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40

        

         까딱… 까딱.

         집무실 의자에 앉은 남자의 다리가 일정하게… 또는 불쾌하게 흔들린다.

         

         손에 쥔 서류철의 페이지가 넘어가고 가라앉은 눈이 정리된 문자열을 더듬을 때마다 뉴턴의 진자 모형처럼 천천히 잦아들던 움직임이 다시금 힘을 얻었다.

         

         관할 하에 놓여있던 델타 연구소의 공습 이후, 총책임자이자 에나마의 집권 가문의 말석. 에다마츠 아마기는 꽤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고 할 수 있었다.

         

         …대개 평소에는 있는듯 없는듯, 승계 구도에 별관심을 표방하지 않다가도. 건수만 생겼다 하면 거품 물고 날뛰는 그의 히스테리에 휘말린 형제자매들과 주변인, 그리고 괜히 다른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기웃거리던 외부 세력들이야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나.

         

         전수 조사와 범인 색출을 명목으로 자신의 울타리 바깥까지 마음껏 발톱을 휘두르고 이빨을 꽂아 넣을 기회를 얻은 당사자는 지극히 공허함이 충족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 ‘있었다’.

         

         “……부족해.”

         

         갈증이 느껴지는지 그가 입술을 핥는다.

         단정한 복장과 달리 사납게 치켜 떠진 눈이 잠시 문서에서 떨어져 허공을 맴돈다.

         

         바로 얼마 전에, 아마기 회장에게 불려 가서 문책당하고 전권을 위임받고 나서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으니.

         

         홀로 날뛰는 맹견이라면 미친 개다. 상종 못할 짐승. 다가오면 피해야 할 재해.

         

         그러나 회장의 인가가 내려지고 은밀한 지원이 결정난 이후, 감히 에나마 직할 시설을 공격한 자들에게 벌을 내리는 게 메가코프 자체의 의중이 되자 그의 행보에서 누군가의 그림자를 보는 이들이 늘어났다.

         

         주인의 의중에 따라 정해진 곳을 지키고, 눈앞에 내밀어진 먹이감을 물어뜯는다.

         그건… 꼭 잘 길러진 사냥개나 다름이 없지 않나?

         

         “쯧…….”

         

         사냥이 끝나면 죽여버리는 개새끼. 용도를 다하면 도축 당하는 가축.

         머리속을 떠도는 불온한 단어들의 향연, 무의식 중에 올라간 에다마츠의 손이 와이셔츠의 옷깃(Collar)을 잡아당긴다. 마치 그게 목줄(Collar)이라도 되는 것 마냥.

         

         이 답답함이 옷을 풀어헤치는 것 정도로 해결될 수 있었다면 정말 여럿의 삶이 편해졌을 것이다.

         당장 그만 하더라도 입에 달고 사는 항우울제를 끊었을 것이고.

         

         말 한마디로 수십만 직원과 수천에 달하는 사병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자가 본사의 심처에서 제 모가지 근처가 서늘하다며 걱정을 하는 꼴이 문득 우습다고 느껴졌다.

         

         인류의 건강과 더 길고 건강한 삶, 궁극적으로는 영생永生을 보장하는 의학 분야의 선두 기업 에나마(Eternal Life).

         

         일부 서비스에 따른 청구액이 과해서 종종 논란이 되기는 해도, 결국 대부분 메트로폴리스의 공공의료를 책임지는 주체인 만큼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언젠가 한두 번쯤 신세를 지게 되는.

         함부로 험담조차 하기 꺼려질 정도로 도시에서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대기업이다.

         

         …그런 곳에서 막대한 부와 명예. 보장된 수명까지 지닌 채, 지배 가문인 아마기의 축복받은 혈통을 가지고 곱게 자라난 도련님이 이딴 고민이나 하고 있다니.

         

         하지만 겉으로 볼 때 멀쩡한 과일이라고 속이 곪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었다.

         

         개인에게 집중된 핵심 권력 구조, 그걸 유지하기 위한 온갖 더러운 술수와 소름 끼치는 제어 수단들. 그리고 피와 불신으로 얼룩진 인간 관계와 그것들이 주는 무한한 스트레스.

         

         비록 에다마츠가 계승 경쟁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하고 회장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시점에서 같은 경쟁자라고 여긴 견제는 줄어들었지만, 왕좌에 앉을 승리자가 단 한 명으로 제한된 내부 혈투는 정말 여전했다.

         

          “병신 같은 인간들….”

         

         ……다른 육친들은 제대로 알기나 할까? 당장 눈앞의 땅따먹기에 열중하느라 별장에 얼씬도 안 하는 인간들이?

         

         건강이나 판단력 문제로 은거했다던 아버지는 이미 ‘늙어 죽는다’는 위험성을 극복했고, 여차하면 다시 일선에도 설 수 있다는 걸?

         사실 지금 고집을 부리는 건 순전히 스스로의 완벽주의로 인한 불완전한 회춘 시술 거부와 외부에 드러내기 힘든 어머니의 대체용 클론 탓에…!

         

         “…….”

         

         까드득! 하는 이빨 갈려 나가는 소음과 함께, 벌어졌던 입이 다물어졌다.

         

         참으로… 증오스러운 가문이다.

         

         아무리 따져봐도, 논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마기 가문과 거기에 속한 구성원의 이상성만이 강조된다. 어딘가 하나씩 잘못된 인간들, 그걸 달래고자 손에 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무언가를 찾는 천생 악귀들.

         

         물론 자신이라고 딱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인물은 아니다. 스스로가 망가진 인간이라는 자각도 있고.

         그러나 안식처-집-없는 떠돌이의 고독이 물질적 보상으로는 달래지지 않는 걸 도대체 어쩌라는 건가?

         

         태어난 생명이 애정을 바라고, 결핍을 채우기 위해 없는 걸 갈구하는 게 그렇게 그릇된 행동일 리가 없다. 오히려 최하위 소득구간에 포함된 막장 인생들도 한줌은 지니고 있다는 가족애가 전무한 집안 쪽이 이상한 거지.

         

         아직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면 과거의 향수가 정신을 집어삼킨다.

         

         그 시절에 느꼈던 오감마저 선명한 건 단순한 향수라기 보다는 광적인 집착에 가까웠으나.

         

         온화한 공기, 무릎 베개를 받은 얼굴에 전해지는 체온, 이마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 코를 간질이던 특유의 달콤한 체취, 그리고 버릇처럼 흥얼거리시던 오르골의 멜로디. 어느 것 하나 그는 잊을 수 없었다.

         

         모든 게 소중한 추억이다.

         기업 전쟁 당시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련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서라도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삶이었고.

         

         그렇지만 그 죽음조차 잘난 과학과 기술로 어떻게든 부정하려는 망령의 집념을 도와야 하는 입장에서는 어찌 반응해야 할까.

         사자에 대한 모독은 기본이오, 스즈나시 아마기라는 여인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가족이라는 틀 안에 모여 있던 게 자신만이 아니거늘. 심지어 그런 가짜 인형을 만들어서까지 빈 자리를 더럽혀?

         

         정말… 그 꼬라지를 바라보는 인간이 어떤 감정을 품을지는 생각도 안 하는 게 분명하다.

         

         그러니 언젠가는 반드시. 기필코 후회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모욕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현실이 본인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되는 모형정원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리라.

         

         ……필요하다면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흥!”

         

         툭툭….

         

         거친 숨소리를 마지막으로, 어루만지던 어머님의 오르골을 다시 한 켠의 지정석에 돌려놓은 에다마츠가 서류뭉치를 책상 모서리에 몇 번 내리쳤다.

         

         포렌식 작업이 순조롭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3인의 소규모 해커팀을 고용한 것치고는 괜찮은 속도로 복원이 진행되고 있었고 업로드 되는 데이터에 따로 조작을 가한 흔적도 없다는 감식반의 보고가 있었다.

         

         하지만 회장으로부터 연구소의 자세한 내막을 들은 그에게 느껴지는 어색한 점이 있었으니, 바로 기이할 정도로 연구소장과 그가 직접 지휘하던 메인 프로젝트에 관한 데이터가 일절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속사정을 아는 누군가가 중간에서 해당 파일만을 잘라낸 것처럼.

         

         뭐, 우연히 해당 프로젝트와 관련된 자료들의 복원 순위가 뒤로 밀렸거나. 아니면 가장 중요한 최심부 보안 파일을 다룰 능력이 없는 놈들이 고용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니 섣부른 판단은 금물.

         

         등에 업은 회장의 권세를 바탕으로 망나니 짓을 벌이는 것도 슬슬 질렸기에 진행이 지지부진하더라도 크게 신경 쓸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문제가 될 여지가 있는지 최소한 확인은 해야겠지.

         

         “…카쿠바리, 오늘 정기 시찰이 있다고 했지? 격리 구역으로 간다. 그리고 거기서 외부 고용 인력의 면담이 끝나면 바로 감식반으로 갈 테니 준비하도록. …내부에 쥐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 알겠습니다. 곧바로 의전을 준비….”

         

         “지하를 통해 금방 다녀올 예정인데. 호들갑도 적당히 하도록.”

         

         예고도 없이 문을 열고 집무실에서 벌컥 나온 에다마츠를 보고.

         흥미가 떨어져서 굳이 깊게 간섭하기도 싫으니 알아서 사람을 쓰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또 관심을 내비치는 건가… 하고 비서인 카쿠바리는 철렁했지만 다급하게 비서진과 함께 따라붙었다.

         

         그저 몸을 많이 움직인다고 효율적으로 일이 진행되는 건 아닌 만큼, 그도 평소였다면 총책임자로서 자리를 지킨 채 담당자들을 소환해서 문책하고 일부 인원을 갈아치우는 정도로 끝마쳤을 것이다.

         

         단지 오늘은 회장의 흉내를 낼 기분이 아니었기에.

         답답한 호흡을 조금이라도 풀어보고자.

         그리고…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정말 어처구니없는 표현이지만- 기분을 느껴서.

         

         그렇게 명색이 아마기 가문의 일원이 움직인다고, 카쿠바리는 구역 경비의 예비대를 차출해서까지 그럭저럭 구색을 갖춘 무리를 인솔했다.

         

         도착지는 명령받은 대로 최근 냉방시설과 숙소를 새단장한 38번 격리 구역.

         

         “…오랜만에 뵙습니다. 에다마츠 상임 이사님.”

         

         마중 나와 있던 추적자가 극진히 고개를 숙인 후 차단문을 개방. 그러나 이 때까지도 그는 어떤 식으로 인원을 추리고 감별해서 자백제를 최저한으로 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심지어 앞으로 나서서 고개를 드는 와중에도 길에서 고용한 떠돌이 해커들이라 예의범절이 나쁠 수 있다는 수행비서의 말을 되새기고, 그에 수준에 맞는 당근과 채찍을 따져 보고만 있었는데….

         

         ‘……?’

         

         한 소녀와, 시선이 교차했다.

         

         체내 시계가 한없이 느려지고 갑작스레 가속된 혈류에 시야가 협소해졌다.

         

         날이 안 좋았다고 밖에 표현한 방법이 없었다. 하필 어머님의 유품을 만지작거리다 온 탓인지, 그리운 풍경을 추억하다가 온 탓인지, 논리나 이성이 미처 발휘되기도 전에 입술을 비집고 있을 수 없는 헛소리가 튀어나왔다.

         

         “………. 어머…님?”

         

         …아니다. 역시 아니다. 단순한 착시다.

         마법이 그 이름을 부른 순간 풀리는 것처럼, 입밖으로 호칭을 꺼내자 환상이 부서져 내렸다.

         아니, 애당초 그런 얼토당토않은 착각을 하게 된 것부터가 이상했다.

         

         머리색이 검어서? 그가 단순히 흑발 여성으로부터 그런 기시감을 느낄 쉬운 인간이었다면 가문의 여자들과 사이가 안 좋았을 리가 없었다.

         

         인상이 비슷해서? 어머니, 스즈나시 아마기는 언제나 단아하게 빗어 내린 머릿결과 나긋나긋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저런 단발에 슈트를 껴입은 게 아니라.

         

         마음이 물러져서? 그렇다고 처음보는 여자에게 감히 그녀의 형상을 덮어씌울 정도로 자신이 정신적으로 몰려 있었던가? 회장이나 다를 바 없이?

         

         그저 미묘하게… 어딘가 닮은 인물에 불과하다. 세상은 넓고, 순수하게 통계만 따진다면 전쟁 이전 시대보다도 인구수가 늘었다 하니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허나 그렇다면. 왜 이 소녀는 똑같이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걸까, 대체 무슨 감정을 느꼈길래. 아마기와 어떤 인연-과거사-가 있길래.

         

         “…저기 에다마츠님, 계획하신 면담은 이 자리에서 바로…?”

         

         “….”

         

         방금 전의 치태를 지적하는 미친 인간은 여기 없었다.

         현재 무리에서 두번째로 서열이 높은 남자마저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이 업무를 속행하려 하는데 누가 딴지를 걸겠나?

         

         …만약 있다면 본인밖에 없겠지.

         

         “아니, 오늘은 감식반만 들렸다가 돌아간다. 그리고 저 해커들은…!”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떠야 한다는 것처럼.

         입은 정장이 흐트러질 정도로 강하게 몸을 돌린 에다마츠가 당장이라도 저것들을 해고하는 걸로 눈앞에서 치워버리라는 명령을 내리려다가… 간신히 뒷말을 삼켰다.

         

         한순간이라도 오인한 자신이 가증스럽다. 약해진 인간을 유혹하러 온 악마와 소매가 스친 것 같아서 불쾌하고, 이것마저 누군가의 모략이 아닐까 꺼림칙한 상상에 휩싸였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막 억지로 시선을 돌려버린 참인데도 다시 한 번 소녀와 마주한 채 아른거리는 과거의 자취를, 이 감각을 교란하는 원인을 알아내고 싶었으니.

         

         “…내통자는 나중에 찾겠다. 계약이 끝나고 비밀 유지용 칩을 박아 넣을 때 전부 본사로 불러들이도록. 그리고 과거 연구소에서 올라온 보고서와 감찰부를 전부 재확인하겠다. …박사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멀리 갔는지 조금이라도 더 알아내야겠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해

    인생만사 님의 10코인 후원! 너무 감사드립니다!

    덧붙여서 언제나 재밌게 읽어주시고, 바쁘신 길에도 추천 눌러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좀 일찍일찍 연재분도 올리고 답글도 다 달아드리고 싶은데… 매번 쓰고나면 보통 지각이 아니래서 태연하게 댓글로 주절거리고 있기가 죄송하네요. 항상 꼼꼼하게 다 읽어보고 힘을 얻어간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