳이 저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천 년 전에는 마지막까지 센 척만 하더니, 역시 그때 치명상을 입은 거였어. 크크크크…. 이렇게 제 발로 기어들어와 주니 고맙구나.】

       

       “꼴사납게 로그레흐 놈과 함께 덤비고도 뒈진 주제에 말이 많군.”

       

       【…입은 아직 살아 있구나.】

       

       역린을 건드린 듯, 마왕의 목소리가 분노로 조금 떨렸다. 

       

       이드밀라도 그 반응에 오히려 여유를 조금 되찾은 듯했다. 

       

       나는 그새 내 허벅지를 안은 아르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시커먼 수정 구슬과 이드밀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래. 저번에 이드밀라 님이 말씀하셨지. 천 년 전의 전쟁에서 마왕 둘과 싸워 혼자서 둘 모두를 봉인시켜 버렸다고.’

       

       그중 하나가 헤카르테,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방금 이드밀라가 말한 로그레흐라는 마왕인 모양.

       

       그리고 그들과 싸운 이드밀라는 아무래도 치명상을 입고 동면에 들었던 것 같았다.

       

       ‘아마 지금 아직 동면에 들어 있는 드래곤들 중 상당수가 이드밀라 님만큼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직 온전히 힘을 되찾지 못한 상태겠지.’

       

       원작 스토리에서 주인공이 드래곤들을 생각보다 잘 썰고 다녔던 것도 아마 그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드밀라 님은 그중에서도 마왕 둘을 봉인했던 전적이 있다. 힘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더라도 마왕 하나를 상대로는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야.’

       

       게다가 지금 헤카르테 역시 완벽하게 준비되지 못한 상태로 부활하려 하고 있다. 

       

       ‘애초에 승산이 없었으면 이드밀라 님도 여기까지 우리와 함께 내려오지 않았겠지.’

       

       그렇다고 도망치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아르를 지키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다면 우리를 두고 혼자 내려왔을 거다. 

       

       이드밀라는 카르사유를, 그리고 카르사유의 후손인 아르를 끔찍이 아끼니까 말이다.

       

       ‘그러니, 해볼 만하다.’

       

       어느새 검은 수정 구슬 주변에 흐르던 기운은 둘이 대화하는 사이에 끈적끈적한 어둠을 더해 가고 있었다.

       

       【오늘이야말로 네놈을 영멸시켜 주겠다. 자, 의식을 거행해라!】

       

       “예!”

       “헤카르테 님의 재림이다!”

       “헤카르테 님!”

       “헤카르테 님!”

       

       쿠구구구—

       

       교단원들이 소리치며 팔을 뻗자, 앞쪽의 땅이 흔들리며 묶여 있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쀼우! 안 대!!”

       

       그 모습을 본 아르가 내 허벅지를 놓고 뛰어 나가려 했지만, 나는 그런 아르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르야….”

       “레온! 이거 놔 바! 아르 저 사람들 구할 꼬야!”

       

       아르는 내 품 안에서 다리를 휘휘 저으며 발버둥쳤다. 

       

       나는 아르가 못 벗어나도록 아르를 더 꽉 잡았다. 

       

       “쀼우! 블링….”

       

       보다 못한 아르가 블링크 마법으로 내 손에서 빠져 나가려 했지만.

       

       쿠우우우우우….

       

       다음 순간, 쓰러져 있던 사람들의 몸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곧 흰 가루가 되어 수정 구슬로 흡수되었다.

       

       아까 교단원의 몸이 흩어져 아래쪽으로 흡수되어 내려가는 걸 보지 못했던 나조차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장면만큼은 아주 선명했다. 

       

       그리고 그 직후.

       

       쩌저저적. 쩌적!

       

       커다란 수정 구슬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파앙!

       

       완전히 깨지며 그 안에서 거대한 검은 기운이 흘러 나왔다. 

       

       그 기운은 곧 형체를 갖추었고, 마침내 천 년 전 이 땅에 나타나 대륙을 어지럽혔던 마왕 중 하나, 헤카르테가 우리의 눈앞에 나타났다. 

       

       ‘저 모습은….’

       

       재림한 헤카르테의 형태는, 흡사 아주 거대한 거북이와도 같았다.

       정확히는 새카맣고, 얼굴이 훨씬 사납게 생긴 거북의 모습이었다.

       

       쿠우웅. 쿵.

       

       거대한 돌기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두꺼운 다리. 

       그리고 일렁이는 검은 기운을 두른, 단단해 보이는 등껍질.

       

       ‘저게 헤카르테의 본모습…. 바할라크와는 확실히 다르구나.’

       

       게임에서 본 바할라크는 검은 철갑을 두른 거인 기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마왕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마왕들마다 가진 고유의 모습이 있는 모양이었다.

       

       【크흐흐흐…. 크하하하하핫!】

       

       오랜 봉인을 풀고 땅을 디딘 헤카르테는 고조된 감정을 드러내며 포효했다. 

       

       “윽….”

       

       단순히 한 번 포효했을 뿐인데도 주변의 공기가 짓눌리는 듯한 느낌.

       

       “삐꾹.”

       

       방금까지 블링크를 써서라도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던 아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손을 꼬옥 잡으며 딸꾹질을 했다. 

       

       ‘저게…. 완벽하게 부활하지 못한 마왕이라고?’

       

       꿀꺽.

       

       흡사 이드밀라가 처음 깨어났을 때를 마주하는 듯한 압박감이었다. 

       

       ‘역시 드래곤들과 전면전을 벌였던 존재….’

       

       게임에서야 그냥 모니터 보면서 캐릭터한테 걸린 ‘압박감’ 디버프를 포션과 동료의 마법으로 풀어 주고 달려들어 싸웠지만, 실제로 마주하고 나니 그 압박감이란 게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천 년 동안 봉인 당해 있더니 아주 실성을 했구나.”

       

       하지만 이드밀라는 그 압박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손가락을 튕겼다. 

       

       화아아아악!

       

       빛무리가 이드밀라를 감쌌고.

       곧 이드밀라는 거대한 고룡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네 주제를 깨닫게 해 주지.”

       

       그 말과 함께, 이드밀라의 몸에서 마치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처럼 무언가가 끓어 오르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건…. 설마.’

       

       한 번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직감할 수 있었다. 

       

       “녹아 없어져라!”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브레스.

       

       이드밀라의 입에서 엄청난 힘이 응축된 붉은 브레스가 쏟아져 나왔다. 

       

       【어림도 없다!】

       

       헤카르테 역시 입을 벌려 먹물을 압축해 놓은 것처럼 새까만 기운을 쏟아 냈다. 

       

       흡사 평야와도 같은 드넓은 지하 광장 한가운데에서 두 힘이 격돌했다. 

       

       쿠과과과과과과—!

       

       ‘흐읍.’

       

       저 멀리서 격돌하는 두 힘의 여파는, 감히 앞으로 나아갈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였다. 

       

       ‘저게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

       

       과연 몇 방 쏘는 것으로 도시 하나를 폐허로 만들 만한 엄청난 위력이었다. 

       

       저 힘에 크게 밀리지 않는 헤카르테도 적이지만 대단하다 할 만했다.

       

       ‘이드밀라 님과 헤카르테 싸움 실화냐.’

       

       진짜 가슴이 웅장해지고 심장이 벌벌 떨릴 정도였다. 

       

       쿠과과과과!!

       콰아아앙!

       

       가운데에서 격돌하던 두 힘은 결국 폭발을 일으켰고, 그 풍압에 나와 아르는 뒤로 날아갔다. 

       

       “삐유우!”

       

       턱.

       

       “레온 씨, 괜찮으세요? 아르야, 괜찮니?”

       

       우리를 잡아 준 건 실비아였다. 

       

       “고, 고마워요. 실비아 씨.”

       

       나는 아르를 안은 채 중심을 잡고,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끄, 끄헉. 여, 역시 헤카르테 님이십니다!”

       

       반대편에서 폼 잡고 의식을 거행하던 교단원들 역시 폭발의 풍압을 이기지 못하고 죄다 나가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이 엄청난 마기魔氣…!”

       “주군이시여…!”

       

       그들은 비틀거리며 일어나면서도 헤카르테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았다. 

       

       【끄흐흐흐…. 브레스라…. 그래도 그 이드밀라의 이름값 정도는 아직 한다 이건가.】

       

       헤카르테는 낮고 거친 목소리로 웃었다. 

       

       【하지만 그 브레스, 지금의 네 상태치고 상당히 무리해서 뱉은 것 같은데.】

       

       “흥. 네놈도 마찬가지라는 걸 모를 줄 아나?”

       

       이드밀라 역시 으르렁거렸다. 

       

       【크흐흐흐…. 서로의 상태야 서로가 잘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때 헤카르테의 등껍질에 나 있는 분화구처럼 생긴 구멍들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 나왔다. 

       

       ‘…뭐지? 공격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잔뜩 긴장한 채 그 기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스스스—

       

       그 기운은 응축되어 손바닥만 한 구슬 정도의 크기로 변해, 교단원들에게 천천히 날아갔다. 

       

       “오오!! 이것은!”

       “정순한 마기….”

       “헤카르테 님의 축복이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넘어져 다리를 삔 교단원도 기적을 알현한 것처럼 벌떡 일어나 허겁지겁 날아 오는 구슬 하나를 잡았다. 

       

       구슬을 하나씩 잡은 교단원들은 망설임 없이 그 구슬을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꾸르르륵.”

       “꾸륵.”

       

       구슬을 삼킨 교단원들의 피부가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육체가 변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영…생.”

       “헤카르테…님을 위한….”

       “영원히 섬긴다….”

       

       도저히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기괴한 형태로 변한 교단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흐흐흐…. 네 녀석에게는 지켜야 할 것들이 있지.】

       

       헤카르테의 섬뜩한 안광이 나와 아르를 향했다. 

       

       【내가 이드밀라를 맡는 동안, 저놈들을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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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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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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