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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0

       “왜, 너 때문에 왔다고 생각했냐?”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그런 표정으로 남다운을 봤더니,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야, 농담이야, 농담. 너무 무서운 표정 하지 마…… 아니, 진짜 무섭거든?”

        

       자신을 진지하게 노려보는 나를 보고, 남다운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나도 너가 그런 감정 없는 거 잘 알고 있으니까.”

        

       “……혹시, 그 재능 덕분이에요?”

        

       “뭐, 그렇지. 너는 뭐랄까……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

        

       “그 반응을 보니까 진짜인가 보네.”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자, 남다운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말했다.

        

       “네가 누굴 좋아하건, 내가 일부러 방해할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방해한다고 해도 방해받을 생각이 없었다.

        

       당장 방해하려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 사람이 내 어머님이라는 점이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

        

       앉을 때와 똑같이, 읏샤,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킨 남다운은 나에게 말했다.

        

       “이제 갈까? 더 이상 같이 있으면 슬슬 저쪽도 우리 사이를 오해할 것 같은데.”

        

       남다운이 턱짓으로 가리킨 쪽을 바라봤더니, 이번에도 하던 일을 멈추고 이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다시 황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렇게 티가 나는데 이쪽에서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래요.”

        

       나에게 누군가의 거짓말을 꿰뚫어 보는 눈은 없었다. 하지만 남다운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남다운의 얼굴도, 내 주변 사람들처럼 빛나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이 빛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 내 인생을 바꾸어줄 사람들. 그 방향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반면에, 어머님의 얼굴에선 더 이상 빛이 나오지 않았다. 어머님은 더 이상 내 인생에 큰 간섭을 하지 못할 거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을 망치는 것은 힘들겠지.

        

       물론 이 능력이 그런 ‘예언’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나의 본능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정확히는,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내 안의 그 사람은, 나를 믿었다. 그래서 자신을 버려서라도 나에게 인생을 돌려줄 거라고 생각한 거다. 이번에 나에게 몸을 맡겼던 것도, 내가 제대로 일 처리를 끝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렇다면, 나도 나를 믿지 못하면 곤란하다. 내가 그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소리니까.

        

       그건 싫어.

        

       그러니까, 나는 나를 믿어보겠다.

        

       뭔가 엉망진창인 논리이긴 했지만, 내가 지금 움직이는 행동 원리는 그랬다.

        

       ……그리고, 내 주변의 친구들도 당연히 나를 믿어줘야겠지.

        

       하늘이처럼 곤란한 상황을 숨기고 혼자서 처리하려는 것도 곤란하다.

        

       먼저 일어나 걷기 시작한 남다운을 보고, 나도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걸었다.

        

       *

        

       “어때, 성과는 있— 어이쿠.”

        

       부원들이 모여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남다운에게 부장이 그런 소리를 하다가, 누가 봐도 명백하게 자기 얼굴을 노리고 날아오는 축구공을 손으로 겨우 막았다.

        

       “그런 거 아니라고 했는데요.”

        

       손으로 축구공을 튕겨낸 부장은 그런 말을 듣고도 능글능글 웃으며 말했다.

        

       “에이, 그래도 학년에서 제일 예쁘기로 유명한 앤데…….”

        

       “부장,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쟤 보고 ‘걸어 다니는 불행의 화신’이라느니 뭐라느니 하지 않았어요?”

        

       남다운의 그 말에, 부장은 단숨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아니, 야, 내가 그런 소리를 하긴 했지만…….”

        

       그렇게 변명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부장이, 한 학년 선배, 심지어 내년에 졸업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남다운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런 사람이 내년이면 대학교에 가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울 수 있단 말이지. 술은 몰라도 담배는 안 할 것 같은 사람이긴 하지만.

        

       “그냥 얘기 좀 나눴을 뿐이니까 신경 안 써도 됩니다.”

        

       “그, 그러냐……?”

        

       남다운의 단호한 말에, 부장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에이, 그러면서도 정말 아무런 감정도 없어? 저기 있는 애들이랑 제일 친한 건 너잖냐.”

        

       그렇게 끈덕지게 물어보는 것이다.

        

       ……이 사람, 혹시 저 애들한테 관심이라도 있는 건가?

        

       하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쪽이 이상하긴 하지. 수상할 정도로 예쁜 애들만 모여있는데.

        

       혹시라도 접근했다가는 상처만 받고 끝나겠지만.

        

       “친하고 자시고, 그런 생각 없다니까요.”

        

       뭐, 오래전에는 그런 감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한 열 살 때쯤에는.

        

       지금 와서 좋아하기에는, 조금 많이 늦어버렸지만 말이다.

        

       *

        

       그러니까, 일단 어머님이 누군가를 해하려고 하면 어떻게든 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도 안 되는 일로 선을 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걸까?

        

       아마, 지금까지 어머님이 그런 식으로 행동할 때는 누가 막아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국내 시총, 아니, 세계 시총 최대의 회사의 회장이다. 회사를 움직이지 않고 단순히 본인 자산만 움직여도 거인이 발길질하는 수준이겠지.

        

       스쳐도 흔적도 남지 않는다. 남다운의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회사처럼.

        

       물론 나름대로 상처를 남길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 소문을 퍼뜨렸다고 했던가.

        

       혹시 그게 어머님의 계략이었다면, 자신의 이미지를 망가뜨려서라도 나를 고립시키기 위해 써먹은 거라면, 나름대로 활용을 잘했다고 볼 수는 있겠다.

        

       물론, ‘나를 고립시키기 위해서’는.

        

       ‘회사 내의 지위’를 확보한 데는, 아주 심각한 타격이 있었겠지만.

        

       그런데도 어머님이 계속 회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마 나의 지분도 어머님의 지분이나 다름없이 취급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둘이 합쳐서 거의 15퍼센트의 주식. 그리고 내 이름으로 된 유진 생명의 주식 같은 것도 다 합치면, 그룹 전체를 쥐락펴락해도 이상하지 않다.

        

       명분이라기보다는, 회사의 목줄 자체를 손에 쥐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겠지.

        

       누군가를 위협하는 것도,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에게 밉보이고, 회사에 타격이 있어도 강행하는 것도.

        

       전부 어머님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자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

        

       속이 메스껍다.

        

       내 안의 일부는 여전히 어머님을 ‘어머님’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바뀌었다고 해도, 그 감정이 쉽게 털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님이 나에게 접근한 이유가 그저 ‘재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면—

        

       내 인생이, 그저 그런 이유로 망가졌다고 생각하면, 결코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그래.

        

       아버지의 재산이 어머님께 간 부분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셨다.

        

       어머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안전하게 보관된 자산들.

        

       내가 아직 모르고 있던, 그 사람이 밝혀준 ‘온전한 내 것’들.

        

       그것들을 이용하면, 나는 어머님께 제대로 대항해볼 수 있으리라.

        

       내가 앞길을 막았을 때, 어머님은 어떤 표정을 지어 보일까.

        

       지금까지 제대로 막혀본 적 없는 길을 누군가가 가로막았을 때,

        

       그리고 그 가로막은 이가 나라고 했을 때, 어머님은 어떤 표정을 지어 보일까.

        

       “…….”

        

       등에 소름이 돋는다.

        

       공포감, 혐오감에 돋는 소름은 아니었다.

        

       이건 기대감이었다.

        

       나에게도 비로소 어머님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으니까.

        

       게다가, 명분까지 생겼으니까.

        

       “……사라야.”

        

       “응?”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제는 담을 넘는 일은 없다. 저택 안을 휘어잡은 뒤부터는, 나를 감시하는 사람이 따라붙지도 않았고, 내가 나를 데리러 오지 말라고 하면 오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그저 정문으로 당당하게 나와서 함께 걸으면 그만이었다.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 너한테 있겠지.

        

       하늘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나는 아직 듣지는 못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나에게 폐를 끼칠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빚을 지기 싫다고 생각하는 건지.

        

       내 말을 듣고 나를 끌어안았던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우선 기다려 볼 생각이다. 하늘이가 정말로 나를 믿어줄 수 있을까?

        

       믿지 못한다면야, 뭐.

        

       믿도록 만들어 봐야지.

        

       “아니, 별일 없어.”

        

       그래, 정말로 별일 없다.

        

       오히려 발걸음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정말로 별일 없어.”

        

       나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하늘이에게 싱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참 이상하게도, 하늘이는 나의 그 표정을 보고서 조금 겁에 질린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걱정할 거 없대도.

        

       더 이상 무서워할 건 없으니까. 어머님에 의해서 내 친구들이 우악스럽게 찢겨나가는 것도, 소희의 가족이 애먼 짓을 당한다거나, 하늘이가 무슨 짓을 당한다거나, 수아가 누군가에게 납치당한다거나—

        

       그러니까, 내가 ‘두 번 다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잃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가벼웠다.

        

       왜냐하면, 나에게 돈이라는 것은 넘쳐나게 있는 거였으니까.

        

       무엇보다, ‘내 최고의 자산’은, 어차피 누가 훔쳐 가거나 빼앗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뿐사뿐, 아마 어린 시절 외에는 처음으로 그렇게 가벼운 걸음을 걸었다.

        

       어머님.

        

       기다리고 계세요.

        

       당신이 저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려고 했던 것처럼, 저도 어머님의 모든 것을 빼앗으러 가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제가 어머님을 위해 써 둔 편지를, 건네줄게요.

        

       나는 생각했다.

        

       아마 그 순간이,

        

       나와 어머님의 관계가 제대로 끝나는 순간이라고.

        

       어머님의 표정이 기대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ᄂᄒ님, 후원 감사합니다!

    언제나 저의 소설을 기다려주시는 분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제가 매일같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저의 글을 매일같이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고민했지만, 요즘에는 그 고민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저의 생각보다 훨씬 많았고, 그래서 매일 조금은 마음을 놓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글이 재미가 없어서는 안되겠죠.

    제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언제나 저의 글을 기다려주시고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 덕분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저의 긴 글을 읽어주시느라 투자하신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꾸준히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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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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