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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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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의 경계에 서 있는 사두마차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깊고 풍부한 색감의 목재로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으며, 표면은 광택이 나도록 세심하게 닦여 있었다. 마차 문에 새겨진 범의 인장은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 사람들의 시선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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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세하게 그려진 범의 모습이 생생하여 아이들 몇몇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범의 눈은 호박색 보석보다 좀 더 영롱한 색의 보석이 박혀있어, 빛을 받으면 마치 살아있는 듯 빛났다. 그 주변으로 금색의 띠가 일정한 문양으로 얽혀 있어 마차의 웅장함과 고귀함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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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차를 끄는 말도 범상치가 않았다. 검은색 털은 실크처럼 부드럽고 광택이 흘렀다.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말보다도 커다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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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려한 사두마차는 권력 있는 귀족 집안의 소유임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마차가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그 가문의 부와 권력에 경외감을 느낄 것이다. 누군가에겐 큰 영광일지 모르지만, 리안에겐 그저 부담스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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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게.. 가난한 여주의 기분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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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드라마에 꼭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던가? 부잣집 아들이 화려한 차를 끌고 회사 앞까지 찾아와 “야, 타!”라고 외치는 그런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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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차 앞에서 당황한 얼굴로 어버버 거리던 히로인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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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따위가 타도 되는 거 맞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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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는 마차 옆으로 다가서는 리안을 보며 제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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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리에 찬 벨트와 다리에 걸친 튼튼한 모험가 부츠, 용병이나 모험가가 입을 법한 실용적인 디자인의 옷은 화려한 마차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야 정상이었지만, 리안의 아름다운 외모와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품위는 어울릴 수 없는 것을 어울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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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역시 범의 자식은 범일 수밖에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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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는 감탄하며 눈을 빛내다가 이내 묘한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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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모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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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는 차분하고 의연한 자세로 마차 쪽으로 다가갔다. 그림체가 진지해진 듯한 기사가 다가오자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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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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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도있게 다가와 마차 문을 열어버리자, 리안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파드득하고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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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모시겠습니다.”
    “아,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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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가게에 들어갔다가 종업원이 활짝 웃으며 말을 걸어온 것만 같았다. 엄청나게 부담스럽다는 말이다. 리안은 어설프게 웃으며 마차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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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의 내부는 밖에서 볼 때의 화려함에 걸맞게, 세심한 손길로 꾸며져 있었다. 내부는 넉넉한 공간을 자랑했으며, 고급스러운 벨벳과 부드러운 실크로 장식되어 있어 탑승자에게 궁극의 편안함과 우아함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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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의 좌석은 넓고 푹신한 쿠션으로 덮여 있었고, 이는 긴 여정 동안에도 최상의 안락함을 보장했다. 좌석의 색상은 짙은 검은색과 금색 세공으로 이루어져 있어, 귀족적인 풍미를 더욱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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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의 창문은 작지만, 잘 디자인되어 있었고, 각 창문은 무거운 커튼으로 장식되어 있어, 필요에 따라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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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 한쪽에는 작은 책상과, 그 옆에는 세련된 디자인의 작은 캐비닛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 캐비닛 안에는 여행 중 필요할 수 있는 다양한 물품과 문서를 보관할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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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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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의 뒤를 따라 마차에 탑승한 제스가 그르릉거리며 푹신한 좌석에 몸을 던졌다. 그리곤 몸을 둥글게 웅크린 채 이리저리 왔다 갔다 뒹굴었다. 그래도 될 정도로 좌석이 널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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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 다 같이 써야 하는 장소니까 너무 뒹굴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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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이어 탑승한 노아가 단호한 얼굴로 제스를 저지했다. 그러자 제스가 “히잉…”소리를 내며 똑바로 앉았다. 축 늘어진 귀가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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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는 안 앉아?”
    “어? 어어 앉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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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구석진 자리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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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아이리스?”
    “응?”
    “옆에 자리 넓으니까, 옆에 앉으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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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가 아주 자연스럽게 리안의 무릎 위에 앉았다. 그 사이 키가 많이 컸는지 턱 아래까지 오던 아이리스의 키가 어느새 눈높이가 맞을 정도로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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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앉으면… 안돼?”
    “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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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물을 터뜨릴 듯 울망울망한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모습에 리안은 혀를 살짝 깨물며 신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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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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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와의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걸 코앞까지 훅 다가온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나서야 자각했다. 여름날 해 질 녘에 하늘을 수놓은 금빛 노을처럼 아름다운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 무엇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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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벙긋거리던 입술이 무어라 답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리안과 아이리스 사이에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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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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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은살과 자잘한 흉터가 남은 손, 노아의 손이 두 사람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리안의 시선이 미끄러지듯이 움직여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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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 지금 뭐, 뭘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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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아의 얼굴은 타오르는 불길처럼 붉어져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과거에 봤던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리안의 얼굴 또한 노아 못지않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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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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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을 가늘게 뜬 채 제 오빠와 노아를 번갈아보던 아이리스가 눈 앞을 가린 손을 치워버렸다. 그리곤 보란 듯이 제 오빠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청초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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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매애를 나누고 있는 거뿐인데?”
   “무, 무슨..! 어떤 남매가 그런 식으로 딱 달라붙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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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 또한 네로와 남매 관계였기에 저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 잘 알고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으면 말도 안 나온다고, 노아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입술을 벙긋거리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제스가 좌석 위로 올라와 개처럼 엎드린 채 동공을 수축했다가 확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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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의 시선 끝에 있는 건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 주인, 리안이었다. 마치 고양이가 사냥감을 낚아채기 직전처럼 입술을 할짝대며 어깨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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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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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쭈인님!”
   “우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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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리안을 덮치듯이 끌어안았다. 완벽한 삼각형을 유지하던 대형이 깨져버렸다. 막 마차에 타려던 릴리와 네로는 개판 3초 전인 상황에 조용히 발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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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다른 마차 타자.”
    “그러는 게 좋겠다..”
    “다른 마차가 더 크니까 저 네 사람은 여기 타라고 하고 나머지는 뒷 마차 타자. 괜히 여기 끼어서 타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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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릴리의 말대로 이곳까지 도달한 마차는 한 대가 아니었다. 총 두 대였다. 둘 다 겉모습은 비슷했지만 리안이 탄 마차 쪽이 조금 더 화려했다. 내부의 구조 또한 앞 마차가 더 화려하고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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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의 내부는 마도구를 이용해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확장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스무명 가까이 되는 탑승객을 전부 수용할 수 있었다. 마차에 탄 대부분의 조직원은 감탄하거나, 고급스러운 좌석에 앉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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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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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와 함께 딸려온 마부가 목소리 높여 말하고, 그들과 함께 온 용병 무리가 마차를 에워쌌다. 기사는 열 명의 용병을 흘긋거리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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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색 늑대 용병단, 신의가 깊고 실력도 뛰어나서 몸값이 꽤 비싼 용병이긴 하지만… 도련님을 모셔가는 상황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너무 조촐해. 각하께선 어째서 기사가 아닌 용병을 보내신 거지?’
    ​
    ​
    자신이 보낸 전서구를 확인했으니 이런 화려한 마차를 보낸 것이 틀림없었다. 무려 과거에 잃어버렸던 친자식을 찾았음에도 기사가 아닌 용병을 보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충성심 깊은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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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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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후 용병들이 끌고 온 말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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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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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 말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덩치와 탄탄한 근육을 가진 흑마는 기사의 파트너였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지 머리를 가볍게 털며 웃는 모습이 보였다. 기사는 말 갈기를 쓰다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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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그닥다그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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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차와 말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용병들 또한 전부 말을 타고 있어 그 속도가 느리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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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히 가십시오!”
    “어흐흑… 리안님..”
    “빛이 함께하길!”
    “너 이 새끼 생명 파였냐!”
    “죽음의 종자 따위는 꺼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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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는 마차의 뒤로 생명파와 죽음파가 나뉘어 쥐터지게 싸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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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 안에서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날뛰는 제스와 말싸움을 하는 노아와 아이리스를 말리던 리안이 밖에서 들려온 말을 듣곤 마른세수하며 마차 벽에 쓰러졌다. 그러자 제스의 난동과 두 사람의 말싸움이 뚝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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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쩍 손을 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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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리안 어디가 아픈 거야? 아픈 거라면 바로 말해! 잠깐 마차를 세워서….!”
   “오빠어디가아픈거야? 누가 아프게 했는데?”
    “킁킁, 쭈인님 아파? 내가 핥아줄까?”
    ​
    ​
    리안의 몸 상태가 괜찮다는 걸 냄새를 통해 알아차린 제스가 슬쩍 제 욕망을 채우고자 순진한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름다운 여성, 그것도 세 명이나 되는 여성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리안의 눈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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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잠깐만. 왜 이 마차에는 우리밖에 없어?’
    ​
    ​
    리안은 그제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이미 마차는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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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감기에 걸려서 지각해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ㅠ ㅠ
새벽에 상태가 조금 나아져서 오늘은 병원에 가보려합니다. (어제는 골골거리느라 못갔던…)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ㅠㅠ

아이리스 어머니 일러스트 ai로 미리 뽑아두었습니다.
혹시 보고 싶은 캐릭터 일러스트가 있으신가요? 요청이 많은 것부터 작업해보겠습니다 :3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숲의 경계에 서 있는 사두마차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깊고 풍부한 색감의 목재로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으며, 표면은 광택이 나도록 세심하게 닦여 있었다. 마차 문에 새겨진 범의 인장은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 사람들의 시선을 집어삼켰다.

섬세하게 그려진 범의 모습이 생생하여 아이들 몇몇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범의 눈은 호박색 보석보다 좀 더 영롱한 색의 보석이 박혀있어, 빛을 받으면 마치 살아있는 듯 빛났다. 그 주변으로 금색의 띠가 일정한 문양으로 얽혀 있어 마차의 웅장함과 고귀함을 더했다.

마차를 끄는 말도 범상치가 않았다. 검은색 털은 실크처럼 부드럽고 광택이 흘렀다.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말보다도 커다랬다.

화려한 사두마차는 권력 있는 귀족 집안의 소유임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마차가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그 가문의 부와 권력에 경외감을 느낄 것이다. 누군가에겐 큰 영광일지 모르지만, 리안에겐 그저 부담스럽기만 했다.

‘ 이게.. 가난한 여주의 기분인가? ‘

아침 드라마에 꼭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던가? 부잣집 아들이 화려한 차를 끌고 회사 앞까지 찾아와 “야, 타!”라고 외치는 그런 장면.

화려한 차 앞에서 당황한 얼굴로 어버버 거리던 히로인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 나 따위가 타도 되는 거 맞겠지? ‘

기사는 마차 옆으로 다가서는 리안을 보며 제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허리에 찬 벨트와 다리에 걸친 튼튼한 모험가 부츠, 용병이나 모험가가 입을 법한 실용적인 디자인의 옷은 화려한 마차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야 정상이었지만, 리안의 아름다운 외모와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품위는 어울릴 수 없는 것을 어울리게 했다.

‘아아, 역시 범의 자식은 범일 수밖에 없구나!’

기사는 감탄하며 눈을 빛내다가 이내 묘한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제대로 모셔야 한다!’

기사는 차분하고 의연한 자세로 마차 쪽으로 다가갔다. 그림체가 진지해진 듯한 기사가 다가오자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났다.

달칵.

절도있게 다가와 마차 문을 열어버리자, 리안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파드득하고 몸을 떨었다.

“자, 모시겠습니다.”

“아,네..네..”

옷가게에 들어갔다가 종업원이 활짝 웃으며 말을 걸어온 것만 같았다. 엄청나게 부담스럽다는 말이다. 리안은 어설프게 웃으며 마차에 탑승했다.

마차의 내부는 밖에서 볼 때의 화려함에 걸맞게, 세심한 손길로 꾸며져 있었다. 내부는 넉넉한 공간을 자랑했으며, 고급스러운 벨벳과 부드러운 실크로 장식되어 있어 탑승자에게 궁극의 편안함과 우아함을 제공했다.

마차의 좌석은 넓고 푹신한 쿠션으로 덮여 있었고, 이는 긴 여정 동안에도 최상의 안락함을 보장했다. 좌석의 색상은 짙은 검은색과 금색 세공으로 이루어져 있어, 귀족적인 풍미를 더욱 강조했다.

마차의 창문은 작지만, 잘 디자인되어 있었고, 각 창문은 무거운 커튼으로 장식되어 있어, 필요에 따라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었다.

마차 한쪽에는 작은 책상과, 그 옆에는 세련된 디자인의 작은 캐비닛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 캐비닛 안에는 여행 중 필요할 수 있는 다양한 물품과 문서를 보관할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여긴 내 자리!”

리안의 뒤를 따라 마차에 탑승한 제스가 그르릉거리며 푹신한 좌석에 몸을 던졌다. 그리곤 몸을 둥글게 웅크린 채 이리저리 왔다 갔다 뒹굴었다. 그래도 될 정도로 좌석이 널찍했다.

“제스 다 같이 써야 하는 장소니까 너무 뒹굴면 안 돼.”

뒤이어 탑승한 노아가 단호한 얼굴로 제스를 저지했다. 그러자 제스가 “히잉…”소리를 내며 똑바로 앉았다. 축 늘어진 귀가 귀여웠다.

“오빠는 안 앉아?”

“어? 어어 앉아야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구석진 자리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러자…

“저…아이리스?”

“응?”

“옆에 자리 넓으니까, 옆에 앉으면 되지 않을까?”

아이리스가 아주 자연스럽게 리안의 무릎 위에 앉았다. 그 사이 키가 많이 컸는지 턱 아래까지 오던 아이리스의 키가 어느새 눈높이가 맞을 정도로 커졌다.

“여기 앉으면… 안돼?”

“으윽..”

눈물을 터뜨릴 듯 울망울망한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모습에 리안은 혀를 살짝 깨물며 신음을 흘렸다.

“안돼…?”

아이리스와의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걸 코앞까지 훅 다가온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나서야 자각했다. 여름날 해 질 녘에 하늘을 수놓은 금빛 노을처럼 아름다운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 무엇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벙긋거리던 입술이 무어라 답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리안과 아이리스 사이에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왔다.

“어?”

굳은살과 자잘한 흉터가 남은 손, 노아의 손이 두 사람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리안의 시선이 미끄러지듯이 움직여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너희 지금 뭐, 뭘 하는..”

노아의 얼굴은 타오르는 불길처럼 붉어져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과거에 봤던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리안의 얼굴 또한 노아 못지않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툭.

눈을 가늘게 뜬 채 제 오빠와 노아를 번갈아보던 아이리스가 눈 앞을 가린 손을 치워버렸다. 그리곤 보란 듯이 제 오빠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청초한 얼굴로 말했다.

“남매애를 나누고 있는 거뿐인데?”

“무, 무슨..! 어떤 남매가 그런 식으로 딱 달라붙어 있어!”

노아 또한 네로와 남매 관계였기에 저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 잘 알고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으면 말도 안 나온다고, 노아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입술을 벙긋거리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제스가 좌석 위로 올라와 개처럼 엎드린 채 동공을 수축했다가 확장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 끝에 있는 건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 주인, 리안이었다. 마치 고양이가 사냥감을 낚아채기 직전처럼 입술을 할짝대며 어깨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팟!

“쭈인님!”

“우왁!”

“…!”

제스가 리안을 덮치듯이 끌어안았다. 완벽한 삼각형을 유지하던 대형이 깨져버렸다. 막 마차에 타려던 릴리와 네로는 개판 3초 전인 상황에 조용히 발을 뺐다.

“우린 다른 마차 타자.”

“그러는 게 좋겠다..”

“다른 마차가 더 크니까 저 네 사람은 여기 타라고 하고 나머지는 뒷 마차 타자. 괜히 여기 끼어서 타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릴리의 말대로 이곳까지 도달한 마차는 한 대가 아니었다. 총 두 대였다. 둘 다 겉모습은 비슷했지만 리안이 탄 마차 쪽이 조금 더 화려했다. 내부의 구조 또한 앞 마차가 더 화려하고 넓었다.

마차의 내부는 마도구를 이용해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확장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스무명 가까이 되는 탑승객을 전부 수용할 수 있었다. 마차에 탄 대부분의 조직원은 감탄하거나, 고급스러운 좌석에 앉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기도 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마차와 함께 딸려온 마부가 목소리 높여 말하고, 그들과 함께 온 용병 무리가 마차를 에워쌌다. 기사는 열 명의 용병을 흘긋거리며 생각했다.

‘갈색 늑대 용병단, 신의가 깊고 실력도 뛰어나서 몸값이 꽤 비싼 용병이긴 하지만… 도련님을 모셔가는 상황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너무 조촐해. 각하께선 어째서 기사가 아닌 용병을 보내신 거지?’

자신이 보낸 전서구를 확인했으니 이런 화려한 마차를 보낸 것이 틀림없었다. 무려 과거에 잃어버렸던 친자식을 찾았음에도 기사가 아닌 용병을 보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충성심 깊은 기사였다.

‘그래,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후 용병들이 끌고 온 말에 올라탔다.

푸르릉.

일반 말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덩치와 탄탄한 근육을 가진 흑마는 기사의 파트너였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지 머리를 가볍게 털며 웃는 모습이 보였다. 기사는 말 갈기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그닥다그닥.

마차와 말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용병들 또한 전부 말을 타고 있어 그 속도가 느리진 않았다.

“안녕히 가십시오!”

“어흐흑… 리안님..”

“빛이 함께하길!”

“너 이 새끼 생명 파였냐!”

“죽음의 종자 따위는 꺼져라!”

떠나는 마차의 뒤로 생명파와 죽음파가 나뉘어 쥐터지게 싸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차 안에서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날뛰는 제스와 말싸움을 하는 노아와 아이리스를 말리던 리안이 밖에서 들려온 말을 듣곤 마른세수하며 마차 벽에 쓰러졌다. 그러자 제스의 난동과 두 사람의 말싸움이 뚝 끊어졌다.

슬쩍 손을 내리자.

“리,리안 어디가 아픈 거야? 아픈 거라면 바로 말해! 잠깐 마차를 세워서….!”

“오빠어디가아픈거야? 누가 아프게 했는데?”

“킁킁, 쭈인님 아파? 내가 핥아줄까?”

리안의 몸 상태가 괜찮다는 걸 냄새를 통해 알아차린 제스가 슬쩍 제 욕망을 채우고자 순진한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름다운 여성, 그것도 세 명이나 되는 여성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리안의 눈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어, 잠깐만. 왜 이 마차에는 우리밖에 없어?’

리안은 그제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이미 마차는 떠나버렸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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