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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0

       테세우스의 배, 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어본 건 전생에서도 머나먼 옛날이었다.

        

       유명한 이야기다. 항해를 하던 배의 판자를 하나씩 갈아 끼워버려, 결국 모든 판자가 교체된 배는 여전히 같은 배일까? 원래 배를 구성하던 것이라고는 더이상 무엇 하나 남아있지 않아도, 출항했던 배가 그대로 도착했다고 할 수 있을까?

        

       성인이 되고 들었다면 나름 흥미로운 철학적 주제로 받아들였을 거고, 중학생 때 들었다면 코웃음을 치며 제법 삐딱하고 허세 섞인 답변을 내뱉었을- 그런, 가벼운 형이상학적 역설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던 건 유치원도 채 가기 전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느낀 감정은 공포였다.

        

       무생물인 함선을 사람과 같이 생각해버린 탓이다. 인형이 살아 있다고도 믿는 나이니까.

        

       그날, 나는 밤새도록 사악한 마녀가 내 몸을 하나하나 잘라서 다른 몸으로 바꾸는 악몽에 시달렸다.

        

       다른 손.

       다른 팔.

       다른 다리.

        

       그리고, 다른 머리까지.

        

       그 머나먼 과거의……시간에 덮인 악몽을 다시 접한 건, 우연은 아니겠지.

        

       -뚜두두. 뚜두두.

        

       잠에 들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람을 설정해둔 게 정말 다행이었다.

        

       지금이라도 깨어난 게 어딘가. 천천히, 괴리되어있는 듯하던 감각이 돌아오고-

        

       춥네.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축축하게 들러붙는 이불의 감각이 나를 반겨주었다. 온 몸에 식은땀이 가득한 게……잠옷 정도는 입고 잘 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하고.

        

       이불에 조금 더 파고 들까 했으나, 어디를 매만져봐도 찝찝한 땀이 가득했다.

        

       일어나자.

        

       기분 탓일까.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지기만 하는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애써 바로 세웠다.

        

       조금은 익숙해진 움직임으로 몸을 씻어내고, 화장대 앞에서 옅은 화장을 마쳤다. 지튜브에선 배울 수 없는 게 없더라.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거라고 생각하면 저항감이 덜하다.

        

       그리하여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약속시간 한 시간 전.

        

       움직일 시간이다.

        

       거울을 보며 작게 미소짓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셀카를 찍어보았다.

        

       ……나갈까.

        

       * * * *

        

       한눈에도 고급스러운 태가 나는 일식집의 룸.

        

       점원이 열어주는 미닫이 문을 넘은 이예리가,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예나야!”

        

       허리를 틀며 고개를 들어 얼굴을 마주하는 이예나. 먼저 왔으면 아무데나 편하게 앉아도 될 텐데, 굳이 문 앞에 앉은 것이 정말 그녀의 동생 다웠다.

        

       “오래 기다렸지? 미안해. 김변 그 씹새가 끝까지- 아, 미안해. 아무튼, 회사가 다 그렇단다. 혹시 주문은 했어?”

        

       “……아니, 아직.”

        

       “그럼 일단 주문부터 하자. 특선 코스로 2인 하면 될 것 같고……아, 하고 싶은 얘기 있다고 했지? 술 필요한 얘기야?”

        

       “어……언니가 필요할 수도 있어.”

        

       “그래? 그러면 시켜야지. 이거, 핫카이산으로 하나 주세요.”

        

       “네, 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둘만 남은 방에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싱글거리는 이예리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물컵을 만지작거리는 이예나.

        

       ‘대체 무슨 이야기려나?’

        

       동생이 고민상담을 부탁한 게 얼마만인지. 최소한, 철 든 이후로는 한 번도 없었다. 걱정되는 마음보다 내심 뿌듯한 마음이 앞서는 건 언니로서 좀 그런가- 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돌아온 점원이 술과 함께 전채요리를 내어놓기 시작했다.

        

       무언가 목에 걸린 듯한 표정의 이예나가 입을 연 건, 두 사람의 앞에 놓인 잔에 사케가 가득 채워진 후였다.

        

       “있잖아.”

        

       “응?”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 알아?”

        

       맥락없는 질문.

       

       그러나 특별히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홀로 공상을 하다가 의문이 생기면, 종종걸음으로 이예리의 방에 걸어와서 ‘곰은 냉장고에 넣으면 겨울잠을 자?’ 따위의 질문을 급작스럽게 던지곤 했으니.

        

       “음- 알지?”

        

       그리 답하며, 이예리는 상큼한 유자 소스를 곁들인 샐러드와 적절히 숙성된 광어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로펌에서 인생을 갈아 넣는 보람을 느끼는 드문 순간이다.

        

       “……어떻게 생각해?”

        

       “진지하게?”

        

       고개를 갸웃거린 이예리는, 일단 술이나 마시자고 말하는 대신 잔을 내밀었다. 무의미한 철학적 담론도 술자리의 재미 중 하나라지만, 그건 모두가 술에 취하고 막차가 끊긴 후의 주제 아니겠는가.

        

       그러나 조심스럽게 잔을 부딪힌 이예나가 술을 입술에 겨우 대고는 내려놓는 걸 보며- 이예리는 비로소, 눈앞의 동생이 세상 진지하다는 걸 깨달았다.

        

       “음……언니는, 아무리 판자를 갈아 끼웠어도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생각해.”

        

       “……왜?”

        

       “우스울 수도 있는데, 비웃지는 마?”

        

       “응.”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가 여러 버전이 있긴 한데……오리지날은, 그거잖아? 미노타우르스를 죽인 테세우스를 기리기 위해, 그리스인들이 그가 타고 돌아온 배를 보존했다. 그런데 보존 기술이 부족하니 나무 배는 계속 여기저기가 썩었고, 후대 그리스인들은 그럴 때마다 썩은 부분을 새로운 나무판자로 교체했다. 그 결과 모든 판자가 교체되었다면, 그 배는 여전히 위대한 영웅 테세우스가 타고 온 배가 맞는가?”

        

       “……항해 중에 한 게 아니었구나.”

        

       부끄러운 걸까. 고개를 살짝 모로 돌리며 술잔에 손을 뻗던 이예나가, 마지막 순간에 다시 손을 거뒀다.

        

       “항해 중에 어떻게 판자를 다 교체해. 아무튼, 나는 그 배가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생각해.”

        

       “……왜?”

        

       “그 배가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라면, 위대한 테세우스의 배는 이미 조각조각 썩어서 사라진 거니까. 그건 너무 슬프잖아.”

        

       작은 룸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방에 들어가기 좋은 타이밍으로 해석한 걸까. 노크소리와 함께, 밖에서 대기하던 점원이 메인요리인 회를 두 접시 들고 성큼 걸어 들어왔다.

        

       “사시미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이쪽부터 참돔, 엔가와, 단새우와 우니, 그리고 참치 뱃살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설명을 마친 점원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고 방에서 나갈 때까지, 이예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야. 설마 오글거린다, 이러고 있는 건 아니지?”

        

       만약 그렇다면, 조금 억울할 것만 같았다. 모처럼 진심어린 답변을 했을 뿐인데. 변호사에 어울리는 냉철한 답변을 기대했던 걸까.

        

       ‘혹시 그런 걸 기대했다면, 지금이라도-’

        

       “언니.”

        

       “어, 응? 아. 언니 MBTI가 사실 F랑 T가 좀 왔다갔다 하는 거 알지? 방금은 F버전 답변이었고, T버전 답변은 또 따로 있거든. 들어봐. 이게 사실 동일성의 정의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포함시킬 것인가의 문제다? 들어볼 거지?”

        

       “……다음에. 나, 고백……자백할 게 있어.”

        

       앞에 놓인 잔을 입에 털어 넣은 이예나가, 사뭇 비장한 표정을 짓다가- 작게, 웃었다.

        

       “나, 인터넷방송해. 하고싶단 얘기 이거였어.”

        

       직전까지 짓던 표정 탓일까. 어딘가 비장해보이는, 무언가를 각오한 듯한……그런 미소였다.

        

       * * * *

        

       -푸우우웁! 콜록! 콜록!

        

       ……차갑네.

        

       맞은편까지 뿜어내는 건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건 줄 알았는데.

        

       성대하게 술을 뿜어내고도 한참을 콜록거리는 이예리에게 냅킨을 건넸다.

        

       “콜록, 인, 콜록! 인터넷방송? 설마, 어? 진짜? 언니, 언니가 용돈을 너무 안 줬어? 잠, 잠깐. 어디? 어디에서?”

        

       “……뭐 걱정하는 지는 알겠는데……그런 거 아니야. 그냥……게임하고, 가끔 이야기나 하는 방송이니까.”

        

       “아, 그래? 그렇지? 후- 아니, 언니가 우리 예나를 의심한 건 아니다? 그냥, 변호사가 맨날 사고 터진 것만 보는 직업이다보니까……그래서 그래. 하긴, 안 그래도 요즘 지튜브 크리에이터가 대세라고 하긴 하던데. 변호사 백날 해봐야 영상 하나 수익 못 이긴다고……암튼! 그래서, 잘 돼? 채널 이름이 뭐야?”

        

       “응, 아니. 되게……오순도순 작게 노는 방송이야. 이름 검색해도 안 나올……아무튼, 굳이 찾아볼 필요는 없어. 취미삼아 하는 거야.”

        

       “그렇구나. 그래도 뭐 어디 MCN같은 데 들어가게 되면 꼭 얘기해. 계약서 검토 꼼꼼하게 해야지, 독소조항에 걸리면 큰일나. 아, 혹시……진짜 설마 하는데, 말 함부로 하는 새- 놈들은 없지? 언니가 바로 휴직계 내고 고소장 싹 돌릴 테니까 바로 말해!”

        

       .

       .

       .

        

       그렇게, 한 시간 후.

        

       “고민은 좀 해결됐어?”

        

       “응. 고마워.”

        

       “언니가 마음은 진짜 2차 3차 다 달리고 싶은데, 오늘 새벽에 납품하기로 한 게 있어서……아, 친구 불러서 조금 더 마실래? 카드 줄까?”

       

        “아니야. 들어가야지. 어서 가봐.”

        

       못내 아쉬운 발걸음을 떼는 이예리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몇 번을 뒤돌아보는 건지. 입술을 살짝 끌어올려볼까. 저 거리에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선수상(船首像)이 교체되었어도, 같은 배…….

        

       이예리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다가, 마천루의 회전문 너머로 사라졌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제법 싸늘해진 저녁 공기의 위력이 상당하네.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은 걸까. 모르겠다. 누군가는 비겁하다고 하겠으나……그 비난도 내가 감수할 몫이겠지. 그게 낫다. 

        

       내가, 감내할, 몫-

        

       -우우웅

        

       [레반: 이거 게임이 좀 이상한데]

       [레반: 식량 어디서 구하는 겁니까]

       [레반: 피 묻은 빵은 먹으면 위생도가 너무 떨어지던데]

        

       하.

        

       [나중엔 낚시 농사로 충당하면 되는데]

       [처음엔 제국군 전초기지 습격해서 식량창고 터는 게 좋아요]

        

       -우우웅

        

       [레반: ??]

       [레반: 이 게임 농사 없다던데]

       [레반: 모드예요?]

        

       [저런]

       [나무꾼 패시브에 농사꾼도 있는 줄 알았는데]

       [같은 꾼이니까 어떻게든 되는 거 아닐까요]

        

       [레반: 도굴꾼 패시브였나보네요]

       [레반: 저는 안 뜨는 걸 보니]

        

       [저 소원권 남았어요]

        

       [레반: 나도 컨텐츠권 있어요]

       

       뭐지. 핵무기 과신가. 서로 자신의 머리에 겨눠진 총은 애써 무시하며, 내가 이 버튼만 누르면 넌 죽는다고 울부짖으며 서로를 협박하는 냉전 시대 감성의…….

       

       -흫

       

       웃으면서도, 대체 뭐가 웃겼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방송은, 하길 잘 한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명군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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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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